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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극복해내기

긴 생각, 짧은 글 | 2012.03.15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사람들이, 자신을 극복해내기위한 노력을 하는 것을 자주 접한다.
(대표적으로, 내가 그런 노력을 많이 하는 사람중 하나이다. ^^)

그런데,
너무나도 자주,
자신이 이미 익숙한 것을 통해서 그 목표를 이루려고 하는 것을 본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게으름을 극복해보겠다고 결심을 했다고 치자.
그리고는 그것을 위해서, 자신이 평소에 하던 말씀묵상도 더 열심히 하고,
기도도 더 열심히 하고,
뭔가 자신이 하던 모든 것들을 더 '열심히' 함으로써 그것을 해결해보고자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극복해야하는 모습이 자신에게 있다면,
그것은 이미 자신이 가지지 않은 어떤 것을 공급받아야만 나아질 수 있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앞의 예를 들어 다시 말하자면,
이미 자신이 하던 일들 - 말씀 묵상이 되었건, 기도가 되었건 - 을 더 열심히 함으로써 그것을 극복해 내야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자신이 깨닫고 있지 못한 것이라던가, 자신이 소유하지 못한 혹은 충분히 내면화하지 못한 어떤 가치를 수용함으로써 그 한계를 극복해내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의미에서,
기독교 신앙이 이야기하는 extra nos 의 개념은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내 안에는 선한 것이 없다. 그것은 밖으로부터 와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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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

긴 생각, 짧은 글 | 2012.03.02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요즘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한 예비선거가 진행되고 있는데, 그래서 후보 토론회 방송과, 그것을 보도하는 뉴스를 많이 접하게 된다.

내가 요즘 인상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후보들이, 특히 Mitt Romney가 상대 후보가 자신을 비판하는 이야기를 할때 짓는 표정이다.
이 표정이 정말 마음 에서 우러나는 표정일까?
물론 아닐것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약간 smile 하는 표정, 그러나 진지한 표정을 지음으로써, 이를 통해서 많은 긍정적인 message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Romney라면, 특히 Gingrich 같은 사람이 말도 안되는 x소리로 떠들고 있을때에는, 표정이 울그락 불그락 해질 것 같은데... ^^

한편 가식을 싫어하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다른 이들에 대한 배려, respect 라는 자세를 가지는 의미에서,
그리고 또한 궁극적으로 내 message와 내 의사를 제대로 전달한다는 전략적인 차원에서,
내 shallow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는 것은 성숙의 표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Something I need to work on really hard...

참고로 나는 Romney의 지지자는 전혀 아니다. 그리고 Romney가 매우 성숙하다는 식의 argument를 하는 것도 아니다. Romney가 얼마나 '성숙한' 사람인지는 알 수 없으나, Romney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성숙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가 매우 잘 refine된 정치가이기 때문일 것이다.

USA today에 나오는 candidate match game을 해보면, 나는 도저히 공화당 후보를 지지할 수 없는 사람으로 나온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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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Being Judgemental

긴 생각, 짧은 글 | 2012.02.09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라도... 나 같은 사람 옆에있기 좀 불편하게 느낄 것 같다. -.-;

물론, 그럴만한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것은, 무엇보다도 내가 매우 'judgemental'하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다른 사람들을 늘 판단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일을 하다보면, (특별히 어떤 종류의 일은 더...)
적어도 현명한 판단(judge)가 요구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내가 관여하고 있는 일들은 대체로 그런 성격이 많이 요구되는 것 같다.
분석적인 사고, 전략적 사고, 그리고 사람에 대해서도 그 사람의 장단점을 잘 파악해내는 것 등.

그렇지만 현명한 판단(judge)를 가지는 것과 판단하는 성향(judgemental)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다른 일인 것 같다.

최근에는,
내 안에서 그 judgemental한 성향이 나를 많이 해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주여...

@ 혹시 저 같은 사람에게 도움 될만한 책, 조언, 꾸지람, 한말씀... 주실 분 있으면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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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의 기준

긴 생각, 짧은 글 | 2012.02.08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요즘 내가 생각하는 성숙의 기준.

1. 사려 깊음
자기 중심성에서 얼마나 벗어났느냐 하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잣대

2. 참을성
자신에 대해 얼마나 죽었는가를 나타내는 잣대

3. 겸손함 
자신의 객관적인 위치를 파악해내는 지혜

4. 성장
시간이 지남에따라, 변해가는 힘!

===

어른이 되어서도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을 보면 참 답답하고 안타깝다.
그런데,
젊은 사람을 보면서, 아... 저 사람이 나중에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저런 모습으로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되면... 참 깊은 절망감을 느낀다.

성숙의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젊은 사람을 보는 것은, 참으로 숨이 막히는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보고도 그렇게 숨막혀 하시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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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긴 생각, 짧은 글 | 2012.01.24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중학교 2학년때,
서울 교육청인가 어디에서 학교별로 몇명을 뽑아서, 주말에 '주말 과학학교' 비스무레한것을 한적이 있었다.
나는 우리학교 대표(-.-;)로 거기에 참석할 기회를 얻었다.

