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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생각, 긴 글

직장인-to-be

1994. 4.
직장인-TO-BE

대덕제일교회 청년부
권 오 승

1. 나의 실패작 : 직장 생활

이제 나도 `직장 생활'이라는 것을 시작한 지 벌써 14개월이 넘었다. 대학원 석사 과정은 사실 반은 학생, 반은 직장인 쯤 되니까 그런 의미에서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2년 정도의 직장 생활을 한 것이 된다.
사 실 난 나의 환경이 변화할 때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충분한 준비가 없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시작할 때도 그랬고, 대학원에 입학할 땐 더더욱 그랬다. 그래서 나의 새 생활은 실수와 실패 투성이였고, 아직도 수많은 실수와 실패로부터 벗어나지 못해 허덕이고 있는 것들도 있다. 이제 14개월+2년의 직장 생활+대학원 생활을 되돌아 보면, 준비가 부족함으로 인해, 그리고 나의 미성숙으로 인해 내가 겪었던 수 많은 실수들이, 내가 좀 더 잘하지 못했던 그리고 더 잘 하고 있지 못하는 모습들이 안타깝게 느껴진다.(물론, 한편으로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좋은 훈련 코스였다는 생각이 들지만...)
우리 교회의 청년부 형제, 자매들은 이미 직장 생활을 시작했건 아니건 간에 가슴속에 그리스도라는 엄청난 power를 소유한 사람들로서 멋있는 직장 생활(대학원 생활을 포함해서)을 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은 내가 christian의 직장 생활에 대해 생각한 것을 정리한 것이다. 난필이나마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2. 직장 생활

2-1. 직장은 `전도의 밭'이다.

앞 에서도 언급했지만 하루 중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은 다른 어떤 시간보다도 많다. 우리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직장에서 보내도록 사회에서 요구받을 것이다. 따라서 직장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들이고, 그들과 이야기하는 시간이 가장 많을 것이다. 하루 세 번 식사 가운데 두 번은 직장에서 직장 사람들과 하게 되고, 어떤 때는 같이 밤을 새거나 같이 잠을 자기도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왜 이러한 기회를 주시는 것일까? 예수님의 지상 명령인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하신 말씀과 연관시켜 보면 그 이유는 자명해 진다. 내가 있는 이 직장이 바로 내 선교의 장인 것이다. 참 잘 하기 어렵고, 선뜻 내키지 않는 때가 많지만,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이것은 우리가 이미 그 중요성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행함'이다.

2-2. 직장은 하나님의 공의를 생활 속에서 나타내는 곳이다.

