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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할 긴장과 해결할 갈등

긴 생각, 짧은 글 | 2011.08.24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내가 아주 자주 범하는 실수 가운데 하나는,
유지해야할 긴장과 해결해야할 갈등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때로는 건강한 긴장을 통해서 성숙과 균형을 만들어 나가는데, 그것을 간과한채,
모든 긴장관계를 부자연스러운것으로만 여겨 없애버리게 되면,
제어되지않는 독선만이 남게 된다.

나는 유지할 긴장을 받아들이는 연습과 훈련이 훨씬 더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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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릿빠릿한 나

긴 생각, 짧은 글 | 2011.08.17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나는 대체로 "빠릿빠릿"한 편이다. ^^
이게 꼭 자랑은 아니고... (이 글을 끝까지 읽으면 이게 자랑이 아니라는게 들어나겠지만...)
그냥  내가 그렇다는 것이다.

대체로,
이렇게 빠릿빠릿한 사람 옆에,
다소 느긋하거나 동작이 느리다거나 여유가 있는 사람이 있게되면,
그 느긋한 사람의 성품은 너무나도 자주 '열등함'으로 잘못 비추어지곤 한다.
느긋하거나 여유가 있는 것이 결코 열등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 성품은, 그 성품 자체가 공격적이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의도하지 않게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게되기도 하고.)

그런데,
가끔... 아주 가끔...
강.적. 들을 만날때가 있다.
느긋하고 여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옆에서 그 느긋함이.. '더딘 열등함'이 아니라...
'선이 굵은 깊음'으로 드러나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 앞에서는,
내 빠릿빠릿함이 가벼움으로 비추어지게 된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참 좋아한다. 
그들로부터 정말 많은 것을 배우기 때문이다. 
(앞으로 두어달동안... 그런 분들 몇분을 오랜만에 만나게 될 것 같다.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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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ing Intentional

긴 생각, 짧은 글 | 2011.08.04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리더쉽에서 매우 중요한 덕목은
'의도적'이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한마디의 대화, 짦은 충고, 한번의 손길이나 눈길 조차도,
어떤 의도를 가지고 신중하게 해야하는 것 같다.

즉흥적인것 같아 보이는 행동들이, 깊은 impact를 미치는 리더들을 보면,
오랫동안 의도를 가지고 살아온 것이 몸에 배었기 때문이지,
그저 운이 좋은 것이 아닌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섬기는 사람들을 위해서,
작은 것 하나까지도 그리스도를 닮아갈 뿐 아니라,
섬기는 사람들이,
자신의 작은 말 한마디나 손짓 하나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하는 리더를 만나기는 참 어려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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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리더쉽

무슨 일을 하는가 vs. 무엇을 위해서 하는가

긴 생각, 짧은 글 | 2011.07.29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내가 생각하기에는, 성숙한 사람일수록,
무슨 일을 하는가 하는 것보다 무엇을 위해서 일을 하는가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아닌가 싶다.

간난아이를 키우는 엄마를 생각해보자.
엄마는 간난아이에 대한 무한한 사랑 때문에,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가 하는 것에 큰 관심이 없다.
아, 지금 나는 젖먹이는 일을 하고 싶은데 기저귀를 갈고 있다니... 하는 불평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엄마로서의 identity가 무슨 일을 하는가 하는 것에 있지 않고, 무엇을 위해서 일하는가에 있기 때문에 그렇다.

나는 섬기는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는가 하는 것보다, 무엇을 위해서 하는가 하는 것을 많이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내가 만일 아빠로서,
아... 나는 내 아내가 지금 기저귀를 가는 일을 했으면 좋겠는데... 내 아내는 기저귀를 가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고, 게다가 기저귀 갈때 가장 행복해 하는 것 같은데...
라고 하면서 젖먹이고 있는 아내를 안타깝게 바라본다면...
나는 어쩌면 아빠로서, 그리고 간난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남편으로서... 자격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밤에 아이가 울면...
아빠가 되었건 엄마가 되었건... 졸린몸을 일으켜 세워 젖병을 찾아 물리고, 기저귀를 봐주고, 토닥거리며 재워야 한다.
그것은 그 사람들이... 기저귀를 가는 사람으로 부름을 받았거나, 젖을 먹이는 사람으로 세워졌기 때문이 아니라..
아이를 사랑하는 부모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아이를 더 잘 키우기 위해, 지금 기저귀를 갈아야 할때인지, 젖병을 물려야 할 때인지를 고민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그리고 여러가지 기저귀에 대해서 연구도 하고, 젖꼭지 모양을 유심히 살피는 일들도 해야하지만...
그것은 젖을 잘 먹이는 부모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이다.

