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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끓는다!

긴 생각, 짧은 글 | 2014.06.30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시카고 간사들이 서로 communicate하는 카톡방에 나를 포함시켜주었다.

덕분에 주말동안, 간사들의 대화를 계속 볼 수 있었다.


나는,

이번에 인디를 다녀왔으므로, 시카고에 참석못하는게 덜 섭섭할 줄 알았다.


그런데,

전혀 아니다.


간사들의 카톡 대화를 보면서, facebook에 올라오는 사진들을 보면서...

마음이 끓는다.


나는 왜 이렇게 늘 간사들이 섬기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뛸까?


몇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우선, 내가 사역했던 생각이 참 많이 나서 그런 것 같다. 

코스타 간사로 섬기는 동안, 나는 여러가지로 참 풍족하지 못한 상태인 기간이 많았다. 

시간도 부족하고, 개인적인 여건도 여유롭지 않은 상태에서,

정말 눈물과 땀을 다 흘려가며 섬겼었다.

후배 간사들을 보면, 그때 내 모습이 보인다. 

많이 안쓰럽다. 그리고 많이 감사하다.


그리고 또한...

한국 교회, 한인 디아스포라 교회, 한국 복음주의는 참으로 난감할만큼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심하게 기울어져가는 배와도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 와중에, 이렇게 헌신해서 섬기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다시 소망을 갖게끔 한다.

아직은 "망하지 않았음"을 확인하게 된다.


사실 내가 간사 리더십으로 섬겼던 기간 동안,

정말 힘에 벅차게 느껴지는 순간이 정말 많이 있었다.

아... 이건... 이제 정말 이것보다 더 하지는 못하겠다... 싶을때, 그 위에 더 큰일이 터져서 그걸 메워야했던 경험들이 많이 있었다.

그럴때 그 고비를 견디며 버텨냈던 가장 큰 힘은, '간사들'이었다.

어떻게든 이렇게 헌신한 사람들의 헌신을 지켜주어야 한다는 책임감이었다.

어떻게든 이 헌신의 흐름을 support 해줘야 한다는 사명감이었다.


실제로,

어떤 순간에는 구체적으로 이제 더 이상 '미국 코스타'를 더하기는 어렵겠다고 느끼고, 문을 닫아야 하는게 아닌가하는 고민을 했던 적도 있었다. (뭐 아는 사람은 그때의 상황을 알지만...)

그때도, 어떻게든 간사들만은 지켜내야한다고 생각했었다.  간사들 생각하며 참 많이 울었었다.


오늘 오전까지 조장 수련회가 계속되고, 오늘 저녁부터 본 집회가 진행된다.

나는 화요일 밤에 비행기를 타고 시카고로 날라가게 되지만, 이곳에서도 간사들의 카톡대화에 내 마음이 다 빼앗겨서 지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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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또 시작입니다!

비주얼라이제이션? | 2014.06.27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나는 또 꿈꾼다.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깨우시고, 누군가를 세우시고, 누군가를 깨뜨리시고, 누군가를 품으실 것을.


2014 KOSTA / USA 홍보영상 part_2 from KOSTA USA on Vim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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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타, 도대체 나한테 왜 그래요?

긴 생각, 짧은 글 | 2014.06.26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96년에 처음 코스타 집회에 참석했다.

그때는 무조건 다 '우편'으로 원서를 보냈다.

원서를 어떻게 구해서, 그걸 복사해서, 거기에 볼펜으로 꼭꼭 눌러써서 원서를 보냈다.


그로부터 며칠 후,

밤 늦게 기숙사 방에 혼자 있었는데 갑자기 전화가 왔다. (그땐 물론 cell phone 그런거 없었다.)

나는 caller ID 같은 것도 없었으므로 그냥 누군지 모르고 hello 하고 받았는데,

'권오승 형제님이시죠?' 라고 묻는 전화였다.


네?.... 아...네....


그랬더니 저쪽에서는, 여기 코스타 본부 인데요, 이번에 조장을 하시라고 연락드려요.

하는 것이었다.


나는....


네? 저는... 코스타 처음이고.. 사실 잘 알지도 못하고...


그러는데,

저쪽에서는 다짜고짜, 아...네... 그럼 이번에 조장 해주시는 걸로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고는 뚝~


허억...

이건 뭐야. 코스타 아주 터프한 데구나... 그냥 조장 하라고 통보하고는 마는... 허억...


나는 그렇게 코스타에 엮기기 시작했는데,

그 후로 코스타는 한번도 나에게 친절한 적이 없었다.


등골을 쏙쏙 뽑아먹고...

내가 하고 싶은 것도 못하게 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도 포기하게 하고,

지난 18년동안 정말... 아주... 무리한 요구까지도 당당하게 내게 해왔다.


아니, 코스타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예요?

내가 코스타에 잘못한게 뭐 있다고.


어제,

시카고 간사들이 집회기간 도중에 서로 연락하기위한 카톡방이 열렸다. (거기에 나도 초대되었다. ㅎㅎ)

이제 진짜 시카고 집회도 시작되나보다.


이번에는 다행히도(?) 시카고에서는 별로 나에게 심하게 굴지 않는다. ㅎㅎ


그래서 그런가...

이거 참 허전하고 이상하다.

이게 아닌데 싶기도 하고.


나는 이번에 직장 사정 때문에,

수요일 하루 공동대표 모임이 있는 날만 참석하기로 했다.


화요일 밤 비행기로 가서... 수요일 하루를 보내고, 밤 새고... 목요일 새벽 비행기 타고 다시 돌아와서 출근하는 일정이다.


사실 공동대표모임은 별로 가고 싶지 않았는데...

그게 핑게대고 그나마 하루라도 가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지난 18년동안 코스타는 내게 늘 너무 심하게 해 왔지만,

나는 코스타에서 내 마음을 거두어들일 수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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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 아저씨

긴 생각, 짧은 글 | 2014.06.25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내가 지금 있는 직장은,

Lenovo가 acquire한 start-up company 이다. 


7년전 자금 흐름이 여의치 않아 문을 닫았다가, 7년만에 Lenovo가 그 기술을 이용하려고 acquire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 그룹에는 오랫동안 함께 호흡을 맞추어온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중 한 사람은 R 아저씨이다.

우리 그룹에서 "사무"를 담당하고 계신 분인데...  60대인 인도 아저씨다.

사람은 참 좋다. 늘 부드럽게 이야기하고, 상냥하고 친절하다. 