그곳은, 정말 멋진 곳이었다!
물론 조금 다른 애들도 있었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Nerd들이 많았다!
나 역시 Nerd 였던 차라... Nerd의 언어로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이 정말 좋았다.
그곳에서 '과학고등학교'라는 것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과학고 입학시험을 볼때는, 서울에 있는 학생들이 경기과학고 시험을 볼 수 있도록 허락되었던 첫해였다.
나는 간당간당 아슬아슬하게 합격하였고 -.-;
정말 '이상한' 애들이 함께 모여있는 곳에 가게 되었다.
지금은 과학고에 공부잘하는 애들이 가는 곳이 되었지만, 그때는 공부잘하는 애들이 가는 곳이라기 보다는, 별난 애들이 가는 곳이었던것 같다. 아, 물론 그중에는 공부 잘하는 애들도 있었지만. ㅎㅎ  우리때는 IQ test 비슷한.. 창의력 검사라는 것을 입학시험에서 보았는데, 나중에 알게된 것은... 나는 다른 필기성적으로는 불합격 수준인데, 그 창의력 검사 점수가 그나마 좀 높아서 겨우 합격한 case 였다.  -.-; 

과학고에서 나는, 다른 '천재들'에 기가 눌려 지내긴 했었지만...
마음껏 Nerd가 될 수 있는 것이 참 좋았다.
별난 애들과 함께 별난 이야기를 나누고, 별난 짓도 해보고...

-1의 square root를 i 라고 쓰고 complex number (복소수)라고 하듯이,
1을 0(zero)로 나눈 것을 k 라고 쓰고, strange number (복기수)라고 정의하고 수학을 풀어보자는 황당한 시도를 해보기도 했고 (물론, 실패였다. ㅋㅋ)
한밤중에 친구들과 함께 학교 computer실에 몰래 들어가서, 영어 사전을 뒤져가며.. 그 당시 영어로 되어있던 adventure game을 밤새워서 깨보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거의 아무런 생각없이...
K학교에 시험을 봐서 들어갔다.
(그때는, 그 학교도 그렇게 유명하지도 않았다. 내가 2회 였으니까... 뭐... 신생 지방단과대쯤 된다고나 할까. ㅎㅎ)
우아... 대학 시절은 정말 재미 있었다!!
내가 하나도 이상한 사람이 아닌... 그런 세상이었다!
시내버스 속에서, 양자역학 이야기를 친구와 열나게 이야기하다가, 다른 사람들의 눈총을 받기도 했고,
어드벤처 게임을 만들어 보겠다고 그 당시 unix ternimal 앞에 앉아서 ForTran으로 밤새워 프로그램을 짜는 일도 했었다.
전공 공부를 하는 것이 너무 재미 있어서, 재미로 연습문제를 풀때도 있었다.

그렇게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을 다니고,
대덕 연구단지 모 연구소에 연구원으로 있다가,
Nerd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M 학교에서 아주 오~래~ 공부하게 되었다. -.-;

말하자면, 15살 이후부터 지금까지 30년 가까이 되는 시간동안,
나는 Nerd가 되도록 교육받아왔고, Nerd인 것이 편했고, Nerd와 함께 있는 것이 좋았다.

세상에는 모두 나와 같은 사람들만 가득하고,
다만... 그 속에서 어려운 수학문제를 좀 더 잘 푸는 사람과 좀 덜 잘푸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뭐 이런 식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러다보니,
워낙 나와 비슷한 종자들하고만 놀다보니...
세상 사람들이 '정상인' 이라는 생각을 하는게 나로선 참 힘들다. (솔직한 고백이다.... 쩝.)

어떤 사람들은, 수학, 물리를 재미있어 하지 않는다더라...
어떤 사람들은, 뭐 새로운 것을 뚝닥 뚝닥 만들어 내는 것에 흥미가 없다더라...
어떤 사람들은, 멋진 옷을 입는 것을 즐긴다더라...
어떤 사람들은, 논리 보다 '필'이 훨씬 더 중요하다더라...

그렇게 소문으로만 듣던... 나와 다른 사람들을 처음으로 제대로 만난 것은 내 나이가 거의 30 가까이 다 되어서 였다.
참 이상하네... 저 사람들은... 말로만 듣던... 정상인이 아닌가!

역시 Nerd인 마누라를 만났고 (그래도 내 아내는 나보다는 훨씬 더 정상인에 가깝다. ^^)
지금 7학년인 우리 딸내미는 역시 꽤 Nerd 이다.

어제는,
우리 회사에서, 비누방울이 어떻게 생기고 터지게 되는가 하는 것을 여러가지로 계산해놓은 논문을 어떤 사람과 함께 나누어 읽으면서 (아, 물론 이건 우리 일과는 무관한, 순전히 취미생활이다. ^^)
야... 이렇게 말이 통하는 직장동료가 있다는건 참 좋은 일이다... 생각을 했었는데...
그러다가 내가 왜 이렇게 되었나는 생각해보게 되었고... 그래서 이런 글도...

내가 이렇게 된것은,
모두 다... 중학교때 그 과학 캠프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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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기 때문에 게을러진다.

긴 생각, 짧은 글 | 2012.01.10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나이가 들고, 할 일이 많아지고, 더 바빠지다보니...
내가 할 수 있는 일 보다, 내가 해야하는 일이 늘 더 많아지게 된다.

물론, 해가 갈수록  삶의 효율성이나 내가 일을 하는 능력, 지식 등이 향상되므로 정해진 시간 내에 처리할 수 있는 일의 양은 늘어난다.
박사과정 시절, 정말 시간이 없어서 허덕거리며 세상에서 내가 제일 바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참 빈 수레가 요란한 것이었다. ^^

그런데,
할수 있는 일이 많아지는 속도보다, 해야하는 일이 많아지는 속도가 훨씬 더 빠르다. -.-;
그래서, 하지 못하고 포기하게되는 일이 더 많아지는데... 

그러다보니, 내가 하고 싶은 일, 혹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위주로 더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점점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더 못하게 되고, 그것을 계발할 기회는 점점 잃어버리게 된다.
자기 계발, 성장, 성숙의 중요한 부분은, 하기 싫거나 잘 하지 못하는 일을 하면서 이루어지는 것일텐데...

