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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더?

긴 생각, 짧은 글 | 2012.03.01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어제를 다 지내고 생각해보니,
어제는 '하루 더' 있는 날이었다. ^^

2월 29일은 매년 있는 것이 아니므로, 그야말로 보너스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일 텐데...

그 하루를 시작하면서,
"아... 오늘 이렇게 보너스로 주어진 시간을 정말 의미있게 보내야겠다"
고 생각했다면...
아마 어제 나는 다소 다른 삶의 자세를 가지고 살지 않았을까.

그런데 생각해보면,
매일의 삶은 그저 내게 은혜로 주어진 것이다.
정말... 그저... 은혜로.

어제 그렇게 appreciate 하면서 살지 못한 분량을,
오늘이라도 좀 그렇게 살아보고 싶다.
그리고... 최소한 이 사순절 기간 동안만이라도, 매일의 삶 한 순간 한 순간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을 좀 더 해보고 싶다.
(세상에 나처럼 감사할줄 모르는 사람이 또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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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생활, 영성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사람

긴 생각, 짧은 글 | 2011.04.12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끊임없이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사람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특별히 그것이 지나쳐서 자신과 주변에 파괴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못한 채, 과대평가한 자신으로만 보고 있기 때문에,
그 자신을 망가뜨리고 있는 것을 보기도 한다.
그 사람이 특별히 내가 아끼는 사람이라면 그러한 모습을 보는 것이 몹시도 마음이 아프다.

그 사람이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볼 수 있도록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

tentatively 정리하고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나는 절대로 그 사람이 스스로 자신을 정확하게 보게할 능력이 없다. 하나님께서만 하실 수 있는 일이다.

2. 특별히 하나님의 '은혜'만이 과대평가라는 보호막으로 자신을 보호하고자하는 뒤틀려짐(distortion)으로부터 그 사람을 끄집어 낼 수 있다.

3. 그러나 그 과정에서, 그 사람과의 정직한 대화, 사랑의 포용, 질책이나 충고 등이 역할을 할 수 있다.

이 내용에서,
1과 2는... 어떤 의미에서 내게 많은 위안을 준다.
결국 내가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3의 항목을 생각해보면,
참 길이 막막하다.

어떤때 그 사람과 정직한 대화를 해야 하는지, 어떤때에는 지적보다는 포용을 해야 하는지,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어떤 tone으로 충고나 질책이 필요한건지 등등...
참 많은 지혜가 필요한 것 같다.

그러나 major battle이 3의 항목에 있지 않고, 1과 2의 항목에 있는 것이라면,
비겁한 회피일수는 있겠으나,
3의 항목을 접하면서 느끼는 답답함이나 frustration을 덤덤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도 성장하고 성숙해 나가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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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an Ideal Life

긴 생각, 짧은 글 | 2011.03.28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세상이,
하나님의 선한 창조질서로부터 벗어나 어그러져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내 삶의 영역에서도 그것을 인정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세상의 어그러짐은 그래도 둔채, 내 삶의 영역에 한해서만 "justice"를 추구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세상은 늘 내게 공평하지 못하고,
왜 내게 이런일이 라는 말이 입에서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망가진 세상 속에서 살면서 그 망가진 세상의 일부를, 내 삶으로 embrace하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선하심(goodness)를 발견해 나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닌가 싶다.

너무 쉽게 내 삶의 영역의 어그러진 부분을 곧게 펴보려는 시도는,
그것이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 자신을 망가뜨리는 것이 아닌가 싶다.

어그러진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긍휼을 품고 사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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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uld I....?

긴 생각, 짧은 글 | 2011.03.11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Fuller Seminary에서,
Stanley Hauerwas가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눈 강연의 비디오를 볼 기회가 있었다.
미주뉴스앤조이에 나온 기사를 보고 인터넷을 뒤져 찾은 것이었다.
(그의 책, Hannah's child의 내용을 이야기한 것)

몹시 피곤한데도, 자정이 넘도록 그 강연의 상당 부분을 앉아서 들었다.

매우 심한 정신분열증을 가진 아내와 살아야 했던 고통스러운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는,
그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해 자신이 '크리스천이 되었다'고 고백했다.

America's Best Theologian이라는 title은,
그러한 고통속에서 잉태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고통을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는 보배가 삶에는 분명 있는 듯 하다.
만일, Hauerwas가 처음 결혼생활을 시작할때, 하나님께서 이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해서만 진리의 파편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라며 그 고통을 미리 알려주었다면 그는 그 고통의 길을 택했을까?

만일, 하나님께서 내게,
어떤 고통의 길을 통해서만 당신의 선하심을 보여주겠다고 하신다면,
나는 그런 고통의 길을 선택하게 될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그런 속에서 일하시는, 그런 사람들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이 그저 놀랍기만하다.


When Christianity is assumed to be an “answer” that makes the world intelligible, it reflects an accommodated church committed to assuring Christians that the way things are is the way things have to be. Such answers cannot help but turn Christianity into an explanation. For me, learning to be a Christian has meant learning to live without answers. Indeed, to learn to live in this way is what makes being a Christian so wonderful. Faith is but a name for learning how to go on without knowing the answers. That is to put the matter too simply, but at least such a claim might suggest why I find that being a Christian, makes life so damned interesting.
- Stanley Hauerw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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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학적이지 않은 신앙

긴 생각, 짧은 글 | 2011.02.01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언제부터인가,
내 신앙적 고민을 설명하려면 늘 매우 긴 배경지식을 설명해야 했다.

