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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개 같기만 하다면...

긴 생각, 짧은 글 | 2014.08.29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하이디는, 

정말 상처가 많은 개였다.


처음 우리 집에 왔을때,

몸에 손을 대려고 하면 당장 물을 기세로 대했다.


아마도 남자들에게 특히 abuse를 많이 당했던 것 같았다.

남자들에게는 경계태세를 잘 풀지 않았다. (나를 포함해서)


먹을 것을 주면 받아먹긴 하지만,

와서 먹을것 달라고 조르거나 하는 일도 거의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앉아 있으면 옆에 와서 꼬리를 흔들며,

함께 놀아달라고, 간식 달라고 조른다.


잘 때에도 꼭 우리 자는 옆에 와서 자려고 한다. 자기 침대가 거실에 있더라도, 우리가 방에 누워 있으면 우리 침대 바로 옆 바닥에 누워 잠을 청한다.


민우가 소파에 누워 있으면 가서 옆에 누워서 배를 쓰다듬어 달라고 배를 위로 하고 눕는다.


이제는 꽤 귀찮게 굴때도 있다.


정말 우리가 편해진 거다.


사람에게 상처받은 사람들, 혹은 하나님에게 상처받은 사람들이...

이렇게 조금만 잘 대해주면 금방 그 묵은 감정을 떨어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정말, 사람들이 개 같기만 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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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멋진 사람들

긴 생각, 짧은 글 | 2014.08.28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그저께 저녁에는,

교회의 '운영위원회'가 있었다.


말하자면 장로교의 당회와 제직회의 중간 같은 역할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한달에 한번 모이고 있다.


주로 커피숍 같은 데에서 만나서 기도하고 이야기나누고...


늘 많이 느끼는 거지만,

이번에 여러 대화를 나누면서는, 아... 참 멋지다...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목사님도 그렇고, 운영위원들도 그렇고,

참 생각도 깊고, 세상과 사람들에 대하여 insight도 있고...

그렇게 많이 내세우거나 떠벌리지도 않는데도... 언뜻 언뜻 보이는 사람을 향한 깊은 애정과 관심에도 새삼 감동했다.


목사님이야 뭐 나랑 비슷한 나이이시니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보다 10살씩 어린 다른 운영위원들을 보면서는...

나도 과연 저 나이에 저런 정도가 되었던가 하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새벽부터 해질때까지 정말 죽어라고 일하다가 가서,

몸과 마음이 천근만근 무거운 상태로 갔는데,

이 사람들 마음 씀씀이 보는 것으로 마음이 따뜻해져,

혼자 기분 좋아라 집에 돌아왔다.


참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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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시하는 사람과 지시 받는 사람

긴 생각, 짧은 글 | 2014.08.27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나와 함께 일하는 소위 'technician'들이 꽤 있다.

그중에는 나보다 나이가 더 많은 사람도 있고,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도 있다.


그런데, 많은 경우 technician들은,

아침 7시에 출근해서, 오후 3시면 퇴근을 한다.


나는 저녁 8시까지 일하곤 하는데 말이다.


Not Fair!?


그렇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는 그 사람들에게 어떤 일을 하라고 '지시'하는 사람이고,

그 사람들은 내가 '지시'한 일들을 따르는 사람들이다.


'지시'하는 사람은, 무슨 일이 되어야 한다는 것에대해 더 큰 그림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호흡대로 일을 진행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지시'를 받는 사람은, 큰 그림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일이 '떨어지면' 그냥 갑자기 그 일을 해야하는 것으로 여기게 되기 쉽니다.


지시를 받는 사람이 self-motivated 되어 일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에게도 큰 그림을 잘 설명해주려는 노력이 참 필요하다.


그렇지만, 그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울때도 있다.


따라서, 지시를 받는 사람은, 지시를 하는 사람보다는 덜 motivate되기 마련이다.


이것이, 지시를 하는 사람이 지시를 받는 사람보다 더 열심히 일을 해야하는 여러가지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technician들이 3시에 퇴근하고, 내가 8시에 퇴근하는 것은, 'fair'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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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싶었으나, 지금은 쓸 수 없는 글

긴 생각, 짧은 글 | 2014.08.26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사실 지난 1년여동안,

나는 내 정치적 색깔이 확연하게 약해졌다.


여전히 내 정치적 선호는 꽤 분명한 편이기는 하지만,

예전과 같이 어느 특정 정치세력이나 집단을 지지하거나 응원하지는 않게 되었다.


왜 그런 변화가 있게 되었는가 하는 것을 시간을 내어 좀 쓰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도저히 그 글을 쓸 수 없다.


지금은 도저히...

'이런 상황에서 적절한 정치적 균형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요지의 글을 쓸 수가 없다.


그렇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선(goodness)이, 어느 한쪽 정치집단에 있지 않음을 계속 기억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


87년, 대학교 1학년일때, 나는 아직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한 상태였다.

내 모든 가치는 성공과 성취에 있었고, 

공의, 정의, 민주, 인권 등의 개념은 전혀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89년 예수님을 만난 이후,

내가 가장 후회한것은, 그 결정적인 pivotal point에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세상을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한없이 부끄러웠다.


.....


세상을 바라보며, 역사를 바라보며, 민족을 바라보며, 그리고 신앙 앞에서...