" 이끈다는 것은 단지 고백한다는 것이 아니라 산다는 것입니다. 어린이들은 그들이 싸워서는 안된다는 것을 배우기 위해 주일학교에 가야 합니다. 왜요? 그 아이들의 아빠와 엄마가 집에서 툭하면 싸우기 때문입니다. 아빠가 직장에서 쓰던 볼펜을 마음 대로 집에 가지고 와서 쓰기 때문에, 아이들은 주일학교에 가서 도둑질은 절대로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배워야만 합니다...."
후안 까를로스 오르띠즈 목사님의 "주님과 동행하십니까" 라는 제목의 책에서 따 온 글이다.
나 는 처음 직장에 들어와서 매우 놀란 사실이 있다. 우리 부에 약 40명 가량의 연구원이 있는데 christian이 2-3명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인구의 1/4 가량이 christian이라던데 그 많은 christian들은 다 어디에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한두 달의 생활을 하면서 좀 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 하면서 나는 `어, 이 사람도 교회에 다니쟎아?', `어, 이 사람도?' 하는 상황들에 맞닿게 되었다. 어쩌면 그렇게 티 안나게 신앙 생활을 하는지... 정말 놀라울 정도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티 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기란 정말 쉽지 않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가 내게 무척 심각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나에겐 아직 내 모습을 보고 배울 자녀가 없지만, 만일 있다면 그 아이는 정직이나 공의에 대해 특별 과외를 시켜야 할지도 모를 정도로 내 생활 속에서 드러나야만 하는 하나님의 공의는 무기력하기 짝이 없다.
나는 교회의 일을 한다는 핑계로 엄청난 분량의 찬양 악보를 과(科) 복사실에서 대량으로 복사를 하기도 했고(누가 볼까 봐 밤에 몰래), 내 개인적인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연구 계정에서 값나가는 여러 물건들을 구입하기도 했다. 되지도 않은 실험을 마치 된 것처럼 연구 보고서를 쓰기도 했고, 엉터리 연구 proposal을 몇 시간내에 뚝딱 만들어 내기도 했다. 왜냐하면 남들도 다 하는 일이니까. 그러나 나는 남들이 다 믿지 않는 예수님을 믿고 있는데...
얼마 일을 하지 않고서 많이 일한 것 처럼 꾸며 보려던 나의 욕심과 상사에게 주께 하듯 순종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같이 생각해 볼 때, 또 다들 하는 일이니까 하면서 쉽게 가짜 영수증을 만들던 내 모습과 정직하라고 내 양심을 때리는 성령님의 음성을 같이 떠 올려 볼 때, 학점을 잘 받기 위해 슬그머니 남의 보고서를 베껴 내던 내 모습과 정직이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기 위해 온갖 수난과 고통을 당했던 신앙의 선배들의 이야기를 같이 생각해 볼 때, 내 모습은 초라해지기 이를 데 없다.
직장 생활에서 실종되어 버린 하나님의 공의, 적절한 합리화를 통해 이제는 잘못조차도 정당화 시켜 버리는 모습... 이러한 모습들을 보시며 하나님은 내게 아모스 5장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 지어다.'

2-3. Christian은 열심히 일해야 한다.

내 가 지난 1년 여 간 직장 생활을 하면서 거듭 거듭 느끼고 깨닫게 되는 건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스울 만큼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이야기 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정말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 있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내가 얼마만큼 열심히 일해야 하는가 하는 것에 대해 사실 난 무척 혼란스러웠다.
내가 찾은 일하는 원리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일하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천지와 인간을 창조하신 후에 인간에게 땅을 정복하고 다스릴 것을 명하셨다. 다시 말하면 일을 하라고 명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6일간 열심히 `일하시고' 하루 쉬신 것을 생각해 보자. 우리의 창조주께서도 열심히 일하셨다. 그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우리 인간이 열심히 일해야 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 아닐까? 바울 사도는 일하기 싫은 사람은 먹지도 말라고 강경한 어조로 일할 것을 명하였다.
둘째, 열심히 일하는 것이 미덕인 우리 사회에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은 역시 아름다운 모습이다.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 준 사람들이 우대받고 존중받는 사회이다. 그들의 발언에는 그만큼 무게가 실리게 되고 사람들이 경청하게 된다. 심지어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인간성도 좋다고까지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배경에서 생각해 보면 우리가 가진 복음, 이 메시지가 설득력 있게 전달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함께 주위 사람들의 눈에 비쳐져야 한다. 열심히 일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전도의 작은 출발이다.
셋째, 앞에서도 언급되었지만 열심히 일하는 것은 삶에 그만큼 충실함을 의미한다. `땡땡이' 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열심히 일하는 것은 나 자신과 사회에 대해 정직한 생활을 하는 것이다.
넷 째, 직장은 자기 성숙의 장이다. 분명 열심히 일을 하다 보면 많은 문제들에 부딪히게 된다. 시간은 없는데 할 일은 많고, 성경 공부 모임이 오늘 있는데 내일까지 결과는 내야하고, 가만히 있으면 별 문제가 되지 않을 일도 열심히 일을 하다 보면 많은 사람들과 부딪혀서 기분도 상하게 되고... 어쩌면 그러는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성품을 아름답게 훈련시켜 나가시는 것이 아닐까 싶다. `장성한 그리스도의 분량'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직장은 정말 훌륭한 자기 성숙의 장이 된다. 골방에 홀로 쳐 박혀 있으면 부딪힘도, 아픔도 성숙도 없다.
분명 직장 속에서의 일은 `세속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 안에서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으로부터 공급 받는 다이나믹한 관계가 있는 오히려 `거룩한' 것이다.


