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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생각, 긴 글

감정적 manipulation (3) 감정적 manipulation에 빠지는 경로는 다음과 같이 생각해볼 수 있다. 1.어떤 사람이 소위 '은혜를 받는'다. (신앙적 깊은 감동을 체험한다.)이것은 정말 참된 감동일 수도 있다. 2. 그 사람이 그렇게 경험한 감동을, 감격적으로 표현하고 나눈다. 3. 그렇게 감격적인 신앙의 표현이, 그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감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4. 그런 감정적인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비슷한 방법으로 그 감정을 표현한다.이 과정에서, 처음에는 진정한 감동의 결과로 감정을 표현하던 리더가, 그저 신앙의 일상적인 반복의 형태로 그 감정을 표현하게되는 transition을 거친다. 5. 그 감정적 표현에 의해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그것을 신앙의 본질로 오해하고, 계속 그것을 추구한다.이때 리더는 그런 .. 더보기
감정적 manipulation (2) 나 역시,한편으로는 감정적 manipulation을 하는 리더로서,한편으로는 감정적 manipulation을 누리는 대중의 일원으로서,그 악순환 아래 있는 사람중 하나이다. 이러한 감정적 manipulation은 많은 악영향이 있지만,그중 몇가지를 열거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진정한, 성령에 의한 감동을 잃어버리게 된다.감정적 manipulation에 의한 감정적 동요가 에너지드링크 같은 것이라면,성령에 의한 진정한 감동은 잘 달여놓은 인삼 녹용 보약과도 같다.보약은 급격한 몸의 변화를 가져오지 않지만, 중장기적으로 그 몸에 건강한 변화를 일으킨다.그러나 에너지드링크에 의존해서 '순간화력'을 발휘하는 것에만 익숙해지고 나면,몸 전체를 건강하게 만들어서 궁극적으로 더 튼튼한 사람이되는 것에는 점점 관심을.. 더보기
감정적 manipulation (1) Christian ministry에 있어서,감정적으로 대중을 manipulate 하는 것은 독주를 마시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리더의 입장에서는 (설교자, 찬양인도자, 기도인도자, 성경공부 리더 등등)감정적 manipulation을 하면 쉽게 무언가 자신의 사역의 결과가 나타나는 것과 같은 착각을 갖게 된다.그리고 점점 그런 감정적 manipulation에 집착하게 되고, 그것에 길들여진 대중은, 감정적으로 manipuate 되는 것이 진정한 종교적 체험이라고 착각을 하게 된다. 이런 cycle이 반복되면,리더는 대중을 manipulate하고, 대중은 리더에 의해 manipulate 되는 것에 서로 익숙해지고,그것으로부터 빠져나오기 어렵게 된다. 나는,지금의 한국교회는 이런 함정에 깊이 빠져있다고 생각.. 더보기
Answering questions that nobody asks 1.현대 기독교가 답답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사람들이 궁금해하지 않는 질문을 대답하려고 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데 있다. 하나님을 믿으세요, 라고 이야기하면...현대인들은 '어떤 하나님이요?' 라고 묻는다. 그런 사람들에게, 그 하나님의 독생자를 믿고 영원하 살아라 라는 식으로 쏟아내고 나면,음... 이건 내 관심사는 아니네.. 그렇게 돌아서버리게 되는 것이다. 크리스천 서클 밖의 사람들에게, 기독교가 relevant 하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시도가... 일반적으로 실패해가는 것 같아 보인다. 2.가끔...내가 성경공부 시간에 무슨 이야기를 한다거나, 뭐 기타 다른 세팅에서 이런 저런 강의/설교들을 하고나면...결국 사람들이 물어보지 않은 질문에 대답하려는 시도를 했고, 그것에 실패했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더보기
