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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이 사람들만 보면 그렇게 눈물이 나는지...

긴 생각, 짧은 글 | 2013.08.30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얼마전에 우리 동네 사는 어떤 분이 내게,

왜 당신은 K 간사들만 보면 그렇게 우냐고 물었다. ^^

K 간사들을 위해 기도할때마다 그렇게 우냐고...


나는 그때, 

아마도 내가 그토록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 그 가치에 헌신한 모습을 보면서 감격이 되어서,

그리고 그것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는 어떤 소망을 생각하며 벅차서 운다고 대답을 했던 것 같다.


글쎄... 그런걸까?


이번 주말에는,

K 간사들이 이 동네에 온다.

매년 하는 간사 수양회이다. 


벌써 10년도 훨씬 지난 옛~날... (더 지났나? ㅎㅎ 시간 관념이... ㅋㅋ)

몇명 안되는 간사들이... 간사 수양회라고 모여서... 워싱턴 지구촌교회 지하 베다니룸에서 밤을 새며 삶과 사역과 하나님 나라와 복음과 학생에 관해 이야기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게 밤을 새우고 다시 집으로 와서는 며칠동안 가슴이 뛰어서 지냈던 기억도 난다.


나는,

내 20대 후반, 30대 전체, 그리고 40대 초반을 코스타와 함께 보냈다.

그리고 이제는... 이제 내가 더 이상 player가 아님을 자각하며 참 여러가지 생각을 많이 한다.


이번 주말,

여기에 모이는 이 사람들을 보며,

또 다시 눈물을 흘리게 될까?


이 사람들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한다.


===


간사 수양회가 끝난 바로 다음날,

저는 비행기를 타고 '아시아' 출장을 떠납니다. 아마 두주정도 가게 될 것 같은데... 그동안 블로그 글을 거의 못쓰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별일 없으면, 아시아에서 돌아와서 다시 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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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공대생들의 공통점

여기저기서 가져옴 | 2013.08.29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이걸 보는데...

왜 웃기다기 보다는 가슴이 아려오는 걸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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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불편해하는 여러 표현들

긴 생각, 짧은 글 | 2013.08.28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나는 좀 속도 좁고, 너그럽지도 못해서...

어떤 언어 표현이 많이 귀에 거슬리곤 한다.


그런 표현 몇개를 골라보자면 대충 다음과 같다.


"I knew it" (or "I know that")... 

어떤 사건, 인과관계, 방향 등에 대한 확신을 표현할때 영어에서 이렇게 쓰는데, 

(가령, 내가 처음 무슨 일을 시작했을때, 나는 이 일이 내 일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런 식의 표현...)

나는 이 표현이 참 불편하다.

사람이 도대체 어떻게 무얼 그렇게 잘 안다는 것인가.

자신의 안에 있는 강한 선호 (지극히 주관적 내용)를, 객관적 진리(지식)으로 만들어 버리는 표현인데...

적절하지 못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I deserve it"

내가 그걸 받을 가치가 있다... 뭐 그런 식의 표현인데,

You can get the money you deserve 라는 식의 표현을 하는 lawyer들의 광고,

You should take a great vacation that you deserve 라는 식의 표현을 하는 여행사 광고 등등을 보다보면,

정말 culture entitlement의 전형을 보는 것 같다.

은혜, 인간의 본질, 깨어짐, 하나님의 영광 이런 개념들과 도무지 양립하기 어려운 표현이 아닐까 생각한다.


"I need to find myself"

나는, '자아(self)'란 찾아지는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독교 복음이 이야기하는 자아는, 내가 찾는 존재가 아니라...

망가진 나를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찾아오셔서 구원해내시고 나면... 아... 내가 그런 존재였구나 하는 것을 깨닫는 그런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밖으로부터 오는 (Extra nos) 은혜, 계시가 소망의 근거이지, 

내면의 빛과 같은 개념으로부터 소망을 찾으려는... 여러 시도들이 불편하다.

심지어는, 기독교 내에도 이런 시도들은 편만해 있다.


이 외에도 더 많은데...

