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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아픈, 너무나 가슴 아픈... (2)

짧은 생각, 긴 글 | 2014.04.30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이런 사건을 보고 가슴아파하지 않거나 분노하지 않는 것 자체가 아마 죄일것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의 분노는 모두 '공의로운 분노'일까?

이 상황에서 그 아이들을 생각하며 울었다는 것만으로 나는 의인이 되는 것일까?


인터넷을 보면서 내가 불편한 것 가운데 하나는 이것이다.


사람들이 이 상황 속에서 많이 마음이 힘들다.

그리고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분노가 끓어 오른다.


그런데...

그 분노를 표출하는 대상은... 

그냥 평소에 자신이 미워하던 그룹이다. -.-;


그냥 '박근혜'를 미워하던 사람들은,

이걸 기회로 잡아 박근혜를 까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그리고 그것이 공의라고 믿고 있고)

이걸 바탕으로 '사회 기강을 흔드는 종북좌파'가 문제라고 보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을 비난하는데 총력을 기울인다.


보수 기독교가 문제라고 보는 사람들은 보수 기독교가 이 문제를 대하는 방식에 분노하고 있고,

공직자들이 문제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공직 system의 문제를 부각한다.


지금 우리가 발견하고 있는 분노는 그 대상을 정확하게 설정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정치가들에 대해 비판을 해야하고, 그들이 책임지지 않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야한다.

깨어진 system에 대한 이슈를 제기해야 하고 필요한 경우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렇지만,

너무나도 황망한 사태를 만난 김에, 

내가 기존에 미워하던 그룹을 왕창 더 미워하자... 그 사람들을 많이 많이 비난하자... 는 식의 접근은 사태에 크게 도움이 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저들'을 악인으로 만들고 '나' 혹은 '우리'를 의인으로 만들어 버리는 우를 범하게 된다.


나는, 누군가가...

"이 상황에서 분노하는 것으로 당신이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라는 이야기를 좀 해주면 좋겠다.


@ 물론 아는 사람은 알지만, 나는 한국의 현 정부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인 사람이다. 거의 이 정부가 '악하다'라고 보는 입장에 가깝다. 또 악할 뿐 아니고 무능하기까지 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나의 분노도 역시 대통령을 비롯한 현 정부를 향해 향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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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아픈, 너무나 가슴 아픈... (1)

짧은 생각, 긴 글 | 2014.04.29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고난주간에, 

이 뉴스를 들었을때...

나는 마음이 막막해져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나서,

곧 이어 도저히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분노'가 끓어 올랐다.

솔직히 말하면 그 '분노'가 무엇을 향한 분노인지, 그 분노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지 하는 것 조차 명확하지 않았지만...

나는 끓어 오르는 분노에 주체를 할 수 없었다.

혼자 있는 장소에서는 알 수 없는 대상을 향해 쌍욕을 내 뱉기도 하였다.


이걸 어떻게 소화하고 처리해야할지 하는 것도 분명하지 않았고,

인터넷에서 접하는 여러가지 뉴스와 주장이 그저 어지럽게만 느껴졌었다.


많은 사람들이 봤다는,

사진이나 동영상들도... 나는 차마 보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 많다.

도무지 그걸 볼만큼 마음이 단단하지 못하다.

인터넷 사이트에 그저 작게 보이는 사진에 비추어진 모습들만으로도,

내 마음을 추스리기가 쉽지 않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절대 어떤 해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솔직히 누가 어떤 해답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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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독서법 (7)

짧은 생각, 긴 글 | 2014.04.28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개인적으로 내 독서생활에 큰 영향을 끼쳤던 몇권의 책을 소개하면서 이 시리즈를 정리해야겠다.


1. Christian Theology by Alister McGrath

이게 보니까 최근엔 한국말로 번역이 된것 같았다. 신학이란 무엇인가 이던가...

실제로 이건 미국의 복음주의 신학교에서 조직신학 교재 혹은 부교재로 사용하기도하는데, 

나는 이 책이 내가 퍼즐의 큰 그림을 그리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이 책은 어떤 특정한 신학적 입장을 주장하는 스타일의 책이라기 보다는, 다양한 관점을 소개하려는 노력을 많이 한 책이기에 그런 유익을 많이 주었던 것 같다.

특히 전반부 1/3 정도는 신학사 (history of theology)라고 볼 수 있는데, 정말 강.추. 한다.

이 책을 읽은게 10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여전히 내 독서생활에 영향을 끼친 책 #1이다.


2.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것인가 by 프란시스 쉐퍼

1번은 내가 영어로 읽어서 제목을 영어로 썼고, 이 책은 내가 한국말로 읽어서 제목을 한국말로 썼다. ^^

프란시스 쉐퍼가 이 책에서 한 이야기를 지금은 내가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지만, 이 책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머리를 쓰는 작업을 해야한다는 요청을 내게 가장 강력하게 했던 책이었다. ^^

물론 Francis Schaeffer의 대표작이라면 Escape from Reason, God Who is There, He is there and He is not silent 같은 것을 꼽겠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나는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먼저 접했다.

