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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생각, 긴 글

나는 개미?

1994. 3.
나는 개미?

권 오 승

코끼리 한 마리가 누워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 옆을 지나던 개미 무리가 갑자기 자기들의 앞 길에 커다란 회색 장애물이 생긴 것을 보았다. 그들 가운데 한 놈이 ‘이게 그 말로만 듣던 코끼리구나.’ 하고 직감하였다. 그 개미는 아마도 개미들 가운데서는 꽤나 똑똑한 놈이었나 보다. 개미들은 호기심에 코끼리가 어떻게 생긴 짐승인지 알아보기로 하였다. 그래서 가만히 살펴보니 코끼리의 콧구멍이 보였다. 개미들이 보기에는 크고 긴 두 개의 터널이었다. 개미들은 ‘코끼리는 크고 긴 두 개의 터널’로 규정지었다.
다음날 그 개미들 가운데 한 마리가 또다시 커다란 회색 장애물을 만났다. 이번에 본 회색 장애물은 그냥 길다란 끈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코끼리의 꼬리였다. 개미는 몹시 혼란스러웠다. 자기가 알고 있는 코끼리의 모습이 두가지라니... 세상에는 여러 다른 모양의 코끼리가 있는 걸까? 아니면 코끼리라는 짐승은 개미와는 달리 변신을 자유자재로 할 줄 아는 것일까? 그 똑똑한 개미의 머리로도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았다.
그 다음날 또 다른 개미는 또 다른 회색 장애물을 보았는데, 그것은 몹시 넓고 두꺼운 양탄자 같은 것이었다. 코끼리의 귀였다.
개 미들은 마을로 돌아와서 회의를 하였다. 도대체 코끼리의 정체는 무엇일까? 터널일까, 노끈일까, 아니면 양탄자일까? 여러 그룹으로 갈려 열띤 토론을 했지만 결론은 얻을 수 없었다. 그 개미들 가운데 몇은 자기들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며 코끼리란 전설 속에서만 존재하는 한낱 우상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들은 일종의 환상을 본 것이라고 했다. 다른 개미들은 코끼리에는 원래 여러 모양이 있는데 그들은 서로 다른 종류의 코끼리를 본 것이라고 했다. 또 일부는 그런 복잡한 문제는 생각도 하기 싫다고 하며 자리를 떴다. 그러나 일부는 자신들의 이성으로는 그 정체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알지 못하는 ‘그 무엇’이라고 했다.

개미가 코끼리의 모습을 제대로 관찰할 수 있는 방법에는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코끼리가 개미만큼 작아지던가 개미가 코끼리만큼 커져서 둘의 크기가 비슷한 정도가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개미가 코끼리의 dimension이 무시될만큼 먼 거리만큼 떨어져서 코끼리를 한 눈에 관찰하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보려면 역시 두가지의 방법이 있다. 하나는 하나님이 사람만큼 작아지던가 사람이 하나님만큼 커져서 둘의 크기가 비슷한 정도가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이 하나님의 dimension이 무시될만큼 먼 거리만큼 떨어져서 코끼리를 한 눈에 관찰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한하신 하나님이라면... 유한(有限)한 사람이 무한(無限)한 하나님을 제대로 관찰할 수 있을까?

다행히도 우리에겐 그 무한하신 하나님께서 주신 스스로를 보여주신 성경 말씀이 있다. 그래서 그 말씀 속에서 우리가 완벽하게 우리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을 볼 수 있다. 그래서 만일 성경 말씀을 사실로 믿는다면, 더 이상 우리는 하나님을 찾기 위해 쓸데없는, 그리고 실현 불가능한 노력들을 할 필요가 없다. 우리 주위에 누군가가 개미는 아닌가? 그런 사람들에게 ‘요플레를 떠먹이는 심정으로’ 성경 말씀이 사실임을 전해야 하지 않을까? (요플레를 떠먹이는 심정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사람은 (042) 861-1490 권오승에게 연락 바랍니다. Non-christian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