또 다시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을 수는 없겠느냐는 기도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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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긴 생각, 짧은 글 | 2014.08.25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지난 주일 새벽에,

비교적 가까운 곳에서 지진이 일어났다.

6.1이면, 그래도 꽤 큰 편인데...


우리동네 사람들도 새벽에 흔들림에 잠이 깬 사람들이 꽤 있었던 것 같다. 

내 아내도 새벽에 침대가 흔들려서 깨었다고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땅'은 움직이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다. ^^

그래서 땅을 기준으로 사람들은 기초를 세우고 경계를 정하고... 등등의 일을 한다.


그런데,

그 땅이 움직이니 정말 난감한 상황인 것이다.


움직이지 않을 것으로 여겨지는 땅도, 때로는 움직인다.

땅은 우리가 의지할 reference를 제공해주지 못한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신념, 고집도 마찬가지이다.

내 모든 관념체계를,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기본적인 전제를 바탕으로 쌓아놓고 있는데,

그 기본적인 전제 자체가 흔들리는 일들이 분명히 있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심심치않게... 이런 일들을 하신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 신앙 안에서 꼭 붙들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을 심하게 흔들어, 그것에 기댈 수 없도록 만드신다.


땅도, 내 신념도, 

그것을 reference point로 삼을 만한 것이 못된다.


지진은, 

혹은 내 신념을 흔들어 놓는 인생의 경험은,

나를 겸손하게 한다.

그래서 진리에 한걸음 더 다가가게 만든다.


지진을 간접경험하며, 잠깐 해본 생각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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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일을 limit 하기, 하나님을 신뢰하기

긴 생각, 짧은 글 | 2014.08.22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한달 쯤 전,

회사에서 10시간 있지 않기.

회사일 하루에 12시간 이상 하지 않기.


이렇게 두가지를 결심했었다.


그렇게 한 것은,

내가 열심히 일하는 것이, 성실함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내가 무언가를 다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나온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후로 대충 잘 지켰던 것 같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그렇게 하면서도 일을 크게 빵꾸내지 않고 할 수 있었다.


아, 물론 8시에 출근해서 8시에 퇴근하는 날이 꽤 있었지만, (사실 이번주는 거의 매일 그랬지...)

가서 처음 40분 정도는 혼자서 말씀 기도,

점심시간에 한시간 뛰고...

뭐 그렇게 했으니... 


그런데,

그렇게 일의 양을 줄인다고 해서, 내가 일을 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을 더 신뢰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최근 깨닫고있다.


여전히 나는 내가 해야하는 일로 전전긍긍하고 있고,

한밤중에 깨어서 '다른나라'에서 날라온 이메일들을 보고 있고,

무리하게 계획을 짜고서는 그걸 해내야한다는 pressure를 받고 있다.


하나님을 그래도 이만큼 믿어 왔으면,

좀 하나님을 척 잘 믿어야 하는거 아닐까.

도무지 이렇게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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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굼의 헌아식(?)

긴 생각, 짧은 글 | 2014.08.21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카타굼에 살던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을 한번 생각해본다.

그때 유아세례를 했을지 잘 모르겠지만... 

혹은 요즘 교회에서 하는 것 처럼 헌아식 뭐 그런걸 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만일 그런걸 했더라면, 그렇게 어린아이를 두고 그 아이를 위해 기도하는 부모의 마음은 찢어지듯이 아팠을지도 모른다.


이제 이 아이도, 이렇게 하나님 백성으로 자라도록 드려지게 되는데...

그럼 이 아이도 이 지긋지긋한 카타쿰에서 살겠구나.


저 화려한 로마의 세상 속에서, 출세라는 것은 평생 꿈에도 꾸지 못하고, 겨우 사자밥이나 되지 않으면 다행으로 여기며 그렇게 살겠구나.


시저가 왕이라고 이야기하는 세상 속에서, 예수가 왕이라고 이야기하는...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하는 것과 같이 평생을 살게 되겠구나.


주님,

이 아이가 그렇게 평생 고생하면서 살게 될거라는거 압니다. 

그렇지만, 그것 이외에 다른 삶의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이 아이를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도록 드립니다. 이 아이의 길을 인도해 주십시오.


그러면서 정말 많이 울지 않았을까.


신앙의 비장함을 잃어버린 세대 속에서,

비장한 신앙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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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뉴스 M의 기사에 대한 반박 글

긴 생각, 짧은 글 | 2014.08.20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뉴스M (미국 뉴스앤조이)에서 원래 글에 대한 변호의 글을 올렸다.

http://www.newsm.com/news/articleView.html?idxno=4236


그래서 나는 또 거기 아래에 답글을 달았다. -.-;


=====


양재영 기자의 응답에 경의를 표합니다.

(그리고, 한국 복음주의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는 많은 부분 깊이 공감하고 동의합니다.)


그러나, 죄송합니다만, 여전히 비판과 그 변론의 논리의 흐름이 명확하지 않다고 느껴집니다.


1. 저는 여전히 일부 목회자의 도덕적 문제가 복음전도-사회참여에 대한 신학적 논쟁과 직접 연관이 있다는 진단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문제제기와 논리의 흐름이, 적어도 제게는 충분히 convincing하게 인식되지 않았습니다.