그런데,

나는 정말 이 아저씨 스타일하고 잘 안맞는다. -.-;


회사에서 정말 일이 너무 바빠서 정신없이 일하고 있으면, 와서 주말은 어떻게 지냈느냐, 자기는 손녀와 함께 잘 쉬었다...는 식의 인사를 10분씩 하고 간다. 

나이가 많으신 분이어서 아무래도 빠릿빠릿한게 많이 떨어진다.

뭔가 사무관련된 일 하나를 부탁하면 제때 하는 일이 별로 없다. 꼭 내가 두번 세번 가서 다시 확인해야한다.

단순한 것도 몇번씩 설명을 해 드려야 겨우 이해를 하신다.


최근에는, 독일로 보내야하는 중요한 sample 하나를 홍콩으로 보내는 바람에, 내가 완전히 panic이 된 일도 있었다. 분명히 내가 이메일로 그 package는 독일로 가능하면 빨리 보내야한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이 아저씨는 어떻게 된 일인지 그걸 홍콩으로 보내버렸다. -.-;

덕분에 거의 3만불 정도를 날려버릴 뻔 했는데... 내가 이리로 저리로 전화를 해가며 겨우 겨우 최악의 사태를 막을 수 있었다.


나는 정말 완전히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


아니, 도대체 왜 이 회사는 저런 아저씨를 계속 데리고 있는 걸까. 더 일 잘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텐데 말이야. 저 아저씨가 일을 조금만 더 잘하더라도 우리 그룹의 productivity가 훨씬 더 좋아질텐데...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정말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나는...

이렇게 극도로 효율성을 추구하는 세상 속에서 더듬거리며 일하고 있는 이 아저씨를 조금 더 품고 있어줄 여유가 없는 걸까.

정말... 나는...

결국 이런 아저씨는 효율성이라는 이름하에 퇴출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사실 이 아저씨보다 더 일 잘하고 성실한 젊은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을 텐데....

그런 사람들을 놔두고 이 아저씨가 버벅거리는 것을 참고 있는 것이 과연 능사일까.


뭐 내가 이 아저씨를 어떻게 할만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므로,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것이 이 아저씨에게 어떤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R 아저씨를 어떻게 대하느냐 하는 것은 그냥 단순한 Christian hospitality의 issue가 아닐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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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주의?

긴 생각, 짧은 글 | 2014.06.24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최근 한국에서, 

한 극우 언론인이 총리 후보로 낙점 되었는데, 이 사람이 기독교인이라고...

그런데 일본의 식민지배가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 것이라고 기독교인들 모임에서 이야기했다가 완전히 인터넷에서 뒤집어 지고 있다. -.-;

(어제 그분이 자신 사퇴를 함으로써 이 일이 일단락지어지는 것 같긴 하지만...)


우선,

나는 이 극우 언론인과는 정치적 견해를 대단히 달리 한다.

나는 이 사람이 기독교인으로서 '하나님의 뜻' 이라는 것을 쉽게 '들이댄' 것에 대해 몹시 마음이 불편하다.

아니... 그 정도의 지성을 가진 사람이, 신앙과 하나님의 뜻이라는 개념에 대해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 없는 건가 싶어 당황스럽기도 하다.

게다가 소위 한국의 '유명한' 목사님들이 문 모씨 지지하며 살려내기에 총력을 하다는 모습은 안쓰럽기 까지 하다. 아니... 그 양반들이 왜 그렇게 되셨을까...


그.런.데.

약간 생각을 바꾸어서 보면,

이 극우 언론인과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나, 이 극우 언론인을 사정없이 '디스'하고 있는 사람들이나 모두..

지극히 '국가주의'적 사고방식에서 접근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혹은, 다소 좁은 민족주의적 입장이라고 할 수도 있을까.)


나는 신학적 견해가,

평화주의의 입장은 아니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

'제3의 목소리'를 내는 그리스도인들은 왜 보이지/들리지 않는 걸까 하는 것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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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rosity'에 대한 아땅님의 글

다른이의 생각들 | 2014.06.23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지난 금요일, 아땅님이 댓글을 써서 올리셨는데, 함께 생각해보기에 좋은 내용인 것 같아 허락을 받아 올립니다. ^^


===


시카고 코스타 주강사님들 마르바 던 교수님과 김병년 목사님 말씀 기대합니다. (참석은 못하지만 음성파일로라도 들을 수 있기에^^)

근데 두분 글들을 읽으며 들었던 질문들이 있었습니다. 개인에게 책임이 돌려지는 ‘약함의 문제’였습니다

마르바던이나 김병년 같으신 분들은 거의 틀림없이 한 개인에게 귀책되지 않는 사유로 약함의 자리에 서게 됩니다. 개인적 육신의 질병, 그리고 가족의 아픔으로 찾아오고 감당해야 했던 어려움과 아픔의 일들이었죠. 이런 것들은 제럴드 싯쳐의 경우도 마찬가지고 하우워워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분들도 비슷한 상황을 걸어갔고 그것을 다양한 측면에서 나눠주셨던 것 같습니다.


근데, 제가 가진 질문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개인으로 책임을 돌리는 문제들에 대해서, 그것에 귀인한 약함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말씀하신 게으름과 개인의 잘못된 선택이 가장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이런 사유는 니가 책임져야 하는 consequence예요.' 라고 말해야 하는 것인가요?


------------


제가 가지는 첫번째 포인트는, 흔히 우리가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개인의 consequence로서의) 약함이 진짜 개인의 책임으로만 간주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보통의 상식으로는 머리 나쁜 사람에게 “넌 머리가 나쁘니까 니가 그 결과를, 그 짐을 평생 지고 가야 한다, 머리 나쁘니까 가난하게 살아라.”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또 “ 넌 머리가 좋으니까 잘먹고 잘사는 것이 당연해.”라고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머리가 좋고 나쁜것이 바꿀수 없는 선천적 요인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 개인이 바꿀수 없는 생래적 요소에 대해서는 그 책임과 결과를 개인에게 물을 수 없다라는 것이 어느 정도 합의된 생각이 아닐까 싶습니다.


게으름에 대해서는 어떤가 생각해봅니다. 