3. 우리, 직장을 준비하자.

앞 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나는 직장에 대한 사전 지식도, 준비도 없이 직장 생활에 뛰어든 탓에 `거의 속수무책으로 당한 일들'이 상당히 많다. 변명 같지만, 나의 아버지는 소위 자유업으로 분류되는 일에 종사하고 계시기 때문에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로 부터 직장인이 된다는 것에 대해 조언이나 충고를 거의 듣지 못했다. 따라서 직장 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약간의 기도를 하기는 했지만 추상적이고 형식적인 수준에 머물렀고,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고 기도해야 하는지도 잘 몰랐다. 사람들이 보통 숲에서 나와야 숲이 보인다고 들 말한다. 나 역시 학생 신분을 떠나 직장인이 되고 보니 나의 학생 시절이 제대로 보이는 것 같다.
학생 시절에 대해 내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학생 시절이 우리 christian들에게는 가장 좋은 훈련의 기회라는 것이다. 아침 QT 모임, 소그룹 성경 공부 모임, 찬양 모임, 수련회, MT, 각종 봉사 활동 등 이 모두가 학생 때를 지나고 나면 훈련을 받기가 매우 어려운 모임들이다. 직장에서는 훈련이라기 보다는 훈련 받은 것을 써먹어야 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교회에서는 많은 형제, 자매들과 만나서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어른들께 조언을 구하며 성장할 좋은 환경들이 갖추어져 있다고 생각된다. 비록 서로가 부족하고 서로가 미완성이지만 서로의 생각이 나뉘고 전달되고, 같이 기도할 때 두 세 사람이 있을 때 그 가운데 계신 주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직장 생활이 먼 장래의 꿈이 아니라 내가 곧 뛰어들게 될 가까운 현실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기도할 필요가 있다. 사실, 주위에서 곧 자신에게 `사실'로 다가오게 될 직장 생활에 대해 심각하게 기도하고 준비하는 사람을 나는 전혀 보지 못했다. 자신이 하루 24시간 가운데 짧게는 9시간, 길게는 17시간 이상을 보내게 될 직장 생활인데도 말이다. 물론 자신이 어느 직장으로 가는 것이 좋은지를 하나님께 물어 보는 경우는 자주 있다. 그러나 그 직장에서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를 기도하고 준비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는 말이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나에게 직장 생활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것이 있을 것이므로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 뜻대로 행하는 훈련을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바르게 살고자 노력하는 christian에게 직장 생활은 각종 어려움으로 가득 차 있는 곳이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을 그냥 견뎌 내어야만 하는 것으로만 인식하기 보다는 비뚤어지고 어그러진 직장 생활 속에서 기독교적 대안을 제시하고, 실천함으로써 모범을 보이는 자세가 절실히 요구되는 현실인 것 같다. 우리가 성경을 진리로 믿는다면 그 성경 말씀은 교회 예배 시간에만 진리인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가장 작은 부분에까지도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 진리이어야 한다. 무엇이 진리인지를 바르게 인식하지 못하고 그저 하루 하루를 보내는 `평범한' 직장인들에게 충격적일 만큼 분명한, christian만이 지닐 수 있는 vision을 보여 주는 것이 정말 필요한 때이다. 전투 준비를 하는 마음으로, 진리를 소유한 사람으로서 그 진리를 바탕으로 세상을 인식하고 그 진리로 부터 벗어난 상한 이 세상을 향해 외칠 수 있도록...
우리, 직장을 준비하자!!

※ 한 마디 덧붙이자면, 이 글은 제가 1994년 4월, 한국전자통신 연구소에 근무할 때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