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 2013/0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나의 2013 새해 바람 (extra)

짧은 생각, 긴 글 | 2013.01.31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지난 한달의 절반은 '아시아' 어느 나라의 시골에 있는 호텔과 그곳의 공장에서 보냈다.

매일 아침에 6시에 일어나 말씀묵상, 운동, 기도, 아침식사 후에 출근해서, 저녁 8-9시에 퇴근, 호텔방에 돌아오면 10시, 때로는 11시가 넘는 일정 이었다. 그나마 나는 아직 내 project가 본격적으로 launch하지 않았기 때문에 덜 바뻤던 편이었다.


그러는 와중에 이렇게 글을 쓰는게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1월 한달간의 글은,

대충 12월말 휴가 기간동안 생각도 했고, 얼개도 잡아놓았고, 많이 써놓기도 했기에 빼적지 않고 쓰는 것이 가능했는데...

실제로 앞으로도 출장을 많이 다니면서 이렇게 글을 쓰는게 가능할지 모르겠다.

하는데까지는 해보겠지만....


예전과 같이,

'한번 하기로 했으니, 이를 악물고 해보자'는 식으로는 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를 악물고 하는 것은,

그것이 새해에 내가 새롭게 가려보려는 자세와는 맞지 않는 것 같아... ^^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나의 2013 새해 바람 (21)

짧은 생각, 긴 글 | 2013.01.30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전면적 재수정?

다시 20년 전으로 돌아감?


내 새해 바램을 적어놓고 보니,

마치 내가 지난 10-15년 동안 내 신앙의 여정을 다 부정하다시피 하고,

다시 20년전의 내 모습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처럼 쓰여진 것 같다.


그렇지만,

분명히 그건 아니다.


지난 시간동안,

내 모든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참 내게 신실하셨다.

내 모든 발걸음과 함께 해 주셨고,

하나님에 대해 무지한 나같은 사람에게 당신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려주시는데 쉬지 않으셨다.


그렇지만, 늘 그렇듯이...

나는 하나님의 선하신 의도와는 관계없이 막나가는 성향이 다분한 사람이다.


이제 잘못 나아온 내 궤도의 일부를 수정하고 싶은 것 뿐이다.

이 과정을 지내면서, 겉보기에는 내가 그리 많이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또, 이 과정이 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게 신실하셨던 주님을 바라보면서...

이 transition을 주님께 맡겨본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나의 2013 새해 바람 (20)

짧은 생각, 긴 글 | 2013.01.29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현재 생각으로는,

내일로 이 시리즈의 허술한(-.-;) 글들을 마무리 지으려고 하고 있다.


그래도 new year's resolution이라는 차원에서 이 글을 시작했으므로,

금년에 뭔가 새롭게 결심하여 '실행'하는 것을 정리해서 적어보기는 해야할 것 같다. ^^


1.

성경 통독에 시간을 더 들이고 있다. 목표는 금년에 최소한 2독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서 성경 전체의 흐름 자체가 내 '영혼'을 적시도록 시도하고 있다.


2.

QT 본문을 아주 짧게 잡고, 대신 그 말씀이 마음을 흔들어 놓도록 그 말씀과 함께 더 깊이 머무는 시도를 하고 있다.


3.

가능하면 새벽기도 같은 시간을 떼어 깊이 길게 기도하는 시간을 갖고 싶은데, 사정이 여의치 않아 참 많이 안타깝다. 그렇지만 '정기적 기도'를 짧게 정해서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아침에 처음 일어나서, 잠자리 들기 전에, 직장에서 일을 시작하기 전에, 중요한 meeting 전에, 아주 짧게 (3-5분) 기도하는 시도를 하고 있고.

여러가지로 마음이 어려워지거나, 가슴 아픈 소식을 들었다거나, 아니면 특별히 좀 기도해야할 필요를 느끼면, 잠깐동안 이라도 '골방'을 찾아들어가 기도하려 한다. 이 골방은, 주차장에 세워져 있는 내 차안이 되기도 하고, 빈 conference room, 심지어는 화장실이 될때도 있다.


4. 

내 감정을 다스리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다.

내 긍정적인 감정, 부정적인 감정이 나를 dictate하지 못하도록 하고,

순간적인 감정의 변화는, 매우 자주, 성령의 이끌림이라기 보다는 내 죄성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자각하는 훈련을 반복하고 있다.


5.

passive하고 vulnerable한 것을 practice 해보고 있다.

이것은 때로 굼뜨게 행동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때로 타협하는 것 같아 보이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좀 더 구하려고 한다.


좀 더 있을 수도 있지만,

대충 이정도가 내 new year's resolution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결국 이렇게 다섯개 딱 쓰면 될걸,

20개나 넘는 글을 주저리 주저리 풀어놓았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나의 2013 새해 바람 (19)

짧은 생각, 긴 글 | 2013.01.28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information을 받아들일때,

그것을 너무 shallow하게 받아들여 바로 shallow한 방식으로 적용하는 모습을 벗어버리면 좋겠다.


예를들어...

