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회심

회심 (14) - 맺으며 어찌보면, 부끄러운 이야기를 몇번에 나누어서 적어 보았다. 뜬금없이 내 회심의 경험을 적게된 동기는, 처음 글에서 썼던 것 처럼, 적어도 내가 이해하고 있는 복음과, 내가 겪은 회심의 경험에 따르면 이 세대의 너무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세대의 교회와 기독교를 내가 담아내는 것이 너무 버겁게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만일 내 경험이 특별한 것이었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경험을 하게 하시지 않는 것일까. 이 특별한 경험을 한 내가 이 경험을 바탕으로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은 잘못일까. 왜 내게는 이 특별한 경험을 허락하신 것일까. 이 경험을 바탕으로 내가 해야하는 일은 무엇일까. 이 경험을 절대화하지 않으면서도, 이런 경험을 하지 않는 다른 이들에게.. 더보기
회심 (13) - 내 회심의 특징/한계 1. 나는 회심 경험이 강력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 경험 자체가 매우 주관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결국은 신앙이 논리적이기보다는 직관적이다. 2. 나는 회심 경험이 내 신앙의 중심에 위치해 있고, 새로운 경험등을 결국 내 회심경험으로 해석해내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관점에 따라서는, 나는 매우 보수적이다. 3. 개인적 회심이 매우 중요한 이슈일수밖에 없다. 나는 지금도, 어떤 상황이 되었건, 누군가가 '결신'을 하는 모습을 보면... 거의 90% 이상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고인다. 구원 자체가 과정임을 인정하지만, 여전히 회심의 순간이라는 것을 중요하게여기는 이율배반성이 내 신앙 안에 있다. 4. 회심 이후에 경험했던 변화가 나름 매우 큰 것이었다. 따라서, 회심과 변화(성화)를 떼어서.. 더보기
회심 (12) - 회심의 지속성/현재성 만일, 회심이 한번의 '경험'이고, 그 후에는 그로부터 자라가는 과정이라면... 그 회심의 강한 경험을 한것과, 감동적인 영화를 본 것, 책을 읽은 것, 영감있는 강의를 들은 것등과는 어떻게 그 경험에 차이가 나는 것일까. 신앙생활이란 결국, 그 강한 과거의 경험을 곱씹어가면서 그것에 내 삶의 근본이 있음을 기억해나가는 여정일까. 만일 회심을 '과거의 사건'으로 규정한다면, 그 이후의 삶은, 그 과거를 얼마나 잘 기억하고, 강한 결단력과 정신력으로 그 과거의 사건에 걸맞게 살아가는가 하는 것이어야 한다. 정말 그런가? 회심이후에 내게 생긴 변화는 대충 이런 것들이 있었다. 우선, 매우 사고/생각의 속도가 빨라졌다. 이것은, 복음이라는 세계관을 받아들이고 통합적인 사고를 하는 것을 배우게 되면서 생긴 변화.. 더보기
회심 (11) - 회심과 삶 회심과 일상과의 관계, 회심과 삶의 여러 영역과의 관계, 회심과 세계관/가치관과의 관계를 생각해볼때, 다음의 두가지 그림을 그려볼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첫번째 그림은, 회심으로부터 바로 파생되어 연결되는 생각/생활/삶/가치관 등이 있고, 신앙이 성숙해가면서 점차적으로 2차, 3차적으로 그것이 발전되어가는 모델이다. 이런 경우에는, 회심은 신앙생활의 기본이 되는 중요한 것이긴 하지만, '과거의 사건'이고, 그것으로부터 발전되어나가게되는 일종의 씨앗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두번째 그림은, 생각/생활/삶/가치관등의 모든 영역이 다 회심과 직접적으로 혹은 1차적으로 연관을 가지고 있고는 모델이다. 이런 경우에는, 회심은 신앙생활의 기본이 되는 것 뿐 아니라, 여전히 현재적 사건일수 밖에 없고, 계속해서 돌.. 더보기