점점 나이가 들수록, 바쁘기 때문에 게을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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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들을 읽으며...

긴 생각, 짧은 글 | 2011.12.13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내가 이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대충 2008년 초 쯤 되는 것 같고,
사실상 '매일' 쓰기 시작한 것이 2008년 4월인가 부터였던 것 같다.
(물론, 그보다 더 이전에 쓴 글들은 '날짜 조작'(?)을 통해서 처음 시작한 날짜 이전에 쓴 글로 올려놓긴 했지만.)

어느덧 "매일 글 하나" 쓰는 것이 일종의 습관이 되어버렸는데...

지난 글들을 읽으며 이런 관찰을 하게 되었다.

아주 예전에 썼던 글 (가령 5년 이상 지난 글들)을 읽어보면, 참 얼굴이 화끈거릴만큼 유치하거나, 생각이 부족하거나, 깊이가 부족하다.
그런데, 비교적 최근에 쓴 글 (3년 이내의 글들)을 읽어보면, 그 tone이나 내용이나 깊이가 대충 비슷하다.

허어... 지난 3년여동안, 내 성장/성숙이 멈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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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pecting too much from me?

긴 생각, 짧은 글 | 2011.09.27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내가 지난 10년여동안 반복해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나와 오랜 시간을 함께 있다보면,
나로부터... 내가 해줄 수 있는 것 보다 더 많은 것을 expect하는 일들이 많다는 것이다.

실제 내가 할수 있는 일이나, 생각해 낼 수 있는 것보다...
내가 더 많이 할 수 있고, 더 많이 생각해 낼 수 있다고 내 주변의 사람들이 assume 하는 것을 발견하곤 한다.
(직장 동료들이건, 성경공부를 함께 하는 사람들이건, 심지어는 가족이나 친한 친구들도...)

때로 그것이 몹시 부담이 되어,
그 간극(gap)을 열심히 하는 것으로 메우기도 하고,
그것 때문에 무리를 하는 경우도 있다.

왜 그럴까?
왜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내가 실제로 할 수 있는 일보다 내가 더 많은 일을 할수 있다고 생각하게 될까?
그것도 반복해서 말이다.

내가 일차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너무 내 자신에 대해 표현할때 '과장'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언어의 선택도 비교적 지나치게 강하게 하는 편이고,
내 의견이나 주장을 이야기할때 tone을 높여서 이야기하기 좋아하고,
회사 등에서 토론을 하거나 회의를 할때도, 걸핏하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white board에 잔뜩 써가며 내 생각을 이야기하곤 하고...

내 의사와는 무관하게,
내가 너무 쉽게 주변 사람들을 intimidate 시키는 자세를 취하는 것 같다.
그 자세에 intimidate되는 사람들은 나를 두려워하게되고,
그 자세에 intimidate되지 않는 사람들은 나를 고깝게 여기게 되고...

지난 며칠에도,
우리 회사에서 어떤 data를 분석하는 일을 가지고,
나보다 훨씬 나이도 많고 경험도 많은 어떤 사람과 며칠동안 설전을 벌였다.
나는 그 사람이 논리적이지 못한 것을 조목조목 지적해내며 마치 싸움닭처럼 달려들었다.

어쨌든,
논리적인 말싸움에서는 그 사람에게 이긴 형국이 되었지만,
결코 '이겼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차에...
위와 같은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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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nt to Grow!

긴 생각, 짧은 글 | 2011.09.21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지난 주말을 지내면서,
마음 속에 많은 부담을 가지게 되었다.

일단은... 정말 내 체력이 많이 떨어졌다. -.-;
토요일에 하루종일 강의/설교를 하고나서는 저녁엔 많이 피곤했고,
주일에 저녁 늦게까지 이야기 나누고,
또 다시 월요일에 하루종일 빡빡한 회의,
그리고 화요일 새벽까지 이어진 여러 이야기...
어제 아침 안 간사님과의 아침식사 대화에 이르기까지 일정을 무난하게 소화하는데 무척 힘들었다. -.-;
어제는 회사에 가서 꾸벅 꾸벅 졸고....

그렇지만 그것 말고도,
한두가지가 아닌, 정말 무지무지하게 많은 생각의 숙제들을 새로 받게 되었다.
내 성품과, 삶과, 사역과, 하나님 나라와, 성숙등에 대한 여러분야에서...

그런데 이 많은 생각들을 한꺼번에 꿰뚫는 것 가운데 한 가지는,
"내가 자라지 않고 있다"는 자각이었다.
내가 자라기보다는,
근력을 키우거나 치장을 하는데 더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을 보게된 것이었다.

다시... 자라기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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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 안에 갖혀버린 똑똑한 사람

긴 생각, 짧은 글 | 2011.09.12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똑똑하면서 무식할 수 있을까.
당연히 그럴 수 있다.
사실, 매우 명석한 사람들 가운데, 의외로 무식한 사람들을 많이 본다.

그 이유는,
명석한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논리가 매우 치밀한 경우가 많고,
적어도 자신이 경험하는 세상을 그 논리로 잘 설명을 해내게 된다.
따라서, 자신이 생각한 논리를 둘러싼 사고체계를 만들게 되고, 그것을 다시 여러 상황에 적용시켜가며 자신의 신념을 굳혀가게 된다.
그러다보면, 다른이의 생각이나 생각의 흐름등을 '공부'할 생각을 갖지 못하고, 자신의 사고체계 안에 자신을 가두어버린채 만족하는 잘못을 범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리 치밀한 논리를 갖는다 하더라도,
헛점이 있기 마련이고...
이미 다른 많은 사람들이 생각해놓은 것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음에도 그 기회를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그 명석한 사람은 자신만의 '생각의 섬(island)'를 만들어 놓은채 거기에 거하는 로빈슨 크루소가 되어버리게되어... 
세상과 호흡하지 못하는 똑똑한 그러나 무식한 사람이 되어버릴 수 있는 것 같다.

