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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숙함과 하나님의 인도

긴 생각, 짧은 글 | 2012.03.09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가끔, 내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가슴 철렁하도록 미숙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20대 후반에,
도대체 무슨 신앙과 삶과 세상에 insight가 있다고...
마치 세상을 다 아는 것인냥 생각하고 행동했던 것을 기억한다.

shallow한 passion과 더 shallow한 지식으로,
쉽게 모든 것을 재단하려고 했던 것도 기억 속에 생생하다.

만일,
그때 내 생각이 정말 나와 나를 둘러싼 세상 속에서 현실로 이루어졌다면...
어휴... 정말 가슴 철렁한 일이다.

매 순간의 고민과 생각은 소중한 것이지만,
그 미숙함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이자 인도하심이 아닐까 싶다.

아마 지금으로부터 10년, 20년 후에는,
지금 내 모습을 보면서 그렇게 회상해볼 수 있기를 정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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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에 대한 이해, 인간에 대한 이해

긴 생각, 짧은 글 | 2012.02.14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캘빈주의자들은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고,
알미니안들을 포함한 비캘빈주의자들은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깊다.

최근 내가 생각해서 정리해 본 것.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강조하는 캘빈주의자들은,
하나님을 쉽게 '마초' 하나님으로 왜곡하게 만드는데 반해,
그에 대비되는 인간의 연약함, 죄된 본성 등을 잘 설명하는 것 같다.

반면,
그 반대쪽에 서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사랑 등을 더 잘 설명하는 데 반해,
인간에 대해 너무 많은 credit을 주어 오히려 왜곡을 발생시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오랜만에 나 혼자 정리해본 개똥 신학.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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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신앙

결심과 예배

긴 생각, 짧은 글 | 2012.02.07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내가 그리스도인 답게 살겠다'고 결심하도록 이끄는  경험이나 예식, 말씀이나 찬송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께 감사하는 그야말로 예배하도록 이끄는 경험이나 예식,  말씀이나 찬송 등이 있다.

전자는 인간적 결심을 이끌지만, (결심)
후자는 인간적 결심을 오히려 포기하게 한다. (예배)

결심은 소망을 던져줌으로써 결심하게 하는데 목적을 두지만,
예배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소망이 드러나기 전에, 오히려 더 깊은 절망을 경험하게 하기도 한다.

결심은 단기적으로 꽤 큰 효과가 있어 보일 수 있지만
예배만이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효과가 있다.

내가 만난 하나님은, 예배의 하나님이었다. 
그래서 그저 그분 앞에서 바짝 엎드려 아무것도 내가 할 수 없었던 그런 하나님이었다.
그분 앞에서 감사의 눈물을 흘리고, 그저 그분이 진심으로 좋아서 그분을 따르는 그런 경험이었다.
내가 그분을 위해서 결심하게되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라, 정말 그분을 사랑하게되는 그런 하나님이었다.

그런데, 나는 자꾸만 결심의 하나님을 다른사람들에게 나누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내가 주변에서 접하는 대부분의 기독교에서, 예배의 하나님이 아닌 결심의 하나님만을 이야기한다.

그 하나님을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경배하고, 
그분 앞에서 바짝 엎드려 내 죄를 토설하며 울고,
베풀어주신 구원에 감사해서 찬양하는...
그런 genuine한 예배의 경험이 그립다. 

(아땅님 감사합니다~ ^^ 바꾸어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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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 I Believe in Tebow?

긴 생각, 짧은 글 | 2012.01.12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Denver Broncos의 quarterback인 Tim Tebow에 대해서 여러가지 말이 많다.
NFL (미국 미식축구 리그)에 친숙하지 않는 분들을 위해 Tebow 열풍을 대충 정리하자면 이렇다.

Denver Broncos에 Tim Tebow라는 쿼더백이 있다. (쿼터백인 미식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사람이다. ^^)
그런데 Tebow는, 순전히 기록상으로는 그렇게 훌륭한 선수가 아니다. Quarterback Rating 이라는 것으로 점수를 매기는데, Tom Brady와 같은 최상의 쿼터백들에 비하면 그 급이 많이 떨어진다.
그런데, Tebow는, 팀이 궁지에 몰렸을때, 어떻게 이상하게 꼭 마지막 순간에 극적으로 팀을 승리로 이끌곤 한다. 이게 한두번이 아니고 여러번 계속 반복되니... Tebow의 마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Tebow가 아주 대놓고 신앙고백을 하는 크리스찬이라는 사실이다.
자기 얼굴에다 성경구절을 크게 써놓고 경기를 하질 않나, NFL 경기장에서 공개적으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인터뷰 할때도 예수님 때문에 이겼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게 꽤 거슬리는 것 같다. 한 신문에서 다음과 같은 만화를 본적도 있다.
 
 
지난주말에, Tim Tebow가 이끄는 Denver Broncos가, 훨씬 더 잘하는 팀이라고 생각되었던 Pittsburgh Steelers 를 연장전에서 극적으로 이기는 이변을 연출했다.
당연히 인터넷에서는 난리가 났다.

Tim Tebow를 보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본다.
공개적으로 신앙고백을 하는것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떤 사람은 그것이 다른이들에게 공격적인 형태로 하기도 하지만, Tebow는 그런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NFL 경기에서의 승리를 신앙과 연결시켜서 이야기하는 것은 사실 내 마음을 꽤 많이 불편하게 한다.
그래서, 다음 경기에서는 이런 장면을 보고 싶다.

Tim Tebow가 이끄는 Denver Broncos가, 아주 박빙의 경기를 펼치며 잘 싸웠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깝게 패했으면 좋겠다.
그리고나서... Tebow가, 무릎을 꿇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것을  보고 싶다.
인터뷰의 기회가 왔을때, 자신은 비록 경기는 졌지만 열심히 뛰었다고, 최선을 다했지만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해 팬들에게 미안하다고. 비록 이기진 못했지만 건강하고 재미있는 경기를 허락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내 신앙은 경기의 승리와 연관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고.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싶다.