게으른 사람에게는 “넌 게으르니까 니가 그 결과를, 그 짐을 지고 평생 살아야 한다. 게으르니까 가난하게 살아라” 음...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은연중에 동의합니다. 그걸 부드럽게 말하면 '각자가 뿌린 씨앗의 consequence니까…' 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게으름 혹은 삶의 태도는 은연중에 선천적인 것이 아니고, 그리고 게으름과 부지런함은 언제든 노력하면 바뀔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기에 그러한 이야기가 가능한 것 같습니다. 

진짜 그럴까? 이런 한 개인의 삶에 대한 태도도 개인에게 책임을 지울 수 있는 어떤 것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그럴수 밖에 없는 상황 가운데 산 사람이라면, 그런 상황가운데 처한 사람이라면, 어떠한 삶의 목표나 동기도 주어지지 않는 가운데 있던 사람이라면, 그래서 그 사람의 삶에 대한 태도가 그렇게 굳어진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개인에게 “니가 책임져야해, 넌 게으르니까” 라고 말하는 것이 정당한가? 


그가 그런 게으름 때문에 약함 가운데있게 된 것이라면, 

우리가 말하는 “약함의 신학”에서는 ‘미안하지만 당신을 위한 자리는 없습니다. 당신의 게으름 때문이거든요.’ 라고 말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들이 막 머리속을 돌아다닙니다. 


(물론 저도 모.든. 못남과 어그러짐을 사회나 시스템의 탓으로 돌리려는 시도들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


개인적으로는 모든면에서 뛰어나고 탁월한 분들이 격는 ‘약함’을 들으며, 

혹시 이 약함의 고백이 사실은 (저자들이나 강사님들의 의도와는 전.혀. 관계없이) 또다른 강함을 추구하는(보여주는) 메세지로 들리지 않을까

 (e.g. 이런 분들 스토리는 TV에 나와도 정말 많은 분들에게 감동을 줄 것 같거든요. 

##(개인이 가진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의지와 인내와 노력과 인격으로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아무개... 그분 참 훌륭하다.)


또 지금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청년들과는 어디서 접점을 찾을까 고민하다가 대답도 없는 곳에서 해메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그렇게 탁월하지 못하고 제가 격는 많은 약함들이 저에게 귀인하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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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rosity

긴 생각, 짧은 글 | 2014.06.20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가상의 이야기.

몇년 전이었다.

오영이는 꽤 빠듯한 재정을 아껴가며 그렇게 살고 있었다.

돈을 아끼려고, 청바지는 10불-15불짜리 사서 입고, 티셔츠도 20불이 넘지 않는 것만 사서 입었다.

점심을 싸가지고 다녔는데, 하루에 점심 샌드위치에 들어가는 돈이 $2불이 넘지 않도록 정말 알뜰하게 쌌다. (도저히 회사 식당에서 사먹을 경제적 여유가 없었다.)

어쩌다 밖에서 뭘 먹으면 좀 양이 많은걸 시켜서 집에 싸와서 한끼를 더 먹기도 했다.

완전 구두쇠로 살았다.


그때,

경제적으로 사정이 어려운, 그리 가깝지 않는 어떤 사람의 사정을 알게 되었다.

고민하던 끝에 그 사람에게 개인적으로 크지 않은 (그러나 오영이의 경제 수준에서는 꽤 큰) 돈을 그 사람에게 주었다. 그 사람이 부담갖지 않게 하려고 많이 노력하면서 그렇게 주었다.

다행하고 감사하게도 그 사람은 그 돈을 감사하게 잘 받았다.

오영이는 참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전해들은 그 사람의 이야기는 오영이를 몹시 불편하게 만들었다.

하루 2불이 넘지 않는 점심을 먹으며 아껴서 그 사람을 그렇게 도운 것인데,

그리고 정말 직장에서 스트레스 왕짱 받아가며 힘들게 번 돈이었는데,

그 사람은 그 돈으로 값비싼 기호식품을 즐기고 있다는 것이었다.  오영이는 한달에 한번 어쩌다 스타벅스 드립 커피 사 마시는 것도 벌벌떠는데, 그 사람은 매일 그것보다 더 고급의 커피를...

그냥 그 기호식품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오영이는 거의 가지 않는 비싼 음식점에 자주 간다거나, 꽤 비싼 전자제품을 사는 등, 자신보다 너 높은 spending을 하는 것이었다.

또 화가 나는 건, 오영이는 정말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이렇게 힘들게 일해서 번 돈을 보냈는데, 그 사람은 늘 여유있는 시간을 보내며 게으르게 살고 있는 것이었다.


음...

도대체 이건...


며칠동안 많이 마음 불편해 하다가, 그 사람과는 연락도 뜸해졌고, 다시 또 그 사람을 돕는 일은 없게 되었다.


그 사람을 못본지 오래되었지만, 요즘도 가끔 그 사람 생각이 난다.

그리고 그때 불편했던 감정도 생각이 난다.


=== 


최근,

초대교회 공동체를 비롯한 교회 역사 속의 공동체를 상상해 보면서...

과연 그런 공동체에서는 이런 문제를 어떻게 다루었을까 하는 것이 궁금해졌다.


가령,

하루 12시간 밭에 나가 일하는 소작농을 하며 어렵게 번 돈을, 여러 사람이 모아 한 동네 사는 다른 교인을 도와주었는데,

그 교인이, 아주 게으르게 산다거나 혹은 아주 그 돈을 낭비하면서 허비한다면...

그런 상황에서 공동체는 그 문제를 어떻게 다루었을까?

교회 지도자들은 그것을 불편해하는 교인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 주었을까?


은혜의 공동체가, 세상의 공동체와 어떤 면에서 이런 이슈를 다르게 다루어 낼 수 있을까?


요즘,

나도 회사 다니며 일하는게 힘이 들기도 하고,

아... 세상에 이렇게 빡세게 맨날 일해서 돈버는데... 정말 돈 벌고 먹고 사는게 쉽지 않구나...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게다가 시간이 워낙 없다보니, 내 소중한 시간을 다른 사람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정말 많이 아깝게 느껴진다.

이렇게 내 마음이 각박해지는 것을 보면 그냥 사는게 많이 벅차고 힘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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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틀릴 수 있다는 사실

긴 생각, 짧은 글 | 2014.06.19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살면서 

'내가 틀렸다' 라고 인정하는게 참 쉽지 않은 순간들을 만난다.


뭐 별로 대단한 일이 아닌 경우에야, 쉽게 그래 내가 틀렸어 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꽤 큰 일에대해 그렇게 인정하는것은 사실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듯 하다.