미라슬라브 볼프의 사상을 매우 제한적이나마 접하면서,

유익을 많이 얻었다.

(그분의 사상과 신학을 내가 이해한다고 감히 이야기할 수준은 전혀 아니다. ^^)


복음을 통해서 용서와 포용이 가능함을 이야기하면서, 복음이 그 내용을 내제적으로 담고 있다는 것은, 특히 현대의 복음주의교회가 경청해야할 message라고 생각했다.


결국 용서를 위해서는 가해자의 행동 자체를 '잊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새롭게 다가왔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한국의 보수주의 정치세력과 결혼한 보수주의 교회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자유주의자를, 사회주의자를, 세속주의자를, 무신론자를 용서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아직도 20세기에 살고 있는 그들이 정말 가슴터지도록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서...

나 역시, 그 보수주의자들을, 독재세력을, 친일세력을, 부패한 정경유착 세력을 잊지 못하고 스토킹해가며 미워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 물론, 무조건 그 사람들이 잘못을 다 없던 것으로 하자는 것은 절대 아니다.)


좋은 가르침과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지만,

그것을 information gathering 차원에 그치지 않고,

'내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내게 빠져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내 눈 안의 들보를 보지 못한채 다른이 눈 안의 티끌이 몹시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던 것이었다.


공부, 묵상, 생각, 연구 등등의 목적을 점검하고 수정해야할 때가 아닌가 싶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나의 2013 새해 바람 (18)

짧은 생각, 긴 글 | 2013.01.25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지난 수년간,

내가 속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제는 '복음주의자'의 label을 나 자신에게 붙이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었다.


왜 그러냐고?


우선, 일반적으로 '복음주의자'라고 이야기되는 사람들의 주장에 나는 별로 동의하기 어렵다. 정치와 종교를 결합시켜놓은 것이라던가, 배타적 전투성, 반지성적 태도 등은 특별히 나를 많이 불편하게 만들었었다. 

그래, 그들이 '복음주의자'라는 딱지를 갖고 싶어한다면, 가지라고 그래. 적어도 나는 저들이 믿는 것과는 다른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으니, 내가 복음주의자라는 딱지를 버리지 뭐.

뭐 그런 생각이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것 이외에도 또 다른 이유가 내게 의미있기 다가오고 있다.


그것은,

복음주의가 풀어내지못하는 인간 본연의 문제들이 너무 크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가령,

주님을 잘 따르고자 살아가지만 어쩌다가 심한 우울증에 걸려 힘들어하는 연약한 사람의 고통을, 복음주의는 제대로 설명해주지 못한다. 


세상 속에서 버겁게 살아가면서,

정복이냐, 변혁이냐, 분리냐, 순교냐 하는 고민을 하는 이들에게,

복음주의는 여전히 할 말이 없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럼 해결책/대안이 뭐냐고?


나도 당연히 모른다.

다만, 복음주의의 좁은 바운더리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낀다고나 해야할까.


아, 나는 물론 (건강한) 복음주의자들이 믿는 것을 깊이 믿고 따른다. 아마 내가 주님을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내게 중요한 신앙고백의 핵심이 될 것이다.

다만... 그것보다 더 무엇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나의 2013 새해 바람 (17)

짧은 생각, 긴 글 | 2013.01.24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성경연구의 근본을,

성경 본문의 역사성에 근거하는 작업은 대단히 powerful 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N.T. Wright 과 같은 신학자의 저작과 주장에 깊이 매료되어 있다.

특히 한국과 미국의 복음주의 교회에서는 이런 접근이 더 많이 이루어져야 건강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mainline denomination은 또 다른 차원에서 성경 text의 역사성을 회복할 필요가 있지만..)


그러나,

성경본문을 읽어내는 데에는,

역사적 성경읽기이 외에도,

초월적 성경읽기가 병행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나는 물론, 성경 본문이 하나님의 숨결(pneuma)로 쓰여진 것을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 본문에는 역사성으로만 풀어낼 수 없는 초월성이 있다고 믿는다.


지난 수년간 역사적 성경읽기를 익혀가며 나는 참 많은 유익을 얻었다.

금년에는, 적어도 금년 상반기에는 초월적 성경읽기를 더 많이 해보고 싶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나의 2013 새해 바람 (16)

짧은 생각, 긴 글 | 2013.01.23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복음(gospel)을 가지고 상황(context)을 읽어내는 일은 참 중요하다.

그리고 상황(context)을 통해서 복음을 제대로 이해하는 일도 참 중요하다.


결국 복음은 상황에서 적용되어야하고, 상황 속에서 살아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건강한 것이라고 믿는다.


내가 많이 추구했던 신앙/신학의 내용은,

복음으로 상황을 해석해내고, 상황 속에서 복음을 적용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복음으로인해 상황을 초월해내는 일 역시 잃어버리지 말아야할 대단히 중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많이 깨어진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에게,

'big picture' 혹은 meta narrative를 보여주며, 

이 복음에 궁극적 소망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지만...