승리주의라는 독약에 도취되어 있는 미국 복음주의자들에게....
승리주의를 자신이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한번쯤 보고 싶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나는 정말 Tim Tebow의 fan이 될 것 같다.

아, 다음 경기에 Broncos가 졌으면 하고 바라는 것은... 다음 경기 상대가... 내가 응원하는 팀인 Patriots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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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신앙

상위개념, 하위개념

긴 생각, 짧은 글 | 2011.11.02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아래 글은,
최근... '친북좌파척결'의 극우 정치운동을 열심히 하면서, 그것을 신앙으로 여기고 있는, 내가 아끼는 한 친구와 나눈 이메일 대화중 일부를 옮긴 것이다.
신앙이 정치성에 종속되지 말아야 할 것에대한 내 논증인데... 아마 내 이런 논증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많이 있을 듯. ^^ 
(반론, comment 환영합니다. ㅎㅎ)

=====

정치적 신념은, 그 당시 처한 상황 속에서 무엇이 최상의 솔루션을 제공하는가 하는 것에 대한 분석에 근거하는 경우가 많지.
가령, 너도 네 이메일에서 썼지만, 어떤 사람은 북한의 위협이 우리의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은 경제정의가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하잖아. 또, 북한의 주민들을 어떻게 하면 그 폭압과 부조리에서 해방시켜낼 수 있을까 하는 접근에 대해서도, 북한을 점진적 개방으로 이끌어야한다는 입장으로부터 북한을 강하게 몰아서 붕괴에 이르게해야한다는 입장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지.

이런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하느냐... 하는 것은, 어떻게보면 100% 충분한 과학적 data를 바탕으로 결정하기 어렵다고 할 수 있어. 왜냐하면 미래에 대한 모든 information을 우리가 다 알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A 라는 결정을 하면 A' 이라는 결과가 나온다고 100%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이지. 물론 어떤 입장을 견지할 때에는, 그 입장이 충분히 내적 통일성 (integrity)를 갖는지, 가능한 많은 data를 바탕으로 한 것인지 등등을 evaluate 해봐야 하겠지.

이러한 불확실성 때문에, 그리고 현실과 그것에 대한 해결책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이 존재하기 때문에... 정치적 신념을 이야기할때에는, 자신과 다른 정치적 신념을 가진 사람에 대해 관용을 갖고, 서로 대화를 통해서 풀어나가는 작업이 중요할 수 있지. 물론 그것이 어려울 때도 많지만.
일반적으로, 이러한 대화를 거부하는 그룹을 극우 혹은 극좌라고 이야기하는 거지.

그런데 신앙은, 그것보다 더 상위의 개념이야. 정치적으로 진보적이던 보수적이건 간에, 같은 신앙을 가질 수 있지. 신앙은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는 가장 기본적인 가치이기 이잖아. (이 argument에 동의하지 않는 신앙인도 물론 있을 수 있지. 그렇지만 너같이 보수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면 내가 이야기하는 이 notion에 동의하리라 생각해.)
그런데, 정치적 신념을 신앙과 연결시키게되면, 하위의 개념과 상위의 개념을 연결시키는 과정에서 상위 개념의 범위가 축소되는 결과를 낳게 되지.

가령 예를 들면, 일반적인 인과론(논리 체계)과 논리 라는 상위의 개념이 있고, 그 인과론과 이성을 바탕으로 인간이 세상을 기술하는 방법으로 뉴튼 역학을 발견해 내었지? 뉴튼 역학은, 매우 powerful한 것이지만, 그것이 인과론과 이성이라는 a priori concept을 대체하는 것은 아니잖아. 만일 여기서 뉴튼 역학을 거부하는 것은 인과론을 거부하는 것이다 (상위 개념과 하위 개념을 바로 동일시 하는 거지) 라고 이야기하면, 그 순간 인과론의 범위가 뉴튼 역학이라는 하위 개념으로 좁아져 버리게 되지. 그래서, 가령, 뉴튼역학으로 설명이 되지 않지만 인과론이라는 더 큰 개념 안에서 설명이 되는 상대성 이론 같은 것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되는 거고. 

신앙과 정치적 신념도 비슷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 같아.
극우(좌)파의 사상 = 기독교 신앙 이라는 등식을 성립해버리면, 극우(좌)파의 사상을 통해서 기독교 신앙이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극우(좌)파의 사상의 수준으로 기독교 신앙이 강등되게 되어 버리지.

역사적으로도,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정치적 신념과 신앙을 동일시 했을때마다, 교회는 힘을 잃어버렸고, 복음의 영광이 가리워졌어. 

로마의 콘스탄틴 대제때 그랬고, 중세교회가 그랬고, 국교화되었던 개신교회들이 그랬고, 히틀러를 지지했던 독일교회나... 그리고 나는 지금의 한국 교회에서도 그런 것을 보면서 많이 우려하고 있어. 그리고... 네 이메일을 읽으면서도 그런 불편한 마음이 있었던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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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신앙, 정치

No Golden Age

긴 생각, 짧은 글 | 2011.10.04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옛날이 좋았지~  
이 표현은, 자신의 개인적 과거를 돌아보는, 나이많은 사람이 하는 말만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이 표현을 듣는 것 중에서 가장 bother가 되는 것은, '기독교 보수주의자'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특히 미국에서는, 미국을 세운 건국의 정신이 기독교 정신이라고 주장하면서, 그것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많이 듣는다.

그렇지만, 그 기독교 보수주의자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미국에게 있어, 다시 그때로 돌아가야할 Golden Age란 없었다는 것이다.