회심 (10) - 회심의 순간? 나는 과연, 언제 회심을 하게 된 것일까? 내가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예수님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였을까? 대학교 3학년 언젠가, 마음 속의 공허함을 발견하고, 성경책을 처음 집어 들었을 때였을까? 에베소서에 나타난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발견하고, 무릎을 치며 소망을 찾아내었던 그 순간이었을까? 처음 기도를 하면서 눈물이 터지고, 통곡을 하듯 몇시간씩 울어도 눈물이 마르지 않던 경험을 하던 그 순간이었을까? 어느순간, 내가 나 스스로를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고 인정하기 시작했던.... 그 순간이었을까? 처음 그 강렬한 경험 후 10년이 지난 때, 죄에 대한 깊은 이해가 얻어지게된 그 순간이었을까? 태어나서 30년넘게 가지고 있었던 '꿈'을 주님께 드리고, 내 삶의 앞길을 주.. 더보기
회심 (9) - 회심과 헌신 나름대로, 내 회심의 경험은, 내 근본을 흔들어놓은, 아니 뒤집어 놓은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이성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내가 주체할 수 없을만큼 강한 경험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내 회심의 경험이 강렬해서 일까, 그렇지 않으면 내 성향/성품이 그래서일까. 나는 그 회심이후에 아주 '강한 헌신'을 추구하게 되었다. (이것이 반드시 건강한 헌신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나는 늘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도 내가 여전히 이 헌신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을 머리속에 염두에두고 신앙생활을 했다. 만일, 내가 경험한 이 회심이 '진정한' 것이라면, 정말 이 복음이 진리라면, 예수의 사랑이 그렇게 큰 것이라면, 도무지 그럭저럭 사는 option이 내게는 불가능 했다. 그래서 정말 좌충우돌하며 '강한 헌신'을 추구했었다... 더보기
회심 (8) - 회심의 오염, 비종교적 회심 처음 복음에 눈을 뜨게 되었을때, 마치 나는 내 마음 속에 커다란 빛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이 느꼈다. 환한, 어둠이 조금도 섞이지 않은... 그런 빛. 그런데, 점차 '교회생활'을 해 가면서, 그 빛이 일부 가리워지기도 하고, 어두어지기도 하는 것을 경험했다. 이른바, 회심의 오염이다. 물론, 건강한 공동체 생활이 어린 그리스도인이었던 제대로 서도록 만들어주었던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오염은, 공동체생활이 가져다주는 오염이 아니라, 어그러진 종교체제가 내 안의 빛을 자꾸만 꺼뜨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교회 생활, 혹은 종교 생활이 내게 익숙해 지면서, 나는 그런 종교생활 혹은 교회생활에 의해 오염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그것은 내 안의 빛을 어둡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더보기
회심 (7) - 개인적 회심 나는, 복음을 받아들인 과정이 지극히 개인적이다. 말하자면, 혼자 성경을 읽다가 깨달음을 얻은 셈이다. 지금도 대학교 3학년에서 4학년으로 올라가는 어느 겨울날, 추운 기숙사 방에서 혼자 성경책을 읽던 내 모습을 기억한다. 누군가가 내게 복음을 소개해 준 것도 아니고, 함게 구도의 길을 걸었던 동지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내 신앙은 두가지의 특징을 가진다. 우선, 어떤 '사람'으로부터 지배적으로 받은 영향이 없다. 그래서 사람에 의해 제한되는 경험을 하지 않는 특권을 누렸다. (주변에서 보면, 특별히 신앙적으로 존경하는 한 사람이 뚜렷한 경우, 그 사람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는 경우를 참 많이 보았다.) 그렇지만, 남들은 쉽고 빠르게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이나 가르침을 나는 꽤 어렵게 얻어야 .. 더보기