너무 까칠한 사람으로 비추어 질까봐... 오늘은 이만큼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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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연, 학벌, 경력...

긴 생각, 짧은 글 | 2013.08.27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나는, 내 능력보다 학벌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음...

솔직히 말하면, 나랑 비슷한 수준의 학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나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사람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능력에 비해 학벌이 더 좋다는 것이 솔직한 자평이다.


사실 이게 살아가다보면 솔직히 도움이 될때가 있다.

일종의 후광효과 같은걸 경험하기도 하고, 

professionally 만나는 사람들이 나는 기억할때, 아... 그 어느학교 출신... 뭐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면서 괜히 더 중요하게 취급하는 경우를 만나기도 한다.


지난주,

M 학교를 졸업한, 일단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함께 통하는 이야기도 많고, 특유의 문화적 공통점 때문에 대화가 즐거웠다.

그렇지만... 내가 이 불공정한 상황을 영유하려고 하는 듯한 자세를 가지고 있는 것이 스스로 보여서, 

못내 불편하고 마음이 쓰렸다.


이제 박사를 마친지 10년이 지나가는 마당에,

아직도 어느학교 출신이라는 것 가지고 먹고 살려고 한다면,

참 비겁한 일일 뿐 아니라, 공정하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박사를 마치고 나름대로 참 열심히 일하면서 지내긴 했지만,

이제는 내가 학벌에 비해 실력이 더 좋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음....


정복주의적 사고방식에 젖어 있을 때,

기계적 하나님 나라 - 그리스도의 주권 이라는 개념에 젖어 있을 때,

혹은 반대쪽 극단인, 피상적, passive, 평화주의의 아류의 생각에 끌렸을때에는,

내 학벌, 실력, 세상 에 대한 꽤 단순한 도식이 가능했는데,


이제 그 어느것도 '내것'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워진 지금은,

도대체 내게 주어진 이것이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

어떻게 활용되어야 하는지,

활용되는 것이 가능하긴 한건지...

여러 복잡한 생각들만 가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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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향해 우는가 (updated)

긴 생각, 짧은 글 | 2013.08.26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지난주 금요일 "무엇을 향해 우는가" 라는 글에서 약간 더 update된 version이다.


1.상실의 울음

어떤 이들은,자신이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속상해서, 혹은 자신의 아픔이나 상실로 인해서 운다.


2. 정의의 울음

어떤 이들은, 깨어진 세상을 보며, 다른 이들의 아픔을 보며, 불의와 악을 보며, 안타까움으로 운다.


3. Coram Deo의 울음

어떤 이들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는 자신의 본질을 이해하고 깨닫고... 자신을 바라보며 운다.



여기서 각각,

건강한 형태의 울음과 건강하지 못한 형태의 울음이 더 있을 것 같아 세분해본다.


1-1 건강하지 못한 상실의 울음

내가 이루고 싶은 아주 이기적인 욕심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에 대한 상실감. 번영신학, 기복신학은 인간의 이 부분을 충족시켜주기 위한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의 울음은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1-2 건강한 상실의 울음

사랑하는 대상이나 가치등을 잃었을때 우는 울음

(사랑하는 이가 세상을 떠났을때 우는 울음 등과 같은... 이것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많이 발견된다.)



2-1 건강하지 못한 정의의 울음

이 울음이, 공정하지 못한 분노로 연결되어 고착화 되면, 나와 남이 모두 함께 망아지는 것을 경험한다.

그런 의미에서, 울음의 근거가 건강하다고 해서, 반드시 그 울음 자체가 건강한 것은 아니다.

좋은 생각을 하는 나쁜 사람은 참 많다. (홍정길 목사님의 표현)

히틀러도 그 생각을 찬찬히 보면 참 좋은 생각을 많이 했었다.


2-2 건강한 정의의 울음

그런 의미에서, 울음을 통해 다다르게 되는 곳이, 하나님을 향한 소망, 하나님의 주권, 악의 심판에 대한 약속을 믿음 등등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며 건강한 울음을 울어야 하는데, 그러면서 또한 정의의 눈물을 흘리는 과정 중에 계속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있어야 자신이 망가지지 않는 것 같다.