내가 얼마나 똑똑/명석한 사람인가 하는 것은 나를 아는 주변 사람들이 객관적으로 평가해줄 문제이겠지만...
적어도 나는 이런 부류의 잘못을 참 잘 범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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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릿빠릿한 나

긴 생각, 짧은 글 | 2011.08.17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나는 대체로 "빠릿빠릿"한 편이다. ^^
이게 꼭 자랑은 아니고... (이 글을 끝까지 읽으면 이게 자랑이 아니라는게 들어나겠지만...)
그냥  내가 그렇다는 것이다.

대체로,
이렇게 빠릿빠릿한 사람 옆에,
다소 느긋하거나 동작이 느리다거나 여유가 있는 사람이 있게되면,
그 느긋한 사람의 성품은 너무나도 자주 '열등함'으로 잘못 비추어지곤 한다.
느긋하거나 여유가 있는 것이 결코 열등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 성품은, 그 성품 자체가 공격적이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의도하지 않게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게되기도 하고.)

그런데,
가끔... 아주 가끔...
강.적. 들을 만날때가 있다.
느긋하고 여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옆에서 그 느긋함이.. '더딘 열등함'이 아니라...
'선이 굵은 깊음'으로 드러나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 앞에서는,
내 빠릿빠릿함이 가벼움으로 비추어지게 된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참 좋아한다. 
그들로부터 정말 많은 것을 배우기 때문이다. 
(앞으로 두어달동안... 그런 분들 몇분을 오랜만에 만나게 될 것 같다.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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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엔진?

긴 생각, 짧은 글 | 2011.06.20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사람들은, 따르고 싶은, 본받고 싶은 사람을 보면서,
그 사람의 사상, 논리, 지식등을 많이 배우려는 시도를 한다. 
그리고 어느정도 그 목표를 이루는 듯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의 신앙과 인격의 '엔진'과 같은 부분은,
그 사람의 지식이나 사상등이 아니라,
그 사람의 기도가 아닐까 싶다.

어떤 사람의 기도를 닮지 않고 그를 닮으려는 시도는,
자동차를 모방해서 만들면서 같은 모양과 색깔의 껍데기를 갖추면서도 엔진에 신경쓰지 않는 것과도 같지 않을까 싶다.

기도를 통해 어떤 이가 하나님 앞에 서는 모습은,
그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demonstration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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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기도, 성숙

20년전 읽었던 책들을 보며

긴 생각, 짧은 글 | 2011.05.18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이번에 한국 출장중에,
주말에 부모님과 함께 시간을 보낼 기회가 있었다.

한쪽 방에 잔뜩 쌓여있는 책들을 뒤지던중,
내가 막 복음에 눈을 뜨던 시절, 
정말 그야말로 미친듯이 책을 사서 읽던 시절에 보았던 책들이 아직 있는 것을 보았다.

이제와서 그 책들을 보면,
밸런스가 깨진 것도 있었고,
유치한 것도 있었고,
심지어는 읽지 않는 것이 좋을만한 책도 있었는데...

그러나 그 책들을 읽으며,
그리고 성경 말씀 연구를 나름대로 어설프게 해가며,
얼마나 흥분하고 기뻤었던가...

20년전의 내 모습이 그 책들에 담겨 있었다.

이젠 책을 읽으며,
그 책이 어떤 사상의 흐름 속에 있는가 하는 것을 먼저 보게 되고,
그 책을 비판하는 일부터 먼저 하게 되지만,

20년전에는,
그야말로 '아무 책이나' 읽으면서도...
내 영혼과 생각을 살찌웠던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의미에서 그 책들로부터 out-grow 했다는 사실이 감사하기는 하지만,
20년전 내 영혼을 살찌웠던 그 경험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들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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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gns of Aging

긴 생각, 짧은 글 | 2011.04.14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중년의 나이가 되면서, 내게도 나이가 들어가는 육체적인 sign들이 꽤 있다.
몇가지를 들자면

1. 하루에 다섯시간 수면으로는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
나이가 들면 잠이 주는거 아닌가... 요즘은 여섯시간  - 여섯시간 반 정도는 자 주어야 밸런스가 유지되는 듯.

2. 커피의 효과가 있다.
오후에 커피를 마시면 실제로 밤에 잠이 덜 잘온다. ^^

3. 더 적은양의 음식으로 생활이 가능하다.
예전에 먹던대로 먹으면 금방 살이 찐다.

4. 무리해서 견딜 수 있는 최대 기간이 줄어들었다.
대학때는, 한참 공부 열심히 할때는 일주일 통틀어서 10시간 자며 공부한 적도 있었는데...
이젠 2-3일 정도만 4시간 미만으로 자면 후유증이 며칠 간다.

5. 흰머리가 눈에띄게 늘었다.
^^

6.  '나이가 든다는 것'에 대해 많은 묵상을 하게 된다.
...
- 아직은 애송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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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들이 싫다

긴 생각, 짧은 글 | 2011.04.13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나는... 사람들을 싫어한다.
일반적으로 그렇다. ^^

물론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즐기기도 하고,
사람들로부터 배우는 것을 기뻐하지만...
사람들과 함께... 어떤 이슈를 풀어나가는 일을 몹시도 고통스럽게 느낀다.

그래서 내가 흔히 취하는 태도는 '내가 하고 말지' 인 것 같다.

가령,
회사에서 복사기 주변이 늘 지저분하면,
함께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서 복사기 주변을 깨끗하게 하자고 격려하기 보다는,
내가 치워버리고 만다.