미국의 건국 이념이 정말 기독교적인 것이었느냐 하는 것도 생각해보아야할 이슈이거니와,
정말 만보를 양보해서, 미국의 건국이념이 (그 당시의) 기독교적인 사상에 매우 가까웠다고 하더라도, 과연 그것이 다시 돌아가야할 Golden age를 제공해주느냐 하는 것은 더더욱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나는 예수를 따르는 예수의 제자이지만,
기독교의 이름으로 마녀를 사냥하고, 노예 제도를 정당화 하고, 여성의 인권을 억누르는 시대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그것들은 기독교의 가치가 아니라, 그 당시 기독교가 시대정신과 간음하여 낳은 사생아들이기 때문이다.

내 짧은 생각으로는,
시대나 사회가 얼마나 건강한가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잣대는....
그 시대의 진보주의자들이 무엇을 주장하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보수주의자들이 무엇을 주장하느냐 하는 것인 것 같다.

진보주의자들은 어차피 그 처한 상황에 만족하지 못해 더 진취적으로 나아가려는 사람들이므로 '검증되지 않은' 영역으로 들어가려는 모험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어떤 시대의 보수주의자들이 지켜내려는 가치가, 정말 꼭 지켜내야할 가치들 (인권, 자유, 사랑, 공동체의식, 약자에대한 배려, 하나님 사랑 등등)이 아니라,
잘못된 Golden Age에 대한 신기루라면...
그 시대는 크게 병들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과 미국의 정치적 보수주의자들을 보면서,
무엇보다도.... 그 정치적 보수주의자들과 결합한 기독교 보수주의자들을 보면서...

우리에게는 돌아가야할 Golden Age가 없다는 것과,
따라서 우리가 지켜야할 가치는, 많은 경우 아직 우리가 한번도 가져보지 못한 것들이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 마음이 참 간절하다.

한국의 이명박 정권과 배에 기름낀 강남 기독교를 바라보며,
미국의 Rick Perry, Tea Party 등과 남부 Bible Belt의 보수주의자들을 바라보며..

적어도 이 시대에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그들과 같이 되지 않는 것을 포함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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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신앙

마틴 로이드-존스

긴 생각, 짧은 글 | 2011.10.03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지난번 시애틀 간사 수양회였던가,
몇 사람이 함께 모였을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내 신앙의 기본적인 색깔은 뭐니뭐니해도 '청교도 신앙' 이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듣던 사람들은, 내가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쉽게 수긍하지 못하는 것 같아 보였다. ^^

10여년전, 나는 마틴 로이드-존스의 사상에 깊이 빠져 있었다.
여태까지도 나는 마틴 로이드-존스가 내 신앙에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친 사람들중 하나로 꼽는다.

어제 주일 오후,
교회에 다녀와서 잠깐 쉬던중에, 마틴 로이드-존스의 설교 녹음 file을 파는 site를 발견했다.
http://www.mlj-usa.com
그분의 책을 읽기는 했지만, 그 설교를 들었던 적은 없었기 때문에, 나는 금새 몇개 설교를 다운로드 받아 들어보았다.

처음 들었던 설교는,
그야말로... 무척이나 지루하게 들렸다.
정말 옛날 말투로, 발음도 이상하게 들리는 그런 설교였다. 내용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스타일이 그야말로 너무 '구식'이었다.

그런데, 두번째 설교부터는....
그 설교 끝에 나도 모르게... '아멘'이라고 response를 하게 되었다.

세번째 설교를 듣는 중에는,
중간에 탄성도 지르고...
공감도 하고, 마음이 뜨거워지기도 하였다.
과연 20세기 최고의 설교가라고 불리울만 하구나... 싶었다.

한편으로는,
20세기 초반의 설교이므로,
contents나 style이 분명히 out of date인 부분이 있었다. 그야말로 '옛날 설교' 였다.
그렇지만, 그 안에서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히 경험할 수 있었다.

현대에,
그런 설교가를 좀 만나볼 수는 없을까.

나는 청교도적 신앙을 가진게 분명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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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하기 어려운 이야기들

긴 생각, 짧은 글 | 2011.06.03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신앙의 여러가지 개념들은,
이해된다기 보다는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들이 많은 것 같다.

그것은,
신앙이 논리의 과정으로 설명되는 것이라기 보다는,
하나님과의 만남에서 비롯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논리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일반적으로,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 칭하는 사람들과 (가볍게) 쉽게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사랑, 은혜, 사명, 인도하심, 성숙 등등이 될 수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Glory)라는 것을 자신의 것으로 perceive하지 않고는,
위의 내용들을 결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데...
막상 그리스도인들과 '영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란 참 쉽지 않음을 경험한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그 영광에 대한 내 이해가 천박한 수준이기 때문이겠지만,
영광을 이해하지 않고도 신앙이 가능하다고 믿는 현대 기독교의 수준,
하나님과 대면함이 없이 신앙생활이 가능하다고 믿는 현대 기독교인의 생각 등이 역시 그 이유가 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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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at'll be nice!

긴 생각, 짧은 글 | 2011.05.20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내일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고 열심히 광고하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어제는 민우가 내게 이것과 관련해 질문을 해서 약간의 대화를 나누었다.

민우 : 왜 사람들이 이번 토요일에 세상이 끝난다고 그래?

아빠 : 글쎄,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그때 오신다고 믿고 있다나봐.

민우 : 그 사람들은 무슨 이상한 종교를 믿고 있나보지?

아빠 : 음... 그 사람들도 자기들이 크리스찬이라고 얘기하긴 해.

민우 : 이상하다. 

아빠 : 민우는, 그 사람들이 왜 이상하다고 생각해?

민우 : 예수님은 예상하지 못하게 (unexpectedly) 오신다고 했잖아. 그런데 그 사람들은 자기들이 안다고 그러잖아.

아빠 : (흐뭇해 하며) 그래, 민우가 맞다!
그런데, 민우야, 만일 그 사람들이 정말 맞으면 어떻게 하지? 이번 토요일에 예수님이 진짜 오시면?

민우 : (아주 밝게 웃으며) That'll be nice! 그럼 예수님 만날 수 있잖아!