3-1 건강하지 못한 Coram Deo의 눈물

사실 Coram Deo를 제대로 하고 있다면 건강하지 못한 눈물이 있을 수 없다.

Coram Deo 없이, 자신의 모습에 절망하고 있기 때문에 왜곡이 생기는 것일 것이다.

자기 연민, 절망, 자포자기 등등의 모습이 이 부류에 해당할 수 있을 것 같다.


3-2 건강한 Coram Deo의 눈물

하나님 앞에 서기 때문에, 자신의 무익함을 겸손하게, 절신하게 깨닫고,

도무지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소망이 없음을 바라보는 사람이라면,

여전히 그 은혜 안에 있으면서도 이토록 하나님께 무익한 모습이라는 것 때문에 끊임없이 아파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로인해, 오히려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게 되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도무지 소망이 없음을 더 인정하게 되는 과정을 겪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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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향해 우는가

긴 생각, 짧은 글 | 2013.08.23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1.

어떤 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속상해서, 혹은 자신의 아픔이나 상실로 인해서 운다.


2. 

어떤 이들은,

깨어진 세상을 보며, 다른 이들의 아픔을 보며, 불의와 악을 보며, 안타까움으로 운다.


3.

어떤 이들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는 자신의 본질을 이해하고 깨닫고... 자신을 바라보며 운다.


기독교는,

1, 2, 3 세가지 눈물을 모두 이야기한다.


그러나,

1,2는 하나님 없는 다른 사상이나 종교에서도 가능한 것이지만,

3은, 하나님과의 대면 (Coram Deo)가 이루어져야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를 진정으로 기독교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보다... 자신을 향한 눈물이 아닐까.


나는, 신앙운동 자체를 거부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신앙을 운동으로 치환/환원/축소 시키고자 하는 시도가...

그런 의미에서 너무 shallow하다고 생각한다.

신앙을 운동으로 이해하는 관점에는, 너무 자주, 1과 2의 눈물만 있고... 3의 눈물이 없다...


한때 나는,

내 자신을 보며 참 많이 울었다.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보잘것 없는 나를 보며...


그런데 언제 부터인가,

3의 눈물이 내게서 사라지고, 1과 2의 눈물만 남게 된 것 같다.


다시....

나 자신을 보며 울기 시작해야 할 때인 것 같다.

가슴을 치며, 가슴에 멍이 들도록 가슴을 치며... 그렇게 흘리는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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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 Sox in SF

긴 생각, 짧은 글 | 2013.08.22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지난 3일동안,

Red Sox가 SF Giant 구장에 와서 경기를 하였다.


내가 몇달전 이 schedule을 확인하고,

민우에게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민우가 흥분하면서, 꼭 보러갔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었다.


나는, 민우가 학교를 시작하는 시점이 9월이나 될줄 생각하고는,

꼭 민우와 함께 Red Sox 경기를 SF에서 구경하도록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었다.


그런데,

민우가 학교 개학 이후에 경기가 있다는 것을 알고, 많이 실망을 했다. 그렇게 흥분하면서 기대하고 좋아했었는데...


내년 Red Sox 경기가 SF에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최소한 Oakland 경기는 있을 테니, 거기라도 민우 손 잡고 꼭 한번 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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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 I religious?

긴 생각, 짧은 글 | 2013.08.21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민우와 '종교적'(religious)한 것에 대한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민우야, 민우는 아빠가 religious하다고 생각하니? 라고 물었더니,


한참 생각을 해보더니,

Sometimes...라고 이야기했다.


언제 아빠가 religious한 것 같아? 라고 불었더니,


그 hiking 좋아하는 목사님(^^)하고, 귀여운 커플 아저씨(JW를 의미함 ㅋㅋ), 야후 아저씨 (이 아저씨는 yahoo 떠난지가 언젠다 아직도 yahoo 아저씨다. ㅎㅎ) 같은 사람들하고 이야기할때는 아빠가 좀 religious해보여.

아빠는 그렇게 이야기할때는 많은 input이 있는 것 같아 보여, (할말이 많아보인다는 영어식 표현 ㅎㅎ) 


민우의 이야기를 내 말로 풀어 정리하자면 이렇다.