때로는,

깨어진 상황속에서 고통받는 사람에게,

이 상황을 뛰어넘는 '또 다른 세계'가 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결국 그들에게 소망을 주는 것이 아닐까.


그 '또 다른 세계'가 반드시 내세일 필요는 없다.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라는 식의 또 다른 세계가 될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또 다른 세계는, 이 땅의 현실을 초월하는 본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고통 받는 사람에게 소망을 준다.


새해에는,

(벌써 1월이 다 지나가고 있어... 이제는 새해라고 쓰기 좀 머시기 하지만...ㅎㅎ)

그런 의미에서의 초월성을 더 추구해보고 싶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나의 2013 새해 바람 (15)

짧은 생각, 긴 글 | 2013.01.22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나는 내 스스로 캘빈주의자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캘빈주의자들의 인간이해가 주는 insight이 참으로 크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인간이 죄로 인해 철저하게 타락해서 망가져버렸다는 것이다.


그것을 해결해보고자 정말 많은 노력을 다 해보지만,

결국 그것으로 이룰 수 있는 한계가 너무나도 명확하다는 것.


그런데,

때로 나는 너무 자주...

사람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 같이 주장하고 행동했던 것 같다.


그렇게 하다보니,

무언가를 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답답하게 느끼고, 정죄하고, 심지어는 미워하기까지 했다.


종교적 영역에서의 헌신과 관련해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주장했으며,

사회적 영역에서의 진보와 발전과 관련해서도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주장했었다.

개인적 영역에서의 성장과 성숙 역시 그렇게 보았던 것 같다.


물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참 소중한 존재이고, 어떤 의미에서 위대한 존재이지만,

심하게 망가져 있기 때문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닌데 말이다.


특별히, 2013년 KOSTA 주제인 freedom과 관련해서,

결국은 '죄'의 문제가 더 깊이 이해되고 다루어져야만 자유를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든다.


그저 피상적으로... 죄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아주 깊이있는 복음적 통찰로 죄의 이야기를 풀어내어야... 마침내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에 대한 소망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나의 2013 새해 바람 (14)

짧은 생각, 긴 글 | 2013.01.21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약자를 위한 복음, 약자의 복음.

예전에 이 블로그에 짧게 쓴 글인데 eKOSTA에서 가져가서 거기에도 올랐던 글의 제목이다.


그 글을 쓴 이후 나는, 약자의 복음과 약자를 위한 복음의 차이를 많이 곱씹어서 생각해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나는 약자의 복음을 믿고 있는지, 그렇지 않으면 약자를 위한 복음을 믿고 있는지.


또 나는 약자의 복음을 주장할 위치에 있는 것인지, 약자를 위한 복음을 주장할 위치에 있는 것인지.


혹은 더 근본적으로,

성경이 이야기하는 것은 약자를 위한 복음인지 그렇지 않으면 약자의 복음인지.


아직 이것에 관해 생각이 다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한가지 내게 분명해진 것은 이것이었다.


나는 약자의 복음을 주장하는 것 같이 이야기하지만, 

실상은 약자를 위한 복음을 주장하고 있었다.


사실 이 두가지가 이렇게 이질적으로 구별될 수 있는 것인지도 확실하지는 않다.


그렇지만 내가 흔히 생각없이 이야기할 기회가 생기면 이야기했던 방식은 이런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약자를 사랑하신다. 어떤 의미에서 약자를 편애하신다. 그러므로 그런 약자를 위해 이렇게 이렇게 섬기고 사는 것이 복음의 뜻이다. 흔히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싸구려 pseudo-gospel은, 이런 이런 이유에서 성경의 복음과 다르다. 이것을 제대로 깨닫고 그것에 맞추어 헌신해서 사는 것이 우리의 부르심이다."


음...

얼핏 보면 꽤 설득력있는 것 같이 들리는데...


막상 내가 주장하는 복음을,

약자들이 따라올 수 없는 윤리강령이 되어버린 경우가 많았다.


스스로 자신의 몸을 일으켜 세울 힘조차 잃어버린 사람들,

세상에서 낙오되어 소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내가 이야기하는 '복음'을 들으면...

오히려 더 많이 절망하게 될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렇게 헌신할 기운조차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헌신하지 않으면 복음을 제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약자를 위한 복음을 이야기하지만,

막상 그 내용에서 약자가 철저히 배제되는 것이다.


은혜, 사랑, 초월성, 인격성 등과 같은 것이 결국 이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싶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나의 2013 새해 바람 (13)

짧은 생각, 긴 글 | 2013.01.18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내 신학/신앙의 흐름을 보면 대충 다음과 같았던 것 같다.


1.

은혜, 죄사함, 구원, 영접, 성화, 감사, 전도, 성경공부


2.

하나님 나라, 영역주권적 변혁, 기독교 근본주의, 변증, 성경공부, 캘빈주의적 근본주의


3.

부흥, 회개, 죄, 헌신, 개혁, 사회변혁, 신학공부, 탈캘빈주의


4.

새로운 신학, 탈근본주의, 평화주의, new perspective, emergent 


5. 