----

나는 이 시점에서,  민우에게 있는 '어린아이'의 믿음이, 내 믿음보다 더 깨끗함을 보았다.
나는 그 사람들의 신학적 관점이 어쩌고... 종말론이 어쩌고... 그런 얘기를 이끌어 내면서 민우에게 뭔가 신앙교육을 시키고 싶어 대화를 이끌어 냈는데,
민우는 "예수님 보고싶다" 라는 한마디로 내 모든 복잡한 논리와 생각을 정리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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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신앙, 재림

유사 기독교 단체의 횡보

긴 생각, 짧은 글 | 2011.03.08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어떻게 된 것인지,
최근에는 대통령을 위한 기도 연대 라는 정체불명의 유사기독교 (pseudo-Christian) 단체가 내게 계속 이메일을 보내오고 있다.

내용을 보면,
극우의 정치 단체이지 결코 기독교적인 정신을 찾아 보기 어려웠다.

내용들을 보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대통령이 있어 우리 민족이 살 수 있다"
"오만 방자한 이회창은 정계를 사퇴하라"
"스쿠크법은 한국을 점령하려는 이슬람의 음모이다"
등등의 이야기이다.

내용이 대부분 너무나도 쓰레기 같은 수준이어서,
읽어 내려갈 가치도 없다고 생각되었지만,
그래도 약간 시간을 내어서 읽어보니 정말 기가 막힌 수준의 말들이 많았다.
그들의 주장중에 많은 것에.. wikipedia에서 쓰는 것 처럼 [citation needed] 라고 꼬리표를 달고 싶은 마음이 마구 생겼었다.

그래서,
그 이메일을 보내고 있는 곳에 다시 다음과 같은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다.

"1천 2백만 기독교인의 이름으로 오만 방자한 이회창씨를 심판하겠다"고 했는데,
나는 그 이름에서 빼달라.
나는 하나님 나라 백성됨의 영광을 기뻐하는 사람으로서, 당신들의 주장이 복음의 영광을 땅에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믿는다.
교회의 영광은, 권력을 가지고, 이익집단/압력단체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희생하고 섬기고 세상의 빛이 되는 것이다.
나는, 예수께서 만일 이 시대에 살고 계시다면, 너희들 힘을 합쳐서 이익집단으로 행동해라 라고 가르치시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을 돌려대라는 산상수훈의 말씀은 여전히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것이라고 믿는다.

당신들과 같은 유사기독교(pseudo-Christianity) 단체들과 내가 동일시되고 싶지 않다.
제발 내 이메일 주소로 이런 이메일을 더 이상 보내지 말아달라.

...

물론,
수차례 그렇게 이메일을 보내서,
이렇게 spam 메일을 보내지 말라고 부탁을 했음에도,
여전히 그분들은 내 이메일 주소로 계속 이메일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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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과 어머니

긴 생각, 짧은 글 | 2011.02.02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우리 아버지쪽 가계는 매우 전통적이다.
소위 '낙대'를 한적이 없다는 것을 큰 자랑거리로 여기고...
(낙대를 한적이 없다는 말은, 선조로부터 서자가 한번도 끼지 않았다는 뜻인데, 그런 가계가 사실 그리 흔하지 않다고 한다.)
전통적 가치를 지키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남인 계열의 제사상 차리기와 서인 계열의 제사상 차리기의 차이를 논하는 것을 듣기도 했고...
내 어릴적 자장가는 소학이었다는 전설(?)을 전해 듣는다.

그런 집안에 우리 어머니께서 시집오셨다. 혈혈단신 그리스도인으로.

소위 4대봉사 (4대조까지 제사를 지내는 것을 말함)를 하는 집안에서...
그리스도인 며느리로서 제사때마다 명절때마다 제사상 차례상을 차리는 것이 얼마나 힘드셨을까.
물론 육체적으로도 힘드셨겠지만, 정신적으로 당하셨을 어려움은 내가 다 상상하기 어렵다.

게다가 우리 아버지께서 봉사손(제사를 지내야하는 맏아들, 그 맏아들인 나도 사실은 봉사손이다.-.-;)이시므로 어머니의 부담은 더 심하셨다. 그렇게 40년 넘게 결혼생활을 해오시면서, 집안 어른들로부터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모멸과 수모를 당하시기도 하셨고...

아직도 우리 집에는 명절이면 수십명의 가족(extended family)가 다녀간다.
특히 우리 아버지께서 꽤 넓은 범위의 extended family 중 최고 어른이시기 때문에...

내 어머니도 이제 "칠순 노인" 이신데...
그 많은 손님을 치루어 내시며, 그리고 그 차례상, 제사상을 아직도 차리시면서...
그렇게 고생을 하신다. 아들 둘이 모두 해외에 있기 때문에...  여전히 그 모든 부담이 다 어머니의 몫이다.

한번 명절이 지나고 나면, 손발이 모두 퉁퉁 부어 며칠씩 고생을 하시고,
그야말로 거의 일주일 정도는 몸져 누우시는 일을 매년 반복하신다.

그렇게 하시면서 어머니의 일관된 말씀은 이것이다.
"이 제사를 내 대(代)에서 끝내겠다. 너희 대까지 넘기지 않겠다"

명절때면 그렇게 "영적싸움"을 하고 계시는 우리 어머니를 생각하며...
그저 그 어머니의 희생을 멀리서 누리고만 있는 내 모습이 매년 한없이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이제 그 어머니의 그 희생과 눈물과 기도로, 삼남매는 모두 그 어머니의 신앙을 물려받아 헌신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내가 만일....
perseverance 라는 단어의 뜻을 조금이라도 이해했다면, 그것은 바로 어머니의 그런 모습을 통해서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만일....
감히 내가 믿는 신앙의 그 어떤 열매를 내 삶에서 맺었다면...
내 어머니께서 후에 천국에서 받으실 칭찬의 몫이 적어도 그중 절반은 된다고 할 것이다.