스스로를
'사역자'라고 생각하는 후배들에게...
특히 리더들에게...
요즘... 많이 해주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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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절망, 리더의 게으름

긴 생각, 짧은 글 | 2011.05.19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리더의 절망은 따르는 이들에게 폭력이고,
리더의 게으름은  따르는 이들에게 독이다.

리더에게는,
절망의 자유나 게으름의 여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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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리더쉽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사람

긴 생각, 짧은 글 | 2011.04.12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끊임없이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사람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특별히 그것이 지나쳐서 자신과 주변에 파괴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못한 채, 과대평가한 자신으로만 보고 있기 때문에,
그 자신을 망가뜨리고 있는 것을 보기도 한다.
그 사람이 특별히 내가 아끼는 사람이라면 그러한 모습을 보는 것이 몹시도 마음이 아프다.

그 사람이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볼 수 있도록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

tentatively 정리하고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나는 절대로 그 사람이 스스로 자신을 정확하게 보게할 능력이 없다. 하나님께서만 하실 수 있는 일이다.

2. 특별히 하나님의 '은혜'만이 과대평가라는 보호막으로 자신을 보호하고자하는 뒤틀려짐(distortion)으로부터 그 사람을 끄집어 낼 수 있다.

3. 그러나 그 과정에서, 그 사람과의 정직한 대화, 사랑의 포용, 질책이나 충고 등이 역할을 할 수 있다.

이 내용에서,
1과 2는... 어떤 의미에서 내게 많은 위안을 준다.
결국 내가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3의 항목을 생각해보면,
참 길이 막막하다.

어떤때 그 사람과 정직한 대화를 해야 하는지, 어떤때에는 지적보다는 포용을 해야 하는지,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어떤 tone으로 충고나 질책이 필요한건지 등등...
참 많은 지혜가 필요한 것 같다.

그러나 major battle이 3의 항목에 있지 않고, 1과 2의 항목에 있는 것이라면,
비겁한 회피일수는 있겠으나,
3의 항목을 접하면서 느끼는 답답함이나 frustration을 덤덤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도 성장하고 성숙해 나가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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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뒤의 사람을 발견하는 일

긴 생각, 짧은 글 | 2011.03.23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유난히 극단적인 표현을 많이 사용하는 사람이라던가,
특정한 생각의 흐름을 반복해서 강조하는 사람,
혹은 다소 치우쳐 보이는 사상이나 믿음의 이야기에 '올인'해서 목청을 높이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일은 참으로 쉽지 않다.

이런 경우 대개는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대화가 매우 어렵고,
그저 그 사람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아주 극단적으로 위와 같은 성향을 보이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더라도,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선호와 기호를 갖고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때, 그 사람의 언어 뒤에 자리하고 있는 그 사람의 필요와 생각, 고민과 갈등을 알아내는 일이,
사람을 섬기는데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것 같다.

가령,
유난히 신비주의적인 이야기를 반복해서 하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아니면 해결하기 어려운 삶의 어떤 문제가 있을 수도 있고,
유난히 세속적 성공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며 그것을 공격하는 사람들에게는, 그것과 관련된 상처가 있을 수도 있다.

어떤 이의 말을,
그저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그것에 대해 논리적 반박을 늘어놓는 일은,
그 사람을 돕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자신의 (치우친) 논리 뒤로 도망가 숨어버리도록 하는 일일 것이다.

사람을 대할때,
superficial하게 대하지 않고, 진지하게 대하고,
오래 참고,
그 영혼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면 참 좋겠는데...
나는 그게 참 어렵다. 
너무나도 성숙이 답답하도록 더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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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랖 넓은 사람의 어리석음

긴 생각, 짧은 글 | 2011.03.17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오지랖이 넓은 사람은,
자신이 관심을 가지는 일들이 많아,
늘 바쁘다.
그리고 자주 무거운 책임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할 일이 아닌 것을...
나라도 때워야 하겠다며 달려드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라는 생각을 요즘 깊이하고 있다.

자주 나는 그것을 passion이라고 착각해왔으나,
그저 어리석게 오지랖 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control-freak으로, 내가 control을 잡고 있으려는 악한 생각에 근저에 깔려있을 수도 있다.