위의 내용들을... 융합, 포용, integration...? (hopefully) + 공동체



이렇게 정리해놓고 보면,

이런 흐름 속에서, 가장 새롭게 내게 강조점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은 '공동체' 이다.


결국, 이 내용들을 묶어내는 '자루(bag)'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공동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지난 연말, 이 '공동체'와 관련해서 하나님께서 새로운 길을 열어주시는 것이 아닐까 싶어 마음이 움직였었다.

내게 참 소중한 사람들에게 깊은 실망을 주고... 지금은 내가 뒤로 물러나 있기 하지만,

어떻게든 새해에는 내가 이 '공동채'라는 차원에서 새로운 발견과 경험, 도약과 깨달음이 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소망이 있다.


community, vulnerability, solidarity, suffering, transcendence, hope, love, communal growth, sharing, missional


이런 단어들이 공동체와 관련해서 내가 integrate 해보고 싶은 것들이다. 


아참, 하나만 더.

내 신학과 신앙의 흐름을 보면, 새로 끌리는 어떤 key를 가지고 너무 많은 것을 해석해내려는 시도를 반복했던 것 같다. 일종의 환원주의(reductionism)이다.


역사성 없는 개인 구원,

근본주의적 전투성,

은혜 없는 하나님 나라 신학,

초월성 없는 변증이나 teaching,

개인이 상실된 공동체, 공동체를 잃어버린 개인주의

등등은 모두 reductionism의 산물이 아닐까.... 싶다.


참고로,

얼마전에 이승장 목사님께서 자신의 facebook에 올리신 것을 보면서 참 많이 공감을 했었다.

창세기, 아가서, 야고보서 같은 것 까지도 다 '하나님 나라'로만 해석하려 하는 것은 지나친 환원주의인 것 같다고.

오히려 지금 이 시대에는 기독론이 더 강조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냐고.

(사실은 내가 이 생각을 먼저 하고 글도 써 놓았는데 이승장 목사님께서 먼저 facebook에서 선수를 치셨다. ㅋㅋ)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나의 2013 새해 바람 (12)

짧은 생각, 긴 글 | 2013.01.17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벌써 한 1년도 더 지난것 같다.

내가 주일예배를 드릴때 마다,  한편 좋은 가르침에 감사하면서도,

정말 깊이 '예배'를 드렸다고 느껴지지 않는...

일종의 갈증이 내게 있어왔다.


정말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주님을 높이는 마음이 들고,

그 주님을 생각하기만 해도 마음이 좋고,

그 주님의 소망이 내 안의 어두움을 몰아고,

주님의 사랑 앞에 흐느껴 우는...

그런 경험에 대한 목마름이 깊이 있었다.


생각을 해보면,

깊은 예배,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영광, 예배의 감격 등등은,

하나님 나라 신학에 근거한 헌신을 강조하는 base로부터 나오기는 어렵고,

주님과의 관계 속에서 그분을 깊이 사랑하는 base로부터 나오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설교를 통해 깊은 가르침을 얻는 것이 물론 예배중에 참 여러 유익을 주지만,

'teaching'에 너무 강조점을 두다보면 'worship'을 잃어버리게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사실, 내가 지금 출석하는 교회의 예배에서, 늘 좋은 teaching이 있음에도, worship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깊은 목마름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 그런 이유인 것 같다.


그리고,

복음을 이야기할때,

변증적 가르침이 중요하긴 하지만,

복음을 변증적 가르침에 의존하다보면 선포와 예배등과 같은 초월성을 잃어버리는 것 같다.


새해에는...

어떻게든 정말 깊이 주님을 예배하는 것이 내게도 회복되면 좋겠다.


내 개인적으로도... 그리고 hopefully... 어떻게든 공동체 적으로도.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나의 2013 새해 바람 (11)

짧은 생각, 긴 글 | 2013.01.16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작년에,

내가 이 블로그와 eKOSTA에 썼던 글 가운데 하나가 'block'되는 사건이 있었다.


이 블로그와 eKOSTA는 모두 daum에서 제공하는 tistory 서비스를 쓰고 있는데, 

내가 썼던 그 글에 등장하는 어떤 분이 그 글을 내려달라고 daum에 요청을 해서 그 글이 내려졌던 것이었다.


그 글은, 소위 '교회 개혁'을 주장하는 글이었다.

그리고 그 교회 개혁을 주장하는 글에는, 어떤 '큰 목사님'의 아들에 대한 언급이 나왔었다.

그 큰 목사님의 아들 (혹은 그 대리인)이 daum에 그렇게 요청을 한 것이었다.


2001년에 쓴 글이니, 뭐 벌써 10년도 훨씬 전에 쓴 것이다.


eKOSTA를 담당하는 모 형제가 막 분개하면서, daum에 따져서 다시 올리자... 뭐 그렇게 이메일을 써 왔는데, 나는 그렇게 하지 말자고 했다. 물론 그 큰목사님 아들의 행동이 불편한 것은 사실이었다. 내가 쓴 글에 '사실'이 아닌 어떤 다른 것이 들어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런데...