1. 내가 크리스천 동지들과 이야기할때는, 내 일상의 모습과는 달리 종교적인 것 같이 느껴진다. 

2. 그럴땐 나는 좀 말이 많은 편이다.


...


이원론적인 삶의 모습을 탈피하고, 말을 줄여야 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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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패를 까라!

긴 생각, 짧은 글 | 2013.08.20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스탠리 하우어워즈가, 심한 조울증이 있는 아내와 살면서 고통을 겪어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때,

그분의 신학이 더 따뜻하게 느껴지며, 더 깊이 이해가 되었다.


늘 깊이있는 설교를 하시는 A 목사님이,

평생 깊은 우울증에 시달려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때,

그분의 설교의 더 깊은 곳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떻게 저런 이야기가 저렇게 쉽게 나올까 하며 설교를 듣게되는 B 목사님이,

우울증에 시달리는, 게다가 그 B 목사님의 깊은 신학적 깊이에 한참 이르지 못하는 사모님을 두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때,

그분이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하실 수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늘 자신의 한계를 잘 열어서 드러내놓는 C 장로님이,

어릴때부터 깊은 열등감에 시달리며 자라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때,

그분의 삶이 더 많이 이해되었다.


....


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최소한... 그리스도인 리더들은,

자신이 왜 그런 생각과 사상과 믿음을 가지게 되었는지...

자신의 '패를 까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그 사람의 이야기가, 오해 없이 훨씬 더 잘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나온 깨달음, 경험, 사색 등을 이야기함에 있어,

그 경험의 부분을 떼어놓고, 일반화 해서 풀어내려 하면,

자주 과잉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게도 되고,

심하면 그것이 폭력적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뭐 포커 이런거 전혀 칠줄 모느는 사람이지만, 이련 표현 한번 써봤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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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is what happens...

비주얼라이제이션? | 2013.08.19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This is what happens when you have a daughter who doesn't throw away anything. :)

우리 딸내미는, 정말 절.대.로. 아무것도 안버리려고 한다.

이번에 이사하면서, 내가 15년도 넘게 입은 샤워 가운을 버렸다.

그런데... 며칠 전 우리 딸내미의 옷장을 보니 그게 있었다!

물어보니, 추억이 있는걸 그렇게 버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거기를 뒤져보니, 내 아내가 입다가 낡아서 버린 티셔츠, 오래전에 버렸다고 생각했던 수건 등등이 나왔다!


우리가 그런걸 버릴때 마다,

요것이, 쓰레기통에서 그걸 구원해내어, 자기의 아지트에 숨겨놓았던 것이었다.


어제,

이사 온지 한달이 훨씬 더 지나서,

드디어 민우방이 어느정도 정리가 되었다.


그러면서,

여기 저기 있던 인형들을 다 모아서 한꺼번에 진열해보니, 위의 사진과 같은 배열이 되었다.

그 와중에, 특별히 간택된 인형들은, 민우 침대 위에 있고, 이놈들은 최소한 사진을 찍은 어제는 간택되지 못한 놈들이다. -.-;


아빠와 장난치기 좋아하고,

인형 좋아하고,

여전히 하루에도 몇번씩 아빠 엄마에게 뽀뽀도 해주고,

아빠 엄마로부터 사랑한다는 이야기 듣고 듣고 또 듣는것 좋아하고...

그런 우리 민우가,

이제 오늘부터는 고등학생이다.


하나님께서 민우의 고등학교 시절을 잘 지켜주시도록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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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전투적인가

긴 생각, 짧은 글 | 2013.08.16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깨어진 세상 속에서,

그 깨어진 세상과 다른 가치관으로 살아가다보면,

삶의 전투적이 될 수 밖에 없다.


뭐 이런 생각을 늘 가지고 살았다.

그리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런데,

그런 frame 속에서... 문득...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라는 주님의 말씀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음이 깨달아졌다.


믿음은 전투적이어야 하는가?

믿음은 liberating 한 것이어서, 자유와 기쁨과 평안을 가져다주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것과 전투적 삶은 어떻게 조화로울 수 있을까?


