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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생각, 짧은 글

소그룹 성경공부 때문이다!?

최근 마태복음을 공부하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니, 이처럼 공격적인 선언으로 가득차 있는 이런 복음서를 읽으면서,

어떻게 도대체 멜랑콜리한...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정만화 같은... 그런 기독교를 진짜라고 믿을 수가 있는 걸까?


그건...

활활타는 용광로 앞에서 작은 주전자를 들고 차 한잔 마실 물을 끓여보겠다고 하는 것,

나이아가라폭포가 쏟아지고 있는데, 작은 생수병 하나 들고, '생수' 받아가겠다고 나서는 것,

3000년 묵은 키가 100미터가 되는 큰 나무를 보고, 그걸 분재해서 집에 키우고 싶다고 하는 것 보다도 더 터무니 없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뭐 대단히 긴 세월을 기독교인으로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늘 내가 '순정만화'식의 기독교 메시지만을 들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예전에는 그래도 거칠고 투박하고, 심지어는 신학적으로 약간 편향이 있었을 망정,

'선포', 혹은 '선언' 이라고 번역하는 '케리그마'가 살아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과연 무엇이 현대 기독교를 이처럼 천박하게 만들었을까?


최근 내가 고민하면서 주목하고 있는 것은...

'소그룹 성경공부'이다.


뭐 아는 사람은 다 알지만, 나는 소그룹 성경공부를 무척이나 소중하게 생각하며 지난 20여년을 보내왔다.

늘 소그룹 성경공부를 하며, 인도하며 살았다.


그런데,

현대 교회의 소그룹 성경공부는,

'선포'의 장대한 서사시와 같은 복음을,

어린아이들이 부르는 동요와 같은 scale로 전락시켜 버렸고,

복음의 사유화 (privatization)을 가속화 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신학적으로 많이 부족한 인도자가,

그저 좋은 성경공부 분위기를 만들려면...

우리끼리 서로 힘이 되는, 따뜻한 이야기, 

위로와 격려가 되는 이야기...

이런 것에 치중할 수 밖에 없게 되고,

결국 위에서 기술한 것과 같은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이 아닐까.


'말씀'을 전하고,

'말씀'을 나누고,

'말씀'을 배우면서...

삶과 사랑을 나눈다고 이야기하는 소그룹 성경공부가... 사실은...


말씀을 말씀답지 못하게 하고, 

말씀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shallow한 자기 생각을 나누고,

말씀을 배우기 보다는 말씀을 사유화하는 것을 배우고,

그래서 궁극적인 삶과 사랑의 의미를 찾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