나는 아브라함을 이렇게 읽는다. (3) 5.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아브라함이 어떻게 행동했는가를 따라가며 모범으로 삼으려는 시도는, 어쩌면 스토리를 잘 못 읽는 것일수도 있을 것 같다.오히려, 그런 아브라함과 계속 동행하시면서, 오래 참으시면서, 많은 인생의 굴곡을 겪어 가시면서...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선지식이 없었던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아는 사람으로 바꾸어나가시는 하나님의 스토리로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는 이유는,아브라함의 믿음 때문이 아니라...그저 '평범한' 아브라함을 불러내셔서 동행하시는 하나님 때문이다. 6. 성경에 계속 나오는 믿음의 조상들의 이야기 역시 그런 방식으로 읽는 것이 더 건강하다고 생각한다.특히, 아브라함-이삭-야곱 등등의 이야기를 읽어가면서는,세대가 지나갈수록 하나님께서 그.. 더보기
나는 아브라함을 이렇게 읽는다. (2) 3. 아브라함은 대단한 믿음의 결단을 한 것이 아니었다.아브라함이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기로 한 구체적인 배경이 성경에 다 나와있지는 않지만,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따르기로 한 것은, 큰 믿음을 가지고 창조주를 따르기로 결심했다기 보다는, 여러신 가운데 하나로 하나님을 따르다가 결국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게 되었다.그런데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믿음의 본질이라는 것이 자신의 security로부터 detach되는 경험이라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 아브라함에게 그렇게 하신 것이다. 4. 아브라함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배워나간다.처음 아브라함이 단을 쌓고 제사를 지낸것,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친것 등등 모든 행동들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에 대한 창조주로서의 신앙고백이었다기 .. 더보기
나는 아브라함을 이렇게 읽는다. (1) 벌써 몇주 지나긴 했는데,창세기의 아브라함이 묵상 본문이었다. 몇년 전, 아브라함을 성경 본문을 공부하면서 참 여러가지를 생각했었는데,이번에 다시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읽으며, 내가 아브라함을 읽는 방식을 좀 정리해 보고 싶어졌다. 1. 나는 아브라함을 '위인'으로 보지 않는다.어떤 의미에서, 아브라함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아브라함은 '나'의 모습을 잘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한다.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었던 것은, 그 사람의 믿음이 위대해서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과 communicate하시면서 그 사람을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 그 믿음의 내용을 잘 demonstrate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었다.오히려 그는 우리를 대표할만큼 평범한 사람이었기에, 그 믿음의 본질을 보여주기에 적.. 더보기
그리스도인이 세상 속에서 사는 모습 (10) 여기 담긴 생각들을 좀 더 제대로 잘 풀어내려면,적어도 20-30번에 걸친 시리즈의 글을 써야만 될 것 같은데... 음...사실 도저히 그럴만한 여유와 시간이 없어 대단히 주마간산 격으로 정리해 보았다. 사실 여기에 comment나 댓글, 질문 같은 것들이 좀 달리면 그것을 계기로 생각을 좀 더 발전시키거나 elaborate 해보려고 생각을하고 있었는데, 글이 별로 였을까... 별 comment들이 없어서 그냥 이렇게 대충 마무리를 해보고자 한다. 이 세가지 관점을 조금 더 정리해서 표로 만들자면 다음과 같다. 나는,이 관점들이, 적어도 지금 이 시대에 어느정도 relevancy를 가지는 입장들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적어도 지금은 어디에서 강의를 하거나 설명을 할때 이런 frame을 가지고 설명하고 있다.. 더보기