이번주 초,

Lake Tahoe로 이틀짜리 짧은 휴가를 다녀왔는데,

그 휴가 기간, 사랑스러운 아내와 아이의 웃음을 보며...

믿음생활 3개월차에나 했을 고민을,

문득 다시 깊이 해본다.


여전히 또 다시 헌신 vs. 일상의 대결 구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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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통독을 하며 느낀점

긴 생각, 짧은 글 | 2013.08.15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참 오랜만에,

성경 통독을 끝냈다.


예전엔, 하루에 열장이고 스무장이고, 앉은 자리에서 많이도 읽었었는데,

너무 그렇게 쭉~ 읽어내려가는 practice를 하지 않았다는 반성에서, 금년 새해 시작하면서 통독을 결심했었다.


금년에 두번 통독이 목표였는데, 8월 상반기에 겨우 한번 끝냈으니, 두번 통독은 쉽지 않을 것 같다.

금년 나머지 시간동안 신약 한번 더 읽는 쪽으로 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이번 성경통독을 하면서 다음과 같은 새로운 발견, 느낌 등이 있었다.


1. 성경의 '배치'가 절묘하게 느껴졌다.

구약도 그렇지만, 특히 신약 서신서들의 배열되어 있는 순서가... 마치 흐름을 타듯 배치된 것 같이 느껴졌다.


2. 내가 가슴뛰던 성경본문에서 별로 가슴이 뛰지 않았다.

에레미야, 느헤미야, 호세아, 에스라... 이런 본문들은, 

내가 읽으며 가슴을 뜯기도 했고, 눈물을 펑펑 쏟기도 했었고, 읽다가 가슴이 뛰어 성경을 덮고 좀 숨고르기를 해야하는 경험도 있었던 본문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본문들이 그냥 밋밋하게 느껴졌다.

내가 뭔가 병들어 있는 걸까?


3. 예전에 별로 감흥이 없는 성경본문에 마음이 오래 머물렀다.

시편, 욥기, 요한복음 등등.. 예전에는 그냥... 그야말로 성경 내에 끼어 들어가 있는 것 같이 느껴지던 본문들이 입체적으로 튀어나와 보였다!

예전에 가슴뛰던 본문들이 나를 정신없이 흔들어 놓는 것들이었다면, 이 새롭게 다가온 본문들은... 내 마음에 좀... 싸아~ 하게 남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4. 성경 내의 다양성이 특별히 더 많이 두드러지게 보였다.

구약성경은 떼고 얘기하더라도,

신약성경 내에서도...

아마 조각조각 띄어내어서 다시 재조합을 하면, 전혀 다른 가르침의 종교를 3-4개는 만들 수 있겠다.... 라고 생각이 들만큼, 

성경 본문이 다루고 있는 scope도 넓고, spectrum도 넓고, 내용도 다양헸다.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이 같은 예수를 그리고 있는 것 같다 보이지 않았다.

바울의 초기 서신과 바울의 후기 서신은 거의 다른 가르침인 것 같이 느껴졌다.

바울서신과 비-바울서신 역시 매우 달랐다!

서신서와 복음서도 완전히 다른 내용같이 느껴졌다.


성경의 이 다양함과 dynamic함을 신앙과 신학에 담으려 할때,

reductionistic하게 접근하면 정말 안되겠다... 그런 생각을 다시 많이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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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목요일 아땅님이 던지신 질문에 대한 답 ^^

긴 생각, 짧은 글 | 2013.08.14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헌신에 대한 글에 아땅님이,

종합적인 질문을 던지셨기에,

여기 한번 답을 올려봅니다. ^^



 질문

'원래' 내 대답 (5년쯤 전의 대답)

 '요즘' 내 대답

 헌신그룹 - 일상그룹은 continuum 상에 있는 양 극단인가? incompible 한 가치인가? 두개가 함께 추구될 수는 없는 건가? (theoretically, practically)

컨티뉴엄 상의 양 극단이 아니라, 흑-백과 같은 개념에 가깝다. 따라서 대단히 incompatible 하다. 