내가 만일....
내 다음 세대에게도 물려줄 수 있는 신앙의 생명을 갖게 되었다면...
이번 설에도 하나님 사랑과 자녀 사랑이라는 마음으로 그 부담을 온 몸으로 짊어지고 계신 어머니의 모범 때문일 것이다.

올해 설에도...
힘드실 어머니를 생각하며....
40이 훌쩍 넘어서도 여전히 철없는 큰아들은...
마음이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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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

긴 생각, 짧은 글 | 2010.08.24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1. 번영신학, 기복신앙, 바알신앙
2. 경건주의, 근본주의, 회심주의
3. 개혁주의 / 캘빈주의, 근본주의, 회심주의
4. 청교도신학, 경건주의, 개혁주의, 회심주의
5. 무교회주의, 청교도신학, 경건주의, 회심주의
6. 무교회주의, 크리스천 아나키즘, 평화주의
7. 평화주의, 새관점(New Perspective)
8. 청교도신학, 경건주의, 회심주의, 평화주의, 새관점, 신정통주의, 개혁주의

무슨 흐름일까요? 알아맞춰 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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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신앙, 흐름

예수를 믿지 않던 시절, 예수를 막 믿게되었던 시절

긴 생각, 짧은 글 | 2009.04.28 06:16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나는 모태출석 교인이다.
어머니께서 나를 태중에 가지고 계실때부터 교회 출석을 했다.

내가 그 신앙을 내 개인의 것으로 받아들인것은 대학교 3학년때의 일이었다.
그 이전까지는 그 신앙을 깊이 곱씹어볼만큼 내가 넉넉하지 못했던 것이리라.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아직 신앙을 갖고 있지 못하던 시절,
신앙이 없으면서 신앙이 있는 척 했던 시절,
진리에 대하여 목말라 했던 시절,
그리고...
그 진리를 막 발견한 직후 내 생각과 감정과 마음이 급속히 바뀌어 가던 신앙의 초기 단계...

이것들에 대한 기억이 자꾸만 희미해진다.

그래서,
내가 그 당시에는 매우 어렵게 받아들였던 개념이나 깨달음들을,
너무 가볍게 여기거나 당연한 것으로 치부해버려 내가 섬기는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는 경우가 있지 않나 싶다.

기회가 되면,
내가 예수를 믿지 않던 시절에 했던 고민들,
또 내가 막 예수를 믿은 직후에 했던 고민들만을 다시 깊이 곱씹어보는 시간을 좀 갖을 수 있으면 한다.

이 블로그에도 간단하게 그것들을 좀 올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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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성실한 사람을 말씀 사역자로?

긴 생각, 짧은 글 | 2008.11.26 06:57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학교나 직장이나 가정에서는 매우 게으르거나 성실하지 못하거나 부정직한 사람인데,
교회나 성경공부 모임 등에서는 많이 나서는 사람들을 가끔 접한다.

나도 물론 얼마나 내가 직장과 가정에서 성실한 사람인가 하는 반성을 스스로 지금도 많이 하지만...

내가 한국에서 석사과정을 할때, 나는 정말 성경공부가 좋았다.
그래서 학교 생활을 성실하게 하지 않으면서 성경공부에 몰입한 기간이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한번 빠지고 나니, 학교 생활을 다시 성실하게 하는 리듬을 되찾는 것이 무척 어려웠다.

그래서...
그 이후 계속 허덕허덕 하다가...
그 후 직장생활을 하면서야 비로소 겨우 회복을 할 수 있었다.

학교 생활이나 직장생활, 혹은 가정 생활에 성실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말씀사역을 강조하는 것은 그 사람을 망치는 독인 것 같다.
한번 그렇게 빠지면 회복이 쉽지 않은 것 같다.

내 모습을 자주 점검해 보곤 하는데,
늘 그 균형이 아슬아슬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 균형이 깨어진 사람들을 보면 참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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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가 끝나가는 걸까?

긴 생각, 짧은 글 | 2008.09.24 06:03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이제...
드디어 지난 20여년간 엄청난 힘을 발휘해 왔던, 그 신자유주의가 막을 내리고 있는 것일까?

지난 10여년간,
내 신앙적 고민의 80%는, 신자유주의 체제 안에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의 의미였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신자유주의가 이제 막을 내리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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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부류의 사람들

긴 생각, 짧은 글 | 2008.09.09 06:2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어떤 이들은, 자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돋보이게 한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자신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 비해 자신만을 돋보이게 한다. 이는 그 사람의 의도와 관계 없이 그렇게 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또,
어떤 이들은 자신 주변의 사람들을 높이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산다. 그러나 다른 이들을 그런 마음 없이 산다.

위의 두가지 분류를 종합하면 다음의 네가지 조합을 생각해 볼 수 있다.

(1) 자신 주변의 사람들을 높이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주변의 사람들을 돋보이게 하는 사람
(2) 자신 주변의 사람들을 높이겠다는 마음은 있으나 주변의 사람들을 돋보이게 하지 못하는 사람
(3) 자신 주변의 사람들을 높이겠다는 마음은 없는데 주변의 사람들을 돋보이게 하는 사람
(4) 자신 주변의 사람들을 높이겠나는 마음도 없고, 주변의 사람들을 돋보이게하지도 않는 사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4)번의 유형에 해당할 것이다.
자신 주변의 사람들을 깎아 내려서라도 자신이 높아지려는 마음을 갖는 것이 죄된 본성의 자연스러운 증상일 것이다.

(3)번의 유형에 해당하는 사람도 이론적으로 가능할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런 사람을 보지는 못했다.

(2)번 유형의 사람은, 올바른 마음가짐을 가지고는 있으나, 막상 그 올바른 마음가짐을 제대로 이루면서 살아가는데 미숙한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을 높이고자 하지만, 어떻게 하면 주변의 사람들을 진심으로 높일 수 있는 것일지 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잘 알지 못하는 사람

(1)번 유형의 사람은, 매우 드물지만 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을 만나고 나면 오래 마음에 감동이 남는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아마도 2번과 4번의 중간쯤 되지 않을까.