특히 내가 틀렸음을 인정하는 것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름대로의 신념이 강화될수록 더 힘들어 진다.

가령, 80대가 되어서, 자신이 지난 60년 넘게 가지고 있던 신념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기란 정말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은 가만히 생각해보면 꽤 큰 위안을 준다.

내가 반드시 모든 일에 옳을 필요는 없다는 사실은, 내가 틀려도 괜찮다는 여유를 주기 때문이다.


종교는, 매우 자주, 그 종교를 믿는 사람의 신념을 강화시켜준다. 그래서 종교적 신념을 강하게 가지고 있으면 그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 많은경우 대단히 불편하다. 그 사람은 '내가 옳고 네가 그르다'는 자세를 늘 가지고 있기때문이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사람이 믿고 있는 종교는 그 사람을 옭죄고 있다.

그 사람은 자신이 옳아야 한다는 당위에 붙들리게 된다.


나를 포함해서, 매우 자주... 

강한 신념을 가진 (혹은 대단한 고집을 가진) 크리스천들을 만나곤 한다.

도무지 자신이 결심한 것을 꺾으려 하지도 않고, 자신이 옳다고 한번 생각한것은 포기하거나 유보하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주변에 '잘 믿는' 크리스천들이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경우를 참 많이 본다.

나는 옳다는 신념을 가지고, 꼿꼿하게 자존심을 세우고 있는 모습.


예수님께서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하셨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이 말씀은 대단히 반종교적 가르침이다.


시간이 지나고 신앙의 연륜이 깊어지면서,

내 고집, 내 신념, 내 자존심을 점차 꺾을 수 있는 방법을 더 배워나가면 좋겠다.

내가 반드시 옳을 필요가 없는 세상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진리 안에서 자유롭게 살면 좋겠다.

내가 틀릴 수 있는 세상임을 받아들일때에야 비로소 나와 세상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임을 인정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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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일 좋아하는 성경책

긴 생각, 짧은 글 | 2014.06.18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20년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은,

에베소서였다. 

복음의 기초를 잘 다루면서도 개인적인 또 공동체적인 하나님 나라의 임재를 잘 그려주고 있어 참 좋았다.


구약 성경에서,

한때 예레이야서를 참 좋아했다.

예레미야를 읽으며 가슴이 녹는 것 같이 그 말씀을 붙들었었다.


복음서 가운데,

누가복음이 참 좋았다.

함축된 하나님 나라의 개념, 이방인과 marginalize 된 사람들에 대한 관심, 그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 백성을초대되는 장대한 scale 등이 마음에 들었다.


베드로후서에 꽃혀서 지낸 적이 있었다.

시저치하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resident alien의 identity가 무엇인가를 보는데 아주 powerful 했다.


그후, 요한서신이 그렇게 좋았다.

요한이라는 사람이 바라본 예수, 그 예수가 바꾸어놓은 세상과 사람을 보며 마음이 따뜻해졌었다.


요즘,

다니엘서를 가지고 QT를 하면서,

이게 완전 짱이다!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의 모습과 자세에 대하여,

디아스포라 백성의 아이덴티티에 대하여,

장래에 있을 소망에 대하여,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봄에 대하여...

아주 많은 내용들을 정말 멋진 스토리에 담아놓고 있다!


이런 본문이라면,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앉아 며칠씩 나누기도 하고, 설교도 하고, 설교를 듣기도 하고, 공부도 하고, 그러면서 기도도 하고... 그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나는 다니엘서에 꽃혔다~ ^^


@ 가만 생각해보면, 3-4년전, 다니엘서를 읽으며 그렇게 완전 꽃혀서 좋아했던 기억이 나긴 한다. 나는 다니엘서를 그냥 좋아하는 스타일의 사람인가보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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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고 vs. 외고 전쟁

Fun / Humor | 2014.06.17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완전 마음에 와 닿음.  (비 이과적 표현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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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STA/USA-2014 Indy conference 후기 (10)

짧은 생각, 긴 글 | 2014.06.16 07:27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이번에 나는, 내가 편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을 하도록 많이 요청을 받았다. ^^

내 아내는 내가 이번에 인디 다녀온 사진들을 보더니, 참 많이 신났네~ 라며 나를 놀렸지만, 

(뭐 사실 신났던 건 사실이긴 하다 ㅎㅎ)

그렇지만 여러가지일로 참 큰 부담들이 있기도 했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말씀을 준비하는 과정이 내게는 고통스러웠다.

현장에 가서도, 뭔가 내게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떨쳐버리기 어려웠다.


그런데 특히 지금까지 내게 큰 부담으로 남아 있는 것은,

목요일 저녁 전체 기도모임 인도였다.


나는 그날 저녁,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믿도록 초청하는 calling을 하라고 부탁을 받았다.

가면서, 간사들이 시키는건, 내가 physically 불가능한게 아니라면 다 하겠다고, 두말 다시 토달지 않고 무조건 기꺼이 하겠다고 굳게 다짐을 하고 갔던 터여서, 그것 역시 SURE~ 하며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정말 그건 내게 큰 마음의 부담이었다.

집회 내내, 복음의 기본이라고 생각될 수 있는 내용이, 적어도 전체 집회에서는 잘 다루어지지 않는 터였다.

결국 나는 뜨거운 찬양의 시간이 끝난 후에 무대에 올라가, 약 10분이 좀 안되는 길이로 짧게 '복음을 소개'하고 그것에 응답하라고 초청을 해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내 개떡같은(!) 초청을 통해서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셨고, 실제로 여러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겠다고 일어섰다.

그중에는, 자신의 남자친구가 신앙이 없는데 지금 코스타에 데리고 왔다고 이야기하며 나와 상담을 했던 여학생의 그 남자친구도 있었다. (나는 악수례 시간에 그 남자친구를 꼭 껴안아 주었다.)


그렇지만,

지금도 내게 남아 있는 큰 마음의 부담은,

내가 그렇게 짧게 소개한 복음의 내용에, 정말 중요한 내용들이 많이 빠져있었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heart가 잘 담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처럼 뒤끝 길고 소심한 사람에게는....

이런거 정말 오래 간다. -.-;


아, 결국 내가 복음을 짧게 설명하고자 했을때 할 수 있는 수준이 이정도 밖에 안되는 것이었구나...


코스타를 섬기면서 늘 경험하고 깨닫는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열매를 맺어가시는 방법은 내 사역의 완벽함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다.


