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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생각, 짧은 글

내 탓이오

한국에서 내가 대학때, (대학원 때였던가?)
천주교에서 '내 탓이오' 라는 스티커를 배포했던 적이 있었다.

내 생각이 어린 때여서, 구체적으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것을 잘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 스티커는 또렷하게 기억한다.

우리가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가슴이 터지도록 답답한 것들을 많이 본다.
정치가 답답하고, 교육이 답답하고, 청소년이 답답하고, 무엇보다 교회가 답답하다.

(나를 포함해서)
그것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과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상당히 cool 해 보인다.

가령, 무상급식의 예를 들어보자.
가난한 어린이들이 상처받지 않고, 음식을 먹을 수 있게 해야한다는 논리,
무상급식이 사람을 spoil 시키는 복지를 만들어낸다는 논리 등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그런데,
왜 이런것이 이렇게 큰 이슈가 되었는가?
이제는 '선진국' 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한국에서 왜 식사를 하지 못하는 어린아이들에 대한 것이 이토록 뜨거운 이슈가 되어야 하는가?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우리가... 내가... 우리 사회를 그렇게 만들지 않았던가.
양육강식을 정당하게 여기고, 약자를 배려할줄 모르고, 다른사람에게 손해를 입히며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정당화 하며.. 심지어는 교회도, 그리스도인들도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우리 사회를 그렇게 만들지 않았던가.
그 논리와 생각이 모두 고스란히... '내 안에' 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청소년들이 자살을 한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우리가 청소년들을 그렇게 키웠다. 공부만 잘해, 친구들 배려할 필요 없어, 좋은대학만 가... 라고 우리가, 내가, 우리 사회가, 심지어는 교회도 그리스도인들도 그렇게 가르쳤으니... 우리가 우리 사회를 그렇게 만들지 않았던가.
그 논리와 생각이 모두 고스란히... '내 안에' 있다. 

한국과 미국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 사회의 리더로 여겨지는 이들의 integrity 문제,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어쩌면, 바로 내 안에 있는 그 논리와 생각을 발견해내는 일이 매우 중요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웃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단순히 이웃의 문제가 아니고,
그 이웃과 엮여져 있는 우리의 문제이고, 나의 문제이다.
그 이웃을 고통으로 밀어넣고 있는 그 논리와 생각이 고스란히 내 안에 있다.

이웃, 또 다른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