그리스도인이 세상 속에서 사는 모습 (9) 이 세번째 유형을 염두에 두고 살아갈때 기억해야하는 중요한 것은,'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이다. 우리 존재의 목적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일 뿐 아니라,우리 존재의 기능 역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멈추는 것이 합당하다. 우리가 무엇을 변화시키려하는 것 보다는,우리는 그저 하나님을 사랑하며 세상의 빛이 되는 것으로 역할을 다 하는 것이다. 사실 이 관점은,Already but not yet 이라는 하나님 나라의 그림에서 볼때 매우 make sense 한 부분이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선언되었고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이 세상 속에서 우리가 살면서...우리가 해야하는 것은....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졌다면 어떨까 하는 질문을 가지고 그것을 표현해내며 살아가는 것이다.(사실은 최근에는 .. 더보기
그리스도인이 세상 속에서 사는 모습 (8) 세번째 유형에서 살펴볼 수 있는 하나님의 모습은, "불러내시는 하나님" 이시다. 이 유형에서 생각하는 바는 이것이다. 세상의 타락은 매우 극심하다. 그 어그러진 정도가 매우 심각하기 때문에, 그것을 고치려고 하는 노력 자체가 무의미하다. 세상에 들어가서 선한 영향력을 끼친다는 것도 환상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산위의 동네'를 만들어서 세상에 밝히 보여주는 것이다.다시 말하면, '대안공동체'를 만드는 일이다. 음...뭐 이런 관점은 결국은 Armish같은 사람들을 생각하게 한다.어떤 의미에서는 맞다. Armish가 생각하는 바가 결국은 그것이다.나는 그런 의미에서 Armish의 방식이 "틀린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Armish와 같은 극단적인 방법.. 더보기
그리스도인이 세상 속에서 사는 모습 (7) 이런 두번째 유형은, 성경에 나오는 대부분의 믿음의 선배들,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해당된다.그 외에도 흑인 노예들, 한국 초기 교회 성도들도 역시 이런 유형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다. 도무지 사람(들)의 노력으로는 바뀔 것 같지 않은 상황,그런 상황 속에서 그저 하늘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상황... 이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기다림' 혹은 '하나님을 신뢰함'이 되겠다.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이 상황을 초월하는 초월자가 계시고, 그분이 우리 하나님 이심을 믿는 것이다. 내가 앞에서 언급한대로, 지금 이 시대의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에게 이런 유형이 더 relevant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빈익빈 부익부가 계속 심화되어서, 경제는 발전하지 않아... 청년 실업은 증가하고.. 더보기
그리스도인이 세상 속에서 사는 모습 (6) 소위 '사막의 교부'라고 불리우던 사람들은, 초기 기독교의 신비주의자(mystic)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신비주의자들이 등장하게 된 배경을, Eugene Thacker는, 그 당시 대부분의 신비주의자들이 나왔던 Alexandria에서 찾고 있었다. Alexandria는 당시 상당히 발전된 도시였다.여러가지 학문이 발달했고, 기술이 진보했으며, 여러 사상과 사람들이 모였다.그리고 물론 로마 제국의 중요한 거점 도시로서 경제적인 풍요도 있었을 것이고. 사람들은 그런 상황 속에서, 일종의 '벽' 혹은 '한계'를 느끼고 '신비'를 찾아 사막으로 나갔다는 것이다. Eugene Thacker는, (이 사람은 허무주의자이다. 전혀 종교적이지 않은) 자신의 학생들에게 이 사막의 교부들이 추구했던 신비에 대한 이야기를 .. 더보기