다른 이의 짐을 져주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나,
다른 이의 일을 해주는 것은 효과적이지 않은... 악한 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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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리더쉽

조언을 받아들이기

긴 생각, 짧은 글 | 2011.02.17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총무간사로 섬길때, 여러가지 어려운 것들이 있었지만,
가장 어려웠던 것 가운데 하나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내게 '조언'을 한다는 것이었다.
정말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많은...

생전 처음 본 사람이 다짜고짜 코스타란 이런 것이라며 일장 훈시를 늘어놓으시기도 하고,
한시간씩, 전화를 통해서 일방적인 '조언'을 들어야만 했던 적도 있었다.
정작 본인은 중학교때 반장해본 이후로는 한번도 리더쉽을 행사한적이 없으면서, 리더쉽에 대해 나름대로의 강의를 해주시면서 조언을 해주시기는 분도 있었다.
코스타의 10년동안 나아갈 방향을 혼자서 쫘악~ 제시해 주시는 분도 있었고,
난데없이 꾸중을 들은 적도 있었다.
하나님의 뜻을 보았다며 "신령한" 얼굴로 접근하는 분도 계셨다.
자신의 경험만을 절대화하여, 내 상황 혹은 코스타의 상황에 자신의 경험을 적용하라고 강요하시는 분도 많았다.

물론 그 가운데에는,
내가 섬기는 내용과, 나를 잘 이해하고 있고, 지금 코스타의 상황등을 잘 읽으며 주시는 적절한 조언들도 있었지만,
대략 80% 정도의 조언은 out of context의, (죄송하지만)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조언들이었다.

이미 우리가 다 마음에 두고 계획하여 진행하고 있는 일이 있었는데, 바로 그 일이 꼭 필요한데 계획을 하지 않는다며 꾸중(?)을 들어야 했던 경우도 있고,
5년쯤 전에 이미 고민과 정리가 다 끝나서 정리가 된 일들에 대해 심각한 얼굴로 매우 새로운 이슈라며 얘기해주시는 분들도 있었다.
코스타가 맞닥들이고 있는 문제의 핵심은 그게 아닌데, 자신이 주장하는 바가 제일 중요한 거라며 목청을 높이시는 경우도 많았다.

그럴 경우에는...
대개 참 애매하고 어색했다.
소위 '내부사정'을 시시콜콜 다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혹시 그것을 대외적으로 share할 수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설명하려면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드는 데다,
그렇게 설명을 해도 조언을 해주시는 분이 이해를 하시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렇다고 그냥 듣고나서는 별다른 반응 없이 나 혼자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보내기에는, 조언을 해준 그 사람에게 너무 미안했다.

어떤 순간에는,
내게 쏟아지는... 그 out of context의 엄청난 조언의 홍수 속에서...
한 두어주만 잠수타면 참 좋겠다...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전화를 받거나, 이메일을 여는게 두려운적도 있었다.
(어떤 어르신들은, 자신의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역정을 내시기도 하셨다. -.-;)

그렇게 out of focus, out of context의 조언을 들을 때면,
그냥 '인자한 얼굴'을 하고 그 사람을 보면서..
속으로는 별의별 생각을 다 했었다.
혼자 애국가 가사를 몇번씩 외기도 하고...
(언젠가... 어떤분과 전화하면서는 시편 23편을 한 30번쯤 암송했던 것 같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분들의 그 모든 조언들 속에서 소중한 것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비록 out of focus, out of context의 조언이지만, 그 조언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내게 하시고 싶은 말씀을 하시는 것들을 보게되는 경우가 있었다.
혹은, 그 사람이 그렇게 조언을 남발해야만 하는.. 그 사람의 personal need/상처를 바라보게 된 경우도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그렇게 내게 와서 조언을 해줄 정도록 정성과 열정이 있는 그분들의 마음을 감사히 보게되기도 하였다.
아주 황당한, 거의 말도 되지 않는 조언을 듣게되는 경우에도, "하나님께서 정말 급하셔서, 이렇게 말도 안되는 조언을 통해서라도 내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신가보다" 하며 귀를 기울이게 될때도 있었다.

물론, 내가 간과했던, 중요한 point를 깨닫거나 재확인하는 경우도 있었다.

늘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건강하면 건강할수록, 많은 분들의 조언들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뽑아내는 일들이 더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하였다.

지금 나는...
얼마나 다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내게 들려주시는 음성을 듣는 일들을 잘 하고 있는걸까?

