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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생각, 긴 글

성실함 (5) 내가 대단히 성실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할 수준은 안되지만, 그래도 이전에 비하면 많이 성실해진 것 같다. 또한, 내가 대단히 성숙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하기엔 형편없이 부끄러운 수준이지만, 그래도 이전에 비하면 많이 성숙해진 것 같다. 내 스스로 지난 세월 하나님과 함께 동행해 온 발자취를 보면, 내 성실함은 내 성숙함을 드러내는 표지였고, 내 성숙함은 내 성실함을 이끄는 힘이었다. 내 스스로 성실하지 못함으로 인해 절망하고 좌절할때, 내가 아끼는 이의 성실하지 못함을 보며 안타까워할때, 하나님의 손길이 당신의 자녀를 성숙함으로 이끌고 있다는 사실이 그런 의미에서 큰 위로가 된다. 더보기
성실함 (4) 무엇이 성실함을 재는 기준일까?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가 일까? 얼마나 많은 시간 "일"을 하는가 일까? 얼마나 적극적인 자세로 "일"에 임하는가 일까? 물론 그런 것들이 성실함을 재는 기준이 될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성실함 자체를 재는 기준이라기 보다는 성실함의 열매의 일부를 재는 기준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위에 열거한 것들은, 단순히 성실함의 열매뿐아니라 그 사람의 다른 면들의 열매들도 함께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주의해서 사용하지 않으면 잘못 판단할 위험이 있다고 생각한다. 성실함은 외면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기 보다는, 내면에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그것을 재는 일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설때만 가능한 것이 아닐까. 더보기
성실함 (3) 성실함에 대해 핑계를 대는 사람들을 나는 매일 만난다. 누굴까? 당연히 나 자신이다. 좀 더 성실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핑계를 대는 내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고 있자면 깊이 실망스럽기도 하고 몹시 부끄럽기도 하다. 그래도 나는 다른 어떤 것들은 잘 하는데... 사람이 완벽할수는 없지... 이정도 마음의 평안과 여유는 있어야지... 내가 이정도의 여유를 누릴 자격은 되지 않나... 그러나 성실함은, 내 performance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내 attitude와 관련된 것이 아닐까 싶다. 내가 무엇일 이루고 이루지 못하고를 기준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자세로 삶을 대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가 아닐까. 더보기
성실함 (2) 성실함은 능력(competency)일까 성품(character)일까? 나는 오랫동안 성실함을 성품으로 생각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성실하지 못한 사람들을 쉽게 비난하기도 했고, 내 자신이 성실하지 못함을 많이 자책하기도 했다. 그런데, 혹시 성실함이 능력은 아닐까? 어떤 이들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성실함 자체가 힘든 것은 아닐까? 약속을 해 놓고도 반복해서 그 약속을 지켜내지 못하는 사람들, 늘 약속시간을 맞추지 못하는 사람들, 큰 소리를 쳐놓고 뒷감당을 못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성실하기위한 노력을 안하는 것이 아니라, 성실하기 위한 노력을 못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나는 과연 성실하지 못함이 책망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일까 하는 것에 대한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아마 전.. 더보기
성실함 (introduction) 직장 일이든, 직접적인 복음사역이든... 일을 하다보면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이 얼마나 귀한가 하는 것을 많이 느낀다. 특히 어떤 일을 부탁한 후, 그 일을 다시 점검하지 않아도 알아서 책임감을 가지고 성실하게 그 일을 해내는 사람이 생각만큼 많지 않음을 발견한다. 그렇기 때문에 성실한 한 사람을 찾는 것이 무척이나 어렵고, 그런 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참 귀한 일임을 깨닫는다. 그렇다면, 그렇게 성실한 사람이 과연 더 건강한 복음적인 삶을 사는 것일까. 그렇게 성실하지 못한 사람은 어떻게 더 건강한 성숙을 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까. 나는 어떻게 더 성실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인위적인 성실함과 건강한 성실함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성실함과 영성과는 어떤 관계일까. 성실한 사람과 성실하지 못한 .. 더보기
