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성경공부 중에서 내면적 (보이지 않는) 성전과 외면적 (보이는) 성전의 비교가 계속 제 마음에 맴돌고 있습니다. 지금은 자정이 조금 지난 시간인데도요.
요즈음은 자꾸만,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많은 오해를 불러 일으키실 수 있는...
'외형적 성전', '율법' 등등을 주셨을까.
그 수많은 종교적 규례를, 따라야할 법칙들, 하나님의 뜻을 '상징'하는 많은 물건과 예식들...
예수님께서 그것들을 깨고자 그리도 노력하셨건만 결국 그것을 깨시지 못하시고 그 많은 종교적 규례들에 의해 오히려 accuse 되셔서 십자가에 달리셨지요.
아니..
도대체 왜 그리 하셨을까.. 왜 하나님께서는 수 많은 종교적 규례들을 그리도 두셨을까.
요즈음 자꾸 드는 생각은요,
교육적 필요 때문이었다는 생각입니다.
도무지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몇천년의 시간을 두고서 끊임없이 성전, 제사, 율법 등을 강조하심으로써,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기를 원하셨다는 거지요.
가령 십일조를 꼬박 꼬박 내면서, 내 수입과 재산의 모든 것이 하나님 것임을 계속 상기하고 그렇게 살라는 의미에서 십일조 규례를 주신 것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저는 사실... 개인적으로 그 율법적 종교적 기독교가 복음의 생명성을 죽이는 주범이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에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습니다.)
때로 지나친 반형식론적 입장을 취해왔던 것 같습니다.
예배로 마음으로 드리는게 중요하지, 주일 예배라는 형식을 그리 중요하지 않다.
십일조도 내 소유의 전체가 하나님 것임을 인정하고 사는 것이 더 중요하지 십일조라는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
기도도 하나님과 대화하고 내 마음을 올려드리는 것이 중요하지 어떤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제가 이렇게 생각한 데에는 커다란 교.만. 이 자리잡고 있었음을 요즈음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은,
제가 그런 형식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을만큼 성숙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저는 예배의 형식을 무시할만큼 예배가 제 살을 지배하는 사람도 아니고,
십일조라는 형식을 무시할만큼 제 재물의 주인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사람도 아니고,
기도의 형식을 무시할만큼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속에 살고 있는 사람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
어린 아이들에게는 부모가 더 엄하게, 많은 rule들에 의해 control하지만
그 아이가 장성해 감에 따라 밤 귀가 시간도 점점 늦추어 주고,
때로는 부모의 credit card를 쓰게 허락해주기도 하고,
일정 나이가 지나면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를 보는 것도 허락하는 것 처럼...
어쩌면 제 신앙의 성숙(?)에 따라 때로는 불필요해보이는 형식을 제게 일부러 덧씌울 필요가 있을 수도 있는 것인데...
너무도 그것을 무시하면서 살고 있지는 않았나 하는 그런 생각을을 했었습니다.
글쎄요...
정말 어떤 의미에선... 이젠 '짬밥'도 늘어서...
제가 배운대로 혹은 성경대로 설교가 되지 않으면 설교 자체에 귀를 닫아버리고...
어떤 사람이 성경공부 시간에 엉뚱한 이야기를 하면 그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뒤엎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자동적으로 떠올리는...
그런 바리새인이 되어버린 것 같은 생각이 자꾸 듭니다.
정말 빌립보서의 말씀 글자 그대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이것을 뼈속 깊이 새기고 사는 것이 참 쉽지 않네요.
겸손하지 못한 것으로 보나,
정직하지 못한 것으로 보나,
사랑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나,
절제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나,
오래 참지 못하는 것으로 보나,
온유하지 못한 것으로 보나,
여러가지로 보아...
적어도 제겐 아직은 신앙생활의 많은 부분에서 '외면적 성전'이 때로 강조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2004년 1월,
http://www.gatebiblestudy.org 보드에 쓴 글
요즈음은 자꾸만,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많은 오해를 불러 일으키실 수 있는...
'외형적 성전', '율법' 등등을 주셨을까.
그 수많은 종교적 규례를, 따라야할 법칙들, 하나님의 뜻을 '상징'하는 많은 물건과 예식들...
예수님께서 그것들을 깨고자 그리도 노력하셨건만 결국 그것을 깨시지 못하시고 그 많은 종교적 규례들에 의해 오히려 accuse 되셔서 십자가에 달리셨지요.
아니..
도대체 왜 그리 하셨을까.. 왜 하나님께서는 수 많은 종교적 규례들을 그리도 두셨을까.
요즈음 자꾸 드는 생각은요,
교육적 필요 때문이었다는 생각입니다.
도무지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몇천년의 시간을 두고서 끊임없이 성전, 제사, 율법 등을 강조하심으로써,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기를 원하셨다는 거지요.
가령 십일조를 꼬박 꼬박 내면서, 내 수입과 재산의 모든 것이 하나님 것임을 계속 상기하고 그렇게 살라는 의미에서 십일조 규례를 주신 것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저는 사실... 개인적으로 그 율법적 종교적 기독교가 복음의 생명성을 죽이는 주범이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에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습니다.)
때로 지나친 반형식론적 입장을 취해왔던 것 같습니다.
예배로 마음으로 드리는게 중요하지, 주일 예배라는 형식을 그리 중요하지 않다.
십일조도 내 소유의 전체가 하나님 것임을 인정하고 사는 것이 더 중요하지 십일조라는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
기도도 하나님과 대화하고 내 마음을 올려드리는 것이 중요하지 어떤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제가 이렇게 생각한 데에는 커다란 교.만. 이 자리잡고 있었음을 요즈음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은,
제가 그런 형식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을만큼 성숙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저는 예배의 형식을 무시할만큼 예배가 제 살을 지배하는 사람도 아니고,
십일조라는 형식을 무시할만큼 제 재물의 주인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사람도 아니고,
기도의 형식을 무시할만큼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속에 살고 있는 사람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
어린 아이들에게는 부모가 더 엄하게, 많은 rule들에 의해 control하지만
그 아이가 장성해 감에 따라 밤 귀가 시간도 점점 늦추어 주고,
때로는 부모의 credit card를 쓰게 허락해주기도 하고,
일정 나이가 지나면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를 보는 것도 허락하는 것 처럼...
어쩌면 제 신앙의 성숙(?)에 따라 때로는 불필요해보이는 형식을 제게 일부러 덧씌울 필요가 있을 수도 있는 것인데...
너무도 그것을 무시하면서 살고 있지는 않았나 하는 그런 생각을을 했었습니다.
글쎄요...
정말 어떤 의미에선... 이젠 '짬밥'도 늘어서...
제가 배운대로 혹은 성경대로 설교가 되지 않으면 설교 자체에 귀를 닫아버리고...
어떤 사람이 성경공부 시간에 엉뚱한 이야기를 하면 그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뒤엎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자동적으로 떠올리는...
그런 바리새인이 되어버린 것 같은 생각이 자꾸 듭니다.
정말 빌립보서의 말씀 글자 그대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이것을 뼈속 깊이 새기고 사는 것이 참 쉽지 않네요.
겸손하지 못한 것으로 보나,
정직하지 못한 것으로 보나,
사랑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나,
절제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나,
오래 참지 못하는 것으로 보나,
온유하지 못한 것으로 보나,
여러가지로 보아...
적어도 제겐 아직은 신앙생활의 많은 부분에서 '외면적 성전'이 때로 강조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2004년 1월,
http://www.gatebiblestudy.org 보드에 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