그리스도인이 세상 속에서 사는 모습 (5) 두번째로 생각해볼 수 있는 하나님의 모습은, 견디게 하시는 하나님 이시다. 나는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 유형이 훨씬 더 relevancy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가령, 소위 '악덕기업'에 취직해서 다니는 40대의 직장인을 생각해보자. 뭐 해적선 선원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 사람을 보면서는, '악덕기업'에 다닌다고 뭐라고 하기가 그리 쉽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우선, 이 사람이 그런 악덕기업에 다니지 않고는 할 수 있는 다른 skill set이 별로 없을 수 있다.20대부터 배우고 해온게 그건데... 뭐 다른 일을 새롭게 하기가 어렵다.이직을 해보려고 해도, 같은 업종에 있는 다른 회사들의 사정이 별로 다르지 않다. 다들 악덕기업들이다. 심지어는 사장이 독실한 기독교 장로라고 알려진 회사들을 포함해.. 더보기
그리스도인이 세상 속에서 사는 모습 (4) 변혁의 방법을 취할 경우, 다분히 '타협'을 불가피하게 해야할 경우가 있다. 몇년전 코스타 저녁집회에서 어떤 강사가 하셨던 설교중, 엘리야와 오바댜라는 설교가 있었다.엘리야는, 우리가 다 잘 알듯 아합-이세벨 체제내에서 '광야에서 외쳤던' 선지자였다. 바알 선지자와 대결해서 승리하기도 했던.반면, 많은 사람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오바댜라는, '궁내 대신'이었다. 사실 악한 왕이었던 아합왕 체제에서 궁내 대신이었으니, 그리고 바알숭배를 자행했던 시대의 고위 관직지였으니... 이 사람은 그 자리에 있기 위해서는 많은 타협을 해야만 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오바댜는, 그 시대에 하나님의 사람들을 살려내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다. 체제 자체를 거부하지 않고, 그 체제에 남아 있으면서 그 체제를 변혁시키.. 더보기
그리스도인이 세상 속에서 사는 모습 (3) 우선,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변혁하시는 하나님이실 수 있다.이것은 전통적(?)으로 창조-타락-구속이라는 framework에서 세상을 변혁(transformation)시키는 복음의 역할을 강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리차드 니버 역시, 이것을 변혁자 그리스도 (Christ, transforming culture)라고 하여 중요한 분류로 사용하였다. 이 입장은, 사실 소위 '개혁주의적' 기독교 세계관을 이야기할때 많이 이야기하는 것이다. (따라서 많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 이 입장을 잘 설명해준 책, 알버트 월터스의 "창조-타락-구속"의 원제는 Creation regained 이다.다시 말하면, 구속은 창조를 다시 회복하는 것이라는 것이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따라서, 창조때 주어진 문.. 더보기
그리스도인이 세상 속에서 사는 모습 (2) 깨어진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건 내가 강의등을 할때 많이 차용하는 스토리이지만 여기 한번 또 써본다.아마 2003년엔가 eKOSTA에 썼던 글에서 나는 처음 쓰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러니 벌써 내가 여기저기서 우려먹기 시작한지 10년도 더 지난... ㅎㅎ 어느 해적선이 어느날 크게 약탈을 하는데 성공하였다. 수많은 보화와 진귀한 물건 뿐 아니라, 여러명의 아름다운 처녀들도 납치해 오는 큰 성과였다. 해적선상에서 이를 축하하는 잔치가 열렸다. 잔치가 한참 무르익었을 무렵, 선원 몇 명이 해적선장 앞에 아리따운 처녀 몇 명을 데리고 왔다. 재미있게 한탕 놀아보자는 것이었다. 그때 해적선장은 소리를 버럭 질렀다. “네 이놈들, 너희들은 내가 결혼을 소중하게 여기는 크리스천임을 몰.. 더보기
그리스도인이 세상 속에서 사는 모습 (1) 소위 '기독교 세계관'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논의가, 나는 그렇게 편하게 느껴지지 않는다.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그 이름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엄밀한 의미에서 '세계관'이라고 하면,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이야기여야 한다.그런데, 흔히 '기독교 세계관'이라고 이야기를 할때에는, 세상과 복음의 관계에 대한 논의에 그것을 한정시킨다. 그런의미에서,흔히 이야기하는 '기독교 세계관'이라는 담론에서 이야기하는 것이,'기독교 셰계관'의 아주 일부분을 다루는 것이긴 하지만, 그것이 기독교 세계관의 전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좀더 넓은 의미로 기독교 셰계관을 다루려면,사물의 본질, 궁극적 실재 등등이 다루어져야 하고,당연히 신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 계시의 본질, 고통의 문제.... 더보기