특히,
내가 가끔 주변 사람을 높여주려고 마음을 먹고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섬기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도,
때로 나의 미숙함과 지혜롭지 못함으로 결국 다른 이들을 깎아내리게되는 잘못을 범하는 일들을 최근 많이 겪는다.

그리스도 안에서 더 성숙해져...
내 겸손도, 다른 이들에 대한 존경과 사랑과 배려와 존중도...
짜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게 되는 날이 내게도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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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성숙, 신앙

사람에 대하여 포기하지 않기

긴 생각, 짧은 글 | 2008.09.08 06:37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내가 존경하는 어떤 형의 이야기.

이 형이 1년동안 자신이 살고 있는 지방을 떠나 다른 지방에서 지내야 할 일이 있었다.
이 형은 신문에 나거나 할 정도로 널리 알려진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학문의 세계에서 성실하게 일하고 있고, 그리스도인으로서도 알수 있는 사람에게는 알려진 정도의 사람이다.

이 형이 임시로 있어야하는 그 지방에 있는 어떤 대형교회에 1년동안 나가게 되었다.
그 교회의 담임목사님도, 이 형을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정도는 아는 정도였다.

그런데,
이 형이 1년동안 다닌 이 교회의 담임목사님께서 아주 치우친 번영신학의 message를 반복해서 이야기하였다.

처음 몇번은 그러려니 하면서 지나쳤는데,
나중에는 매우 힘들게 그 message들을 들었다고 한다.

이 형은 그 교회의 젊은 부목사님들과 대화하면서,
우선, 그 젊은 부목사님들이 그 번영신학의 message에 동의하는지 조심스럽게 여부를 물었다.
그리고 그 번영신학의 message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게 되고는, 그 부목사님들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고 한다.

"만일, 당신이 그 목사님을 정말 사랑한다면... 당신의 job security를 포기하고서라도 그 목사님에게 고언을 해야 합니다. 그 이야기를 그 목사님이 수용하고 수용하지 않고는 둘째 치고라도, 그 고언을 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당신은 후에 그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 후, 이 형은 그 교회의 담임목사님에게 진정으로 사랑어린 충고를 결국은 하였다. 그 목사님을 얼마나 개인적으로 사랑하고 존경하는지, 그 목사님으로부터 얼마나 큰 신앙의 도움을 학생때 받았는지 하는 것을 이야기하면서 그러나 목사님의 현재 message가 치우쳐져 있다고. 목사님에 대한 사랑의 마음은 전혀 변하지 않았으나 목사님의 message를 매우 안타깝게 들어왔다고.

이 형과 이런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참 많은 것을 생각했다.

어떤 사람에 대하여 나는 너무 쉽게 포기하고 마는 듯 하다.
그냥 어떤 사람이 '이러이러한 사람'이라고 생각되면 나는 그냥 거기서 멈추어 더 이상 어떤 노력을 하려 하지 않는 듯 하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한이 있어도,
그 사람이 변하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사람의 변화를 위해 기도하고 고언하고 충고하는 그 형의 모습을 보면서 정말 부끄러웠다.

사람을 포기하지 않는 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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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e you doing them with Me?

긴 생각, 짧은 글 | 2008.06.04 06:53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What I do vs. How I do...

적어도...
내가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하는 여러가지 일들에 대해서,
이것을 왜 하고 있는지 하는 논리와 이유들은 꽤 든든하게 있는 것 같다.

회사 일을 하는 것,
코스타를 섬기는 것,
어떤 사람들을 만나는 것 등등...

그런데,
두주 전 부터는...
하나님께서 물으신다.

It's great to see you're working so hard for me...
but are you doning all that with me?

하나님의 그 질문에... 내 대답이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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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묵상, 신앙

긍정적 모델과 부정적 모델

긴 생각, 짧은 글 | 2008.05.27 06:01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다른이의 모습을 보면서 배우는 자세는 건강한 신앙인으로서 꼭 필요한 것이렸다.

그런데,
그 다른이의 모습이.. "나도 저렇게 되어야지" 라고 하면서 따르게 되는 "긍정적 모델"이 되는 경우가 있고,
또 다른 이의 모습이...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라면서 피하게 되는 "부정적 모델"이 되는 경우가 있다.

내 짧은 경험에 의하면...

"부정적 모델"은 대개 찾기도 쉽고, 주변에 매우 많고, 내게 오는 효과도 강력하다.
그러나 부정적 모델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많고, 자칫 잘못하면 나는 성숙하지 못한채 비판만 하는 사람이 되고 만다.

"긍정적 모델"은 대개 찾기도 어렵고, 처음 보았을 때 그것이 긍정적 모델이라는 것을 인식하는데까지도 때로 오랜 시간이 걸릴 뿐 아니라 그 긍정적 모델을 보면서 강한 motivation을 갖는것 자체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러나 긍정적 모델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부정적 모델을 통해서 배우는 것에 비해 훨씬 스케일이 크고, 발전적이고, 부작용이 적다.

신앙의 여정을 걸어가면서,
소위 신앙의 성숙이 깊어질수록 당연히 긍정적 모델을 찾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부정적 모델을 찾기가 쉬울 것 같은데..
때로 어떤 신앙의 선배들을 보면... 끊임없이 긍정적 모델들을 통해 자신의 성숙에 채찍질을 가하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물론 그 궁극적 긍정적 모델은 예수 그리스도이겠지.

나도 역시...
내가 스스로 신앙이 성숙하다고 자만할때면 주변에 늘 부정적 모델에 휩싸여 살게 되고,
내가 스스로 겸손하여 주님 앞에서 나를 낮추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긍정적 모델들이 성경 속에, 책 속에, 내 주변에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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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에 헌신할 것인가, 부분에 헌신할 것인가

긴 생각, 짧은 글 | 2008.05.12 06:25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내 신앙과 인격과 생각이 아직 미숙하던 20대,
(그렇다고 내가 지금 무척 성숙했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나는 수많은 것에 헌신했었다.