이 책을 처음 읽으면서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 철학책, 역사책을 사다가 옆에 놓고 함께 공부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 벌써 20여년전에 읽었는데... 

그러고나서 국비유학시험준비를 위해서 국사와 국민윤리를 공부했어야 했는데... 세상에, 국비유학시험준비를 위해 했던 국사와 국민윤리를 정말 재미있게 공부했었다! 완전히 공부에 재미를 들이게 한 책이다.

솔직히, 지금은 내가 다른사람들에게 이 책을 강추하지는 않는다. ^^

오히려 intellectually stimulating한 것을 읽고 싶은 beginner들에게는, 자크엘룰을 더 추천하곤 한다.


3. Gordon-Conwell NT Survey course

Gordon-Conwell 신학교에 다니던 사람으로부터 NT Survey 한학기 과목 전체가 녹음되어 있는 tape을 구해다가 들으며 공부했던 적이 있었다. 

와... 나는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재미있게 들었다.

아... 이런걸 이렇게 누가 좀 설명을 해주면, 혼자서 책들고 끙끙하는것 보다 훨씬 더 좋구나... 하면서 감탄하며 들었다.

그렇게 말하자면 신학교 과목을 '도강'한 셈인데... -.-; 이것도 벌써 15년쯤 지난 일이다.

그 후로 나는 강의, 설교 등등을 찾아서 열심히 듣게 되었고, 예전에 신학교 강의 한학기분이 올라와 있으면 그걸 홀딱 가져다 듣는 식으로 배움의 욕구를 해결하기도 하였다. ^^

지금도 주말에 심심하면 인터넷에서 다운받은 신학강의, podcast들을 들으며 빈둥빈둥하곤 한다.


4. Across the Spectrum

이건 비교적 얇고, 쉬운 책이다.

그렇지만 여러가지 조직신학에서 다루는 이유들을 다양한 신학적 전통에서 바라보아 비교해놓은 책이다.

아마 지금 우리 교회 목사님께서 그 당시 코스타 간사들에게 추천하셨던 책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

큰 그림을 이미 희미하게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조금 더 세부적인 이슈의 discussion이 어떻게 되는지 알아볼 수 있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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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독서법 (6)

짧은 생각, 긴 글 | 2014.04.25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나의 이러한 독서법에는 약점/limitation이 많이 있다. 그중 몇가지를 꼽자면 다음과 같다.


1. 우선, 이런 스타일의 독서법이 모든 이들에게 다 적용될 수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내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그나마 계속해서 생각과 배움의 폭을 넓혀나갈 수 있는 것으로 내가 나름대로 개발해 낸 것이고, 적어도 내게는 잘 맞는다. 

책을 빨리 읽고 소화해내는 능력이 떨어지지만, 비교적 단 기간에 많은 분량을 소화해야하는 필요에 의해 나름대로 찾아낸 방법이다. 


2. 이러한 독서법은 소위 '꼼꼼함'이 떨어진다.

큰 그림을 잡고, 빨리 이해하는데는 유리하지만, 사상이나 생각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파고들어 분석하는 데에는 그리 적절하지 않다.

나는 이런 '꼼꼼함'은, 소위 전문가들의 도움을 얻거나, 주변에 꼼꼼하게 책 잘 읽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일부 채우려고 노력한다.


3. 다른이들의 (비뚤어진) 생각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많다.

A 라는 작가의 책들을 섭렵하려고 도전하면서, 그 A에 대해 설명해 놓은 B 라는 사람의 개괄서를 먼저 읽었다고 하자. 그러면 나는 A의 생각보다는 B가 해석해놓은 A를 접하게 된다. 그리고 사실 그것은 A를 그 후에 읽어가면서도 계속 영향을 끼친다. 

만일 B의 생각이 어떤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거나 비뚤어져 있다면 나는 그것에 깊은 영향을 받은 채 A를 읽게되는 우려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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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독서법 (5)

짧은 생각, 긴 글 | 2014.04.24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독서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요즘 인터넷에서 많이 돌아다니는 각종 강연/세미나 들도 큰 도움이 된다.


솔직히 말하면,

요즘은 정말 책 읽을 시간이 없어서...

괜찮다고 생각하는 강연들을 다운받아 놓았다가.... 운전중이나 운동중에 듣곤 한다.


N. T. Wright 같은 사람은 워낙 강의가 올라와 있는 것이 많아서 그것만 들어도 웬만한 책 읽은것 만한 효과를 볼때도 있다.

또한 신학교 강의들도 무료로 풀려있는게 매우 많다. Gordon Conwell 같은 학교는 아주 대대적으로 이걸 풀어서 iTunes U 에서 여러 과목들을 들을수도 있다.

Douglas Stuart가 하는 해석학 강의, David Wells가 하는 신학개론 강의등이 공짜다!