그래서 나는 늘 일복이 넘친다. -.-;

그렇지만 한편 일이 안되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겉보기에 매우 부지런하고 유능한 사람으로 보이는 착시현상을 일으키기도 한다.
심지어는 착한 사람이라는 평을 들을 때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그저 사람들과 부딛히는 것이 싫은 것이다.

"내가 하고 말지" 라는 자세는,
성실함이나 부지런함으로 부터 나온 것도 아니고,
(오히려 다른이들과 함께하려는 것을 피하는 게으름에서 나온 것이다.)
착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다른이들을 정죄하고 속으로 나를 높이는 아주 악한 마음이고...)
유능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을 대하는데 무능한 것이다.)

내게 자꾸만 "내가 하고 말지"의 자세로부터 벗어나라는 nudge를 요즘 자꾸 경험하곤 하는데...
실천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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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과대평가하는 사람

긴 생각, 짧은 글 | 2011.04.12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끊임없이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사람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특별히 그것이 지나쳐서 자신과 주변에 파괴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못한 채, 과대평가한 자신으로만 보고 있기 때문에,
그 자신을 망가뜨리고 있는 것을 보기도 한다.
그 사람이 특별히 내가 아끼는 사람이라면 그러한 모습을 보는 것이 몹시도 마음이 아프다.

그 사람이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볼 수 있도록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

tentatively 정리하고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나는 절대로 그 사람이 스스로 자신을 정확하게 보게할 능력이 없다. 하나님께서만 하실 수 있는 일이다.

2. 특별히 하나님의 '은혜'만이 과대평가라는 보호막으로 자신을 보호하고자하는 뒤틀려짐(distortion)으로부터 그 사람을 끄집어 낼 수 있다.

3. 그러나 그 과정에서, 그 사람과의 정직한 대화, 사랑의 포용, 질책이나 충고 등이 역할을 할 수 있다.

이 내용에서,
1과 2는... 어떤 의미에서 내게 많은 위안을 준다.
결국 내가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3의 항목을 생각해보면,
참 길이 막막하다.

어떤때 그 사람과 정직한 대화를 해야 하는지, 어떤때에는 지적보다는 포용을 해야 하는지,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어떤 tone으로 충고나 질책이 필요한건지 등등...
참 많은 지혜가 필요한 것 같다.

그러나 major battle이 3의 항목에 있지 않고, 1과 2의 항목에 있는 것이라면,
비겁한 회피일수는 있겠으나,
3의 항목을 접하면서 느끼는 답답함이나 frustration을 덤덤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도 성장하고 성숙해 나가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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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가 아닌 다른 언어를 배우기

긴 생각, 짧은 글 | 2011.03.31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늘 '논리'는 내게있어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었던 것 같다.
그 논리가 물론 완벽했던 적은 한번도 없었으나,
적어도 그 논리의 틀 안에서 나와 세상을 이해하려고 최선을 노력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과연 '논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유일한 방법일까?

마치,
한가지 언어만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온 사람이,
자신의 언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소통하는 사람과 만나면 어려움을 겪는데...
그것은 다른 언어로 소통하는 사람이 말을 못해서가 아니라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논리, 혹은 체계적인 사고를 통해 세상을 분석 혹은 통합하려는 언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세상을 이해하며 살아가는 사람들과 내가 잘 대화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나와 다른 언어로 세상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논리로 세상을 이해하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는
논리 없이 바닥바닥 우기는 사람,
지극히 직관적인 판단을 하면서 그것은 논리적이라고 확신하는 사람,
논리는 머리아프니까 그때 그때의 감성이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 등과 같이.. 다소 비뚤어진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는,
논리보다는 관계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람,
분석보다는 사랑이 우선이라고 여기는 사람,
내 논리의 틀로 사물을 분석해내기 보다는, 나를 둘러싼 환경과 세계가 나를 분석해주기를 기다려주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다시한번,
겸손함의 중요성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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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적인 사람들'과 함께 살기

긴 생각, 짧은 글 | 2011.03.25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고등학교때부터 집을 떠나 살았다.
게다가 과학고등학교라는 독특한 환경에서 사춘기 후반부를 보냈다.

내가 과학고에 다닐 때에는, 물론 그 중에는 공부를 잘하는 애들도 있었지만, 공부를 잘하는 것 이외에도 '별난 아이들', 혹은 '머리가 좋은 아이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과학고에 들어가는것도 지금처럼 어렵지 않았다. 지금같으면, 나는 절대로 과학고에 못들어 갔을 것 같다. ^^)

일반학교에 갔더라면 그저 그런 사람으로 묻혀버릴만 한 애들이, 과학고라는 독특한 환경에 있었기에 빛을 발할 수 있었던 경우도 있었다. 우리학년 60명중 80% 정도가... IQ 155 이상이었고...
어찌보면 약간 '싸이코' 들이 모여있는 것 같이 느껴질때도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과학고 아이들만 공감할 수 있는 언어와, 농담, 생각 체계 등에 익숙해졌던 것 같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그 당시 전국에 4개 밖에 없는 과학고에서 비슷한 애들이 대학에 모였고,
소위 '일반고' 애들도 그런 분위기에 흡수되는 것 같아 보였다.

그야말로 out of nowhere에 딱 학교 하나 있는... 그런 곳이었기 때문에,
(당구를 치기 위해서 금요일 밤에, 동네의 경운기를 타고 유성까지 나갔던 기억도 있다. -.-;)
일반적인 대학생활의 낭만 같은 것은 별로 없었는데,
대신 정말 '독특한' 문화를 참 많이 경험했었다.

그야말로, 과기대 (그 당시에는 KIT 였다. 한국과학기술대학) 애들만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논리, 언어들에 더 익숙해져갔다.