언제 기회가 되면,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토론해보아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2. 그리고, 제가 댓글에서 언급했던 것 같이, 코스타가 민중의 아픔을 외면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양기자님의 원래 글이나, 이번에 쓰신 변론의 글 모두, 코스타가 민중의 아픔을 외면했다는 가정하에서 쓰여진 것으로 보입니다.

이전 글에서는 그 점을 매우 explicit하게 쓰셨고, 이번 글에서는 조금 더 에둘러서 쓰셨습니다.

그렇지만, 코스타가 민중의 아픔을 외면했다는 비판을 하려면, 코스타가 이야기했던 message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전 반박 글에서 썼던 것 같이, 코스타가, 적어도 지난 10여넌동안 담아내고자 했던 주제와 그 주제문을 읽어본다면 그 비판의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금년에 시카고와 인디애나폴리스 전체집회에서 나누어진 컨텐츠가 무엇인지를 살펴본다면,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부분이 어떤 것인지, 적어도 일부 드러날 수 있을 것입니다.


3. 총론과 거시는 옳은데, 각론과 미시가 잘못되었다는 지적에 대해서.

제가 반론 글에서 적고자 했던 것은, 그 총론과 거시의 관점에 헛점이 많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총론과 거시의 내용을 정확하게 포괄하려면, 그것이 사실에 근거한 비판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언급한 data들에 오류가 많다는 지적을 하고 싶었습니다.

가령, 자동차를 하나 만들어 놓고, "이건 참 잘 만든 자동차입니다. 다만 강판이 좀 약하고, 브레이크에 약간 문제가 있을뿐" 이라고 한다면, 잘 만든 자동차라는 거시적 선언에 약점이 있는 것입니다.


양기자님이 지난 글에서 언급한 코스타 비판의 총론은 이렇습니다.

코스타는 처음부터 민중의 아픔을 외면하고 복음전도만을 강조하는 신학적 입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김규동 목사의 이런 문제도 생긴 거다.

실제로 보면 코스타는 이러이러한 문제를 가지고 여태껏 왔다. 그리고 지금도 그 문제는 그대로다.


저는 그것에 대해 다음과 같은 비판했습니다.

코스타는 민중의 아픔을 외면하지도 않았다.

민중의 아편을 외면한것과 일부 목사의 도덕적 문제는 그 연결고리가 약하다.

지금 코스타의 모습을 보면 제시한 '코스타의 문제점'들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것으로 설득력이 약하다.


저는 제 논지가, 양기자님의 총론과 거시에 대하여 충분히 근거있는 반박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4. 코스타가 자본의 덫에 걸려있다는 비판에 대해.

이것은, 양 기자님의 글에서도 지적하셨던 것 같이, '통계의 적확함'이 아니라 '심리적 거부감'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심리적 거부감'이 정확하지 못한 데이터에서 나온 것이라면, '편견'이 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역시, 지난 5년간, 인디애나폴리스와 시카고 미국 코스타 강사들을 한번 확인해 보십시오.

정말 돈많은 목사들만 찾아올 수 있는 집회였는지.

코스타가 자본의 덫에 걸려있다는 비판을 하려면, 적어도 다음의 한가지 가운데 하나여야 합니다.

- 코스타는 자본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

- 코스타는 자본을 가진 사람들만 참여하고 있다.

- 코스타의 메시지와 정신이 자본을 찬양하고 칭송하는 방향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렇지만, 과연 정말 그렇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data가 충분히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그렇게 생각할 여지가 아주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의 방향을 지지하는 데이터들을 더 많이 있습니다.

적어도 미국 코스타에 관한한 말입니다. (저는 다른 나라 코스타에 대해서는 어떤 언급을 할 만큼 충분히 알지 못합니다.)


5. 비판의 촛점이 자꾸만 옮겨가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처음에는 "김규동 목사의 성추행의 문제는, 민중의 아픔을 외면하는 신학적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기 때문이다." 라고 했다가,

이번에는 "코스타는 자본에 덫에 걸려 있다. 돈이 많이 들고 스타강사를 부를 수 밖에 없다" 라고 옮겨갔습니다.

처음 비판에 대해서도 저는 나름대로 반론을 폈고, 이번 두번째 양기자님의 글에 대해서도 역시 정확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반론을 씁니다.


6. 코스타가 완벽하다고 항변하는 것은 물론 절대로 아닙니다. 코스타의 한계가 명확하게 있고, 더 잘 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실제로 저도 그런 의미에서 코스타를 향해 하고 싶은 비판의 내용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만 제가 지난 답글과 이번 답글을 통해서 쓰고 싶은 것은, 그 비판이 정확한 사실에 근거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양 기자님이 써주신 변론의 글에, 다시한번 경의를 표합니다.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셔도 좋았을 한 독자의 답글에 이렇게 시간을 내어 자세히 변론을 써주신 것만으로도 감사를 드립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양기자님의 의도와 기본적인 문제의식에 대해 저도 많은 부분 공감합니다. 

언제 기회가 되면, 차 한잔 마시면서 좋은 대화를 가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야 미국 한 지역에서 그냥 회사다니면서 살아가는 평범한 직장인이지만, 그런 대화를 통해서 저 같은 사람도 더 배우고 자라나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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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귀에 잘 들어오는 설교

긴 생각, 짧은 글 | 2014.08.19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우리 교회 목사님은,

정말 오랬동안 알고 지냈다. ^^


30대를 함께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그렇게 함께 많은 것을 share했다.