KOSTA/USA-2014 Chicago Conference 마친 단상들 (5) 마지막으로,이번에 휘튼에 간 것은 2년 만이었다. 작년에 과일회사에 다니면서 아예 conference 자체를 참석할 수 없었으니... 그런데,휘튼 구석구석은 정말 내게 너무나도 익숙했다.그곳에서 만나는 분들도 참 익숙하고 반가웠다.한국에서 유명한, 나보다 연배도 위 이신 목사님께서 내게 먼저와서 인사를 청하시기도 하셨다. (완전 민망... 죄송....) 뭐 그도 그럴 것이 96년부터 휘튼에 매년 갔으니... 여러분들과 반갑게 인사도 하고, 늘 그렇듯이 섬기는 사람들 보면서 감동도 받고, 군데군데 모여있는 학생들보며 뭉클하기도 하고...뭐 그렇게 지내고 밤을 꼬박 새우고 목요일 새벽에 ORD 공항으로 왔는데...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허억.이거... 너무 내가 모든 것이 익숙해져 있다.이렇게 많이 편하.. 더보기
KOSTA/USA-2014 Chicago Conference 마친 단상들 (4) 뭐 하루 반짝 참석해놓고 이래저리 길게도 쓴다고 뭐라고 하실 분들이 계시겠지만서두,뭐 내 블로그니까 내맘이다. ㅎㅎ 어제 글에 이어서... 이번에는 집회 자체는 거의 참석하지 못했고,공동대표 모임, 간사 모임에 좀 참석했고, 몇분들과 이야기를 좀 나누었고, 그리고 중보기도실, 서점 등 다니면서 오랫만에 뵙는 분들 인사다닌게 전부였다. 코스타와 관계된 여러가지 기사들, 사건들, 그리고 facebook이나 다른 포스팅들을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들을 해 보았다. 집회 직전에,문창극 총리후보를 support하는 성명서를 낸 어르신 목사님들도 그 자리에 계셨고,그것을 보면서 저분들과는 도무지 함께 할 수 없다고 열받아하는 사람들도 그 자리에 계셨다. 그중 어떤 분은, 아예 설교 시간에 보수적 정치적 발언을 하시기도.. 더보기
KOSTA/USA-2014 Chicago Conference 마친 단상들 (3) 딱 하루 있었는데도,이런 저런 분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들이 좀 있었다. 그중 하나는, 코스타의 대선배님과의 대화였다.저녁집회 시간에, 저녁집회를 다 빼먹고, 그분과 열띤 대화를 하느라 시간을 다 보냈다.그것도 꼬박 서서 그분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 선배님의 말씀을 정리하면 이렇다.지금 최근 코스타의 방향 대로라면, 지역교회의 보수적인 목회자들이 자신의 교인들을 거기에 보내는데 우려를 하는 수준이 되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 오는 어떤 어떤 강사를 보니, 내가 거기 갈 자리는 아니구나 하고 느낄만 하다. 적어도 일정부분의 balance가 필요하다. 적어도 지금은 balance가 많이 깨어진 것 같아 보인다. 내 항변을 정리하면 이렇다.우선, 지금 방향과 강사 선택에 있어서 어느정도의 balance는 이미 .. 더보기
KOSTA/USA-2014 Chicago Conference 마친 단상들 (2) 코스타를 섬기는 사람들이 매년 100명 수준은 되지 않나 싶다.강사, 찬양팀, 어린이코스타 교사, 간사 등등. 그중,그 사람의 생일이 언제라는걸 알만큼 가까운 사람들은 대충 간사 + 일부 강사님들정도가 아닐까.그 수를 따져보면 40명 수준? 매년 놀라는건데,유난히 코스타 집회 기간에는 이 섬기는 사람들의 생일이 많다. 금년에도 따져보니...적어도 3-4명 정도의 생일이 그 기간에 겹쳐있다. 확률적으로는 40명 중, 그 한주에 생일이 들어있는 사람이 0.8명 정도 있어야 한다. (40명 / 52주)그런데 4명이라는건, 확률의 자그자치 다섯배나 되는 거다. 흠... 이건 참 흥미롭다. 매년 그렇다. 그리고 그렇게 생일이 그 주에 끼어 있는 사람들 중에서는 10년 넘게 자기 생일을 코스타 집회기간중에 보내는 .. 더보기