그렇지만 사람이 성숙해가는 과정 속에서는 점차 일상으로부터 헌신의 과정으로 옮겨 갈 수 있으므로, 그렇게 보면 컨티뉴엄 상에 있다고 볼수도 있겠다. 

 컨티뉴엄상에 있는 양 극단이다.

그렇지만 대단히 incompatible하다고 본다. 


이론적으로는 어떤 형태로든 양립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실제로 그것이 어떻게 양립가능할지 잘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예수님은 어느 그룹에 속했을까?

당연히 헌신그룹 ^^ 

 아마 어떤 그룹도 아니셨을 것 같다. ^^

 제자들은 어느 그룹에 속했을까?

당연히 헌신그룹 ^^ 

 헌신그룹에 가까웠을 것 같다. 특별히 그 당시 복음이 가지고 있었던 역사성, 정치성에 비추어 보아, 헌신그룹에 속하지 않았다면 복음에 헌신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바리새인들은 어느 그룹의 인물들이었을까?

바리새인들은 당시 거룩운동을 통해서 

헌신그룹! 

결국 새로운 종교적 시도를 통해 시대적 breakthrough를 만들고자 했던 사람들이었다.

 헌신그룹... 

옆의 대답과 비슷 ^^

 가장 이상적인 헌신그룹 멤버의 삶을 그려낸다면 어떨까? / worst한 헌신그룹 멤버의 모습은?

 자신의 보든 것을 던져 하나님 나라 가치에 헌신한 모습

많은 개인적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내면적 기쁨이 넘치는 모습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나쁜 모습은, 타인을 향해 judgmental 하고, 사려깊지 못하고, 가치에 비해 사람을 가볍게 여기는 모습

옆의 대답과 같음 

이상적인 / 나쁜 일상그룹의 삶의 모습은?

 이상적인 일상그룹이란 존재하지 않음. ^^

 이상적인 일상그룹이 존재하는지 하는 것에 대해 자신은 없지만, 일단 그럴 가능성에 대해 열어놓고 있는 중. ^^


아마 따뜻한 마음으로,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많이 배려하는 모습이 아닐까.


 가장 이상적인 헌신그룹의 삶의 모습과 가장 이상적인 일상그룹의 삶의 모습은 상당히 닮아있지는 않을까?

이상적인 일상그룹이란 존재하지 않음. ^^ 

여전히 많이 다르지 않을까...


헌신그룹은 가치에 열정적으로 헌신한 것이라면,

일상그룹은, 좀 더 관계에 잔잔하게 머무는 스타일이라고나 할까?

 두 그룹의 나쁜 모습은 웬지 안 닮아 있을 것 같은데, 그 모습은 어떨까?

헌신그룹: 폭력적이고, judgmental하고, 잔인하고 따뜻하지 않은...?


일상그룹: 게으르고 이기적이고, 세상에 대한 이해의 폭이 좁음?

옆의 대답과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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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블로그 쉽니다~

긴 생각, 짧은 글 | 2013.08.12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정말, 정말 오랜만에,

가족이 함께 휴가를 내어서 쉬는 시간을 갖으려 합니다.


'일상'에 충실하는 것이라고나 할까요. ^^


오늘 내일, 이틀동안 블로그를 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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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믿는가,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긴 생각, 짧은 글 | 2013.08.09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믿음과 사랑함. 

어떤 것이 먼저일까?


나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그분을 사랑하는 걸까,

혹은 그분을 사랑하기 때문에 믿는 것일까?


나는 꽤 오랫동안,

그분을 믿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으로  assume 했었다.

그런데 요즘 가만 생각해보면,

그분을 사랑하기 때문에 믿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것이 건강한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 하는 논의를 접어두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이 두가지 다른 path 가운데 어떤 쪽을 택하느냐 하는 것에 따라 그 사람의 '신앙의 컬러'가 많이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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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신(!)

긴 생각, 짧은 글 | 2013.08.08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세상은 이렇다.

하나님의 선한 창조의지로부터 벗어난 피조세계는 심하게 뒤틀려져 있다.