고난에 관하여 (final)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너무나 당연하게 교회에서 이야기하는 이 문장이, 초등학생이 가볍게 이야기해면 그저 '예쁜 이야기'에 그치지만, 깊은 고난을 통해 귀한 열매를 맺은 사람이 이야기하면 그 말 자체에 엄청난 은혜가 실리게 되는 듯 하다. 고난에 관하여 알지 못하는 내가, 감히 고난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 다소 부끄러운일이 될수 있겠으나, 하나님의 선하심에 기대어, 내 사랑하는 이의 고난을 보며.... 그와 내 자신에게 혹시 도움이 될까 싶어 이렇게 한번 정리해 본다. 앞으로 몇년후에 이 글들을 다시 읽으며... 그때 내가 이해했던 것이 그렇게 천박한 수준밖에 되지 않았구나... 하며 얼굴을 붉히게 되기를 소망한다. 더보기
고난에 관하여 (8) 성혁아,최근 네가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우리 같은 교회를 다니며 성장하던 시절의 너로만 너를 기억하는 나로서는, 네가 늘 그저 어린아이와 같기만 하지만... 이런 어려움을 견디어 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 만으로도 난 참 네가 대견하게 느껴졌다.너희 아버지가 예전에 그렇게도 판사가 되고 싶어 하셨는데, 정말 억울하게 판사가 될 기회를 놓쳐 개인 변호사로 개업하신 후 늘 그때 판사가 되지 못한 것에 대한 억울함을 가지고 계시다는 이야기를 언젠가 네가 해주었던 기억이 난다.그리고, 이제는 네가 정확하게 같은 상황은 아니지만, 매우 억울하게 판사 임용 직전에 그것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것도 엉뚱한 오해에 연루되어서.)게다가 그런 상황 속에서 너희 아버지께서.. 더보기
고난에 관하여 (7) 때로 고난의 기간은 짧을수 있지만, 자주 고난을 내면에서 process 하는 기간은 매우 길수도 있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고난을 통해 얻어진 열매가 무엇이다라고 쉽게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 가벼운 행동이 아닐까 싶다. 마치 오래 뼈를 고와 곰탕을 끓여내는 과정과 같이, 좋은 한약을 오래 달이는 과정과 같이, 하나님께서 삶에 허락하신 어려움을 깊이 곱씹으며 성장과 성숙의 열매로 삼는 일이 필요한 것 같다. 때로 그런 과정중에 하나님께서는 전혀 예측하지 못하던 선물을 주시기도 하시는 것 같다. 하나님 성품의 진국이 오랜 시간에 걸쳐 흘러 나오는 것이다. 더보기
고난에 관하여 (6) 훌륭한 믿음의 선배들 중, 애매한 고난을 경험하는 사람들을 너무나도 자주 본다. 좀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내가 만난 존경하는 믿음의 선배들은 모두 애매한 고난을 깊게 경험한 사람들이고, 그 고난을 매우 건강하게 승화시킨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삶의 현장에서 애매한 고난을 겪는 사람들이었다. 어떤 경우엔, 하나님께서 너무하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훌륭한 믿음의 사람에게 연속적으로 어려움을 주시는 일들도 보았다. 고난은, 피상적이고 추상적인 믿음을 구체화시킨다. 그리고 다른이들의 고난에 대한 말할수 없는 compassion을 갖게한다. 훌륭한 spiritual leader들에게 고난의 경험이 있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겠다. 더보기
고난에 관하여 (5) 고난을 겪으며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사람도 있지만, 그 고난을 통해 쓴 뿌리만을 남기는 사람들도 있다. 증오, 복수심, 모멸감, 패배감만을 갖는 일들을 본다. 물론 많은 경우에는, 맺어져야 할 건강한 열매들과, 지금 언급한 부정적 쓴 뿌리가 섞여 있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정말 무서운 경우는, 부정적 쓴 뿌리를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을 고난의 열매로 치장하고 포장하는 경우이다. 고난을 통해 자신이 성숙한 것 같이 훗날 이야기 하지만 막상 성숙했다기 보다는 쓴뿌리만을 마음 속에 갖게 되는 것이다. 고난을 겪는 중에, 고난을 다 겪고 난 후에, 건강한 조언과 가이드를 받으며 그 일들을 건강하게 곱씹을 기회가 있다면 이런 일들을 많이 줄일 수 있지 않을까. 더보기