그 이후,
대학원 역시 그랬고,
그 이후 2년+의 직장생활도 그 연속이었다.

이런 과정을 겪었으니,
NERD들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문화와 생각 밖의... '정상적인 보통사람'의 논리와 생각을 이해하는 것이 더딘 것은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내가 들었던 충고들 가운데 가장 날카롭다고 느꼈던 것은,
'너는 모든 사람이 다 너 같은줄 안다' 는 것이었다.

나름대로 NERD들의 본산지라고 할 수 있는 학교에서 학부를 마친 내 아내 조차도,
내가 '극단적인 공돌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내 이런 background가,
때로는 내게 도움과 힘이 되기도하지만,
많은 경우 내 생각의 체계 안에 나를 가두어버리는 우를 범하게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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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uld I....?

긴 생각, 짧은 글 | 2011.03.11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Fuller Seminary에서,
Stanley Hauerwas가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눈 강연의 비디오를 볼 기회가 있었다.
미주뉴스앤조이에 나온 기사를 보고 인터넷을 뒤져 찾은 것이었다.
(그의 책, Hannah's child의 내용을 이야기한 것)

몹시 피곤한데도, 자정이 넘도록 그 강연의 상당 부분을 앉아서 들었다.

매우 심한 정신분열증을 가진 아내와 살아야 했던 고통스러운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는,
그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해 자신이 '크리스천이 되었다'고 고백했다.

America's Best Theologian이라는 title은,
그러한 고통속에서 잉태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고통을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는 보배가 삶에는 분명 있는 듯 하다.
만일, Hauerwas가 처음 결혼생활을 시작할때, 하나님께서 이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해서만 진리의 파편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라며 그 고통을 미리 알려주었다면 그는 그 고통의 길을 택했을까?

만일, 하나님께서 내게,
어떤 고통의 길을 통해서만 당신의 선하심을 보여주겠다고 하신다면,
나는 그런 고통의 길을 선택하게 될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그런 속에서 일하시는, 그런 사람들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이 그저 놀랍기만하다.


When Christianity is assumed to be an “answer” that makes the world intelligible, it reflects an accommodated church committed to assuring Christians that the way things are is the way things have to be. Such answers cannot help but turn Christianity into an explanation. For me, learning to be a Christian has meant learning to live without answers. Indeed, to learn to live in this way is what makes being a Christian so wonderful. Faith is but a name for learning how to go on without knowing the answers. That is to put the matter too simply, but at least such a claim might suggest why I find that being a Christian, makes life so damned interesting.
- Stanley Hauerw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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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

긴 생각, 짧은 글 | 2011.03.10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내가 여러가지로 건강할 때에는,
내가 해야 하는 것을 즐겁게 하게 되는데,

내가 여러가지로 건강하지 못할 때에는,
내가 하고 싶은 것만에 탐닉하게 되는 것 같다.

회사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약 15% 쯤 하고,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약 85% 쯤 하고 있다.

KOSTA 에서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약 5% 쯤 하는 것 같고,
내가 해야 하는 일을 95% 쯤 하는 것 같다.

물론,
내가 해야하는 일과 내가 하고 싶은 일이 하나가 되면 제일 좋겠지만,
깨어진 세상 속에서 그렇게 되기란 쉽지 않은 듯.

하고 싶은 일보다 몇배나 많은 해야하는 일들을 해나가며,
그 안에서 주님의 은혜를 바라보는 일이...
하고 싶은 일에 탐닉하며 얻는 shallow한 것보다 훨씬 더 joyful한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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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언을 받아들이기

긴 생각, 짧은 글 | 2011.02.17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총무간사로 섬길때, 여러가지 어려운 것들이 있었지만,
가장 어려웠던 것 가운데 하나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내게 '조언'을 한다는 것이었다.
정말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많은...

생전 처음 본 사람이 다짜고짜 코스타란 이런 것이라며 일장 훈시를 늘어놓으시기도 하고,
한시간씩, 전화를 통해서 일방적인 '조언'을 들어야만 했던 적도 있었다.
정작 본인은 중학교때 반장해본 이후로는 한번도 리더쉽을 행사한적이 없으면서, 리더쉽에 대해 나름대로의 강의를 해주시면서 조언을 해주시기는 분도 있었다.
코스타의 10년동안 나아갈 방향을 혼자서 쫘악~ 제시해 주시는 분도 있었고,
난데없이 꾸중을 들은 적도 있었다.
하나님의 뜻을 보았다며 "신령한" 얼굴로 접근하는 분도 계셨다.
자신의 경험만을 절대화하여, 내 상황 혹은 코스타의 상황에 자신의 경험을 적용하라고 강요하시는 분도 많았다.

물론 그 가운데에는,
내가 섬기는 내용과, 나를 잘 이해하고 있고, 지금 코스타의 상황등을 잘 읽으며 주시는 적절한 조언들도 있었지만,
대략 80% 정도의 조언은 out of context의, (죄송하지만)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조언들이었다.

이미 우리가 다 마음에 두고 계획하여 진행하고 있는 일이 있었는데, 바로 그 일이 꼭 필요한데 계획을 하지 않는다며 꾸중(?)을 들어야 했던 경우도 있고,
5년쯤 전에 이미 고민과 정리가 다 끝나서 정리가 된 일들에 대해 심각한 얼굴로 매우 새로운 이슈라며 얘기해주시는 분들도 있었다.
코스타가 맞닥들이고 있는 문제의 핵심은 그게 아닌데, 자신이 주장하는 바가 제일 중요한 거라며 목청을 높이시는 경우도 많았다.