나는 2001년에 쓴 내글의 입장에 더 이상 동의하기 어려웠다.


교회개혁이라는 단어는, 참 오랫동안 내 마음을 흔들어놓고 움직여왔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어떤 의미에서 교회개혁을 바란다.


그렇지만,

지금 어떤 사람들이 접근하는 방식대로, 혹은 내가 2001년에 쓴 그 글에서 주장하는 방식대로, 

교회개혁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 사실 회의가 있다.


교회개혁을 주장하면서 싸우는 사람들 가운데 너무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교회개혁 대상자들과 같은 '괴물'이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때가 많이 있다.

그분들의 생각과 마음에 깊이 공감하지만...

그분들의 자세와 방법이 궁극적 해결책을 가져다주는데 오히려 방해요소가 될 수 있지는 않을지... 잘 모르겠다.

아니, 최소한,

나는 그런 입장을 가지고 있으면 나 자신이 너무 쉽게 망가지는 것을 경험한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악에 대항하여 싸우다가 나 스스로가 괴물이 되어버리지 않도록 나 자신을 잘 추스리며 살고 싶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나의 2013 새해 바람 (10)

짧은 생각, 긴 글 | 2013.01.15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어떤 이들은 이야기한다.

기독교 신앙은 doing의 문제가 아니라 being의 문제라고.

무엇을 행함에 앞서 어떤 사람이 되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한편 그런 이야기에 공감을 하면서도,

다른 한편 약간 생각을 달리한다.


나는 being이 doing에 앞서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being과 doing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하나를 다른 것으로부터 떼어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being은 doing을 강화시키고, doing은 being을 강화시키는 역할도 있다고 생각한다.


Having said that...

나는 복음에 사로잡힌 후, 초창기에 being의 영역에 거의 내 모든 관심을 기울이며 살았다. 그리고 doing은 그저 being의 부산물이라고 믿었다.


예를 들어보자.


나는 남들의 인정을 받는 것을 무척이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늘 다른이의 인정을 위해 많은 것을 compromise할 준비가 되어 있다.

복음을 받아들인 후 나는, 그것이 내 뿌리깊은 죄성임을 인식했다. 그리고 그것과 정말 미친듯이 싸웠다.

가령, 어떤 노인이 힘들게 짐을 가지고 가는 것을 보면서, 그 노인을 돕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생각했더라도, 그 주변에 사람들이 있어 내가 그 노인을 돕는 것을 보며 나를 괜찮게 여길 것이다... 라는 인식을 하는 순간 나는 선행 자체를 포기했다. 왜냐하면 주변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자하는 내 죄성과 싸우는 것이 선행보다 더 우선하는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그런식의 행동으로는 더 이상 내가 성숙해질 수 없음을 깨달았고,

어떤 의미에서... 다른 이들의 인정을 좀 받는 한이 있더라도 공동체와 타인의 필요에 따라 선행을 하는 쪽을 선택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시간이 더 지나면서...

나는 이제 내 being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은 책 doing에 몰두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진단을 해본다.

이제는 다른 이들의 인정을 받고자하는 내 의도를, 선행을 추구하는 데 도움이 되는 '연료'로 활용을 하고 있는 것 같다.


Pendulum이 반대쪽으로 너무 가버린 것이다.


이제 다시 그 pendulum을 중심으로 좀 가지고 와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내 영혼을 돌보며, 내 죄성과 싸우고,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이제 내가... 사는 것은... 내 안의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라는 말씀을 많이 곱씹어야 할 것 같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나의 2013 새해 바람 (9)

짧은 생각, 긴 글 | 2013.01.14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은혜없는 신앙과 신학의 왜곡은, 내 정치적 편향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나는 정치적 색깔이 꽤 분명한 편이다.

한국과 마국의 여러가지 선거때에,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누가 되어야 하는지 하는 것을 고민했던 적은 거의 없었다.

사실 내 이런 정치적 입장은, 내가 복음을 받아들여 알게된 이후에 확립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내 정치적 입장은 내 신앙/신학에 의해 깊은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내 정치적 편향이 오랜시간 계속되면서,

나와 다른 정치적 입장을 갖는 정치집단과 그 지지자들에 대한 분노가 마음 속에 많이 쌓였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정치적 견해에 따른 이상이 구현될때, 정말 이 땅의 많은 왜곡이 개선될 것이라는 핑크빛 환상을 가지게 되었다.


결국,

하나님께 두어야할 궁극적 소망을, 정치에 일부 두는 모습을 많이 보였던 것 같다.


정치는 중요하고, 복음은 정치적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내 복음적 양심으로, 내가 반대하는 어떤 정치집단을 지지하기는 힘들다.


그렇지만, 

내 정치적 편향이,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에 대한 소망을 약화시키고, 사람이 정치를 통해 이룰 것에 대한 소망을 강화시키는 성향을 만들어 내고 있다면,

그 인본주의적 요소를 재고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나의 2013 새해 바람 (8)

짧은 생각, 긴 글 | 2013.01.11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은혜 없는 신앙의 모습은 내게 다양한 부분에서 드러나고 있다.