KOSTA/USA-2014 Chicago Conference 마친 단상들 (1) 이번 Chicago conference는 수요일 하루만 갔다 왔으므로, 무슨 '후기'어쩌구 쓸만큼 충분히 conference를 경험하지 못했다.그래서 '후기'라고 시리즈를 달수는 없을 것 같고, 그저 '단상들'이라는 시리즈로 몇가지 생각들을 써보려고 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여전히 코스타만이 하고 있는 일들이 있다.(나는 물론 다른나라 코스타는 잘 모르므로, 미국 코스타가 하고 있는 일들이다.) 1. Counter-cultural한 복음의 내용을 다루는 대중집회.금년의 주제는 정말 완전히 그런 쪽으로 갈데까지 간 집회라고 할수 있을 것 같다.'약함'이라...약함이라는 주제를 정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대중집회로 하는 다른 모임, 운동, 집회가 얼마나 있을까?사실 생각해보면 정말 인기 없을 주제들을.. 더보기
KOSTA/USA-2014 Indy conference 후기 (10) 이번에 나는, 내가 편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을 하도록 많이 요청을 받았다. ^^내 아내는 내가 이번에 인디 다녀온 사진들을 보더니, 참 많이 신났네~ 라며 나를 놀렸지만, (뭐 사실 신났던 건 사실이긴 하다 ㅎㅎ)그렇지만 여러가지일로 참 큰 부담들이 있기도 했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말씀을 준비하는 과정이 내게는 고통스러웠다.현장에 가서도, 뭔가 내게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떨쳐버리기 어려웠다. 그런데 특히 지금까지 내게 큰 부담으로 남아 있는 것은,목요일 저녁 전체 기도모임 인도였다. 나는 그날 저녁,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믿도록 초청하는 calling을 하라고 부탁을 받았다.가면서, 간사들이 시키는건, 내가 physically 불가능한게 아니라면 다 하겠다고,.. 더보기
KOSTA/USA-2014 Indy conference 후기 (9) 복음의 능력과 영광이 많이 망가진 시대에 해야하는 중요한 일은 다음의 몇가지가 아닌가 싶다. 1. 그 복음의 능력과 영광을 좀 더 경험한 세대가, 포기하지 않고 그 스토리, inspiration, standard, passion을 그것을 경험해보지 못한 세대에게 성실하게 전하는 일이다.그것이 그 다음 세대의 변화를 guarantee 하지 못한다 해도 말이다.그 세대에게 pace setter가 되어, 신앙이 무엇인지를 설명해줄 뿐 아니라 보여주는 일을 해야 한다. 2. 깊이있는 연구와 사색을 통해, 깊이있는 통찰의 열매를 맺는 일이 중요하다.많은 이들이 하나님 앞에 헌신하는 큰 흐름이 없을 때에는 오히려, 더 깊이 있는 소수에 집중하며, 그들이 깊이있는 통찰의 열매를 맺도록 사람들을 세워야 한다.이렇게 맺.. 더보기
KOSTA/USA-2014 Indy conference 후기 (8) 수요일 아침,화요일 설교자 교회에서 오신 부교역자 한분과 아침식사를 하면서 말씀을 좀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분으로부터 "그 교회 자랑"을 많이 들었다. ^^뭐 이런 세팅에서, 자기 교회 자랑하는 강사들을 많이 보았으므로 대단히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그 교회 이야기는 들으면서 참 부러운 것들도 많았다. 내가 동의하기 어려운 direction들도 있었지만. ^^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그분께 물었다.지금 그 교회의 모델이, M 목사님이 아니어도 되는 모델이라고 생각하십니까?M 목사님 자리에 다른 누가 와도 그 보델이 작동할까요? 그분의 대답은 의외로 단순했다.M 목사님이 아니어도 됩니다. 그러나 그런 pace-setter (페이스를 셋하는 사람)은 필요합니다. 그 말은, 내 머리를 띵.. 더보기
KOSTA/USA-2014 Indy conference 후기 (7) 이런 얘기를 쓰면,나를 아는 사람은 또 저 얘기한다며 뭐라고 할지 모르지만...나는 정말 진심으로 부흥을 기다리는 사람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무척이나 어려운 시절을 지날 때에도,그 부흥에 대한 소망 때문에 아침에 한시간씩 땀을 뻘뻘 흘려가며 기도를 했었다. 이번에 인디에서 만난 학생들의 상태를 보면서,과연 이런 상태의 학생들을 다시 우리 힘으로 이끌어 올리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회의가 들때,정말 하나님께서 다시 이 흐름을 뒤집어주시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간절한 생각이 들었다.정말 부흥이 필요하다는 갈망이 깊어졌다. 흥미롭게도,이번에 강사로 오신 분중,소위 old reformed 계열에 계신, 청교도 신앙에 대한 연구를 많이하신 한 목사님과 부흥에 대해 말씀을 나눌 기회가 있었다. 이분은,소위 new ref.. 더보기