이번 집회를 통해서도,

하나님께서는 내게 많은 것을 보게 해 주셨고, 많은 것을 깨닫게 해 주셨고, 많은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게 해 주셨고, 참 많이 울게 하셨고, 많이 뉘우치게 하셨다.


또 다시 하나님께 많은 빚을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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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STA/USA-2014 Indy conference 후기 (9)

짧은 생각, 긴 글 | 2014.06.13 11:28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복음의 능력과 영광이 많이 망가진 시대에 해야하는 중요한 일은 다음의 몇가지가 아닌가 싶다.


1. 

그 복음의 능력과 영광을 좀 더 경험한 세대가, 포기하지 않고 그 스토리, inspiration, standard, passion을 그것을 경험해보지 못한 세대에게 성실하게 전하는 일이다.

그것이 그 다음 세대의 변화를 guarantee 하지 못한다 해도 말이다.

그 세대에게 pace setter가 되어, 신앙이 무엇인지를 설명해줄 뿐 아니라 보여주는 일을 해야 한다.


2. 

깊이있는 연구와 사색을 통해, 깊이있는 통찰의 열매를 맺는 일이 중요하다.

은 이들이 하나님 앞에 헌신하는 큰 흐름이 없을 때에는 오히려, 더 깊이 있는 소수에 집중하며, 그들이 깊이있는 통찰의 열매를 맺도록 사람들을 세워야 한다.

이렇게 맺어진 통찰의 열매들은, 혹시 후에 있을 다른 '부흥의 시대'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 부흥의 시대가 얼마나 부정적인 부작용 없이 건강한 영향력을 오래 지속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이런 침체기에 이루어진 통찰의 열매들에 의해 좌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3. 

우리가 가진 것이 많이 망가져 있음을 뼈아프게 아파해야 한다.

이대로 괜찮다. 그냥 여기서 열심히 하면 된다. 는 식으로 기준을 낮추지 말고,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지내고 있는 이 시대는, 하나님 나라 백성됨의 영광이 현저하게 compromise 된 시대라는 것을 반복해서 우리 자신에게 remind 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우리가 그 기준에 이르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기준 자체를 잃어버리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여전히 KOSTA는 지금 우리에게 유효하다. 의미가 있다.


이런 생각을 나름대로 정리하면서,

학생들을 보며 참 많이 울었다.

그 학생들을 섬기는 간사들을 보며 역시 많이 울었다.

그 학생들 손 붙들고 이야기하는 강사님들에 깊이 감동을 받았다.


계속 더 엎드려 기도한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을 계속 하시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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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STA/USA-2014 Indy conference 후기 (8)

짧은 생각, 긴 글 | 2014.06.12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수요일 아침,

화요일 설교자 교회에서 오신 부교역자 한분과 아침식사를 하면서 말씀을 좀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분으로부터 "그 교회 자랑"을 많이 들었다. ^^

뭐 이런 세팅에서, 자기 교회 자랑하는 강사들을 많이 보았으므로 대단히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그 교회 이야기는 들으면서 참 부러운 것들도 많았다. 

내가 동의하기 어려운 direction들도 있었지만. ^^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그분께 물었다.

지금 그 교회의 모델이, M 목사님이 아니어도 되는 모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M 목사님 자리에 다른 누가 와도 그 보델이 작동할까요?


그분의 대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M 목사님이 아니어도 됩니다. 그러나 그런 pace-setter (페이스를 셋하는 사람)은 필요합니다.


그 말은, 내 머리를 띵~ 하고 때렸다.

정말 띵~ 하고, 아주 쎄게 때렸다.


pace setter라.


그래,

비록 그것이 pseudo revival이라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신앙의 깊은 경험을 한 사람이 해야하는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는,

그것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pace-setter가 되는 일이겠다.


이 블로그에서도 몇번 언급하긴 했지만,

내게는 깊은 목마름이 있다.


내가 경험한 하나님이라면, 도대체 그냥 미적지근하게 하나님을 믿는게 불가능한데.

삶에서 compromise를 하면서는 정말 뼈가 녹는것 같이 아파야 하는데.

더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지 못하는 목마름이 자신을 바짝바짝 말려야 하는데.

그래서 더 하나님을 갈망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야 하는데...


일차적으로는 나도 더 그렇지 못하고,

내가 주변에서 접하는 크리스천들중 많은 이들은, 아예 그런 것에 관심조차 갖지를 않는다.

그러면서 내게는, 그렇게 너무 유난스럽게 하지 말라고 내게 충고를 하곤 한다.


아니, 어떻게 다른 크리스천들은 자신이 밍기적 밍기적 사는게 고통스럽게 느껴지질 않는 걸까?

아니, 어떻게 대충 헌신하고 사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가슴이 타들어가질 않는 걸까?


저들이 경험한 하나님과 내가 경험하고 이해한 하나님은 다른 분이란 말인가?


그것에 대해 내가 해답을 아직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적어도 내가 경험하고 이해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기준이 있다면,

나는 그 기준을 가지고, 아직 그 경험과 이해가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적어도 어떤 특정한 영역에 관한한,

pace setter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하나님께서 부탁하시는 것이 아닐까.


이 시리즈의 첫번째 글에서 이야기한 외로움의 문제가,

이런 일단의 만남과 생각을 통해 많이 정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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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STA/USA-2014 Indy conference 후기 (7)

짧은 생각, 긴 글 | 2014.06.11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이런 얘기를 쓰면,

나를 아는 사람은 또 저 얘기한다며 뭐라고 할지 모르지만...

나는 정말 진심으로 부흥을 기다리는 사람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무척이나 어려운 시절을 지날 때에도,

그 부흥에 대한 소망 때문에 아침에 한시간씩 땀을 뻘뻘 흘려가며 기도를 했었다.


이번에 인디에서 만난 학생들의 상태를 보면서,

과연 이런 상태의 학생들을 다시 우리 힘으로 이끌어 올리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회의가 들때,

정말 하나님께서 다시 이 흐름을 뒤집어주시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간절한 생각이 들었다.

정말 부흥이 필요하다는 갈망이 깊어졌다.


흥미롭게도,

이번에 강사로 오신 분중,

소위 old reformed 계열에 계신, 청교도 신앙에 대한 연구를 많이하신 한 목사님과 부흥에 대해 말씀을 나눌 기회가 있었다.


이분은,

소위 new reformed 계열이라고 할 수 있는 Tim Keller 같은 분 조차도 충분히 reformed 스럽지 않다고 불편해하시는 분이시다.