시간이 부족할때는 Audible 같은 데에서 audio book을 사다가 듣기도 한다. Audio book은 운전과 같은 다른 일을 하면서도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시간 사용에 더 효과적이라고 할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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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독서법 (4)

짧은 생각, 긴 글 | 2014.04.23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앞에서 쓴 이야기와 좀 겹칠수도 있겠지만, 

나는 어떤 단편적인 지식의 파편을 얻는 것 보다,

어떤 사상이나 지식의 내용들을 통합(integrate)하는 과정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책을 많이 읽고, 그 책의 단편적인 내용을 인용(quote)하기를 좋아하지만,

그 책의 사상과 내용을 자신의 것으로 integrate 해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꽤 많이 만난다.

참 안타깝고 답답하다.


나는 책을 읽는 과정을, jig saw puzzle을 맞추는 과정과 같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라는 큰 퍼즐판이 있는데,

한 저자를 만나면 그 퍼즐판의 어느 영역의 조각들을 맞추어나가게 된다.

한권 한권 책을 읽어 나갈때 마다, 조금씩 조각들을 맞춘다.


때로는 중간에 한두조각 비기도 한다. 

나같은 비전문가가, 어떤 사람의 사상을 빈틈없이 다 이해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괜찮다. 전체 그림을 이해하는데에는 크게 무리가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새로운 사상, 저자, 분야 등등을 만나면, 내 퍼즐판은 그 새롭게 접한 지식의 영역만큼 확장된다.

그리고 나는 그쪽의 책들을 읽으면서 그쪽의 퍼즐도 맞추어 나가게 된다.


어떤 경우에는 한줌의 조각들을 발견해서 서로 맞추어 나가게 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부분이 전체 그림에 어떻게 맞게 되는지 잘 모르는 경우도 있다. 그럴 경우에는 연관된 저자나 저작들을 조금 더 읽어나가다보면 전체 그림의 어느 부분에 들어가게 되는지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적어도 내게는,

integrate되지 않은 파편적 지식은 무용지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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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독서법 (3)

짧은 생각, 긴 글 | 2014.04.22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나는 책을 빨리 읽는 편이 아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많이 늦게 읽는 편이다. 

그리고 어떤 종류의 책은 한번 읽어서 잘 이해도 안된다. -.-;

뭐 독서, 공부 이런거에 잘 어울리지 않는 그런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나는 많은 책을 읽지 못한다.


그런데...

세상은 넓고 읽어야 하는 책은 많다.


그래서 내가 쓰는 방법은,

"흐름잡기" 이다.


가령, 독자가 읽는 속도보다 더 빨리 책을 써 낸다는 N. T. Wright의 예를 들어보자.

사실 N. T. Wright의 방대한 분량의 책을 다 읽기란 쉽지 않다.

솔직히 말해서 정말 그럴 시간도 없다.


나는 그럴 경우, 그 사람의 생각을 대표할만한 한권을 뽑아서 정독한다.

이렇게 하는 책은 두꺼우면 안된다. 얇으면서도 그 사람의 사상을 잘 드러내는 책이어야 한다.

음.. 불행히도 N. T. Wright의 경우에는 그런 책을 찾지 못했다. -.-';

이 사람의 사상이 워낙 방대하고 다양한 분야에 걸쳐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N. T. Wright의 사상과 저작을 분석해서 정리한 문서나 강의들을 열심히 찾았다.

지금은 없어진 것 같은데... 인터넷을 뒤져보니, Univ. of Virginia의 Center for Christian Studies에서 4주짜리 시리즈 세미나/강의를 한 것이 있었다. 그야말로 N. T. Wright 개관이었다.

나는 그 강의를 여러번 반복해서 들었다. 그렇게 N. T. Wright 사상의 줄기가 무엇인지 우선 좀 감을 잡았다.


그리고 나니, N. T. Wright을 읽는 것이 훨씬 쉬워졌다.

심지어 어떤 것은 설렁설렁 읽으면서 아... 여기선 이 양반이 이 얘기를 하는구나... 하는 것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였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가령, 스탠리 하우어워즈의 경우...

이 분도 역시 이분의 사상을 한번에 조망할 수 있는 책을 찾지 못했다. 사실 처음 접한 책이 하나님의 나그네된 백성 인데, 어떤 의미에서 그분 생각의 개관을 이 책을 통해서 볼 수 있다고 할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이분의 경우에 내가 했던 접근은, 이분의 신학적 입장이 어떤 '라인'에 서 있는지를 파악한 것이었다.

이것 역시 뭐 간단한 인터넷 서치로 해결된다. 

찾아보니... 요더의 영향을 많이 받은 평화주의자라고 나온다.

아하... 평화주의자구나.


그런 관점에서 이분의 책을 읽어나가니, 이해가 빠르고 쉬웠다.


물론, 이런 과정은 feedback을 거쳐야 한다.

가령 N. T. Wight에 대해 개괄적으로 설명한 처음 강의를 통해서 N. T. Wright의 사상을 소개받았지만,

실제로 책을 읽어가면서 N. T. Wright의 사상을 접하면서 그 처음 개관강의의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생길 수 있다. 그럴 경우, 독서를 해가면서 내 나름대로의 N. T. Wright 개관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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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독서법 (2)

짧은 생각, 긴 글 | 2014.04.21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조직신학, 교회사, 성서신학 등과 같은 '기초 신학' 과목들은 좀 예외가 되겠으나...