그렇지만, 매주 그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것은

그렇게 오래 함께 했던 분과 조금 더 시간을 보내는 것과는 또 다른 경험이다.


이번주,

목사님의 설교가 유난히 귀에 쏙쏙 들어왔다.


설교의 내용은 '죄'에 대한 것이었는데...


음...

그 내용이 나와 유난히 더 relevant해서였던 것 같지도 않고 (아, 물론 나는 죄인이지만서두 ㅎㅎ)

목사님의 그날 설교가 좀 다른 format을 취했다거나 했던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특별한게 없었는데, 그렇게 귀에 쏙 들어왔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뭐 딱이... 목사님이 설교를 이상하게 하신 것 같지 않은데, 

도무지 그 설교가 무슨 내용이었는지 하나도 남지도 않고 이해도 안되는 날이 있다.


이게 순전히 내 영적 상태 때문일까, 

그렇지 않으면, 내가 유난히 설교가 귀에 잘 들어왔다고 느낀 날에는 목사님도 '이번건 잘 했다.'고 느끼신 날일까. ㅎㅎ


한번 여쭈어봐야 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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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 신자가 되라!?

긴 생각, 짧은 글 | 2014.08.18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프란시스코 교황, 참 마음에 많이 든다. 

어찌보면, 예수를 믿는다면 누구든 당연히 해야할 이야기들과 행동들인데, 

그 말과 행동들을 보면서 감동받고 환호하게되는 현실이 참 마음 아프다.

그럼에도, 

프란시스코 교황은 참 멋지다.


요즘 같아서는,

새로 '신앙'을 갖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개신교로 오지 말고 카톨릭으로 갈 것을 생각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개신교인이라는 것이 정말 부끄러워서 견딜수가 없다.


물론,

나는 도저히 카톨릭의 신학적 입장에 동의할수 없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받아들일 수 없는 입장들이 참 많이 있으므로, 내가 카톨릭으로 개종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렇게 동의하기 어려운 여러가지 신학적 입장에도 불구하고,


그냥 '흔한' 개신교회에 출석하면서,

그저 목사의 왕국 신민이 되어,

그저 자기 욕심을 신앙의 이름으로 추구하면서, 반지성적 비이성적 행동만을 따라가게되는 것보다는,

조금 '잘못된' 신학의 입장을 가지고 예수의 길을 따르고자 노력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정말 처절하도록 절망적인 생각 때문이다.


뭐 그래도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카톨릭 쪽에서도... 정진석, 염수정 추기경 같은 사람들이 한국 카톨릭의 제일 어른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카톨릭이나 개신교나 둘다 별볼일 없긴 만찬가지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아,

정말 예수 잘 믿어야 겠다.

예수 잘 믿는 사람들을 길러내야 겠다.

예수 잘 믿자고 서로 격려하면서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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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이 나는 것과 짜증을 내는 것

긴 생각, 짧은 글 | 2014.08.15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살다보면 짜증나는 일들이 없을 수 없다.

뭐 하루에도 몇번씩 그런 일들이 있다.

특히 나처럼 '까다로운' 종류의 사람은 별의별일에 다 짜증이 난다.


나는 그렇게 쉽게 짜증을 느끼는 내가 참 불만족스럽다.

예수님을 믿으면 좀 뭐가 나아져야하는거 아닌가.

뭐 솔직히 말하면... 사실 많이 나아진게 이 모양이긴 하다.

내가 대학교 1,2학년때의 내 모습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정말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많이 사람된거다.


그런데,

짜증을 느끼는것과 짜증을 내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인 것 같다.

짜증을 내는 것은, 자신이 짜증스럽게 느끼는 것을, 표현하는 행위이다.

왜 짜증을 내는 것일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짜증을 내는 행동은, 대단히 자기 중심적인 것이다.

나의 감정 표현이, 나를 둘러싼 다른 이들의 감정보다 더 중요하다는 직접적인 선언인 셈이기 때문이다.

남들이야 어찌 되었건 간에, 내 감정을 일단 쏟아붓고 표현해야겠다는...


나는 짜증을 잘 내는 사람일까?

음.... 아주 그런 사람인 것 같지는 않은데, 사실 예전에는 아주 짜증을 잘 내는 사람이었다.

지금도 짜증을 내는 행동을 하거나 기분나쁜 것을 숨기는 일을 잘 못하기는 하지만, 그것을 짜증이라는 형태로 표현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짜증을 내는 행동을 보는 것을 참 잘 참지 못하는 것 같다.

누구든 주변에서 짜증을 내면, 나는 그 모습에 심하게 upset 한다.

앞에서 이야기한 이유 때문이다.

"어쭈... 이거 봐라.... 아니, 그래서... 너는 네 감정 표현을 위해서 내 감정이 상하는 것도 괜찮다 그거냐?"

뭐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대개는 그런 상황을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몰라서, 대단히 당황하고, 마음 속으로는 많이 upset하고, 그리고는 아주 격렬하게 그것에 대항하던가 아니면 그것을 완전히 피해버리곤 한다.