회심 (6) - 죄 죄에 대한 인식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전제조건일까.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처음 복음을 받아들였던 '이성적인 단계'에서나, 그 후에 복음에 빠져들었던 '감정적인 단계' 모두에서, 죄에대한 깊은 회개, 고백 등은 없었다. 내가 죄에 대해서 더 깊이 알게된 것은, 그 후에 성경공부를 통해서였다. 그리고, 그러면서도 내가 가지고 있어던 갈등은, "이렇게도 죄에대한 인식이 희박한데, 과연 내가 그리스도인이 맞긴 한건가" 하는 것이었다. 나는 예수의 십자가에 깊이 감격했지만, 그것은 내 죄를 용서하셨더는 감격이 아니라, 그렇게까지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랑 때문이었다. 죄에대한 인식 없이, 십자가의 희생이 어떻게 사랑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겠느냐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으나, 적어도 .. 더보기
회심 (5) - 개인적 구원, 우주적 구원 전통적인 교회와 신학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개인의 죄를 용서하는 것에 근거한 개인적 구원이다. 반면 이머징 교회등에서 새롭게 강조하는 것은 우주적 구원, 하나님 나라, 거대담론이다. 나는 처음 회심의 경험때, 무엇을 받아들였을까? 앞의 글에서 언급한대로, 나는 매우 이성적인 깨달음의 과정을 먼저 거쳤고, 그것에 바로 연이어서 아주 격렬한 감정적 경험을 하게 되었다. 먼저 이성적 깨달음을 거칠 때, 내가 가장 인상적으로 읽은 성경책은 에베소서였다. 에베소서에 나타난 '새로운 세상'에 대한 그림이, 거의 충격적일만큼 매력적이었다. 그야말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새로운 세상'에 대한 그림이 그려지는 것을 보면서, "아... 이것이라면 정말 소망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이 땅에서의 여러가지 어그러짐.. 더보기
회심 (4) - 무척 감성적이었다. 그러나 또한, 내 회심 경험은 대단히 감성적인 것이었다. 나는 꽤 전형적인 'nerd' 였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 매우 '나만의 세계'가 좁은 사람이었고, 내 틀로 이해되지 않는 것을 거의 배척하는, 그리고 감성을 이성에비해 열등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이었다. (지금도 어떤 의미에서 그렇고. ^^) 그런데, 내게 큰 변화가 생겼다. 정말,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사가 그야말로 쏟아져 들어왔다. 십자가를 생각할 때 마다, 도무지 어쩌할 수 없는 감격에, 울고, 울고, 또 울었다. 무슨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는게 아니냐고 주변에서 생각할수도 있었을만큼 (다른 이들 몰래 울었기 때문에, 다행히 다른 사람들은 잘 몰랐다.) 몇달 동안은, 밤이고 낮이고 울었던 것 같다. 어떤때, 약간 여유(?)가 생.. 더보기
회심 (3) - 무척 이성적이었다. 소위 '회심체험'하면 이야기하는 갑자기 뽕 맞는 것(?) 같이 감정적으로 확~ 격양이 되더니 갑자기 신비한 체험을 하고, 감정적으로 뜨거워지고... 하는 식을 떠오르기 쉬운데, 내 경험은 그것과는 꽤 많이 달랐다. 어떤 의미에서, 이미 어려서부터 많이 접해왔던 '복음'이 어느날 '새롭게' 깨달아지게 되었다. 기존에 그저 파편적인 윤리강령 정도로 생각했던 복음의 여러 내용들이 한꺼번에 쭈루룩~ 맞추어 지면서, 정말 '말이 된다'하는 탄성을 터뜨리게 되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그 과정중에, 꽤 많이 '성경공부'를 하는 과정이 있었다. 글쎄, 닭이 먼저일까 달걀이 먼저일까 하는 문제일 수 있겠지만, 어느순간 성경말씀이 '말이 되는 것'으로 여겨지기 시작했고, 그래서 정말 미친듯이(?) 공부를 .. 더보기