언제 좀 더 성숙해지면,
그저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런 일들이 이루어지게될지도 모르겠으나,
적어도 지금은... 많은 노력으로 주의를 기울여야... (내 죄된 본성에 휩쓸리지 않도록 하나님을 의지해야)...
주변 사람으로부터 소중한 이야기들을 소화시키게 되는 것 같다.

...

제게 조언을 해주시는 모든 분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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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dership is an ART

긴 생각, 짧은 글 | 2011.02.10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Leadership is an art"

Herman Miller의 CEO를 지냈고,
헌신된 그리스도인으로 알려져 있는 Max DePree의 책 제목이다.

정말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여러 leadership을 경험하면 할수록,
내가 leadership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practice 하는 경험을 갖을 수록...
정말 그 말이 맞다는 생각을 참 많이 하게 된다.

논리적으로 설명해서 되는 일도 아니고,
방법론을 잘 풀어준다고 다 되는 일도 아닌 것 같다.

어떤 사람이 IQ가 300쯤 되고,
자신의 의도대로 자신의 행동을 바로 바로 control 할수도 있고,
순발력도 대단하고....
뭐 그렇다면 그 사람에게 가르쳐서 될 수 있으려나...

마치,
운동신경이 상위 0.000000001%에 들도록 좋고,
체격 조건도 1세기에 나올까 말까 하게 좋고,
100m를 8초에 뛰고,
폐활량은 돌고래를 능가하고,
게다가 순간 판단력도 좋고,
자기 관리 철저하고,
머리도 엄청 좋은 사람이라면...
그 사람에게 이론적으로 수영과 같은 운동하는 방법을 설명해서 그 사람이 운동을 잘 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과 마찬가지 논리이다.

그러나,
물론 그런 사람은 사실상 없으므로...
Leadership은 art가 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리더는 정말 길러질 수 없고 타고나는 것인가.
내 conviction은 점점... 리더는 길러질 수 없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리더를 주시도록 더더욱 기도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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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리더쉽

리더쉽의 defect

긴 생각, 짧은 글 | 2011.01.18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리더는... 그 사람의 결정과 방향이 많은 이들에게 장기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차원에서 그 결정에 신중해야 한다.
그 사람이 위대하거나 대단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에게 위탁된 영향력의 nature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런데, 어떤 리더쉽이든,
그 리더쉽이 사람인 이상, 한계와 결점(defect)이 있을 수 밖에 없다.
문제는 그 리더쉽의 결점이, 많은 사람들에게 증폭되어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지난 주말 간사모임에서 나는,
내 리더쉽의 단점이 가져다주었던 나쁜 영향들을 매우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

후배들에게 참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그것에 머무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후배들의 몸부림과,
그 움직임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감사했다.

지금으로부터 10년쯤 전으로 나를 돌려놓는다면,
나는 어떻게 다른 모습으로 KOSTA와 간사들을 섬길 수 있을까?

내게 다른 setting에서 주어지는 리더쉽으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무거운 부담과 미안한 마음, 
소망과 감사가 뒤섞여 집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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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위적 부양책

긴 생각, 짧은 글 | 2010.12.14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공동체를 섬기면서,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혹은 어떤 clear한 message를 전달하기 위해서,
인위적인 강조를 사용한다거나... 인위적인 boost-up을 사용하면,
반드시 그것에는 그것에 따른 부작용/반작용이 따르는 것 같다.

인위적 경제부양책이 단기적으로는 경기를 부양시키는 것 같아도 결국 그 경제 자체를 취약하게 만들수 있는 것 같이 말이다.

인간적인 열정은 반짝 빛을 보는듯 해 보일 수 있으나,
궁극적으로 열매를 여는 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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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한계를 공개하는 리더 (Transparent Leader)

긴 생각, 짧은 글 | 2010.10.29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많은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리더일수록,
자신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자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잘 보여줄 필요가 있지않을까 싶다.

많은 이들이 자신을 따른다고 해서,
우쭐해 져서도 안되고,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어 그들을 실망시킬수도 있다는 염려를 지나치게 가져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 그렇게 자신의 한계를 드러낼 때,
1. 사람들은 마침내 그 사람 너머에 있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가치'에 주목하게 된다. (혹은, '하나님'에 주목하게 된다.)
2. 사람들은 자신이 그 리더의 어떤 면을 취하고 어떤 면을 버릴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그 follower들이 더 많이 성장할 수 있게 된다.