(누구든 내게 한번 시험해보라. 내게 짜증을 내면, 나는 쟤가 왜 저러나 싶게 화를 내거나, 아니면 확 말이 없어지고 당신을 피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


조금 더 내 생각의 흐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렇다.

"아니 나는 뭐 짜증 낼줄 몰라서 이러는 줄 알아? 나도 짜증 내고 싶은데, 말 막하고 씩씩거리고 싶은데, 정말 이를 악물고 참고 있는 거야. 너는 뭐가 잘났다고 내가 이렇게 힘들게 참고있는걸 맘대로 터뜨리는건데?"


결국,

내가 짜증 내는 것 보는 것을 잘 참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짜증이 많은 사람이고, 내가 그 짜증을 아주 힘들게 억누르면서 살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사람이 변화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물론 하고 싶은 것을 참고, 하기 싫은 것을 하는 것과 같은 훈련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해야하는 것을 하고 싶게 되고,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하고싶지 않게 되는 근원적 변화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겉보기의 행동이 더 상냥해지는 것과 같은 superficial한 transformation이 아니라,

사람의 근원 자체가 변하는 일들이, 복음이 내게 있기 때문에 일어나게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견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이 없는 내 모습이 처량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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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little bit too much?

긴 생각, 짧은 글 | 2014.08.14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한동안 회사일이 좀 manageable 하다 싶었는데,

최근엔 좀 심하다 싶어지고 있다. ^^


아침 7시 conference call부터 어제 밤에는 밤 11시 반 conference call까지....

지금 유럽에서 진행되고 있는 큰 activity 하나에 큰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밤에도 중간에 깨어서 이메일 확인하고, 잠도 잘 못자고...


어제는 출근길에,

내가 이렇게까지 회사일 하는게, 정말 의미 있는 일일까? 하는 생각을 새삼 해 보았다.


물론 이렇게 해서 돈도 벌고, 그걸로 먹고 살고... 뭐 다 좋은데...

정말 다른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버거울 정도로 이렇게 일을 하는게...


Does what I do really matter?


결국 내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게 가치 있는 일인가 하는 질문의 궁극적 종착점은,

내가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인것 같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정말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을 반복해서 점검하고 다시 확인하는 일이 분명 꼭 있어야 하지만,


사실 많은 경우에는, 내가 지루하게 견디어내고 있는 일상이, 

그저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하나님의 크신 주권 아래에서 내 지루한 일상은 의미 있는 것이라는 것. 

그것이 반드시 직접적으로 '지구를 구하는' 일일 필요는 없다는 것.


등등을 인정하고,

내 지루한 일상을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드시는 분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의지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소위 자신이 혼자 세상을 구원할것같이 달려드는 이들에게도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너무나도 지루하고 지치는, 그리고 별 의미 없어 보이는 일상을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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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뻤던 순간들, 가장 슬펐던 순간들

긴 생각, 짧은 글 | 2014.08.13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지난 주일 설교 시간에, 

목사님께서 일생에서 가장 기뻤던 순간, 가장 슬펐던 순간 각각 20개씩 추려서 정리하면 아마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전체가 summarize 될 것이라고 하셨다.


잠깐 생각해보았다.


나는 가장 기뻤던 순간, 가장 슬펐던 순간을 각각 20개씩 정리해볼 수 있을까? 그렇게 하자면 어떤 순간들이 있을까?


음....

머리 속이 멍~ 해지면서 아주 막막해졌다.


나는 어느순간부터인가... 

손에 꼽을만큼 기쁘고 슬픈 일들이 없었나보다.


그건,

내게 기쁘거나 슬픈 일들이 없었기 때문이 물론 아니다.

왜 그런 일들이 없었겠나.


물론, 나는 삶에서 소소한 기쁨과 슬픕을 경험하고 산다.

가령, 아내와 민우와 함께 장난을 치고 산책을 하는 순간이 참 감사하고 기뻤다.

하이디를 입양해와서 아내와 민우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 기뻤다.

장인어른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참 많이 슬펐다.

'아빠'를 생각하며 우는 아내를 보며 참 많이 슬펐다.


그런데,

그런 기쁘고 슬픈 기억들이 내게 기억될 순간으로 남는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다.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은,

'이벤트'를 만드는 방식이나, '성취'를 해 내는 방식이나, '목표'를 이루어내는 방식 등이 아니라...

연속된 시간 속에서 그날 그날을 살아가는 방식이 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무엇이 더 건강한 것일까?

음... 글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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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하나

긴 생각, 짧은 글 | 2014.08.12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옛날 어느 마을에, 한 부자집이 있었습니다.

그 부자집에는 머슴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부자집 주인은, 동네에서 존경받는 사람이었습니다. "부자란 저래야해" 라며 동네 사람들이 그 부자집 주인을 칭송했습니다. 부자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늘 자비를 비풀줄알고, 탐욕스럽지 않았습니다.


머슴은, 자신의 주인이 그런 사람이라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머슴에게 주인은 점차 많은 것을 맡겼습니다. 그것은 머슴이 성실하게 일하기도 했을 뿐더러, 머슴 역시 그 일을 자신의 일이라고 여기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주인이 머슴에게 점점 더 일을 많이 시킨 것은, 주인이 다른일로 바빠졌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마을에도 땅을 크게 사서 거기에서도 소작을 시킨다고 했습니다. 그 소장농들에게도 자비롭게 대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주인은 땅을 넓히고 너 많은 사람에게 자비로운 소작을 베푸는 영역을 넓혀 가면서, 막상 머슴들이나 소작농들에게 이상한 행동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악한 머슴들이 소작농을 막 다스리는 것을 허용했습니다. 쟤가 저래도 일은 잘하잖아. 저렇게 좀 하다가 나아질꺼야 하면서 악한 머슴들을 허용했습니다. 