그 외에 내가 책을 읽는 방법은 철저히 저자중심이었다.


소위 어떤 사람 한 사람은 '꽂히면' 그 사람을 정신없이 파고드는 방법을 잘 취했다.

뭐 그렇다고 그 사람의 책을 다 읽는다거나 그렇게 한건 아니다. 택도 없다. ^^

그렇지만... 아... 이 사람의 생각과 사상의 범위와 한계가 이렇게 그려지는구나 하고 깨달아 질 때까지 그 사람의 저작들을 읽었다.


대표적으로,

존 스토트, 프란시스 쉐퍼, 김교신 등은 내가 20대에 정신없이 파고들었던 사람들이었다.


그 이후에도,

자크 엘룰, 마틴 로이드-존스, 최근에는 N. T. Wright에 이르기까지... 나는 철저하게 저자 중심으로 책을 읽었던것 같다.


그렇게 한 이유는,

그렇게 한 저자의 사상을 파악하는 방법으로 책을 읽어나가면, 큰 그림을 빨리 잡는데 유리하고, 짧은 시간에 많은 정보를 잘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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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ly Week 묵상 - It's Friday but Sunday's coming!

짧은 생각, 긴 글 | 2014.04.19 22:54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금요일에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히셨다. 제자들은 흩어졌고, 사람들은 절망했다.

악이 마침내 궁극적 승리는 거둔 듯 했고, 하나님은 무력해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금요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일요일이 오고 있었다.


금요일의 처절한 절망과 패배는,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지만,

일요일이 오고 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설교자 가운데 한 사람은, Tony Campolo이다.

어떤 의미에서 내가 role model로 여기고 있다고 할수도 있겠다.


그분의 설교중 꽤 유명한 설교가 있는데, 그것은 It's Friday, but Sunday's coming 이다.

(다음의 링크에서 그중 일부를 들을 수 있는데, video가 약간 이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들을수 있다.)



그렇다.

아직 금요일에 머물러 있을 수 있는 우리는,

충분히 절망해야 한다.


여전히 악이 승리하는 것 같아 보이고,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들은 무기력해 보이고,

여전히 하나님이 그 백성들과 함께하는 것 같아 보이지 않을때...

우리는 그 무기력함과 절망감과 아픔을 쉽게 떨쳐 버리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그 모든 금요일의 무거움을 온 몸으로 받아내며,

그 금요일의 어두움을 삶에서 겪어 내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다가올 일요일에 대한 말로 다 할 수 없는 소망을 가져야 한다.


Tony Campolo가 이야기했던 것 처럼,

It's Friday, but Sunday's coming 이다!


예수께서 부활하셨다.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


It's Friday, but Sunday's com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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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ly Week 묵상 - 소망

짧은 생각, 긴 글 | 2014.04.18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처음 십가가의 의미를 깨달았을때,

나는 눈물을 펑펑 쏟으며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니,

도대체 왜 그러셨을까.

아니 왜...

어떻게 그럴수가 있을까.


그로부터 20년도 더 지났고,

내 삶의 모든 영역은 그 십자가의 가치를 중심으로 재배치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매년 이 시즌이 될 때마다,

나는 내가 이해하고 있는 십자가의 의미가 얼마나 shallow한 수준인가 하는 것을 새롭게 깨닫는다.


이 땅을 살면서, 과연 그 십자가의 신비를 다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걸까... 싶지만...

이렇게 그 영광의 끝자락을 조금 잡는 것 만으로도, 이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데 소망을 준다.


.....


옛날에 황 간사님이 어느 세팅에서 설교하셨던 것이 기억난다.

Charles Templeton은 복음전도자였다. 빌리그레함과 가깝게 지내기도 했다. 

그러나 아프리카에서 가뭄 끝에 죽은 아이를 안고 있는 사진을 잡지에서 보고, 하나님이 어디계신가 라는 질문을 하다가 결국은 불가지론자(agnostic)가 되었다. 이런 비극적 상황을 만드는 신이라면 믿을 수 없다고 선언한 것이었다. 그래서 쓴 책이 Farewell to God 이다.


반면,

Mother Teresa는, 인도 캘커타의 빈민촌을 향해 compassion을 가지다가,

결국 그 안에 들어가 평생 그 사람들을 위한 삶을 살았다.

그들을 보면 그 안에 그리스도가 있다며 그 사람들을 섬겼다.


한 사람은,

아프리카의 고통을 겪어보지도 않은 채, 그저 편안한 자리에서 사진을 보고 하나님을 버렸지만,


다른 사람은,

고통받는 사람들의 눈물을 자신의 눈물로 여기고 함께 고통에 동참하며 그 사람들을 섬기면서, 그 안에 계신 하나님을 경험했다.


십자가는...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진 십자가의 은혜는....