우선, 내 신학적 이해의 영역.


내가 신학적 통찰이 대단히 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꽤 열심히 신학적 소양을 찾추려고 노력을 해왔다. 부족하지만 신학교에서 쓰는 교재들을 구해다가 독학을 하기도 하고, 다소 여럽게 느껴지는 신학자들의 저작들을 읽으며 현대사회에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나름대로 해석해내려고 많이 노력을 하기도 했다.


"하나님 나라"의 신학을 열정적으로 사람들과 나누고, 여러 신학적 접근을 통해서 현대 기독교가 잘 해내고 있지 못하는 것에대한 대안을 찾으려고 했지만...

그러는 과정 중에서, 내 신학적 지향이 점점 은혜가 없는 영역으로 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현대의 문제가 이러 이러한 것으므로, 이런 신학적 접근으로 해결할 수 있다' 는 식의 접근을 반복하면서, '이런 문제에는 이런 논리적 해결책이, 저런 문제에는 저런 논리적 해결책이' 와 같은 적용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와 세상이 처해있는 문제의 해결이 은혜가 아닌 논리의 메커니즘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내게 가져다 주고 있는 것 같다.


하나님 나라의 신학은 건강하고 옳은 것이지만,

그 하나님 나라의 신학을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시대가 열렸으니 이 새로운 movement에 join해라!' 라는 식으로 외치는 것은,

자칫 새로운 시대의 moral code를 따르도록 강요하는 새로운 형태의 율법주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내게 있어서는,

신앙과 신학에 그리스도의 인격이 다시 회복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주님의 마음, 주님의 가슴, 주님의 심장, 주님의 사랑,

그리고 그 주님을 향한 내 불붙는 사랑...

그 관계 속에서 무제한 제공되는 은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나의 2013 새해 바람 (7)

짧은 생각, 긴 글 | 2013.01.10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개종자 한 사람을 만들려고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하나가 생기면, 그를 너희보다 배나 더 못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23:15)


이 말씀이 어쩌면 지금 내게 참 아픈 경고의 말씀이 아닌가 싶다.


나는, 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이 스스로 위선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믿는다. 자신의 종교적 열심으로 최선을 다했던 것이었는데, 그 결과는 위선으로 나타난 것이다.

자신도 지지 못할 멍에를 다른이들에게 지도록 이끌면서 모두 함께 망하게 만드는...


결국 이들이 가졌던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의 노력으로, 은혜 없이, 하나님과 함께 함 없이, 노력하는 열심이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내 열심의 모습은, 이것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더라도, 혹은 이 하나님이 다른 종교적/정치적 열심으로 치환되더라도 그것이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하는데 있어서 아주 큰 문제는,

물론 이런 내 비뚤어진 자세가 나 자신에게 해가 되기도 하지만,

다른 이들에게 대단히 큰 악영향을 끼친다는데 있다.


잠깐 지금 멈추어서, 내 자신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내가 악악거리며 주장하는 신앙에는,

대단히 능력있고, 자기 통제 잘하고, 의지력 강한 사람이 되라고 촉구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끔찍한 생각이 든다.


다시말하면,

그럴만한 능력이 없어 사회에서 loser가 된 사람들은,

내가 추구하는 신앙의 모습에서도 loser가 될 수 밖에 없는 그런 상황인 것이다.


그러다보니,

어쩌다 최근 내 영향을 받은 사람들 중 어떤 이들은,

나는 저 사람이 이야기하는 추구하는 그런 신앙인이 절대로 될수 없다며 실망하고 좌절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내 자세와 일과 섬김과 관계와 마음을 '은혜'로 채워넣어,

마치 내가, 인간이, 무엇을 이룰 수 있는 것 같이 살아왔던 모습을 많이 고쳐나가고 싶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나의 2013 새해 바람 (6)

짧은 생각, 긴 글 | 2013.01.09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주님을 늘 사랑하면서 살고 싶고,
주님을 사랑하면서 사는 것을 추구하지만...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에 비하면 늘 일관되지 못했다.

소위 up & down이 늘 있었다.


흥미롭게도, 주님을 사랑하는 것과, 내가 주님의 일을 효율적으로 하는 것과의 상관성은 그리 높지 않았던 것 같다. 주님의 일을 효율적으로 하는 것은, 오히려, 교육이나 훈련, 그리고 경험을 통해서 발전되는 영역이었던 것 같다. 다시 말하면 주님을 향한 내 사랑이 식은 기간에도 내가 매우 효율적인 사역자로 일했던 시기가 많이 있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많이 있었고.


주님을 더 깊이 사랑하는 시기에 보이는 독특한 특징은, 내가 주님을 더 깊이 닮아가는 변화를 겪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그런 연관성이 있는가 하는 것을 잘 풀어 설명할만큼 내 생각이 정리되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적어도 내 경험상으로는 그랬다.


신앙의 연륜이 쌓이고, 여러가지 일을 하는 사역자로 살면서,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점점 주님을 위해 일하는 것으로 치환해왔다는 것을 최근 많이 발견하였다.