내가 헌신했던 "분야"들을 생각나는대로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해외 선교, 가정사역, 학생사역, 목회, 빈민, 사회 개혁, 교회 개혁, 학문과 신앙의 통합, 캠퍼스 사역, 학문활동, 소그룹 성경공부, 무교회 운동, 성령운동, 기도운동, 부흥, 창조론, 기독교적 문화, 찬양사역, 반자유주의 (fundamentalism), 공동체...

물론 이것들에 내가 모두 깊이 involve 했던 것은 아니었고, 그 후 내 생각이 바뀐 것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나처럼 가벼운 사람들은, 쉽게 헌신하고 그것들에 몰입하여 정신없는 시간들을 꼭 보내곤 한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내가 헌신했다고 생각했던 그 헌신 자체가 얼마나 얄팍한 것인가 하는 것을 깨닫기도 할 뿐더러, 그 헌신의 내용도 얼마나 편협하고 유치한 것이었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제 그러한 시간들을 보내고,
어쩌면 그런 시간들을 지낼 당시의 나보다는 좀 더 성숙한 모습으로 서 있는 지금,
역시 그러한 모습으로 헌신하는 후배들을 만난다.

내 인생을 바로 이것에 걸었다고 흥분하고... 목에 핏대를 세우는.
그런데 그런 모습 속에서 흔히 발견되는 것은, 자신이 한 헌신이 소중하다고 여기는 만큼 하나님 나라의 거대한 그림 속에서 다른 헌신과 영역이 중요하다는 것을 간과하는 것이다.

가령,
복음을 통해 사회적 약자를 섬기는 것이 자신의 부르심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그것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의 섬김들을 열등한 것으로 여기거나... 자신이 생각하는 만큼 약자를 위한 배려가 없을때 그것을 모두 '믿음의 부족'이라고 정죄하고 마는 오류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한 부분에 헌신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 그 자체에 헌신을 한다면,
자신이 편협하게 하고 있는 헌신에 관하여 끊임없이 점검하고,
자신의 잣대로 다른 이의 헌신을 재단하고 있지 않은지 살펴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매우 더디지만,
그래도 조금씩 내 신앙이 자라가면서,
내가 편협하게 헌신하며 스스로를 자랑스러워 했던 부끄러운 모습들을 버리고,
부분이 아닌 전체에 헌신하는 법을 배워나가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아직도 갈길은 택도 없이 멀~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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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신앙, 헌신

정보와 묵상

긴 생각, 짧은 글 | 2008.04.09 14:27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1) 적은 양의 정보를 가지고 깊이 있는 묵상/연구/고찰을 하는 것과,
(2) 많은 양의 정보를 가지고 깊지 못한 묵상/연구/고찰을 하는 것 가운데 어떤 것이 더 큰 문제일까.

내 생각엔 전자, 즉 적은 양의 정보를 가지고 깊이 있는 묵상을 하는 경우가 더 큰 문제인 것 같다.

왜냐하면,
그러한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이 깊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적은 양의 정보를 가지고 내리는 편향된 결론에 엄청난 확신을 갖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향은,
소위 '신앙인'들에게서 많이 발견된다.

내 모습을 스스로 이에 비추어 보며... 부끄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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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took the red pill....

긴 생각, 짧은 글 | 2008.03.17 16:16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Matrix에서 보면,
Morpheus가 Neo에서 red pill과 blue pill을 보여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Morpheus: You take the blue pill and the story ends. You wake in your bed and believe whatever you want to believe.  You take the red pill and you stay in Wonderland and I show you how deep the rabbit-hole goes.  Remember -- all I am offering is the truth, nothing more.

가끔 나는,
내가 정말 red pill을 먹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내 안에 있는 복음으로 인해서,
도무지... 마치 내 안에 그 복음이 없는 것 처럼 살 수 없게 되어가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냥 다른 사람들처럼 살아갈 수가 없다.... 도무지 그게 이젠 안된다....
예수의 그 십자가는... 내가 이전에 가졌던 계획, 내 세계관, 내 꿈, 내 가치 그 모든 것을 다 mess up 해놓고 말았다.

이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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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다는 것

긴 생각, 짧은 글 | 2008.03.03 09:2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살아가다보면, 내가 개인적으로 제일 대하기 힘든 사람들은,
나보다  어른이거나, 나를 감독해야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인데... 나보다 미숙한 사람이다.
혹은, 분명히 나보다 현저하게 미숙한데 계속해서 나를 가르치려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을 대할때에는, 물론 내가 그런 사람들 앞에서 겸손하려고 노력하지만...
내 노력과 무관하게 그런 사람들과 진솔한 대화를 하기란 쉽지 않음을 경험한다.

그런데,
점점 나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리고 때로 '어른'의 위치에 있거나 다른 누군가를 이끌어야 하는 위치에 있게 되면서...
내가 섬기고 가르치고 돌보는 사람들이 나에데하여 그런 어려움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 자꾸만 점검해보게 된다.

더 어렸을 때에는... "미숙한 어른들"을 보면서 그저 답답하게만 느꼈는데,
이젠 그런 "미숙한 어른들"을 보면서 내 모습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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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십자가 이외에...

긴 생각, 짧은 글 | 2005.03.25 23: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외에,
우리 삶에서 절대화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 직업도, 꿈도, 돈도, 지위도, 심지어는 가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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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풍떨기

짧은 생각, 긴 글 | 2005.03.03 00: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내가 철 모르던 어린시절,
나는 우리집이 세상에서 제일 부자인줄 알았다.
정말 부자였냐고?
글쎄... 뭐 그리 가난하진 않았지만, 부자라고 까지야....