우리에게 소망의 논리를 제공해주기도 하지만,

소망의 삶의 방식을 강력하게 요청하기도 한다.


.....


십자가를 바라보며,

처절하게 우리 구주께서 그 위해서 피 흘리신 그 십자가를 바라보며,

'왜 (그렇게 하셨나)'라는 질문을 던져보면 사실 아무런 대답이 없다.

그러나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대단히 분명한 대답이 주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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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ly Week 묵상 - 고통

짧은 생각, 긴 글 | 2014.04.17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어제, 

한국에서 수학여행을 가던 아이들이 탔던 배가 침몰한 뉴스를 들었다.


어찌나 가슴이 막막해지고 힘들던지...

아... 정말 몇번씩이나 탄식이 나왔다.


이건 아닌데...

정말 이런건 아닌데...

세상이 이러면 안되는 건데...


아끼는 친구들의 힘든 모습을 보며,

사랑하는 사람들이 힘들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이런 뉴스를 들으며...

그리고 또... 내가 그런 힘든 상황을 지나기도 하면서...


예수께서 그 고통스러운 세상 속에 소망을 주시기 위해 자신이 그 고통을 짊어지셨음을 생각해본다.


침몰하는 배 속에서 두려워했을 아이들의 두려움 만큼이나 예수의 두려움이 컸을까?

그 아이들을 잃어버린 부모만큼이나 예수께서는 아파하셨을까?

깊은 삶의 절망의 골을 지나고 있는 사람들의 말로 다 할 수 없는 어려운 마음을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앞에두고 가지셨을까?


오늘은...

도무지...

'고통'이라는 지점으로부터 조금도 생각이 더 움직여지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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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ly Week 묵상 - penal substitution

짧은 생각, 긴 글 | 2014.04.16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소위 penal substitution이라는 개념을 마치 '옛날 식의 atonement theory'로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 아니 솔직히 말하면, 내가 그렇게 느끼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로 만드는 key 가운데 하나가 바로 '나를 대신해서' 돌아가신 예수님의 사랑이 아닌가 싶다.


결국 하나님의 궁극적인 희생으로,

내 죄값을 치루고,

내가 회복되었다는 말씀.


그래서 이제는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내 죄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게 되었다는 것.


'역사적 예수'연구를 들여다보면,

사실 penal substitution에 관한 이야기들이 별로 나오질 않는다.


그리고,

1세기 유대교 배경의 관점에서 보면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예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메시아로 오셨고, 참 이스라엘이 되셔서 하나님의 선한 의도를 fulfill 하신 것이다.


그렇지만,

여러모로 생각해보면,

예수는 역사적 인물이시기도 하지만, 초역사적 인물이시기도 하시다.

성경은 시간 속에 침투해 온 하나님의 계시이기도 하지만,

시간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계시이기도 하다.


이것이 바로 내가 여전히 '내 죄를 대신해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믿는 이유이다.


그리고,

그 예수님은, 

내가 온 몸과 마음과 정성을 다 해서 사랑하는 대상이다.

내 경배를 받으시기 합당하신 분이시고,

내가 마지막 숨을 쉬는 그 순간까지, 그리고 그 이후에도 영원히 따를 내 주 (Lord) 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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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ly Week 묵상 - 개인적 복음

짧은 생각, 긴 글 | 2014.04.15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금년 초 였던가,

일본에 출장을 가 있었는데,

신깐센을 타고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고 있었다.

내 머리 속에는 이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아니, 도대체...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지?

'세상'이 아니라 '나' 말이야.

성경의 역사성에 대한 것,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신다는 것 등등은 논리적으로 잘 파악이 되는데,

갑자기... 그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이 희미하게 여겨지는 것이었다.


괴로웠다.


하나님께서는, 피조세계를 사랑하시긴 하지만, '나'라는 개인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으신 것은 아닐까.

뭐 '나'라는 개인이 기뻐하는 것이 하나님께 크게 손해가 되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하나님의 주된 관심사는 아니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


말하자면,

내가 모래성을 멋지게 만들어 놓았다고 하자. 

그 모래성을 참 좋아하고, 어쩌다 그것이 망가지면 안타까워할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 안의 모래 한알 한알에 어떤 애착이 있는 것은 아니다.

뭐 비슷한 논리였다. 


뭐 여러가지 논리적 전개를 통해,

나름대로 성경 여기 저기를 뒤적이며,

그리고 내 개인적인 '체험'을 되새기며 그 의심이 많이 가셔지긴 했었는데...


그때 얻은 교훈은 이것이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이 참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시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수님께서 '세상'을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셨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예수님의 사랑이 바로 '나'를 위한 것이었다는 것디 정말 중요하다.


성경을 사유화(privatize)해서 읽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성경읽는 방법이다.

그리고, 흔히 사유화해서 읽어내는 성경 본문의 대부분은, 사람들이 아전인수격으로 잘 못 해석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 주간에...

그런 사유화의 오류의 위험을 무릎쓰고라도,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더 깊이 마음에 담아보고 싶다.

