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의 열악한 상황을 보면서,
더더욱 내게는...
과연 이런 상황이 우리의 노력으로 개선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하는 회의가 밀려온 것이 사실이다.
약간의 희망의 틈이 보이긴 했지만,
과연 이 작은 희망의 씨앗이, 이 거대한 sinking boat를 지탱해 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학생들의 작은 변화에 감격해 하다가도,
이런 회의나 의구심이 밀려오면 가슴이 막막해져서 혼자 그저 앉아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중보기도실보다는 침묵기도실을 더 찾았다.
한번은 침묵기도실을 갔더니,
청년사역자로 섬기는 멘토 가운데 한분이 앉아서 기도를 하고 계셨다.
아, 저 분도 나처럼 이렇게 막막한 마음에 와 앉아 계신 것일까.
그런데 한주 내내 내 마음에 남았던 것은, 화요일 저녁 설교 message 였다.
화요일 저녁 설교는, conference design 상으로는 별로 잘 align된 message는 아니었다.
그리고 나도 그 설교의 어떤 면들은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그런데,
그중에 반복되는 한 구절.
'예전에 들어보지도 못했던 방식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 내 귓전에 남았다.
화요일 설교에서, 설교자께서는,
자신이 경험한 'revival'을 언급하시면서, 그 revival의 결과로 이전에 들어보지도 못했던 방식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사람들이 열매로 나왔다고 말씀하셨다.
우선,
나는 그분이 경험한것이 부흥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분이 그분의 시대에 경험한 일들은, 지금 이 20대가 경험하지 못하고 있던 일들이라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부흥은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pseudo-revival (유사부흥)이라고는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유사부흥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람들을 세우시고, 그렇게 세워진 사람들은 오랫동안, 때로 평생동안, 다른 이들이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아가게 된다는 것에는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지금 이 학생들의 세대가 이렇게 지리멸렬한 것을 이 학생들의 책임으로 돌릴수만은 없다.
'유사부흥'의 시대를 겪은, 세대가, 이 학생들에게 그 시대의 이야기를 해주면서, 그들에 대한 소망을 놓지 않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그들을 섬기는 일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 더 큰 문제일수 있다는 것이라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유사부흥'의 시대를 겪은 것은... 바로 지금 내가 속한 세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