기존에 일하던 사람들 가운데에서도, 예전에는 나쁜 모습을 감추고 있다가, 본색을 드러내는 사람들도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여자들을 탐한다거나, 사기를 치는 집사, 머슴들도 나타났습니다.

주인은, 이게 사업이 커지면서 어쩔수 없는거야. 그래도 우리는 좋은 일을 하고 있는 거야 라며 자신을 방어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원래 주인을 따르던 머슴은, 주인이 버려두다시피한 땅을 더 잘 일구고, 소작농들과 더 잘 지내며 풍성한 수확을 내는 일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함께 잘 사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이야기하면서, 자신과 뜻이 맞는 머슴들을 모아서 함께 먹고 사는 농업 공동체를 만들어 갔습니다.


가끔, 주인이 보낸 집사가, 엉뚱한 짓들을 했습니다. 

토양에 맞지 않는 화학비료를 뿌려 땀흘려 지은 농작물을 망가뜨리는 일도 있었습니다.

악한 집사가 나타나 소작농들을 괴롭히고는 사라지는 일도 있었습니다.


머슴은, 그런 속에서도, 

이제는 우리가 여기서 열심히 일해서 이 사람들과 함께 잘 살도록 해야겠다는 생각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매일 땀흘려 일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이상한 소문들이 들렸습니다.


주인을 따르던 집사들, 머슴들이 자꾸만 나쁜 짓들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거짓말을 해가며 기존에 헛간을 버리고 더 큰 헛간을 짓고는 자기 밑에 있는 사람들을 부려서 자신의 왕국을 만든 집사 이야기도 들렸습니다.

원래 좀 터프하게 아랫사람을 다루는 것으로 유명했던 한 집사는, 자기 밑에 있는 계집종을 건드려 문제가 생겼다는 이야기도 들렸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정말... 그 주인이... 그렇게 존경하던 그 주인이... 예전과 같지 않다고 느껴지는 것이었습니다.

사업이 커지면서 그 주인의 태도가 정말 많이 바뀌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그 주인의 아래서 일하는 사람이라는 이유 만으로 머슴에게 손가락질을 합니다.

저놈도 그 주인이랑 같은 놈일꺼야.

그래, 저놈도 결국 계집종 건드리고, 거짓말하고, 사기치고 그러는 놈일꺼야.


그 와중에 주인이 농네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 아래 사람들이 이렇게 사고치고 다니는걸 보니, 지금까지 내가 한 일이 다 뭔가 싶다. 허무하다."


머슴은 정말 억울했습니다.

머슴은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일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공정한 혜택이 가도록 노력해서 그래도 농업 공동체도 그럭저럭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주인은, 자신과 자신의 일부 추종자가 잘못한 일을 가지고, 머슴이 한 일조차도 허무한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머슴은 속이 많이 상합니다.

함께 땀을 흘린 동료 머슴들, 그리고 함께 노동 공동체를 이룬 소작농들을 생각하면 이 땅을 휙 버리고 떠날수는 없습니다.


열심히 일하면서 사람들과 좋은 공동체를 만든 것이 잘못일까요.

주인이 나가서 딴짓하는 동안, 땀흘려 열심히 일한 것이 잘못일까요.

가끔 주인이 이상한 화학비료를 보내고 나쁜 집사를 보내서 노력한 것을 허물어 놓아도 그것을 극복해왔던 것이 잘못일까요.


그러다 머슴은 문득 생각합니다.


아, 그래... 비록 주인은 '맛이 갔어'도...

우리 나라님이 계셨지.

우리 나라님은, 모든 이가 칭송하는 성군이시지.


그래, 내가 우리 나라님의 나라에 사는 한, 

내가 이렇게 땀흘린 것은 가치 있는 것인게야.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이제는 그 주인을 떠날때는 아닌가 하는 고민을 잠깐 해 봅니다.


정말 함께하는 사람들과 소작농들을 살리기 위해선,

주인을 떠나야만 하는게 아닌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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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지켜내는 것

긴 생각, 짧은 글 | 2014.08.08 08:52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예전에 K 운동을 하면서, 받았던 pressure들이 있었다. 

뭐... 솔직히... 많이... 많이... 많이... 있었다. 


대개는 '강사'에 대한 것들이었는데,

도무지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강사인데 그런 사람을 모셔야한다는 pressure 들이었다.


그 중에는,

지금은 홍대쪽에 계시는 J 모 목사라던가,

서초동에 크게 새 사업체 확장을 하신 O 모 목사 같은 분들도 있었다.


최근 몇년 동안에는,

일본에서 하는 K 집회를 가서 많이 배워라, 거기가 최고다... 뭐 그런 얘기들도 많이 들었었다. 


그런가 하면,

저런 사람은 절대로 안된다며 어떤 강사가 왔으니 나는 K 랑 관계 끊겠다고 협박하는 것도 많이 당해봤다.