그럴 경우에는...
대개 참 애매하고 어색했다.
소위 '내부사정'을 시시콜콜 다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혹시 그것을 대외적으로 share할 수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설명하려면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드는 데다,
그렇게 설명을 해도 조언을 해주시는 분이 이해를 하시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렇다고 그냥 듣고나서는 별다른 반응 없이 나 혼자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보내기에는, 조언을 해준 그 사람에게 너무 미안했다.

어떤 순간에는,
내게 쏟아지는... 그 out of context의 엄청난 조언의 홍수 속에서...
한 두어주만 잠수타면 참 좋겠다...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전화를 받거나, 이메일을 여는게 두려운적도 있었다.
(어떤 어르신들은, 자신의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역정을 내시기도 하셨다. -.-;)

그렇게 out of focus, out of context의 조언을 들을 때면,
그냥 '인자한 얼굴'을 하고 그 사람을 보면서..
속으로는 별의별 생각을 다 했었다.
혼자 애국가 가사를 몇번씩 외기도 하고...
(언젠가... 어떤분과 전화하면서는 시편 23편을 한 30번쯤 암송했던 것 같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분들의 그 모든 조언들 속에서 소중한 것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비록 out of focus, out of context의 조언이지만, 그 조언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내게 하시고 싶은 말씀을 하시는 것들을 보게되는 경우가 있었다.
혹은, 그 사람이 그렇게 조언을 남발해야만 하는.. 그 사람의 personal need/상처를 바라보게 된 경우도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그렇게 내게 와서 조언을 해줄 정도록 정성과 열정이 있는 그분들의 마음을 감사히 보게되기도 하였다.
아주 황당한, 거의 말도 되지 않는 조언을 듣게되는 경우에도, "하나님께서 정말 급하셔서, 이렇게 말도 안되는 조언을 통해서라도 내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신가보다" 하며 귀를 기울이게 될때도 있었다.

물론, 내가 간과했던, 중요한 point를 깨닫거나 재확인하는 경우도 있었다.

늘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건강하면 건강할수록, 많은 분들의 조언들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뽑아내는 일들이 더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하였다.

지금 나는...
얼마나 다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내게 들려주시는 음성을 듣는 일들을 잘 하고 있는걸까?

언제 좀 더 성숙해지면,
그저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런 일들이 이루어지게될지도 모르겠으나,
적어도 지금은... 많은 노력으로 주의를 기울여야... (내 죄된 본성에 휩쓸리지 않도록 하나님을 의지해야)...
주변 사람으로부터 소중한 이야기들을 소화시키게 되는 것 같다.

...

제게 조언을 해주시는 모든 분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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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은사가 가져다주는 착각

긴 생각, 짧은 글 | 2010.05.20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최근, 운동을 하면서 들은 것은, 모 신학교에서 "Postmodern 시대에 그리스도를 선포하기"라는 내용의 시리즈 강좌이다. (아마 한학기 과목인 것 같기도 하다.)
Tim Keller와 Ed Clowney 가 공동 강의를 한 것인데...
어떤 것은 참 깊은 깨달음을 주었지만 어떤 것은 동의하기 어려운 것들도 있었다.

거기서 들은 이야기중,
너무나도 당연한, 그러나 내가 한참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한마디.

"영적 은사를 많이 가지고 있거나, 혹은 그 은사를 활용해서 많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과, 그 사람이 은혜안에 거하며 그리스도와 동행하고 있다는 것은 전혀 별개의 것이다."

그러면서 마태복음 7장의 다음 본문을 인용하였다.

7: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말하기를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할 것이다.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분명히 말할 것이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물러가라.'

마음이 바짝 말라있고, 배우자가 아닌 이성에 음란한 마음을 품고 있고, 자기 배우자를 미워하고 있고, 다른 이들에 대한 질투심에 가득차 있고, 나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심에 가득차 있다 하더라고,
그 사람이 매우 훌륭한 설교를 할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훌륭한 설교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이 주님과 건강하게 동행하고 있다고 착각하면 안된다고.
(특히, 훌륭한 설교가 자신이 스스로에 대해 그런 착각을 쉽게 한다고)

내가 무슨 일을 하느냐,
내가 얼마나 그 일을 잘 하느냐,
심지어는 내가 어떤 value system을 가지고 그 일을 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내가 올바로 서있느냐 하는 것을 재는 바른 잣대가 되지 못한다.

나 같이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꼭 마음에 새기고 또 새기고 새겨야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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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려깊음

긴 생각, 짧은 글 | 2010.05.19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사려깊음은, 성품일까 재능일까?

성품이라면 그것이 개발될 수 있는 것이고,
재능이라면 개발될 수 있는 것이라기 보다는 주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사려깊음을 성품으로 보았다.
그런데, 점점 그것이 성품이라기 보다는 재능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한 생각의 흐름 속에서,
나 자신이나 다른이들의 사려깊지 못함을 좀 더 용서하고 수용하려고 하고 있는데...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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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성숙, 공동체의 성숙

긴 생각, 짧은 글 | 2010.03.24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고통과 고난이 없는 개인의 성숙이 없다.
고통과 고난이 없는 공동체의 성숙도 없다.

이 당연한 이야기를...
배우는 것이 참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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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큰 사람을 만나면...

긴 생각, 짧은 글 | 2009.11.20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나보다 큰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을 바라보며 몇가지 다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을 만난다.

첫번째는,
그 사람이 나보다 큰 사람임을 인정하고 그에게서 배우려는 사람이다.
"아 참 그 사람은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하더라. 배울 것이 많은 사람이야"
건강한 자세라고 할 수 있겠다.

두번째는,
그 사람과 나를 쉽게 동일시하여 내가 그 사람과 같은 수준의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 사람이 하는 일을 자신도 할 수 있고 그 사람이 하는 생각을 자신도 쉽게 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이다.