아주 많은 사람들을 만나온것은 아니지만,
이런 리더에 아주 근접한 사람을 몇사람 봤던 것 같다.
그런 분들들을 알게 되어 정말 한없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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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할 수 있는 일, 나도 할 수 있는 일

긴 생각, 짧은 글 | 2010.10.15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나만 할 수 있는 일은, 드러나지 않게 숨어서 하고,
나도 할 수 있는 일은 드러내놓고 사람들과 나누고...

섬기는 리더쉽에서 중요한 요소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나는 자꾸만 반대로 하고 싶어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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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CEO

긴 생각, 짧은 글 | 2010.10.04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지난 금요일,
HP의 새 CEO가 발표되었다.
신문 기사에 어떻게 그려졌는지, stock price가 어떻게 변동이 있었는지 그런 이야기들이야 publically 다 알려진 것이겠지만...

새 CEO가 SAP의 CEO 출신이라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때, 적어도 내가 만난 hp labs 사람들의 반응은 대충 다음과 같았다.

"제기랄"
"내 그럴줄 알았어"
"어휴, 세상에..."
"I don't care", "whatever"
"우린 망했다."

아니,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까지 부정적인 반응이 일관되게 나올 수 있을까.

새로운 CEO가 어떤 일을 어떻게 할지는 모르지만, (나도 뭐 별로 크게 기대하는 쪽은 아니다. -.-;)
적어도 회사 사람들의 이런 반응들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세계 최고의 엔지니어링 제품을 만들어낸다는 자부심에 일했던 예전 hp labs의 연구원들에게는,
Wall street의 주가 몇센트 더 올리기 위해 연구비를 삭감하고, 직원에게 주는 혜택을 줄이고, 직원을 해고하는, 그러면서 자신은 수천만달러의 연봉을 챙기는, 소위 'money guys'들을 리더로 받아들이는 것이 정말 힘든 일인 것 같다. (어떤 의미에서, 더 이상 CEO들을 '리더'로 생각하고 있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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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쉽... self-realization

긴 생각, 짧은 글 | 2010.09.30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조직/모임/공동체를 힘들게 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없는 리더쉽을 있다고 착각하며 주장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것 못지않게 조직/모임/공동체를 정말 힘들게 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있는 리더쉽을 없다고 부인하며 피하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나 자신에게, 지금 이 시점에 주어진 리더쉽은 어떤 것일까.
나를 과대평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힘을 얻어 나 자신도 나를 과대평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감당해야할 리더쉽을 회피하며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성경묵상을 하며, 회사 생활을 하며, 성경공부를 섬기며, 세상을 바라보며, 나 자신을 돌이켜보며...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해 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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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로 뛰어야 할 때와, 선수를 키워야 할 때

긴 생각, 짧은 글 | 2010.05.25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리더쉽에서 가장 어려운 것 가운데 하나는,
언제 내가 선수로 뛰어야 하는가 하는 것과, 언제 내가 뒤로 물러나서 후배들이 잘 뛰도록 격려하며 후배를 키워야 하는가 하는 것을 구분해내는 지혜가 아닐까 싶다.

내게 참 많이 부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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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점을 드러내는 섬김

긴 생각, 짧은 글 | 2010.01.22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최근 여러가지 일로 힘들어하시는 어느 선배님과 전화 통화를 했다.

그 선배님이 자신의 심경을 담은, 꽤 emotional한 이메일을 지난주에 보내셨고,
내가 그 이메일에 역시 꽤 emotional하게 답을 했었다.

그 선배님께서 내게...
자신이 여러가지 일로 많이 마음이 무겁고 힘들어서...
그 이메일을 쓰던 날 밤에 많이 감정이 격해져 있었다, 그 이메일을 보내고 많이 후회했다며 내게 걱정하지 말고 힘내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러면서 자신이 겪고 있는 어려운 상황, 감정적인 어려움, 내부에서 해결되지 못한 anger에 대한 이야기들을 해주셨다.

지난 15여년동안,
정말 내게 따르고 본받고 싶은 모범이 되어주신 그 선배님의 그 말씀을 들으며 가슴이 뭉클해졌다.

나같은, 참 보잘것 없는 후배에게, 자신의 부족한 면을 투명하게 보여주시면서...
이해를 구하시는 모습이 정말 감사했다.

나는 오히려 내가 그 선배님께 걱정을 끼쳐드렸을 것 같아 염려가 되어...
죄송하다... 걱정 하지 마시라... 열심히 잘 하고 있다... 등등의 말씀을 드리려 했는데,
그 선배님께서는 그렇게 선수(?)를 치신 것이다.