그러면서,

내가 더 효율적인 사역자가 되기는 했지만,

주님을 닮아가는 변화가 내게서 더 이상 잘 나타나지 않게 되었다.


새해에는,

내가 주님을 더 많이 사랑하여 주님을 닮는 과정이 회복되면 좋겠다.

주님을 위해서 일하는 것보다는, 주님을 닮은 것을 더 많이 바라며...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나의 2013 새해 바람 (5)

짧은 생각, 긴 글 | 2013.01.08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지난해 말,
내가 내 가족을 빼고는 가장 아끼는 몇 사람들과 이메일을 하면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쓴 적이 있었다.


지금 제 모습을 보면, 마치 레드불과 같은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 영향을 받으면 잠시 힘을 반짝 내는데는 도움을 주지만, 오히려 그것 때문에 몸과 마음을 상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돌이켜보면, 한때는 저도 부족하지만, '녹용 보약'과 같은 사람이었던 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효능이 좀 딸리는 보약이긴 했지만, 그래도 제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그 마음에 소중한 생명을 담고 살게되는 것을 자주는 아니어도 가끔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 모습은, 몸을 망가뜨려가며 잠시 힘을 내게하는 레드불과 같은 모습입니다. 자극적인 맛과 효능의 레드불 말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내가 최선을 다하되, 하나님께서 열매를 맺으실 것을 기다리는 참을성을 갖지 못하고,

조바심을 가지고 내가 끝장을 보고자 했던 내 자세가 가장 큰 문제가 아니었을까.


새해엔,

내 안에 있는 독성을 빼내고,

덜 자극적이더라도 깊이 있고 영속하는 효능이 있는 녹용 보약과 같은 사람으로 바뀌어가고 싶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나의 2013 새해 바람 (4)

짧은 생각, 긴 글 | 2013.01.07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나와는 좀 신앙의 컬러가 다른, 그렇지만 내가 참 좋아하는 P형이 있다.

이 형은, 말하자면..... 좀 퇴마사 같은 스타일이다. ^^

한밤중에 자다 일어나서 악한 영을 대적하는 기도를 하다 자기도 하고....

말을 할때도 논리정연하게 설명을 하기 보다는, 불교의 선문답 비슷한 스타일로 이야기한다.


아이로니칼하게도,

개인적으로 나는, 나와 스타일이 매우 다른 이 형으로부터 참 많은 영향을 받았다.


내 신앙의 컬러가 아직 확실히 확립되지조차 않았던 20대.

P형이 언젠가 내게 와서 뜬금없이, 너는 요한복음 스타일의 신앙을 가지고 있구나.

그렇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게 무슨 얘기냐고 물었더니,

내 신앙을 붙들고 있는 가장 중요한 기둥은,

나는 거대담론, 헌신, 변증, 논리 등등의 딱딱한 개념 보다는,

예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 예수님을 보고 싶어 하는 것과 같은, 예수님과의 사랑의 관계 라는 것이었다.


그때 당시에는 뭐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갔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내 신앙의 컬러가 확립되어 드러나면서 나는 P형의 그 이야기가 참 옳았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돌이켜보면, 나는 위기의 순간에,

복음의 거대담론의 vision이나, 내 헌신의 충성과 같은 것에 의지해서 돌진해 가기 보다는,

주님과 더 가까워지면서 그분의 숨결을 느끼며 그분과 동행하는 것을 통해 힘을 얻는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최근 10-15년 동안 대외적으로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이야기했던 것은,

주님에 대한 사랑이라기 보다는 거대담론, 헌신, 변증, 논리 등과 같은 딱딱한 개념이었다.


나 역시 그런 개념들로부터 많은 유익을 얻었지만,

그런 시간을 지내면서 내가 신앙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그 무엇(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것)을  너무 오래 놓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주님을 위해서 살기 보다는, (물론 이것도 계속 포기하지 말아야 하겠지만)
주님을 사랑하며 사는 삶을 많이 회복하는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나의 2013 새해 바람 (3)

짧은 생각, 긴 글 | 2013.01.04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지난 여름 정도 였을까.


내가 '하나님의 임재'를 깊이 '느끼지' 못하고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을 위해서 열심히 살긴 하는데, 하나님과 함께 누리며 살고 있지는 못한 것이다.


그런데, 어쩌면 더 큰 문제라고 내가 생각한 것은,

그런 내 상태가 그렇게 많이 불편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사실 하나님이 아주 친밀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기간은, 꽤 자주 있었다.

그렇지만 그럴때 마다 나는 참 많이 괴로워했었다.

하나님이 가까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였다.


그런데,

지난 여름의 나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어차피 하나님을 위해 몸바쳐 살고 있고,

하나님께서 하셔야 할 일은, 

내가 하는 일들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것을 통해 기뻐하시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일들을 하는 나와 함께 하실 필요는 없었다.


내가 하는 회사일이나, 말씀사역, K 운동 관련한 일들... 무엇이건 다 그랬다.