Tim Keller가 이야기하는 Christ-centered preaching 이라는 것이, 복음의 본질을 많이 약화시키고 있다고 비판하셨다.


내가 청교도신앙에 대해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이해하고 있는 청고도 신앙, 그리고 마틴 로이드-존스 라인의 부흥 신앙등에 비추어 생각해볼때, 아하~ 하고 이해가 많이 되었다.


이분이 생각하시는 바람직한 설교의 모델에 대해 들으면서,

설교와 teaching에서 narrative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 이지만,

한편 아... 이분의 관점에서 보면 정말 그렇게 보실 수 있겠구나 싶어 참 흥미로웠다.


나도 내 나름대로 부흥에 대하여 이해하고 있는 것을 그분과 나누었고,

또, 나름대로 내 경험들도 그분과 나누었다.

그리고 또한 화요일 저녁 설교로부터 부흥에 대한 어떤 점을 생각해볼 수 있는지 하는 것도 이야기나눌 기회가 있었다.


예전에 조나단 에드워즈 식의 청교도 부흥이 답이라고 생각했던 입장으로부터 지금 나는 좀 더 진화해 있다.

청교도시대의 부흥의 모델은, 부흥의 한가지 형태이지, 부흥의 유일한 형태가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분이 가지고 계신 생각과 내 생각이 모두 다 같지는 않을 것 같다.

그렇지만 그분과의 그 대화는 내 생각을 참 풍성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많은 부분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내가 보스턴에서 겪었던 pseudo-revival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것이 부흥이 아니었다는 것은 잘 압니다. 그렇지만 그때의 그 경험은, 제 안의 부흥에 대한 갈망을 더욱 깊게 만들었습니다.

라고 설명했더니 그분도 많이 공감하셨다.

그리고, 그런 경험이 우리를 꽤 오랫동안, 상당기간 지탱해 주는 것임을 또한 공감했다.

화요일 설교자가 겪은 그 pseudo-revival이 그 설교자와 그 시대의 사역자들을 평생 지금까지 붙들어 주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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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STA/USA-2014 Indy conference 후기 (6)

짧은 생각, 긴 글 | 2014.06.10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학생들의 열악한 상황을 보면서,

더더욱 내게는...

과연 이런 상황이 우리의 노력으로 개선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하는 회의가 밀려온 것이 사실이다.


약간의 희망의 틈이 보이긴 했지만,

과연 이 작은 희망의 씨앗이, 이 거대한 sinking boat를 지탱해 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학생들의 작은 변화에 감격해 하다가도,

이런 회의나 의구심이 밀려오면 가슴이 막막해져서 혼자 그저 앉아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중보기도실보다는 침묵기도실을 더 찾았다.


한번은 침묵기도실을 갔더니,

청년사역자로 섬기는 멘토 가운데 한분이 앉아서 기도를 하고 계셨다.

아, 저 분도 나처럼 이렇게 막막한 마음에 와 앉아 계신 것일까.


그런데 한주 내내 내 마음에 남았던 것은, 화요일 저녁 설교 message 였다.

화요일 저녁 설교는, conference design 상으로는 별로 잘 align된 message는 아니었다.

그리고 나도 그 설교의 어떤 면들은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그런데,

그중에 반복되는 한 구절.

'예전에 들어보지도 못했던 방식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 내 귓전에 남았다.


화요일 설교에서, 설교자께서는,

자신이 경험한 'revival'을 언급하시면서, 그 revival의 결과로 이전에 들어보지도 못했던 방식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사람들이 열매로 나왔다고 말씀하셨다.


우선,

나는 그분이 경험한것이 부흥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분이 그분의 시대에 경험한 일들은, 지금 이 20대가 경험하지 못하고 있던 일들이라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부흥은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pseudo-revival (유사부흥)이라고는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유사부흥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람들을 세우시고, 그렇게 세워진 사람들은 오랫동안, 때로 평생동안, 다른 이들이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아가게 된다는 것에는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지금 이 학생들의 세대가 이렇게 지리멸렬한 것을 이 학생들의 책임으로 돌릴수만은 없다.


'유사부흥'의 시대를 겪은, 세대가, 이 학생들에게 그 시대의 이야기를 해주면서, 그들에 대한 소망을 놓지 않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그들을 섬기는 일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 더 큰 문제일수 있다는 것이라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유사부흥'의 시대를 겪은 것은... 바로 지금 내가 속한 세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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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STA/USA-2014 Indy conference 후기 (5)

짧은 생각, 긴 글 | 2014.06.09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이번 집회를 통해 바라본 우리 학생 대중의 현주소는 정말 절망적일만큼 안타까웠다.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고 이야기하는 학생들을 만나서 이야기해보면, 과연 이 아이들이 믿고 있는것도 기독교 신앙이라고 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전반적으로 만연해있는 반지성적 모습, 하나님 말씀에 대한 무지, 종교화/화석화되어 있는 지역교회 속에서 abuse에 가깝게 소모당하고 있는 상황, 미래에 대한 불안을 복음이 아닌 종교로 해결하려는 모습, 세속적 욕망을 종교적으로 포장하고 있는 모습…


도대체 이걸 어디에서부터 손을 보아야하는 걸까 하는 암담함이 마음을 무겁게 눌렀다.,


이런 학생 대중을 우리가 복음으로 섬기는 일은,

거대한 산을 숟가락으로 옮기려는 시도처럼 무모하게까지 느껴졌다.


학생들을 이런 상황에 몰아넣은 종교지도자들에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몇가지 희망을 보았다.


첫째,

그런 와중에도, 소망을 둘 수 있는 아주 소수의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가능하면 학생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려고 노력을 많이했는데 (그렇지만 내가 원하는 만큼 많이 하지는 못했다.) 그런 대화 속에서 소망을 발견할 수 있는 소수가 분명히 있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어떻게든 이 어그러진 세대에서 지켜주셔야 합니다… 하는 기도가 절로 나왔다.


둘째,

짧은 대화를 통해서도 생각과 방향을 조금씩 바꾸는 가능성을 보았다.

아직은 어린 학생들이므로, 조금 direction을 제시해주면, 영향을 받는 모습이 있었다.

그런데, 이런 학생들을 그냥 다시 돌려보내려니 정말 가슴이 터지도록 답답했다.