고난에 관하여 (4) 어제 글에서 세종류의 고난에 관하여 언급했다. 첫번째는,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겪게 되는 어려움이다. 두번째는, 복음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적극적으로 당하는 박해에 의한 고난이다. 세번째는, 억울하게 당하는, 피해자로서의 고난이다. 그런데, 가끔 고난 당하는 사람을 보면서 당황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고난 당하는 사람이 자신이 당하는 고난의 내용에 관하여 전혀 잘못 이해하고 대응하는 것이다. 명백하게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잘못인데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 받는 박해라던가, 억울하게 당하는 고난이라고 생각하는 일들이 가장 흔한 경우가 아닐까 싶다. 고난의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고 묵상하지 않아 잘못된 진단을 하게 되고, 결국 그 고난을 통해 얻어져야할 귀한 열매들을 놓치게 되는 일들을 보곤 한다. 고난을 겪으.. 더보기
고난에 관하여 (3) 고난에는 세종류가 있다고 생각된다. 첫번째는,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겪게 되는 어려움이다. 두번째는, 복음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적극적으로 당하는 박해에 의한 고난이다. 세번째는, 억울하게 당하는, 피해자로서의 고난이다. 명백하게 자신의 잘못으로 고난을 겪는 경우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어려움을 주심으로 잘못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기회를 주신다. 다시는 같은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가르쳐주시는 것이다. 복음과 하나님나라를 위해 당하는 박해에 의한 고난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는 멋진 고난이다. 이 고난의 열매는 하나님의 영광이다. 세번째 억울하게 당하는 고난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이 처한 상황보다 그 사람을 더 사랑하신다는 중요한 sign이 된다. 성공이나 명예나 부 권력보다 그 사람이 더 소중하기 때.. 더보기
고난에 관하여 (2) 사랑하는 사람들을 말씀 안에서 섬기는 일을 하다보면, 정말 귀한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그런데, 삶의 어떤 영역에서 자신의 것을 꽉 붙들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성장을 멈추어버리는 사람들을 만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서 마음속에 가지는 안타까움은 말로 다 할수 없다. 고집스럽게 붙들고 있는 그것을 놓는다면 정말 자유로와질텐데, 세상이 감당할수 없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숙해 나갈 수 있을텐데, 그것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왜 도무지 저런상황에 대해 아무것도 하시지 않는지 안타까울때가 있다. 마치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포기하신게 아닌가 하는 답답함마저 들기도 한다. (물론 나 자신을 보면서도 그런 답답함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 그런의미에서, 건강하게 자라는 당신의 자녀에게 그분께.. 더보기
고난에 관하여 (1) 막 태어난 어린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자상한 돌봄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이제 막 어린 그리스도인을 벗어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애정은 그 이전 단계에 경험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깊다. 뿌리깊은 내면의 문제들을 다루시기 위해, 삶의 전 영역을 그분의 선하심 앞에 아름답게 정렬시키기 위해, 그 과정에서 베푸시는 무한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도록 하기 위해, shake-up을 허락하시는 것이다. 최근, 내가 사랑하는 어떤이에게 억울한 일을 당하는 일이 진행되고 있다. 마음을 면도날로 도려내는 것과 같이 아프지만... 기도하면서 마음에 주시는 잔잔히 흐르는 평안을 발견한다. 나름대로 며칠간 기도하고 묵상하면서, 그리고 나 자신을 돌아보면서, 고난에 관한 단상들을 몇번에 나.. 더보기
MIT를 용서하다 (final) 내가 쓴 이 글이... 그저 한 패배자의 글로 비추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결국 꽤 괜찮은 연구결과를 내며 졸업을 했고, 이제는 꽤 괜찮은 직장에서 연구를 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MIT를 용서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내게 가져다준 보상이 결코 아니다. MIT가 내게 준 선물은, 그 과정이 가져다준 열매가 아니라, 그 과정 자체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를 발견하게 하시고 나를 인도하시고 나를 품으셨던 하나님이었다. 숲에서 나와 숲을 보는 것 같이... 이미 5년전 졸업을 한 그 학교에 다시 가서... 그토록 고통스러워했던 나를 다시 보며... 이전에 그렇게 선명하게 보지 못했던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 있었다. 66동 지하 계단에서 울며 기도할때, 학생회관 컴퓨터실에서 거의 패닉 상태로 정.. 더보기