그때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무감각하게 지났는데 (세상에, 어떻게 이걸 무감각하게 지낼 수 있단 말인가. -.-;)

P사에서 A사로 transition하는 기간에 나 자신을 돌아보며 이것이 더욱 심각하게 다가왔다.


새해엔,

내가 하는 일이 아니라, 나와 함께하는 하나님을 더욱 깊이 경험하고 싶다.

그렇게 내 삶을 바꾸어나가고 싶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나의 2013 새해 바람 (2)

짧은 생각, 긴 글 | 2013.01.03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뭔가... transition 중일까?


긴~ struggle을 지나고 박사과정을 마칠 무렵,

나는 M 학교의 66동 1층 한 강의실에서 QT를 하곤 하였다.


2003년, 대략 몇달의 기간에 걸친 말씀 묵상 기간동안,

하나님께서는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셨다.


그리고 내가 보지 못하고 있던 내 모습을 많이 보게 하셨다.


꽤 많은 생각과 방대한 reflection이 있었지만,

그 내용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것이었다.


"You are on the wrong track!'


뭔가 내가 잘못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엥? 내가 잘..못... 가고 있다고?


나름대로 긴 박사과정도 마무리하고 이제 끝이 보이고 있는 상황이고,

이렇게 주님도 열심히 믿고 있고,

그리고 주님을 위해서 이렇게 헌신하며 살고 있는데?

나는 그야말로, 내 삶을 다 던져 이렇게 전투적이고 치열하게 주님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데?


주님께서, 내가 잘못가고 있다고 말씀하신 것은 이런 것이었다.

나는, M. 이라는 학교가 제공해주는 성공과 성취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그것은 내 삶의 근간으로 삼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물론 그때, 성공주의적 환상에 이끌려 사는 삶의 모습을 많이 비판하는 사람이었다.

소위 성공해서 하나님께 영광돌린다고 이야기하는 싸구려 신앙을 경멸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막상 나는... 매우 교묘하고도 비뚤어지고도 subtle한 모습으로 혼합주의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교묘하고 subtle해서, 나는 스스로 내가 하나님 앞에서 잘 서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여러가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나름대로 기도도 하고, 공부도 하고, 말씀묵상, 고민, 씨름, 토론 등등도 하면서 나는 일종의 'transition'을 겪게 되었다.


그 과정을 통해서 나는,

소위 '개혁주의적' 세계관을 따르던 내 입장을 수정하게 되었고,

공격적이고 배타적인 전투적 근본주의자의 모습으로부터 빠져나오기 시작하였고,

내 agenda를 버리고 하나님의 agenda를 따르는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2013년 1월의 나를 바라보건데,

그런것과 비슷한 일종의 transition을 겪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transition을 통해,

어그러진 내 모습이 더 환히 드러나고, 그 과정을 통해 좀 더 내 대빵 목수님을 많이 닮는 열매가 맺히어지길 기대해본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나의 2013 새해 바람 (1)

짧은 생각, 긴 글 | 2013.01.02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1.

내가 어릴때,

어른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네 새해 결심이 뭐니' 라고 묻는 것이 정말 싫었다. ^^

왜냐하면, 나는 새해 결심이 늘 없었기 때문이었다.

새해가 무슨 big deal이라고... 뭐 그런 생각이 늘 있었던 것 같다.


2.

내 유학 시절,

참 일이 잘 안풀려서 힘들어 하던중에, 나는 일종의 게임중독 증상을 보였었다.

몇년 동안은 계속 해서, '게임을 줄이자', '게임을 하지 말자'는 것이 내 새해 결심이었다.

물론 그 새해 결심을 '몇년간' 해야 했다. 한번의 결심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렇지만 몇년에 걸친 그 결심은 결국 내가 그 구덩이에서 빠져나오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3.

'결심'이라는 말이 사실 좀 마음에 걸린다.

이 시리즈의 글에서 좀 언급이 되리라 생각하지만, 나는 요즘 하나님께 더 많이 의지하고 passive해지는 과정을 겪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

그런의미에서 내가 결심을 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나를 이끄시는대로 내가 가고자 하는 마음이 큰데... 이 '결심'이라는 단어가 그런의미에서 영 불편한 것이다.

어차피 내 의지적 '결단'의 부분이 분명 있는 것이니까 '결심' 이라는 표현을 써 볼수도 있겠지만, 올해는 '바람'이라는 표현으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4.

1월 한달중, 많으면 3주간, 적어도 2주간은 '해외'에 있게 될 것 같다.

예전에는, 출장중에 블로깅을 좀 쉬었지만, 그렇게 하다간 너무 많이 글쓰기를 멈추게 될 것 같아,

가능하면 출장중에도 시간이 나는대로 글쓰기를 계속해보려고한다.


자, 이제 새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긴 생각, 짧은 글 | 2013.01.01 09:15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제가 "대빵 목수"를 따르는 여정을 지켜보시며 이 블로그를 읽어봐 주시는 모든 분들께,

주님의 '평강'(샬롬)이 함께하는 한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새해에, 많은 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eXTReMe Tracker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