"저런 사람은 다시 부르면 안된다"며...  휘튼 식당에서 벌받아가며 혼나기도 했었다.


위와 같이 좀 '극단적인' 예 뿐 아니라,

사실 여러가지 압력은 정말 많았다.

다짜고짜 나 회사에서 일하는데 전화해서 어떤 사람 모셔야 한다고 나를 훈계하고 꾸짖는 분들도 계셨다. ㅎㅎ  

밤이면 한두시간씩 어르신들 전화 받아 '혼나 드리고'... 정말 내 cell phone을 부셔버리고 싶은 때도 있었다. -.-;

그뿐 아니다. 소위 '대중'의 요구도 무시하기 어려운 적도 있었다. 무조건 무슨 무슨 목사님은 모셔야 한다고 박박 우기는...

(요즘 아마 간사들이 그런거 다 견디어 내느라 많이 힘들 것 같다.)


그러면서 아, 그래... 뭐 그런 분들도, 결국은 나와 생각이 다르긴 하지만 다 복음을 위해 일하는 분들이잖아? 그러니까 좀 타협하면서 그렇게 가야지...

그래서 각종 욕을 들어먹으며 나도 대단히 불편한 분들을 강사로 모신적도 많았다.


한편,

뭐 실명(?)을 거론해서 뭐 좀 그렇지만, 

ㄱㄷㅇ 간사님 같은 경우에는, 이런게 참 더 자연스러우셨다.

어떤 경우에는 그런건 정말 죽어도 안된다고 강경한 입장을 가지고 계셨고,

어떤 경우에는 내가 잘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유연한 입장을 보여주시기도 하셨다.

뭐 ㄱㄷㅇ 간사님을 개인적으로 아는 분은 잘 알지만, 이분은 참 특이한(?) 분이시다. 

정말 놀랄만큼 consistent 한 분이라고나 할까. 어떻게 저렇게 한결같으실 수 있을까... 싶다. 내가 그분을 알아온 것이 이제 15년이 더 되어 가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분이 보여주셨던 강경한 입장, 유연한 입장들은... 그분이 가지고 계셨던 어떤 원칙에 따른 것이었지, 그때 그때 ad hoc으로 반응하셨던 것은 분명히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고 보면, 

어떤 단기적 화평을 위해서 타협했것 보다는,

조금 더 딱딱하고 거칠더라도 원칙을 지켜냈던 것이 더 옳다고 드러나는 일이 더 많은 것 같다.


최근,

일본에서 터진 큰 사건(!)을 접하며,

그리고 그 뉴스에 반응하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보며,

다음주에 열리는 일본의 집회를 생각하며,

그것을 바라보면 여러 사람들의 시선을 보며,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지켜내는 것"에 대한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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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

긴 생각, 짧은 글 | 2014.08.08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얼마전, 

어떤 사람과의 대화중에, 그 사람이 자신은 외롭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 사람의 상황을 보아, 그렇게 느낄만 하다고 생각되었다.


그 사랍의 입장이되어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다가,


과연 나는 외롭지 않나 하는 생각을 문득 해 보았다.


음...

나는 외롭지 않은걸까?


사실 할 일은 늘 많이 널려 있다.

그래서 참 바쁘다.


그리고 계속 일이 떨어진다.

그래서 참 바쁘다.


그런데,

바쁘다고 외롭지 않은 것은 아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음... 나도 외롭다. -.-;


나를 활용해서 무언가 일이 되게 해보겠다는 사람들,

나로부터 무언가를 배우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나를 보며 어설프게 훈수를 두거나 비판을 하는 사람들,

등등은 있는데...


정말 내 생각과 고민과 마음을 이해해주는 사람은 정말 참... 잘 없는 것 같다.


정말 내 생각을 가감없이 깊이 나누고 그것을 이해해주는 사람을 찾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그냥 이 외로움은 어쩔수 없는 것이려니 생각하며 살아온 것 같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나를 이해시키려면 내 생각의 궤적을 다 설명해주어야 하고, 그 과정이 너무 길고 힘들어서...

상대에게 나를 이해시키려는 작업 자체를 포기하게 되는 것 같다.


외로운 것이 힘들지는 않지만,

때로... 만일 내가 외롭지 않다면 지금보다는 더 좋을까 하는 질문을 던져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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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검소하지 않다!

긴 생각, 짧은 글 | 2014.08.07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민우는 늘 내가 매일 똑같은 옷만 입는다고 놀린다.

그러면서, 내가 늘 무언가를 사는 기준은 '싼거' 라고 이야기한다.


정말 그런가?


그런 것 같다.

나는 정말 '싼거'를 좋아한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비싼거를 별로 즐기질 않는 것 같다.

내게는 50불짜리 스테이크나, 5불짜리 햄버거가 뭐 그냥 거기서 거기다. ㅎㅎ


15불짜리 청바지, 10불짜리 티셔츠만 입고 다녀도, 불편하지도 부끄럽지도 않다.

돈 쓰는게 뭐 별로...


그렇게 보면 나는 검소한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그럴까?


얼마전에 내 아내가 이렇게 이야기했다. "당신은 그래도 사고 싶은 거 다 산다"고.

음... 사실이다. 

생각해보면 정말 그렇다.


가령, 최근...

나는 무선 마우스 하나가 꼭 같고 싶었다.