그 선배님의 따르고 싶은 또 다른 모습을 경험했다.
나는... 정말...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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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능한 리더와 성숙한 리더

긴 생각, 짧은 글 | 2009.12.16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성숙한 리더 = 유능한 리더 + 겸손함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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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용력을 잃어버린 리더는...

긴 생각, 짧은 글 | 2009.10.30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포용력을 잃어버린 리더는,
자기살을 뜯어먹는 맹수와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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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rated

긴 생각, 짧은 글 | 2009.09.28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존경하던 신앙의 선배가,
최근 많이 망가지는 모습을 보면서...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어떻게 그분이 그렇게 되었을까. 정말 내가 거의 20년전 부터 가장 존경하던 분중 한분이었는데...

여러가지가 있지만,
이분은... 자신이 정말 중요한 사람이라고 확신하고 계신것 같다.

물론,
그분은 매우 "중요한"분이시다. 그러나 자신이 중요함을 너무 깊이 인식하신 나머지... 자신의 생각 이외에 다른 것을 받아들이시지 않는 데 문제가 있다.
그런데 그 생각이 비뚤어지거나 잘못 되었을때 그것을 바로잡을 어떤 장치가 그분 내부에도, 그분을 둘러싼 주변 환경에서도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분은 스스로를 overrate 하고 계신 것이다.

최근...
나의 참 모습과, 나의 주변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내 모습을 비교해보면서...
내가 아주 심하게 over-rated 되어 있음을 발견하고 있다.

실제 내 모습보다 사람들이 나를 더 괜찮은 사람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나도 자주  내 스스로를 overrate 하는 우를 범한다.

이런 내게,
진실한 꾸중이나 충고를 해주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그저 의미없는 out of context의 잔소리/충고를 남발하는... 그래서 오히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이 더 힘든... 그런 사람들과,
내게 좋은 이야기만 해주는 사람들에의해 내가 둘러싸여지고 있는 느낌이 든다.

지난 1년간,
내게 매우 의미있는 방식으로 내가 내 한계를 벗어나도록 나의 잘못을 지적해준 사람들을 꼽아보자면...
아무리 많이 생각해도 2-3사람 정도이다!
이런 상태라면...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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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과 욕심

긴 생각, 짧은 글 | 2009.09.23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열정과 욕심의 차이가 무엇일까.
얼핏 생각하면, 꽤 clear cut이 있을 것 같은데,
실제로는 그렇게 명확하지 않아보이는 것들이 많음을 본다.

건강한 열정으로 시작했다가도,
어느새 그것에대한 집착과 욕심으로 변질되는 것도 많이 보게되고...

열정으로 가장된 욕심으로 살아가는데도, 자신이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을 보기도 한다.

어떤이가,
열정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다가,
막상 그것이 열정이 아닌 욕심임을 나중에 알게 되면,
얼마나 그 자괴감이 클까.

내가 열정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정말 욕심이 아닌 건강한 열정임을 어떻게 담보할 수 있을까.

열정과 욕심의 경계에서 무너지는 사람들을 보며,
내 삶을 두려운 마음으로 바라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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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쉽에 있어...

긴 생각, 짧은 글 | 2009.09.16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건강한 리더쉽에 있어 가장 어려운 부분 가운데에는,

보잘것 없고 형편없는 (혹은 보잘것 없고 형편없어 보이는) 사람들을 멸시하지 않는 것.
무책임한 사람들에 대하여 큰 인내와 포용을 갖는 것,
더디게 성숙하고 성장하는 사람들과, 묵묵하게 함께 해주는 것,
자신이 somebody라고 생각하는 허영에 가득찬 사람들 앞에서도 여전히 겸손한 자세를 유지하는 것,
efficiency를 추구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때, 그것을 적절히 제압할 수 있는 것...

등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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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 곁에 있는 고양이

긴 생각, 짧은 글 | 2009.08.31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어쩌다가,
고양이 새끼 한마리가 사자와 친구가 되었다.

사자의 용맹스러운 모습에 고양이는 매료되었고, 금새 그 사자와 같이 되고 싶어했다.
사자는 친절하게 그 고양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주었다.

사자와 함께 하면서 고양이는, 늘 사자가 사냥해오는 짐승의 고기 살점을 조금씩 뜯어먹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고양이는 자신이 사자가 아닌 고양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되었다.
사자가 물어온 짐승의 고기를, 잔뜩 폼을 잡고 물어 뜯으며 마치 자신이 그 사냥을 한 것같이 행동했다.