그렇지만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세째,

이런 학생들을 향한 애끓는 마음을 갖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몸이 부서져라 섬기는 간사들을 보며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구석에서 그 파란조끼들의 모습을 보며,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싶은 마음이 한두번 든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께 마구 따지면서 기도했다. 하나님, 이런 사람들이 이렇게 섬기는데, 이 학생들을 그냥 이 상태로 두시렵니까.

학생들을 헌신적으로 섬기는 강사님들을 볼 수 있는 것도 가슴뛰게 하는 일이었다.

20년 코스타를 참석해오신 내 룸메이트 강사님(ㅎㅎ)이, 학생들 사진을 열심히 찍으시는 모습은 정말 감동이었다. 한때는 머리 숱도 많으시고 훨씬 파릇파릇하셨는데… 정말 한결같으신 분이시다.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진통제를 먹어가며 섬기시는 분도 만날 수 있었다. 목요일쯤 되어서는 눈에 피로가 가득해졌음에도 자신을 돌보지 않고 달려드시는 분들을 보는 것은 분명의 소망의 한 자락이었다.


역시, 20대 초반의 학생들이므로, 찬양의 열기가 달랐다.

그야말로 방방 뛰며 찬양을 하면서도 지칠줄을 몰랐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맨 뒤에 서서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또 다른 세대를 그냥 보내실수는 없습니다. 이 친구들을 꼭 붙들어 주십시오. 이 친구들이 이렇게 뜨겁게 찬양하는 것 처럼 당신을 온전히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로 세워주십시오.

이 친구들 그냥 포기하지 말아 주십시오. 꼭, 꼭, 꼭… 좀 붙들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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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STA/USA-2014 Indy conference 후기 (4)

짧은 생각, 긴 글 | 2014.06.06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나는 방언으로 기도할때가 있다.

그러나 보통 그 방언기도를 많이 누리거나 사용하지는 않는다.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방언기도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인 것 같다.

가령, 혼자서 기도를 할때 방언기도를 하는 경우는 참 드물다.

그런데 그런 시간이 지속되다보니, 최근에는 방언기도 자체가 잘 나오질 않았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알지만,

나는 방언기도를 추구하는 그런 스타일의 신앙인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그런걸 추구하는 사람들의 반대편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방언기도가 잘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내 기도가 많이 메마르고 있다는 표지처럼 생각되었다.

특히 앞에서 이야기하는 영적외로움과 관련되어 더더욱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 KOSTA 집회에 참석해서 간사들과 함께 기도를 하면서 참 오랜만에 방언으로 기도를 할 수 있었다. 

나는 방언기도에 대해 아주 무지한 사람이므로, 그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잘 모른다. 

그렇지만, 적어도 나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이번 집회가 내게도 의미있는 집회가 되게 하시려나보다”


앞에서 쓴대로,

영적 메마름과 영적 외로움에 힘들어하던 내게,

하나님께서는 내가 예상하지 못한 선물을 주셨다.


그 선물은,

소위 뜨거움을 회복하는 것과 같은 것은 아니었다.


여러 종류의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하셨다.

그 많은 생각들을 ‘깨달음’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는 아직 자신이 없지만, 적어도 내 외로움의 내용과 근거, 그리고 해결책에대한 작은 힌트를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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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STA/USA-2014 Indy conference 후기 (3)

짧은 생각, 긴 글 | 2014.06.05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이번에는 ‘말씀’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준비를 해야 했었다.

그 ‘말씀’의 내용은 사실 이미 다른 세팅에서 했던 것이었으므로 내용을 준비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나는 full script를 다 써가며 말씀을 준비하는 스타일이라기 보다는, 큰 줄기만을 잡아놓고, 청중의 반응과 상태를 보아가며 내용과 방향을 조절하는 스타일이어서, 어떤 의미에서 내가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을 얼굴을 보고 만나기 전에는 ‘발동’이 안걸리기도 한다.


문제는 내가 만들어 놓은 contents에 ‘마음’이 담기지 않는다는데 있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이야기해주고 싶고, 그래야 하는데…

내가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지 않다고 느끼고 있는 것이다. 

맛 없는 음식을 만들어놓고, 그 음식이 맛있다고 이야기하며 음식을 내어놓아야 하는 주방장같은 모습이 내 모습이었다고나 할까.


이런 증상은 이번 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지난 1월에 신시내티의 한 청년부 수양회 말씀 준비를 할때도 마찬가지였다.

내용을 다 준비했는데, 도무지 그 내용이 내 마음에 담기질 않았다.

그 말씀을 보아도 내 마음이 뜨거워지질 않았다.


막상 말씀을 나누는 현장에 가서 사람들을 만나고보니 그 뜨거움이 일부 다시 회복되었으나,

뭔가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현장에서 막 오바를 했다. 감정적으로 청중을 manipulate 하려는 시도를 했다.

그것은 내게 대단히 나쁜 영향을 미쳤다. 

아… 결국 이렇게 manipulate하는 싸구려 말씀을 전하고 말았구나 하는 자책이 나를 괴롭게 했다.


이번에 말씀 준비를 하면서, 그리고 conference에 참석할 준비를 하면서 나는 그게 참 두려웠다.

그래서, 내 마음이 담기지 않아도 좋으니 manipulative하지는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여러번 했다.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일도 가능하면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냥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결심이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간절히, 정말 간절히 기도했다. 나를 false manipulation으로부터 지켜달라고.


하나님께서,

이번에 내 기도를 잘 들어주셨다.

참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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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세상을 바꾼다. 그러나...

긴 생각, 짧은 글 | 2014.06.04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이 글을 쓰는 이 시점(6월 3일 저녁), 아직 한국의 개표상황에대해 알지 못하고 있다.


나를 아는 사람은 다 알지만,

나는 대충 중도우파쯤 되는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현재 한국의 정부는 '나쁜 정부'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 나쁜 정부이거나, 대단히 무식한 정부라고 양보할수도 있겠다.

친일파-독재로 이어지는 그 흐름이 현재 한국의 기득권층을 형성하고 있다는 역사인식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현재 한국 정치의 왜곡의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라고 본다.


2002년 대통령 선거때, 나는 정말 열광했었다.

물론 나는 열렬한 노무현 지지자였다.

난생처음 온라인으로 정당 site에 id도 만들고, 열심있는 fan이 되었다.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었을때 나는 정말 세상이 바뀔 것을 기대했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노무현 대통령 시절을 지나며 한국이 상당히 의미있는 발전과 성숙을 했다고 믿고 있다.