많은 이들이 그것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속에서, 당신의 사람들을 부르시고 세우셔서 그 어그러진 세계 속에 살도록 하신다.


그런 사람들에게 주어진 선택은 단순하다.

어그러진 세상 속에서, 그 세상에 순응하고 살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고 살 것인가.


그렇기 때문에 나는 절대적 헌신,  radical discipleship 이외에 다른 어떤 대안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이 생각에의 헛점은 무엇일까?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중 좋은 comment 주실 수 있는 분들 부탁드립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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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변 보듯이 살아라

Fun / Humor | 2013.08.07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컬투쇼에서 들은 것.


어떤 아버지가 자식에게 해준 말.


인생을 변 보듯이 살아라.


시작할 때 망설이지 말고,

일을 함에 온 힘을 다하며,

실패해도 주저앉지 말고,

다시 일어나 기회를 노려라.


(그리고 뒤처리는 깔끔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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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영신학을 옹호함?

긴 생각, 짧은 글 | 2013.08.06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어린아이에게 복음을 이야기하고자 할때,

하나님의 통치라는 개념에 근거한 하나님 나라, 

악의 문제와 하나님의 주권,

성경본문의 역사성과 초월성...

뭐 이런것들을 다 풀어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복음을 제대로 설명하려면,

위의 개념 이외에도 더 많은 복잡한 개념들을 잘 설명해 주어야 하지만,

아직 지적 인지능력과 사고능력, 그리고 경험이 짧은 어린아이에게는...

그저 하나님께서 너를 사랑하신다... 예수님께서 너를 위해서 돌아가셔서, 너는 이제 구원을 받는다. (구원이 뭐라는거 또 썰 풀기 시작하면 한이 없지만... -.-;)

뭐 이렇게 단순하게 얘기해줘야 할것이다.


나는,

어른중에서도, 심지어는 고등교육을 많이 받고, 경험과 나이가 충분한 사람들 가운데에서도,

여전히 아주 단순한 유년주일학교식 복음을 넘어서는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한참 설명을 해 주고,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도... 잠시 후에 얘기를 들어보면... 복창이 터지는...


번영신학에 근거한 기복신앙은,

그것이 신앙이 종착점이라면 참으로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아주 유치한 수준의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공급자가 되신다는 것을 이야기해주는 몽학선생으로서 번영신학을 이해해볼수는 없을까?


하나님에 대해,

복음에 대해,

초월적 가치에 대해...


도무지 깨닫지 못하는 이 천박한 세대를 향해서,

그래도 그들이 들을 수 있는 언어로 풀어서 번역해 낸 (그러나 오역이 참으로 많은...) 그런 복음이라고 이해해 볼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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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아저씨들의 이야기

긴 생각, 짧은 글 | 2013.08.05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지난 주말,

이 동네에서, K 간사 리더쉽 모임이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소중한 사람들과 여러 이야기를 하고, 토론하고, 기도하는 시간이 참 복되었다.


그리고,

주일 밤...

뭐 그냥 저녁 먹고 E-S 간사 집에 다들 삼삼오오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I 선교단체 대표로 섬기시다가 그만두시고 미국에 오셔서 이제 다시 우리 K 간사로 오랜만에 복귀하신 K 목사님,

K 간사로 10년 섬기시다가, 하나의 씨앗교회 개척 담임 목사님이 되신 A 목사님,

그리고 나...

이렇게 세사람의 40대 중반 아저씨들이 삶과 하나님 나라와 헌신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K 목사님은,

자신이 I 단체 대표로 있을때, 한 6개월 동안은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울 만큼...

급격한 '갱년기' 증상을 겪었다고 이야기해주셨다. 홀몬 변화도 크고... 삶에 대한 불안, 자신에 대한 회의,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불만 뭐 그런 것 까지 포함해서...


A 목사님도,

이제는 40대 중반이 되어 자신이 덜 날카로와 지셨다고 이야기해 주셨고,

한편으로는 자기 자신에 대해 더 편해지셨다고 하셨다.


나는...

뭐 내가 요즘 이 블로그에 쓰는 여러가지 고민들, 생각들 이런걸 또 나누었고,

그런데 나는 뭐 홀몬의 변화 그런런 못느끼겠다고...