사자가 사냥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마치 그렇게 사냥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착각을 했다.
사자에게, 자주.. 함께 힘을 합쳐 사냥 계획을 짜자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러나 사냥에 관한한, 고양이는 그저 고양이었다. 겨우 다람쥐 정도를 잡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사자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질수록, 고양이는 자신이 사자인양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었다.

---

나는,
이와 같은 상황에서...
사자의 잘못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사자는 일찍, 고양이에게... "너는 사자가 아니야"라고 일러주었어야 했다.

리더쉽은 때로,
자신을 따르는 사람에게, 자신과 같이 되지 말도록 권유하는 것을 포함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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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dership is an Art

긴 생각, 짧은 글 | 2009.08.10 06:2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Max DePree가 쓴 책인데,
이 책의 제목처럼... leadership은 art라는 생각을 최근 더 많이 하게 되었다.

어떤 의미에서 강의를 통해서 가르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사람의 being의 종합적인 것에서 나오는 art 라는 것이다.

나처럼 그림을 그리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어려움을 겪는 사람처럼,
어떤 이들은 아무리 설명하고 도와주어도 그 리더쉽을 거의 픽업하지 못하기도 하고...

또 별로 많은 훈련이 없이도 마치 어린 독수리가 본능적으로 창공을 향해 나는 것 같이,
쉽게 리더쉽을 픽업하는 일을 보기도 한다.

삶과 사역의 많은 영역에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세우시는 일이 참 크지만...
리더쉽의 부분은 바로 그런이유로 더 하나님께서 '보내주심'에 기대하는 요소가 큰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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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하여 실망하기

긴 생각, 짧은 글 | 2009.08.06 06:27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막 신앙에 눈을 떴을때...
어쩌다 내가 존경하던 사람에 대하여 실망하면 깊은 실의에 빠졌었다.
아... 저 사람이 저럴수가...

조금씩 신앙이 성숙해가고 있을때...
어쩌다 내가 존경하던 사람에 대하여 실망하면 회의에 빠졌었다.
아니..저 사람마저 저러면... 도대체 믿을 수 있는게 무엇이란 말인가.

그 후 좀 더 신앙이 자랐을때...
어쩌다 내가 존경하던 사람에 대하여 실망하면 sarcacism에 빠졌었다.
그래... 저 사람도 그럴줄 알았어.

아직은 갈길이 멀긴 하지만, 
요즘 내가 존경하던 사람에 대하여 실망하면 소망을 갖는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내가 저렇게 훌륭한 분의 한계를 볼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시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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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많은 것을...

긴 생각, 짧은 글 | 2009.08.04 06:04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자주,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내가 가진 모든 contents를 쏟아부어주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이것만 더 이야기해주면 이 사람들이 제대로 설 수 있을 것 같은...
이것만 더 가르쳐 주면 빠져있는 문제로부터 이들이 해방될 수 있을 것 같은...

그러나,
때로 그런 이들을 위해 사랑을 가지고 많은 것을 공급해 주는 것이
오히려 그들에게 독이될 수 있음을 배운다.

결국 스스로 설수 있는 기회를 앗아가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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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을 섬기는 일

긴 생각, 짧은 글 | 2009.05.07 06:22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가끔은, 나보다 나이많은 '어른'을 내가 섬겨야 하는 경우가 있다.
그 어른이 물론 존경받을만 하거나, 나를 잘 이끌고 인도해줄 수 있는 경우라면 내가 기꺼이 그 관계를 누리며 지낼 수 있으나...
그 어른을 내가 '이끌어야'하는 경우라면, 이야기가 좀 다르다.

어른을 이끌어야 하는 경우에도 크게 두가지의 경우가 있다.
첫번째는 그 어른이 나로부터 '배우려는' 자세가 있을 경우. 이럴 경우에는 내가 그분을 존중하고 겸손하게 섬기면서 무례하지 않게, 그러나 때로는 단호하면서도 직설적으로 함께 할 수 있다.

그러나 두번째 더 어려운 경우에는 그 어른이 나로부터 배우려는 자세가 없거나, 자신이 나이가 많기 때문에 우월하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자신을 과대평가하거나, 혹은 나이어린 사람으로로부터 인도함을 받는 것을 '위협'으로 느끼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엔 참 여러가지로 힘들다.

많지는 않지만 내가 이런 두번째 경우에 빠졌을 경우에는, 나는 그냥 손을 들어버렸던 것 같다. 이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라고 이야기하며 포기했다.