KOSTA/USA-2014 Indy conference 후기 (6) 학생들의 열악한 상황을 보면서,더더욱 내게는...과연 이런 상황이 우리의 노력으로 개선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하는 회의가 밀려온 것이 사실이다. 약간의 희망의 틈이 보이긴 했지만,과연 이 작은 희망의 씨앗이, 이 거대한 sinking boat를 지탱해 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학생들의 작은 변화에 감격해 하다가도,이런 회의나 의구심이 밀려오면 가슴이 막막해져서 혼자 그저 앉아있을 수 밖에 없었다.그래서 중보기도실보다는 침묵기도실을 더 찾았다. 한번은 침묵기도실을 갔더니,청년사역자로 섬기는 멘토 가운데 한분이 앉아서 기도를 하고 계셨다.아, 저 분도 나처럼 이렇게 막막한 마음에 와 앉아 계신 것일까. 그런데 한주 내내 내 마음에 남았던 것은, 화요일 저녁 설교 message 였다.화요일 저녁.. 더보기
KOSTA/USA-2014 Indy conference 후기 (5) 이번 집회를 통해 바라본 우리 학생 대중의 현주소는 정말 절망적일만큼 안타까웠다.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고 이야기하는 학생들을 만나서 이야기해보면, 과연 이 아이들이 믿고 있는것도 기독교 신앙이라고 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전반적으로 만연해있는 반지성적 모습, 하나님 말씀에 대한 무지, 종교화/화석화되어 있는 지역교회 속에서 abuse에 가깝게 소모당하고 있는 상황, 미래에 대한 불안을 복음이 아닌 종교로 해결하려는 모습, 세속적 욕망을 종교적으로 포장하고 있는 모습… 도대체 이걸 어디에서부터 손을 보아야하는 걸까 하는 암담함이 마음을 무겁게 눌렀다., 이런 학생 대중을 우리가 복음으로 섬기는 일은,거대한 산을 숟가락으로 옮기려는 시도처럼 무모하게까지 느껴졌다. 학생들을 이런 상황에 몰아넣.. 더보기
KOSTA/USA-2014 Indy conference 후기 (4) 나는 방언으로 기도할때가 있다.그러나 보통 그 방언기도를 많이 누리거나 사용하지는 않는다.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방언기도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인 것 같다.가령, 혼자서 기도를 할때 방언기도를 하는 경우는 참 드물다.그런데 그런 시간이 지속되다보니, 최근에는 방언기도 자체가 잘 나오질 않았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알지만,나는 방언기도를 추구하는 그런 스타일의 신앙인은 전혀 아니다.오히려 그런걸 추구하는 사람들의 반대편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방언기도가 잘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내 기도가 많이 메마르고 있다는 표지처럼 생각되었다.특히 앞에서 이야기하는 영적외로움과 관련되어 더더욱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이번에 KOSTA 집회에 참석해서 간사들과 함께 기도를 하면서 참 오랜만에 방언으로 기.. 더보기
KOSTA/USA-2014 Indy conference 후기 (3) 이번에는 ‘말씀’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준비를 해야 했었다.그 ‘말씀’의 내용은 사실 이미 다른 세팅에서 했던 것이었으므로 내용을 준비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나는 full script를 다 써가며 말씀을 준비하는 스타일이라기 보다는, 큰 줄기만을 잡아놓고, 청중의 반응과 상태를 보아가며 내용과 방향을 조절하는 스타일이어서, 어떤 의미에서 내가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을 얼굴을 보고 만나기 전에는 ‘발동’이 안걸리기도 한다. 문제는 내가 만들어 놓은 contents에 ‘마음’이 담기지 않는다는데 있었다.하나님을 사랑하라고 이야기해주고 싶고, 그래야 하는데…내가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지 않다고 느끼고 있는 것이다. 맛 없는 음식을 만들어놓고, 그 음식이 맛있다고 이야기하며 음식을 내어놓아야 하는 주방장..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