MIT를 용서하다 (6) MIT에서 내가 만났던 사람들을 용서했다. 내가 MIT를 다시 걸으며... 경쟁 속에서 힘들게 싸우고 있는 교수들, 학생들, postdoc들을 보았다. MIT가 영예를 가져다 줄 것을 기대하며 admission office의 설명회를 가득 메운 사람들을 보았다. 내가 그렇게 마음 속에 두고 용서하지 못했던 사람들... 교수들, 동료들, 선배와 후배들... 결국은 그 system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으려 몸부림치던 동료 피해자들이었다. 관용과 사랑이 들어가야 할 자리를 남겨놓을 여유를 갖지 못한 채, 성취와 성공을 향해 뛰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만들어 놓은 피해자들. 물론 어그러진 system 속에서 행하는 타인에대한 가혹함이... '나도 피해자다'라는 말 만으로 용서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더보기
MIT를 용서하다 (5) 나는 내가 MIT에 있는 동안, 내 능력에 비해 내가 저평가받는다는 사실이 무척 억울했다. 영어때문에 저평가 받는 것이 억울했고, 나를 인정해서 믿고 밀어주는 지도교수가 없다는 사실이 억울했다. 그래서 나는 늘 인정받는 것에 목이 말랐다. 나보다 못한 연구 결과를 가지고 포장을 잘 해서 '뜨는' 사람들을 보면서 경멸했다. 그러나 그것은 내 마음 깊은 곳에 있었던 열등감과 질투의 표현이었다. 그리고, 나도 언젠간 저렇게 떠서 앙갚음을 하리라는 독기로 가득차 있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참으로 감사하게도... 졸업을 1년 반정도 앞둔 시기에, 하나님께서 내 눈을 열어 그렇게 많이 망가져 있는 나를 보게 하셨다. 아침 QT 시간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집요하게 말씀하시는 것에 나는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다... 더보기
MIT를 용서하다 (4) 많이 지치고 힘들면, 나는 게으름이라는 함정에 종종 빠지곤 하였다. 지도교수와의 문제가 힘들때, 그 문제에 정면으로 맞설 용기가 없어... 그저 나만의 동굴에 숨으려 한 일이 많았다. Game 중독에 빠지기도 하였고, 하루에 large coffee를 4-5잔씩 마시다가 위염이 생기기도 하였다. 이렇게 있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해서 일어나야지...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다리에 힘이 빠져 그저 주저앉아 있던 때가 많았다. 게으름은, 내가 내 부족함으로부터 피해 숨는 나만의 동굴이었다. 내가 그 게으름의 극에 이르렀을때 내가 살았던 아파트에 가 보았다. 다소 촌스러운 색의 페인트로 단장을 해서, 내가 살고 있던 시절의 모습과는 꽤 달라 보였다. 그 앞에서... 그 게으름의 늪에서 허덕이는 나를 다시 보.. 더보기
MIT를 용서하다 (3) 나에 대하여 좀 더 잘 아는 사람들은 아는 이야기지만, 나는 대학원 생활이 그리 평탄하지(?) 않았다. 잠깐 거친 지도교수를 포함해서.. 내가 석박사과정을 통틀어 내 지도교수로 있었던 사람은 총... 7명이었다. 그중 MIT에서 총 5명의 지도교수가 있었다. 처음 입학한 후 7-8개월이 지나서... 처음 함께 일하기로 했던 교수가 있었다. 이분과 일하기로 이야기가 대충 되었고, 이제는 지도교수도 잡았으니 열심히 해서 졸업하면 되겠구나 하는 계획도 세우고 있었는데... 이분이 갑자기 나를 뽑기 어렵게 되었다고 이야기를 해왔다. 나중에 알게된 일이지만 내가 아닌 나보다 늦게 그 교수를 찾아간 다른 학생을 내 대신 뽑은 것이었다. 당황한 나는 허겁지겁 여러 교수들을 만났고... 어렵게 한 교수와 연결이 되었다.. 더보기
MIT를 용서하다 (2) 나는 참 영어를 못했다. 지금 내 영어가 매우 뛰어나다고 이야기하긴 어렵지만, 정말 나는 영어를 잘 못했다. 정규 고등학교 과정을 다 마치지 못한 탓이 크다고 늘 핑게를 대곤 했지만, 결국 학교다닐 때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내 불성실함이 문제였다. 영어를 잘못한다는 사실 때문에 나는 MIT에 있는 동안 늘 기가 죽어 있었던 것 같다. 사실 내가 졸업하기 전에는 그런대로 영어를 잘 하게 되었는데 처음부터 기가죽었던 나는 졸업할때까지 처음 기죽었던 것을 다 회복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내 영어가 부족하다고 유난히 많이 구박하고 윽박질렀던 내 이전 지도교수의 실험실 앞을 지나가보았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학교에 아직 다니고 있을 때에는 그 지도교수가 소리를 지르던 모습이 악몽과 같이 남아 있어서 그 앞.. 더보기