국민학교 1-2학년 무렵이었나....
내가 우리반 친구 하나에게,
야... 우리집 되게 크다. 우리집은 진짜 커서 우리동네에서 제일 커!

정작 그 친구가 우리집에 와서 보고나서 던진 한마디...
'애게...' -.-;

-----

삶의 즐거움의 어려움, 기쁨과 슬픔들을 겪으면서...
때로 나는 내가 아직도 그 어린시절의 나로부터 벗어나 있지 못함을 발견한다.

내가 겪은 기쁨이 세상에서 제일 큰 기쁨인 것으로 생각하고,
내가 겪는 어려움이 세상에서 제일 힘든 것으로 생각하고,
내가 겪는 깨달음이 세상에서 제일 값진 것으로 생각한다.

언젠가 내가 조금 더 성숙해져서,
지금 내가 겪는 기쁨이, 아픔이, 깨달음이,
참으로 '별것 아니었음'을 알게 될때,
내 삶의 경험으로 인해 호들갑 떨었던 내가 얼마나 부끄러울까.

그리스도안에서의 성숙함을 지니게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의 위대함과 내 경험의 천박함을 인지하고,
허풍떠는 빈도를 줄여나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 어느 허풍장이이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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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우와 엄마의 대화

다른이의 생각들 | 2005.01.12 00: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오늘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민우가 자기 전 함께 기도했다.


기도를 마치자 민우가 묻는다.
“엄마도 하나님하고 예수님하고 believe 해?”
엄마: 그럼 그럼. 당연하지!

민우: (신나하며) 예-이!
        민우도 하나님하고 예수님하고 believe 해.
        엄마도 민우도 eternal life 있네.
        엄마가 heaven 에 먼저 가서 기다리면 민우도 heaven 갈께.

엄마: (무척 감동된다) 그래, 그래, 엄마랑 민우랑 heaven 에서  

         만나자.

민우: (기분 좋게 웃다가) 그런데 heaven 에서도 밥먹어?
엄마: 그럼, 그렇겠지. 민우야, 민우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뭐야?
민우: 돈까스!
엄마: 하나님께서 heaven 에서, 돈까스보다도 훨씬 더 맛있는거
        주실거야.
민우: (잠시 생각하다가) 예수님 피하고 skin?!
엄마: (황당하다. 이런경우엔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그래.. 예수님 피하고 살하고 먹을지도 모르지.

민우: 디저트로?

엄마: (꽈당!)


성찬식에서 조금씩 받아먹는 ‘예수님의 피와 살’이

그렇게도 맛있나?
민우의 천국은,

동그랗고 납작한 '예수님의 살'과

조그만 컵에 담긴, '예수님의 피'를
디저트로 맘껏 먹을 수 있는 곳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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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고백, 깊은 생각

긴 생각, 짧은 글 | 2005.01.06 00: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께 하는 짧은 고백들 -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을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님께 드립니다. 등 -을 다시 생각해본다.

내가 믿음이 어릴땐 (지금도 그렇지만),
내가 그냥 그 고백들을 입에서 하는 것으로 내가 그렇게 산다고 착각했었다.

그러나,
찬송을 통해서, 기도를 통해서 드리는 짧은 믿음의 고백들이 진정으로 가슴 깊은 곳에서 부터 나오는 내것이 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진통이 필요한지...

내 인생의 모든 여정이,
내 믿음의 고백들을 진실되게 하는 것이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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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 생각, 신앙

불확실한 미래

긴 생각, 짧은 글 | 2004.12.16 00: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것은,
사람을 매우 유치하게 만드는 것 같다.
무엇이든 붙잡으려하고, 어떻게든 확실함을 확보하려고 한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불확실한 미래가 불안함을 의미하겠지만,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불확실한 미래는 기대를 의미한다.

나는,
내 미래가 불확실한 것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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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Love You, Have a Nice Day!

긴 생각, 짧은 글 | 2004.11.16 00: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아침에 민우를 교실에 데려다 주고는,
꼭 안아주고 볼에 뽀뽀를 해주고 볼에 뽀뽀를 받고나서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합니다.
"Edith, I love you. Have a nice day. See you in the afternoon!'

오늘은 민우를 그렇게 데려다 주고 나오면서 문득...
어쩌면 내가 아침에 일어나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벙하게 있을 때,
하나님께서 내게 그렇게 해 주시고 계시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승아, 너를 사랑한다. 멋진 하루가 되거라! 그리고 오늘 하루도 너와 종일 함께 있을께."

민우는 제가 아침에 꼭 안아주는 것을 하고 나서야 학교 교실로 힘차게 뛰어갑니다.
저도...
매일 아침...
하나님께서 저를 그렇게 안아주시면서 삶의 현장으로 저를 보내신다는 사실을 새롭게 인식했습니다.

민우가 저로 부터 받는 포옹에 힘과 자신감을 얻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하나님의 그 포옹을 받고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정말 저의 하루를 힘차고 신나게 만드는 것이겠죠. 문제는 제가 그걸 자꾸 잊는다는데에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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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가족, 신앙

권리를 위한 삶과 소명을 위한 삶

긴 생각, 짧은 글 | 2004.11.10 00: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전에,
조롱당하시면서... 재판을 받으시는 모습을 묵상해보면,

그것처럼 unfair 한 재판이 또 있을까 싶다.
창조주께서 피조물로부터 공평하지 못한 재판을 받아 사형선고를 받는다... 이런 부조리가 또 어디에 있을까.

그런데,
예수님은 그 순간에 아무런 저항도 없이 그 '부조리한(absurd)' 상황을 받아들이신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는 그 순간의 자신의 '권리(right)'보다 '소명(calling)'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셨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다.

사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문화는 지극히...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문화인 것 같다. 특히 미국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회인가!

그런 사회 속에서,
소명을 위해 권리를 포기하면서 사는 삶은...
또 다른 Contra Mundum (세상에 대항하여) 의 한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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