최근,
내가 존경하는 어느 선배님이 이런 상황에서 어른을 겸손히 섬기면서, 지혜롭게 대화를 하면서, 결국은 그 어른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어른에 대한 존경/존중과, 지키려는 진리에 대한 확신, 그것을 겸손하게 present 하는 자세, 두려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모습, 그리고 결코 사람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설득하고 매달리고 품고 사랑하고 기도하는 자세...

하나님을 사랑하며 사는 것은,
열정만으로 이루어 지는 것도,
테그닉으로 이루어 지는 것도,
연륜으로만 만들어 지는 것도,
지식으로 세워지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사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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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과 같은 사람

긴 생각, 짧은 글 | 2009.04.07 06:33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최근, 한국에서부터 알고 있는 어떤 선배가 크게 실망스러운 일을 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이 선배를 A 선배라고 하겠다.)

A 선배보다는 후배이지만 나보다는 선배인 B 라는 선배가 그 A 선배의 잘못을 수습하면서 A 선배와 대화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나는 B 선배와 이메일과 전화로 연락하면서 어떻게 A 선배와 이야기를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해 왔는데...

최근 며칠동안 B 선배가 전화도 잘 받지 않고 이메일 연락도 뜸 한 것이었다.

지난주말... B 선배가 내게 이런 이메일을 보내왔다.

오승 형제님,
그냥 몇 자 나눌 것은...
사실 A 선배님은 제겐 태산과 같은 큰 분이셨는데
그 산이 무너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들면서 영적 침체랄까 그런걸 겪고 있습니다.
아무와도 대화하고 싶지 않은 그런 심정 말입니다...
전화 응답을 제대로 못드려서 미안합니다...
정말... 지금 심정은... 그렇습니다...

나는 B 선배의 이 이메일을 보고 한참을 울었다. 정말 한참을 주체할 수 없는 감정으로 컴퓨터 모니터를 보며 흐느꼈다.

그리고...
나는 B 선배에게 이런 이메일을 보냈다.

B 선배님,
제게는 B 선배님께서 태산과 같은 분이십니다.
B 선배님께서 힘들어하시는 그 모습이 오히려 제겐 큰 용기와 위안이 됩니다.
늘 그렇게 제게 태산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도 역시 그 A 선배로 인해 몹시 마음이 무거운 상태로 몇주째 보내고 있지만...
그러나 A 선배를 보며 그렇게 아파하는 B 선배의 마음에서 소망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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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전 사령관과 훈수쟁이

긴 생각, 짧은 글 | 2009.02.20 06:17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Spiritual leadership을 가지고 사람들을 섬기다 보면,
자신이 이런 저런 결정을 하고 자신이 섬기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결정을 따르도록 도우며 함께 나아갈일이 많이 있게 된다.

그런데,
적어도 나는, 너무나도 자주...
그러는 과정 속에서 내가 섬기고 있는 사람들에게 훈수를 두고 있는 사람으로 전락해 버리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훈수를 두는 사람은, 그 경기의 승패에 큰 관심이 있다거나, 그 경기에 임하는 사람에 큰 관심이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저 훈수를 두는 재미를 즐기는 것이다.
또한 훈수를 두는 사람은 그 경기의 결과에 대하여 책임을 지지 않는다.
훈수를 두는 사람은 자신이 어떤 수를 읽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 하는 것에 중심 생각이 있다. 다시 말하면 매우 자기 중심적인 것이다.

그러나,
야전 사령관은 다르다.
야전 사령관은 현장에서 함께 땀흘리고 함께 뛴다.
그 전투의 승패에 궁극적 책임을 진다. 그 전투에 임하는 사람에게도 깊은 관심을 쏟고, 그 사람들이 가져오는 크고 작은 승리와 패배의 소식에 깊이 귀를 기울인다.
야전 사령관은 자신이 어떤 일을 성취할 수 있느냐 하는 것보다는 이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는가 하는 것에 더 큰 관심이 있다.

내가 사람들과 모임들을 섬기면서,
훈수쟁이가 아닌 야전 사령관이 되도록 지켜주는 핵심적인 key는 과연 무엇일까.

나는 요즈음, 그 핵심을 '기도'라고 생각한다.
영적인 부담이 너무나도 크고 무거워서 그 영적 부담만으로도 잠을 이루지 못하면서 하는 기도.
예수님께서 하셨던 것 처럼, 땀이 피가되도록 절실하고도 간절하게 하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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