MIT를 용서하다 (1) 지난 주에 있었던 학회가 목요일 오전이 지나고 나니 관심분야의 발표가 거의 다 끝났다. 목요일 오후와 금요일의 시간이 완전히 남아서, 나는 혼자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어떤 일을 할까 고민하다가, 내가 보스턴에서 살았던 일들을 되새기며 이곳 저곳을 다녀보기로 결정했다. 사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다소 즉흥적으로 그렇게 한 것이었는데, 다니면서 여러가지를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내 마음 속에 응어리져 있던 몇가지를 해결하는 큰 소득을 얻었다. 전혀 뜻하지 않게 내 박사과정 지도교수를 만나기도 했고, 내가 살았던 기숙사 건물, 처음 신혼생활을 보냈던 낡은 집, 민우가 처음 태어났던 허름한 아파트, qualifying 시험을 치루었던 교실, 성경공부를 했던 장소, 나만의 secret QT place.. 더보기
학회를 마치면서 1. 내가 박사과정을 할 때, 내 지도교수의 그룹은 우리쪽 분야에서 늘 leading group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다보니 학회에 가서 내가 발표를 하고 나면, 내게 와서 여러가지를 묻고 하는 사람들이 늘 있었다. 나는 그러면 괜히 우쭐해지고 기분이 좋아지곤 하였다. HP에 와서, 학회에 가면, (내가 발표를 하기도 하였고, 함께 간 다른 사람이 하기도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와서 우리 그룹에서 한 일에 관심을 표현했다. 작년에 어느 학회에서 내가 발표를 한 후에는, 말 그대로 나와 이야기하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서기도 했다. 사람들과 만날 약속들이 바빠서 10분 15분을 쪼개가며 사람들을 만나고 그랬다. 2. 이번 학회에 와서 보니, 이 학회는 내 관심사 (그리고 우리그룹/회사의 관심사)와 그리 잘 .. 더보기
성전 미문의 거지 사도행전 3:9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및 하나님을 찬미함을 보고 10 그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의 당한 일을 인하여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라니라 11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칭하는 행각에 모이거늘 12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본문에서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 앉아 있던 거지를 손을 붇들어 일으키는 장면이 나옵니다. 나면서부터 걸을 수 없었던 이 성전 미문의 거지를 베드로와 요한이 우리가 지난번에 성경공부시간에 보았던 것 처럼 ‘금과 은은 내게 없으나 내게 .. 더보기
구두쇠가 되기 나는, 대단히 부자집에서 성장하지는 않았지만 돈이 쪼들리는 환경에서 자라지도 않았다. 때문에 대학, 대학원에 다니는동안 돈이 없어서 크게 고생한 기억이 없다. 따라서 절약을 한다는 것은 주어진 용돈을 아껴서 사고 싶었던 CD player를 사는 수준이었다. 대학교를 다닐때, 한달에 13만원정도를 학교에서 받았는데 (10만원 장학금 + 3만원 학교 내 아르바이트) 이 정도면 그 당시 꽤 넉넉한 것이었다.(그게 벌써 20년전 일이니...) 한국에서 대학원을 다닐때도 학교에서 매달 돈이 나왔고, 그 후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할때는 더 넉넉하게 되었다. 미국에 와서,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면서 나는 아주 다른 경험을 하게 되었다. 처음 미국에 와서 얼마 동안은 지도교수를 잡지 못해서 한국에서 받는 국비유학장학금(.. 더보기
내가 start-up company를 하는 이유 (마무리) 내가 왜 start-up company를 하느냐... 몇가지를 정리해서 써보려고 했는데... 과연 이것이 전부일까, 혹은 이 가운데 헛된, 잘못된 이유들을 없을까. 아마 내 앞에 펼쳐진 adventure를 하나님과 동행하여 해 나가면서 그 해답들을 더 찾아야 할 듯 하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의 조언과 충고, 기도와 후원을 부탁드린다. 참고로, 지금 진행되고 있는 구체적인 과정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HP Labs의 우리 그룹에서 어떤 특별한 기술을 개발을 했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flexible한 플라스틱 필름 위에 전자회로를 쉽고 빠르고 싸게 만들 수 있는 것이 가능하다. 이 일을 하면서 Iowa에 있는 그 당시로는 작은 어떤 회사와 함께 일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회사는 이제는.. 더보기