그런데,

그 당시 보스턴에 방문하셨던 윤종하 총무님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렇게 열광하고 있는 나와 같은 일단의 사람들에게...

그렇게 열광하지 말아라. 그 사람이 대통령 된다고 세상 바뀌지 않는다... 라며 완전히 찬물을 끼얹으셨다. -.-;

허걱 이건 뭥미.


시간이 지나고 그때 그 대화를 다시 떠올려 본다.

나는 지금도 김대중이 한국 역사 최초로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루어 낸것,

노무현이 한국 사회를 더 진보시킨 업적에 대해 부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후 이명박이나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은 역사의 후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실제로 한국의 민주주의, 대북관계 등등이 얼마나 많이 후퇴했는가.)


정치가 중요하고, 정치가 세상의 많은 것을 진보시킬 수도 퇴보시킬 수도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정치참여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치가 궁극적 소망은 아니다.

정치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있고, 그 한계가 있다.

세상이 바뀌는 방식은, 정권이 한번 바뀌는 것으로 이루어 지지 않는다.


한국에서 벌어진 엄청난 참사를 보며,

그리고 그것을 대하는 현정부와 기득권 세력을 보며,

썩어빠진 언론, 검찰, 무능한 공직자들을 보며...

피가 거꾸로 도는 것 같은 분노를 느낀다.

하루에도 몇번씩 심한, 아주 심한 욕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또한,

제발... 정말 제발...

한국 사회가 좀 깨어서,

적어도 박근혜나 이명박과 같은 사람을 리더로 뽑는 우는 범하지 않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것에 궁극적 소망을 두지는 않는다.


오랫동안 결혼을 고대하고 기다리는 싱글들은,

많은 경우 결혼만 하면... 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자신의 모든 문제가 결혼만 하면 해결될 것이라는 환상을 갖는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결혼을 하더라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그대로다.

오히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문제가 결혼생활을 통해서 더 아프게 드러나기도 한다.


현재 한국의 정부를 바라보며,

악한 정치세력, 언론, 검찰 등등에 분노하며,

이 사람들이 어떻게든 청산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지만...

이 문제가 해결된다고 한국의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정치는 세상을 개선하고 바꾸는 강력한 도구이지만,

그것이 궁극적 소망은 아니다.


윤종하 총무님의 그때 말씀이 이제 다시 좀 생각이 난다.

아니, 좀 다시 떠올려보려고 노력한다.


요즘 정치뉴스를 보며 하도 많이 열을 받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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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STA/USA-2014 Indy conference 후기 (2)

짧은 생각, 긴 글 | 2014.06.03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최근 나는 외로웠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사는 것은, 내게 늘 가슴을 불타게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물론 그렇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내가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기쁨이라고 감히 이야기할 수 있다. 

이런 모습의 flip side는, 내가 더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깊은 목마름이 내게는 늘 있다. 요즘 나는 이런 목마름이 더 깊은 상태였다. 왜 나는 더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는 걸까.


내가 만나는 Christian들은, 다음의 몇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1) 위에 내가 기술한 신앙을 공유하는 사람들

(2) 위에 내가 기술한 신앙을 갖기를 원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

(3) 위에 내가 기술한 신앙을 갖기 원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는 사람들

(4) 위에 내가 기술한 신앙을 갖기 원하지도 않고, 내 신앙을 보며 우려하는 사람들


그런데 내가 만나는 Christian들의 빈도를 보면 대충 이런 순서였다.

(3) > (4) > (2) >>(넘사벽)>> (1)


하나님을 향한 불타는 마음을 나누면, ‘그건 그냥 네 스타일일 뿐이다’ 라는 반응을 참 많이 듣곤 했다. 심지어는 너의 그런 신앙은 문제가 많다는 반응도 참 많이 있었다.


정말 그런걸까.

이건 그냥 내 스타일의 신앙인걸까. 혹은 내 신앙은 문제가 있는 걸까.


이번 conference에 가기 전에, 

더더욱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그나마 내게 있던 그 불타는 마음이 식어가는 것 같이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desire는 여전히 크지만, 막상 내가 그렇게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지 못하는 모습을 스스로 바라보며 참 많이 마음이 무거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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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STA/USA-2014 Indy conference 후기 (1)

짧은 생각, 긴 글 | 2014.06.02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이번 인디 컨퍼런스에서는 정말 다양한 역할을 맡았었다.


우선, 내가 늘 편하게 생각하는 '간사'의 자세로 참석했다. 간사들의 모임에 거의 다 참석했고, 간사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러나 간사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많이 남는다.)


jj 수양회와 미들그룹 세션의 강사의 역할을 맡았었다. 이 블로그에 쓰긴 했지만, 준비하면서 참 힘들었었다. 

내가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것 같아 많이 불편했었다.

솔직히 다시 그런 역할을 맡을 수 있을지, 맡는 것이 좋을지 지금도 자신이 없다.


몇가지 땜빵을 맡았다.

기도의 밤을 인도하는 일, 간략하게 복음을 설명하고 구원초청을 하는일까지 맡았다. (허억...)

금요일 아침에 구원이란 무엇인가 세미나도 하나 했다.


그 외에,

가능하면 중보기도실에 많이 있으려 노력했고... (이건 별로 그러지 못했다.)

몇명 학생 상담을 했었고,

식사때마다 조모임에 들어가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또,

이번에 내가 작정을 하고 달려든 일은, 책을 파는 것이었다.

어떻게든 학생들이 책을 좀 사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고 싶어, 호객행위를 하며 학생들을 모으고, 책 추천을 해주는 책방 아저씨 역할을 맡았다.

(덕분에 두란노에서 오신 분과 참 많이 친해졌다. ㅎㅎ)


그런 와중에,

내가 개인적으로 고민하던 이슈들에 대해 몇몇의 강사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 또한 갖을 수 있었다.


이번 인디 컨퍼런스를 준비하면서, 그리고 인디 컨퍼런스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참 생각한 것들이 많았다. 

내 개인적인 문제로 부터 시작해서, 내가 섬기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 코스타에 대한 생각,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 대하여, 그리고 여러 신학적 이슈, 좀 더 크게는 한국 교회, 복음주의의 미래 등등에 대한 생각도.


과연 그것들을 다 이 블로그에서 담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싶을만큼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할 수 있는 한, 앞으로 몇번이 될지는 모르지만 한번 생각을 정리해서 담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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