예수께서 처절하게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그 순간, 하나님의 마음과 시선이 '나'에게 머물렀음을 마음에 더 담아보고 싶다.


결국 나는,

하나님의 그 사랑이 정말 중요한 사람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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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ly Week 묵상 - 복음, 역사성

짧은 생각, 긴 글 | 2014.04.14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복음이 그저 시간을 초월한 개념이 아니라, 시간 속에 일어난 역사적 사건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 복음의 nature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는 것 같다.


사실 다른 종교는, 

그 종교의 경전이나 이야기들의 실제 역사적 사실 여부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만일 예수가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인물이 아니라면,

그분의 십자가 처형,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면,

기독교는 그 모든 근거와 근본을 잃어버리게된다.


기독교가 이렇게 인간의 역사 속에 뿌리 박고 있다는 사실은,

기독교가 참으로 사람 냄새 나는 종교로 만든다.


복음은 기본적으로,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news이고,

종교는 기본적으로,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advice이다.


만일, 마치 예수에 대한 뉴스가 사실이 아니어도 괜찮은,

'내면의 종교'로서 기독교를 인식하고 있다면,

그것은 기독교에 대한 심각한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다.


Holy week을 맞으면서,

복음이 역사속에 뿌리 박고 있다는 것과,

이미 일어난 사건에 대한 뉴스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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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독서법 (1)

짧은 생각, 긴 글 | 2014.04.11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사실 한달에 한권 책 읽을까 말까 한 수준이므로, 

내가 무슨 독서법 어쩌구를 논할만한 수준이 절대 못된다.

게다가 요즘은 그나마도 시간이 없어 잘 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가끔 내가 어떻게 독서를 하고 공부를 하느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어서,

여기에 한번 정리해서 써보기로 하였다.

뭐 대단한 자랑거리가 아니므로, 아마 이보다 더 잘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 같다. ^^

혹시 좀 도움을 얻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대학생때, 

한학기에 6과목 정도를 들었고, 일년에 12과목을 정규학기에 들었다.

평균적으로 한달에 한권정도 text book을 보는 셈이었다.


그래서 대학생때 결심했다.

전공서적 한권당 신앙서적 한권을 읽겠다고.

그래서 한달에 한권 책읽기를 시작했다.


늘 잘 지킨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로부터 한 15년 정도는 꽤 지켰다.


처음에는 가벼운 에세이 등부터 시작했지만, 점차 신학서적들도 읽었다.

조직신학, 성서 해석학, 교회사, OT/NT survey 등은 신학교 학생들이 배우는 수준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꽤 열심히 공부했었다. (그중 어떤 것들은 미국의 잘 알려진 복음주의 신학교 M Div 학생들이 배우는 교재를 혼자서 독학한 경우도 있었다.)

보스턴에 있을 때에는, 근처의 신학교 한학기 강의 tape 전체를 구해다가 들으며 공부를 한적도 있었다.소위 '인터넷 강의'가 많이 뜨고난 다음엔 거의 미친듯이 여기저기 강의들을 들었고, 그중에는 정규 신학교 강의를 도강(?) 하기도 했다.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좀 공부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지금도 사실 많이 남는데... 아직 포기한건 아니다! ㅎㅎ 혹시 여유가 생기면 언젠가 한번 도전해 보고 싶다.


그리고 소그룹에 대한 책, 경건생활에 대한 책, 그리고 고전들... 

이럭 저럭 읽은 것들을 생각해보면 대단히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 자신은 없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책을 읽고 공부를 했던것 같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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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were so close!

긴 생각, 짧은 글 | 2014.04.10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두 주 쯤 전에, 동네 산책을 하다가 비어있는 office space 옆을 지나갔다.


나는 아직도 그런 모습을 보면 예전에 '우리 회사' 사람들과 함께 언젠가는 우리끼리 이런 office도 따로 마련하고 '우리 회사'를 제대로 해볼것이라는 꿈을 꾸었던 추억에 잠기게 된다.


어제 저녁에, 옛날 file들을 뒤젹어보니, 2012년 가을까지도 정말 열심히 실험도 하고, 여기 저기 다른 회사 사람들과 이야기도 하면서 회사를 살려보려고 노력을 했던 흔적이 보인다.


그후, 실제로 manufacturing을 하는 회사들을 겪어보고, 소위 '잘나가는' 회사들을 겪어보니...

그 당시 우리가 얼마나 '고지'에 가까이 갔었던가 하는 것을 더 피부로 느낀다.


그때 우리가,

Dick Tracy watch를 flexible display로 만들어보겠다고 이야기했던 것이 이제 슬슬 현실로 나타나고 있고,

소위 Roll-to-Roll 이라는 방법으로 전자제품을 만드는 기술은 아직도 그 당시 우리 그룹의 수준 가까이 다가온 팀이 없다. (어쩌면 지금 내가 일하고 있는 지금의 '우리 그룹'이 그나마 제일 근접한 수준이 아닐까.)


황순원의 소나기 맨 마지막 부분을 읽을 때나, 

피천득의 인연 마지막 문장을 읽을 때 느끼는 가슴 싸~ 한 느낌...