쓰고 있는 마우스가 고장이 나서 잘 안되었는데... 그나마 집에 돌아다니고 있는건 뭔가 손에 잘 맞지 않아 영... 불편했다.


한 2-3일 견디다가...

어느날 퇴근 길에 Fry's에 들려, 20불짜리 무선 마우스 하나를 턱 샀다.

뭐 물론 비싼거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치품도 아니다. (꽤 마음에 든다. ㅎㅎ)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놓고 보면...

나는 내가 사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을 불과 2-3일을 버티지 못하고 사질러 버렸다.


가만 생각해보면 나는 이런 식인게 많다.

내가 사고 싶다고 생각하는게 별로 비싼 것들이 아니어서 그렇지,

대개 사고 싶다고 생각되는게 있으면 그리 오래 참는 것 같지 않다.


그런의미에서,

나는 결코 검소하지 않다.

절제있는 삶을 사는 것이 나이 들 수록 몸에 배어야 하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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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의 부재일까, 경건의 부재일까

긴 생각, 짧은 글 | 2014.08.06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복음주의의 위기, 

한국 교회의 몰락...

뭐 이런 거창한 이야기 하기 이전에...


내 신앙이 이토록 엉망인건,

도대체 신학의 부재일까, 경건의 부재일까.


대개,

주로 말씀 많이 공부하는 사람들은 신학의 부재라고 이야기하고,

주로 기도 많이 하나는 사람들은 경건의 부재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어떤 이들은,

결국 모든 신앙의 위기는 신학의 위기라고 생각하고,

어떤 이들은,

결국 모든 신앙의 위기는 경건의 위기라고 생각한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위치에서,

내게 부족한건 신학일까, 경건일까.


조금 더 확장 시켜서,

내 가족을 놓고 보았을때,

우리 가족에게 부족한건, 신학일까, 경건일까.


내가 속한 공동체는,

신학이 더 필요할까, 경건이 더 필요할까.


미국 내 한인 교회는?

코스타는?

한국 교회는?

내가 속한 신학 노선(복음주의)는?


한동안 나는 이 모든 문제를 신학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요즘은, 이것이 혹시 경건의 문제는 아닐까 하는 고민을 심각하게 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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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악질?!

긴 생각, 짧은 글 | 2014.08.05 11:51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옛날 김교신 전집을 읽으면서 계속 마음에 남았던 구절이 많이 있었다.

그 중에는 다음의 구절이 있다.


너희 놈들은 우리가 지금까지 잡은 조선 놈들 가운데 가장 악질적인 부류들이다. 결사(結社)니 조국이니 해가면서 파뜩파뜩 뛰어다니는 것들은 오히려 좋다. 그러나 너희들은 종교의 허울을 쓰고 조선 민족의 정신을 깊이 심어서 백년 후에라도, 아니 5백년 후에라도 독립이 될 수 있게 할 터전을 마련해 두려는 고약한 놈들이다.


이것은,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소위 성서조선사건'을 통해 김교신을 비롯한 기독교인들을 잡아 가두고서 그들에게 한 말이다.


내가 살아가는 모습이 99% 그냥 평범하더라도,

내가 가진 신앙은 결코 내 일상과 내 바운더리에만 갖혀 있을수 없다.


내 신앙은,

세상을 뒤집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보기에,

내가 정말 '악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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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처음 둘리를 봤을때, 이미 어른이었다.

여기저기서 가져옴 | 2014.08.04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이것에 따르면,

나는 처음 둘리가 나왔을때부터 어른이었다. -.-;

그때가 중학생이었던가...



안타까운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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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쉬운 길?

긴 생각, 짧은 글 | 2014.08.01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예전에 들었던 소위 'gospel presentation'가운데는 이런 것이 있었다. (뭐 지금도 이런 얘기 많이 듣는다.)


인간은 죄에 빠졌다.

인간의 노력으로 구원에 이르려는 노력을 해보았지만 허사였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구원얻는 길을 열어 주셨다.

그래서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

이제 힘들게 행위를 할 필요가 없다. 믿음으로 구원 얻는 쉬운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음....

뭐 대충 맞는 얘기이다. - 한가지만 빼고.


그것은 믿음으로 구원얻는 것이, 행위로 구원얻는 것보다 '쉬운 길'이 아니라는 점이다.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아서 struggle하는 불가지론자들과 대화해보라. 아니, 세상에 어떻게 그걸 믿냐고 이야기하지 않는가.

어떤 사람들은, 그게 믿어지지 않는데 어떻게 믿냐고 이야기하지 않는가.


믿음은, 쉬운 길은 분명 아닌 듯 하다.


행위로 얻는 구원이 가진 기본적인 concept은, 초월적 존재를 비초월적 방법으로 도달하겠다는 것이고,

믿음으로 얻는 구원이 가진 기본적인 concept은, 초월적 존재에 초월적 방법으로 도달해야 한다는 것이 요체가 아닐까 싶다.


믿음이 쉽지 않다는 것은, 평생 교회에 다녀왔던 나 같은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정말 쉽지 않다.


나는 지금도, 오늘도, 내 믿음없음과 싸운다.

과연 이런 믿음이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일까 하는 것을 회의한다.

그리고, 구원이, 믿음의 완벽함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함에 안도하고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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