세번째는,
그 사람과 나와의 관계를 튼튼하게 만듦으로써, 나의 class를 높여보려는 사람이다.
"나 누구도 알고, 누구도 알고, 누구도 알아...."

네번째는,
그 사람을 시기하는 사람이다.

이 네가지의 모습중에...
내게 가장 많은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여러가지로 생각하다가, 최근 그것을 잘 알아낼 수 있는 test를 찾아내었다.

내가 어떤 모습을 보면서 가장 bother가 되는지를 보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3>2>4>1 의 순서로 bother가 된다.
그런 것으로 보아 나 역시 3>2>4>1의 순서로 내 안의 부끄러운 모습들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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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의 나, 40대의 나

긴 생각, 짧은 글 | 2009.10.07 15:32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20대에
내가 꿈꾸었던 나의 모습,
내가 꿈꾸었던 한국교회의 모습,
내가 꿈꾸었던 세상의 모습...

40대가되어 이제 바라보면서...
한편 20대의 꿈이 얼마나 shallow한 것이었던가 하는 것을 보게 되지만,
다른 한편으론, 20대의 꿈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게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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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여줘야 소용 없다~

긴 생각, 짧은 글 | 2009.09.03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섬기고 있는 Christian ministry와 관련되어 있었던 일인데...

매우 엉뚱하고 잘못된 의도로 (자신을 드러내고 스스로 떠보겠다는)
우리가 섬기고 있는 Christian ministry와 함께 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해온 사람이 있었다.

우리는 그 사람의 의도를 잘 알고 있었고, 그 사람이 지금 당장 뛰어들어서 함께 이 일을 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짜고짜 함께 하겠다고 나섰다.

우리중 어떤 사람들은...
그 사람이 그래도 선한 일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
우리 모임에 초청도 하고 함께 하도록 격려해서 해보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냈고 그렇게 해보려고 하였다.

내가 존경하는 선배 한분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우리가 최선의 노력을 다해 그렇게 하는 시도를 할수는 있겠으나, 아마 별로 소용 없을 것입니다. 잘못된 의도와 생각을 가지고 이 사역에 동참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우리가 하는 일을 아무리 보여주어도... 이 스피릿을 픽업하기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하는 일의 껍데기만을 보고서 그것을 전부라고 보게될것이 분명합니다. 우리가 알듯이, 우리가 하는 일의 껍데기는 그 안에 담겨있는 스피릿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그 선배의 진단이 정확했음을 배웠다.

때로, 나 자신을 돌아보며...
내 동기가 순수하지 못함이 드러날때마다 두려운 것은 바로 이런 이유이다.
내 순수하지 못한 동기가... 본질을 보지못하도록 막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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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믿지 않던 시절, 예수를 막 믿게되었던 시절

긴 생각, 짧은 글 | 2009.04.28 06:16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나는 모태출석 교인이다.
어머니께서 나를 태중에 가지고 계실때부터 교회 출석을 했다.

내가 그 신앙을 내 개인의 것으로 받아들인것은 대학교 3학년때의 일이었다.
그 이전까지는 그 신앙을 깊이 곱씹어볼만큼 내가 넉넉하지 못했던 것이리라.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아직 신앙을 갖고 있지 못하던 시절,
신앙이 없으면서 신앙이 있는 척 했던 시절,
진리에 대하여 목말라 했던 시절,
그리고...
그 진리를 막 발견한 직후 내 생각과 감정과 마음이 급속히 바뀌어 가던 신앙의 초기 단계...

이것들에 대한 기억이 자꾸만 희미해진다.

그래서,
내가 그 당시에는 매우 어렵게 받아들였던 개념이나 깨달음들을,
너무 가볍게 여기거나 당연한 것으로 치부해버려 내가 섬기는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는 경우가 있지 않나 싶다.

기회가 되면,
내가 예수를 믿지 않던 시절에 했던 고민들,
또 내가 막 예수를 믿은 직후에 했던 고민들만을 다시 깊이 곱씹어보는 시간을 좀 갖을 수 있으면 한다.

이 블로그에도 간단하게 그것들을 좀 올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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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함 (6)

짧은 생각, 긴 글 | 2009.03.10 06:29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성실함 없이 일을 대하는 것은,
그 일이 그 사람에게 독이 되는 것 같다.

그런데 그 성실함은 성숙함으로 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따라서,
성숙함이 수반되지 않은 '일'은 자신과 주변 사람 모두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닐까.

때로 내가 아주 힘들어 하는 것은...
성숙함으로 부터 비롯된 성실함을 갖추지 않은 사람이 자신을 과대평가하여 '일'에 뛰어는 사람을 보는 일이다.

물론, 내 자신이 그러고 있는 모습을 볼때 가장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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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함 (5)

짧은 생각, 긴 글 | 2009.03.09 06:25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내가 대단히 성실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할 수준은 안되지만,
그래도 이전에 비하면 많이 성실해진 것 같다.

또한,
내가 대단히 성숙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하기엔 형편없이 부끄러운 수준이지만,
그래도 이전에 비하면 많이 성숙해진 것 같다.

내 스스로 지난 세월 하나님과 함께 동행해 온 발자취를 보면,
내 성실함은 내 성숙함을 드러내는 표지였고,
내 성숙함은 내 성실함을 이끄는 힘이었다.

내 스스로 성실하지 못함으로 인해 절망하고 좌절할때,
내가 아끼는 이의 성실하지 못함을 보며 안타까워할때,
하나님의 손길이 당신의 자녀를 성숙함으로 이끌고 있다는 사실이 그런 의미에서 큰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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