'예전 우리 회사'를 생각할때나,

예전에 우리가 꿈꿨던 것이 그러부터 2년도 더 지나서야 조금씩 현실화되어가고 있는 모습을 볼때...

그런 싸~ 한 느낌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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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의 허황된 꿈, 40대의 자아성찰

긴 생각, 짧은 글 | 2014.04.09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스무살이 갓 지났을때, 추운 기숙사 책상에서 혼자 성경을 읽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아니, 도대체... 정말 이런게 기독교란 말인가!

나는 엄청 충격에 빠졌었다.


그 복음을 내것으로 받아들이고, 큰 변화를 겪으며...

아, 이런 추세라면 내가 40살, 50살, 60살쯤 되어서는 정말 성숙하고 훌륭한 크리스천이 되어 있겠구나.

그때쯤 되면 내게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그런 사람이 되어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대의 꿈과 예상이 허황된 것이었을까.

그때, 까마득하게만 보이던 40대 중반이 된 지금,

나는 여전히 형편없는 사람이다.


20대에, 

열정으로 불타는 자아가 너무 강하게 살아있어,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에 못박혔나니'라는 바울의 고백이 언제나 내게도 이루어 질까... 하는 갈망으로 살면서도,

앞으로 20-30년 후에는 그래도 지금보다 훨씬 더 성숙해 있겠지 하는 기대를 가져었는데...


지금 나를 보면...

참... 아직도 멀었다.


내 삶의 control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여전하고,

사랑과 자존심의 갈래에서 늘 자존심을 선택하고,

고집이 날로 갈수록 강해져서 이제는 나를 갉아먹고 있는 지경에 이르렀고,

미래의 주인이 하나님이라고 고백하지만 늘 미래에 대한 불안에 휩싸여 산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인간에 대한, 혹은 좀 더 좁게는, 나 자신에 대한 젊은 시절의 낙관론을 접고,

죄인 이라는 인간의 본질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죄에 대한 인식의 깊이가 깊어지다보니,

비판의 날을 강하게 세우는 것도 그저 부끄럽게만 여겨지고,

예전같으면 몇년씩 미워했을 사람을 향해서도 그래... 그럴 수 있지... 라고 생각하게 되는 여유는 생기게 된 것 같다.


날이 갈수록,

언젠가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보는 것 같이' 우리 주님을 보게될 그 때,

그래서 지금의 어그러진 모습으로부터 훨씬 자유롭게 될 그 때에 대한 소망이 커지게 되는 것 같다.


사순절에 해볼만한 40대의 묵상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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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과 실패

긴 생각, 짧은 글 | 2014.04.08 06:37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 내가 속한 팀은 그렇게 크지 않다.

불과 10명 남짓 되는 팀인데, 한 사람의 엔지니어가 꽤 많은 부분을 맡아서 일한다.


그중에서도 내가 맡은 일은, 소위 'core technology'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내가 처음 이 팀에 join해서 이 일을 맡게 되었을때,

지금 이부분의 일이... 제일 걱정되는 부분이다. That keeps me up at night 뭐 이렇게 윗사람이 이야기했던 부분이다.


당연히, 내게 주어지는 부담감이 만빵이다.

사실 내가 잘 못하면, 우리 팀에서 하는 다른 모든일이 모두 꽝! 이 된다. 

지난 4개월 남짓 되는 기간 동안에, 내가 하는 일에 쏟아부은 돈이, 우리 팀 전체 예산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런데,

주어진 시간의 제약 안에서, 그리고 주어진 예산의 제약 안에서,

지금 이 일을 하려면 내가 그냥 열심히 해서만 되는 것이 아닌 상황이다.

소위 'luck'이 필요하다고나 할까. (혹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


지난 주,

내가 독일에 가 있는 동안, 산호세 office에서는, 내가 만든 part를 이용해서 최초로 device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사람들은 우리 team 전체의 major milestone이라면서 환호했다.


...


예전 같으면,

혼자 우쭐해져서... 그래.. 내가 하니까 잘 된거네... 

뭐 이렇게 생각했겠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특별히 뭘 잘했다기 보다는 정말 그냥 일이 어쩌다 잘 된거다. 


그런데,

만일 이 일이 잘 못 되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나는 심하게 자책했을 것 같다. 아, 그때 이건 이렇게 잘 못 한거야... 이건 이제 문제였지...


별로 fair 하지 않는 사고방식이다.

잘되면 남탓, 못되면 내탓이라는 말인데...


앞으로 정말 '성공'이라고 부를 수 있을 때 까지 가야할 길이 꽤 멀긴 하다.

정말 이 project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을 지 없을지 모르겠지만...


과연 혹시 주어지게될 성공의 공을 내게 얼마나 돌려야 하는 걸까,

혹은 실패의 원인을 얼마나 나로부터 찾아야 할까.


많이 고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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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place like home?!

긴 생각, 짧은 글 | 2014.04.07 06:13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출장을 떠나기 전,

정말 많이 바빴다.