내가 start-up company를 하는 이유 (6) 나의 inadequacy를 인정해 보고 싶었다. Do I really have what it takes? 늘 내가 내 자신에게 물어보는 질문이다. 어떤 일을 할 때, 과연 내가 그 일을 감당해낼 만한 능력이 있느냐는 것이다. 나는 과연, 훌륭한 연구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좋은 network을 갖고, 인격으로 학생들을 키우는 그런 교수가 될 수 있을까. 나는 과연, 학문의 흐름을 바꾸는 중요한 기여를 하면서 현세와 후세에 큰 영향을 키치는 학자가 될 수 있을까. 나는 과연, corporate world에 들어가서 사람들과 함께 일하면서 인간 관계를 맺고, 내 career development를 하고, 내 조직에 긍정적 기여를 하는 그런 직장인이 될 수 있을까. 아마... 많이 stretch 하면, 다시 .. 더보기
내가 start-up company를 하는 이유 (5) 재화보다는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문화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내가 함께 일하는 사람들, 함께 회사를 하는 사람들이 물론 내가 생각하는 가치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작게 시작하는 회사의 일원으로서, 그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를 만들어가는데 좀 더 의미있게 기여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그저 cost 의 차원에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 자체를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 기술(technology)은 선전효과나 자기 자랑을 위한 것이 아니고, 그것을 통해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데 사용되어야 한다는 가치, 기업이 단지 이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을 넘어 가치를 창출하고 사회에 기여하는 것을 위해 존재할 수 있다는 가치, 많은 돈을 소유하여 그 돈을 잘 굴려서 돈을 버는.. 더보기
내가 start-up company를 하는 이유 (4) 적어도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교수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내 꿈은 교수였다. 그리고 어쩌면 교수가 되는 과정을 그래도 나름대로 잘 밟아왔고 어느정도 성취도 했다. 실제로 교수가 될 수 있는 기회가 내게 주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이 시점에서 교수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첫째, 꿈이 없는 사람을 길러내는 일에 동참하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현재는 한국도 미국도 모두 (한국은 더 심하지만) 공대를 졸업한 사람들에게 어떤 '꿈'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기껏 졸업해야 취업에 목매야 하는 상황. 공대를 졸업했다는 사실이 좌절이고 절망이 되는 상황, 자신이 좋아하는 공학의 이상을 현실에 다 팔아 넘겨야 살아남는 상황. 내가 교수가 되어, 내가 길러낸 사람들을 그렇게 꿈이.. 더보기
내가 start-up company를 하는 이유 (3) 훌륭한 사람들과 일하면서 배우고 싶었다. 나는 지금 내가 함께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참 좋아한다. 나는 이들과 일하면서 engineer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더 깊이 알 수 있었다. 다른이들을 배려하고 세우면서도 탁월함을 가질 수 있음도 보았다. 당장의 이익보다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도 배웠다. 이들과 함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매일 감사했다. 내가 가진 것들로 이들을 섬기고 싶었다. 이것이 내가 start-up company를 하는 세번째 이유이다. 더보기
내가 start-up company를 하는 이유 (2) 짜여진 틀이 아닌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고 싶었다. 중학교때 그래도 공부를 잘한다는 이유로... 그리고 수학을 재미있어 한다는 이유로... 과학고등학교에 입학한 이후, 나는 한번도 하나님의 active한 인도하심을 따라 내 삶을 운행한 적이 없었다. 물론, 어느 학교로 진학을 할 것인가, 박사를 어디에서 받을 것인가, 박사를 받고 어느 직장에 갈 것인가 등등의 고민과 기도가 있었지만... 대학때 공부 잘 했으니, 미국의 소위 '좋은 학교'로 박사 받으러 유학 왔고, 거기 졸업했으니 '좋은 직장' 잡아서 커리어 쌓고... 그러면서 연구자로서 명성도 쌓고... 논문 많이 쓰고... 학회에서 이름 날리고... 그저 고민하지 않고 계속 가면 가게되는 그런 길이다.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사람으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