눈물이 나온다거나 그런 것도 아니고, 여전히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생각하며 가슴이 뛰는 건 마찬가지라고 말씀을 드렸다.


30대 중반의, JL, HK, EK 간사들은(그리고 잠시 후에 join한 JK간사도) 이 40대 중반 아저씨들의 이야기를, 옆에서 정말 열심히 들었다.

그리고 30대로서 자신의 고민들도 좀 이야기해 주었다.


다소 즉흥적으로 시작된 이야기였는데,

나름대로 K, A 목사님의 스토리를 듣는 것이 아주 흥미로우면서도 도움이 많이 되었고,

30대 중반의 간사들이 나름대로 하고 있는, 인생과 하나님나라에 대한 고민과 생각도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음...

이런 얘기...

이렇게 마음 잘 맞는 사람들과 더 자주 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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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 안하기

긴 생각, 짧은 글 | 2013.08.02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20년 넘게,  

QT는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붙들어주는 가장 중요한 기둥과 같은 것이었다.


삶에서 중요한 순간을 지날때 마다, QT는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 되어 주었다.


그런데 금년들어, 아니... 작년 후반 즈음부터...

나는 그 QT를 안하고 있다.


대신 말씀을 통독을 하고, 조금 깊이 기도를 하고...

하나님과 세상과 신앙과 나에 대해 깊이 이리저리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렇게 하기 시작한 이유는 다음의 몇가지이다.


1. QT를 하면서... 너무 자주 나는 자의적으로 말씀을 풀어 그것에서 위안을 얻는다. 파편적으로 말씀을 보나보니 문맥에 벗어난 해석과 적용을 하는 일이 너무 많아, 과연 그런 해석과 적용이 제대로 된 것이었나 하는 것에 의구심이 많이 들었다.


2. 교회 전통 속에서, 성경 반장 정도를 가지고 그날의 적용점을 찾아내는 일은... 사실 없었던 것이었다.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성경을 통독을 하거나, 렉티오 디비나 식의 말씀 읽기를 하거나, 기독교 고전을 읽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예 말씀을 연구하는 일을 했지.... 

말씀 조금을 떼어나가  3P (personal, practical, possible) 식의 적용점을 찾아 그날의 양식으로 삼는 일은... 정말 아주 최근 사람들이 고안해낸 방법이라는 생각을 했다.


3. QT식으로 적용점을 찾아내는 식의 묵상보다는, 통독을 통해 하나님의 숨결을 느끼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만나는 일을 좀 더 하고 싶었다.


이제 그렇게 하기 시작한지 반년이 훨씬 더 지나 1년 가까이 되어 가고 있으니,

뭔가 중간평가를 해볼 때가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한데...


음....

아직은 QT가 그립다. ㅎㅎ


금년말 까지는 그래도 이렇게 좀 더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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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신 중독증(?)

긴 생각, 짧은 글 | 2013.08.01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처음 복음을 이해하게 되었을때,

나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충격으로 그것을 받아들고, 그것에 '올인'했다.


신앙과 헌신이 구별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번도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헌신이라고 했던 것이 얼마나 유치한 것이었던가 하는 것을 깨닫는 순간을 반복해서 경험하게 되었고,

또 내 왜곡된 헌신이 나와 다른이들을 해치고 있음도 많이 발견하게 되었다.


어찌보면,

헌신중독증에 걸려있었다고나 할까.


그 증상은 다음과 같다.

더욱 더 극한 헌신을 계속해서 추구하게 된다.

헌신의 짜릿한 자극을 즐긴다.

내 자신의 헌신이 늘 성에 차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내 마음에 차지 않는다.

세상의 99% 크리스천들이 헌신 결핍증에 걸려있다고 생각한다.

미움, 경멸, 증오, 깔봄 등등이 일상화 된다.


나름대로.. 지난 1-2년간,

내 헌신중독증을 좀 치료하는 과정을 겪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데,


과연 어디까지가 건강한 헌신인지, 어디부터가 건강함을 잃어버린 병적 증세인지, 구별해 내는 것이 참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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