음... physically 바쁘기도 했지만, 직장일 관련한 stress가 대단히 높은 상태였다.

차라리 비행기를 타고, 좀 쉬고 싶었다.

비행기를 타고 가는 중에는 다른 일 하지 않고 좀 쉴 수 있으므로.


출장을 가서는, 생각보다 일이 바쁘지 않았다.

정말 내가 출장을 가서 이렇게 여유있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중 하루는 오후 3시에 일이 끝나 '자유시간'을 갖기도 했다.

그 '자유시간'에는 나는 호텔에 들어가서 잤다. .-;


내가 가 있는 동안 날씨도 좋았고, 일도 비교적 잘 되었는데... 

그래서 원한다면 좀 '관광'을 해볼수도 있었을 텐데...

사실 그럴만큼 힘이 없었다.

그저 좀 누워서 자고 싶었다.


덕분에 한주 동안, 독일에서 잘 쉬었다.

하루에 8-9시간씩 자며 지냈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이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프랑크푸르트를 거쳐오는 비행편이었는데,

프랑크푸르트에서 샌프란시스코오는 비행편이 취소되었다.

그래서 프랑크푸르트에서 하루 더 지내야 했고, 어제(주일) 오후 늦게가 되어서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집에 오니, 

아내와 민우와 하이디가 나를 반겨준다.


내가 없는 동안 아내는 혼자서 이런 저런 일을 하느라 많이 힘들었을 테고,

민우는 감기에 걸렸다.


집에 와서 가족을 보니 좋다.


그러나...

이번에 실험해온 sample들을 evaluate하기 위해서, 앞으로 두주 정도는 또 완전히 바쁘게 지내게 될텐데...


Still, it;s great to be 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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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는 독일 출장중

긴 생각, 짧은 글 | 2014.04.04 00:06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제가 '공지'로 글을 올렸다고 생각했는데, 안올라갔었네요. 

이번주는 독일에 출장중이어서, 매일 글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지금 Lufthansa가 파업중이어서 과연 제때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정상적으로 집에 돌아가게 된다면, 월요일부터 다시 블로그에 글을 올리겠습니다. 꾸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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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복음주의 선언

Fun / Humor | 2014.04.01 06:15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지난 수년간,

나는 나름대로 신앙의 격변을 지내왔다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옳다고 생각해오던 신앙의 가치들에대해 진지한 회의를 갖게 되었고,

또 나와 나를 둘러싼 세상의 여러 모습이 '기존의' 신앙으로 잘 설명되지 않는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다.


이 블로그에서,

내 탈근본주의 여정에 관한 시리즈의 글을 쓰기도 했는데,

그 글을 쓸 당시보다 나는 지금 훨씬 더 멀리 와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특히 지난 수개월동안은,

그 고민의 깊이가 훨씬 더 깊어져서...

내가 신앙의 '근본'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에조차 회의와 의문을 제기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것으로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일종의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지난 일요일은 내 45번째 생일이었다. 

이제 50세를 향해 내달리고 있는 지금...

적어도 지금까지 내가 겪어온 여정을 정리하면서 나름대로 무언가 하나 맺음을 지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에,

나는 '탈복음주의 선언'을 하는 바이다.


이 글을 읽는 어떤 분들에게는 대단히 불편한 이야기일 수 있겠으나..

내가 탈복음주의를 선언하면서 기본에 '복음주의자'로서 가졌던 신념들 가운데 어떤 것들은 이제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몇가지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1. 나는 이제 더 이상 기독교가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

소위 다른 종교에도 일종의 '구원'이 있을 가능성을 받아들인다.


2. 나는 '사후 세계' 혹은 '내세'라는 개념에 대해 불가지론적 입장을 취하기로 했다.

정말 사후세계가 있는지 없는지 확신이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지옥, 천당 과 같은 개념들 역시 내게는 불가지론적 영역일 뿐이다.


3. 삼위일체, 예수의 신성, 동정녀 탄생, 기타 성경의 여러 기적들에 대해서도 대단히 비판적으로 본다. 

성경에 쓰여진 기적의 대부분은, 각색된 것이거나 과장된 것, 혹은 허구라고 생각한다.


4. 초월적 존재를 믿으나, 그것이 성경의 하나님이라는 생각으로부터도 '자유로와' 지기로 했다.

힌두교식의 범신론이나, 고대의 다신론과 같은 덜 진화된 형태의 종교를 따르는 것은 내 '자유로움'의 option이 아니다.


5. 소위 '자유주의자'들이 이야기하는 방식의 신앙 역시 내가 받아들이긴 어렵다. 그들은 이성이라는 도구를 교조적으로 사용하여 그 이름에 걸맞는 '자유로움'을 포기한 사람들이라고 보여진다.


....


이렇게 써 놓으면,

도대체 네가 믿는게 무엇이냐 라고 반문할 사람들이 있겠지만...


내가 오늘 여기에 쓰는 것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의 이곳의 링크에서 좀 더 잘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

이제 이렇게 나름대로 '양심선언'을 하고 나니 마음이 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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