회심 (2) - 불연속적이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로부터 믿음을 물려받았다고 할 수 있다. 내가 본격적인 '회심 경험'을 했던 것을 대학교 3-4학년 때로 보지만,(벌써... 20년이 훨씬 지난 이야기군. ^^) 기본적으로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믿음, 그리고 어려서부터 교회에 건성으로나마 나갔던 이력등이 있으므로, 아예 무신론자로부터 복음을 받아들인것과 같은 경험은 아니었다. 게다가, 나는 꽤 모범생이었다. ^^ 어찌보면 상당히 답답한 모범생이었다. 대학때,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서 턱이 심하게 다쳤던 적이 있었다. 결국 찢어진 부분을 꿰메러 가면서도, 그것 때문에 수업을 빼먹어야 하느냐 하는 것을 꽤 깊이 고민했을만큼, '샌님'이었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드러나는 대단한 일탈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호위 '허랑방탕하게' 살아본적도 없었다... 더보기
회심 (1) - 우리의 경험이 특별한 것이었던가? 지난번 제주에서, 내 "기도멘토"인 동국이형과 짧은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정말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지금까지 가장 머리 속에 깊이 남아 있는 것은, 동국이형이 "정말 우리의 경험이 그렇게 특별한 것이었던걸까?" 라고 자문했던 것이었다. 동국이형의 질문은 이것이었다. 복음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 복음을 타협하는 사람들, 그리고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살마들을 안타깝게 바라보면서... 정말 어떤 사람이 하나님과 직면하는 경험을 하면, 그 사람의 본질부터 달라지지 않는 것이 가능할까? 많이 부족하고 제한적이긴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과 만나는 경험을 한 이후에, 삶이 근본으로부터 달라졌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과연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는 뜻일까? 혹은 하나님께서.. 더보기
내가 처음 예수를 믿었을 때... 내가 처음 복음을 진지하게 바라보게 되었을 때, 처음 예수와 '관계'있는 사람이 되었을 때, 두가지 중요한 혼란/변화가 내게 있었다. 정말 내가 새로 눈을 떠 알게 된 이것이 '진리'라면... 내가 여태껏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던 모든 기초가 다 부정되는 것이었다. 그 엄청난 세계관의 변화를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 내 세상을 지탱하고 있었던 기둥 자체가 무너져 버렸으니... 그리고 여태껏 내가 기둥으로 인식하지 못하던 것이 세상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었다니... 정말 기뻤지만, 한편 말로 다 할 수 없는 혼란을 겪었다. 그래서 정말 거의 미친듯이 공부했었다. 성경을 줄쳐가면서 읽고, 각종 신앙 서적을 닥치는 대로 읽고, 심지어는 여러가지 성경공부 교재들을 사서 혼자서 답을 달며 참고서 풀듯 공부를 했었.. 더보기
예수를 믿지 않던 시절, 예수를 막 믿게되었던 시절 나는 모태출석 교인이다. 어머니께서 나를 태중에 가지고 계실때부터 교회 출석을 했다. 내가 그 신앙을 내 개인의 것으로 받아들인것은 대학교 3학년때의 일이었다. 그 이전까지는 그 신앙을 깊이 곱씹어볼만큼 내가 넉넉하지 못했던 것이리라.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아직 신앙을 갖고 있지 못하던 시절, 신앙이 없으면서 신앙이 있는 척 했던 시절, 진리에 대하여 목말라 했던 시절, 그리고... 그 진리를 막 발견한 직후 내 생각과 감정과 마음이 급속히 바뀌어 가던 신앙의 초기 단계... 이것들에 대한 기억이 자꾸만 희미해진다. 그래서, 내가 그 당시에는 매우 어렵게 받아들였던 개념이나 깨달음들을, 너무 가볍게 여기거나 당연한 것으로 치부해버려 내가 섬기는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는 경우가 있지 않나 싶다. 기회가 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