일종의 신학적 입장에 대한 설명, 역사적 배경에 대한 설명, 대비되는 사조에 대한 설명 등등.

그러다보니,
내가 길게 설명을 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에서는...
내 고민 자체를 꺼내어 놓는 것이 힘들게 되어버렸다.

내 신앙의 여정에서...
나를 흥분시키고 자극시켰던
존 스토트, 프란시스 쉐퍼, 자크 엘룰, 김교신, 마틴 로이드-존스, 톰 라이트, 스탠리 하우어워스...

이분들로부터 배운 insight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현학적이지 않은 신앙을 유지하는 법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아직은... 참 갈길이 먼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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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 상태

긴 생각, 짧은 글 | 2011.01.21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두가지가 주로 감지된다.

첫번째로, 뭔가 click이 되었다.
예전에 내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과 계속 뭔가 잘 맞지 않아 서로 헛도는 느낌이 있었다면,
요즘은 자꾸 그 성령님께서 내 옆구리를 쿡쿡 찌르는 것을 느낀다.
자전거 체인이 헛돌다가 철컥 하고 톱니가 맞아 돌아가기 시작한 느낌이랄까.
연초에 새해 계획을 세우면서... 2011년 KOSTA 주제 묵상을 하면서... 
내 부족함에 대해 안타까움을 더 깊이 가지면서...
내게 일어난 현상이다.
이렇게 click된거... 놓치지 말아야 할텐데.

두번째로, 뭔가 약간 부족하다.
뭐라고 딱 찝어 얘기하긴 좀 어려운데...
뭔가 내 전투력이랄까 에너지 레벨이랄까 그런게 좀 떨어진 느낌이다.
첫번째에서 내가 언급한 현상과 어떻게 연관이 되는건지, 그렇지 않으면 서로 관계가 없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한때 빵빵한(?) 전투력을 발휘하던 모습으로부터 많이 위축된 느낌이다.
'불 받아야' 할 때일까?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께서 나를 좀 조용히 더 다루시고 계신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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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위적 부양책

긴 생각, 짧은 글 | 2010.12.14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공동체를 섬기면서,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혹은 어떤 clear한 message를 전달하기 위해서,
인위적인 강조를 사용한다거나... 인위적인 boost-up을 사용하면,
반드시 그것에는 그것에 따른 부작용/반작용이 따르는 것 같다.

인위적 경제부양책이 단기적으로는 경기를 부양시키는 것 같아도 결국 그 경제 자체를 취약하게 만들수 있는 것 같이 말이다.

인간적인 열정은 반짝 빛을 보는듯 해 보일 수 있으나,
궁극적으로 열매를 여는 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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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고 그분이 사는 것

긴 생각, 짧은 글 | 2010.10.22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내가 늘 My favorite verse 라고 생각해 왔던 것은
갈라디아서 2:20절 말씀이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이제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살고 계십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살고 있는 삶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처음 이 말씀을 접했을때, 내가 받았던 충격이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전혀 새로운 identity가 주어졌고, 이제는 내가 전혀 다른 세계가 열렸다는 발견을 하면서 고통스러울만큼 혼란스러움을 겪기도 했던 것 같다.

요즘,
내가 죽는 일을 잘 못하고 있다.
내가 죽고 그분이 사는 것인데... 그게 the way to live 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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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성화, 영성

진정으로 burden을 지지않으면

긴 생각, 짧은 글 | 2010.10.19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이론과 말로 멋진 썰을 푸는 일들은,
어떤 의미에서 재미있기도 하고, 쉽게 이루어 질 수 있지만,

그 이론을 삶의 burden으로 지고 사는 일은,
고통스럽기도 하고, 쉽게 되지도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진정한 영적 리더쉽은,
그 burden을 기꺼야 지고자 하는 자세와,
그 가치를 위해서 헌신하고 희생하는 일이 수반되어야만 생기는 것 같다.

나를 '이론가'라고 이야기해주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는데,
그 이야기를 들을때면...
어쩌면 내가 탁상공론을 즐기는 부류의 사람이라는 경고의 message는 아닌가 하는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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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로 양이 차지 않는다...

긴 생각, 짧은 글 | 2010.06.08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참 이상하다.
QT는 지난 20여년간 내 신앙생활을 지탱해온 중요한 축이었는데...

요즘은 그 QT가...
뭐랄까... 양에 차지 않는 느낌이다.

그리고 QT를 하면서 자꾸면 역사적 context등을 따지는 습관들이 나와서,
나 스스로를 당혹하게 만든다.

나의 이런 '증상'과 관련해서...
다음의 기사가 매우 눈에 띄었다.

http://www.newsnjoy.us/news/articleView.html?idxno=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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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들지 않는 직장 동료

긴 생각, 짧은 글 | 2010.05.14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같은 팀에 있는 어떤 직장 동료가 참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매우 이기적이고, bossy하고, nosy 하다.
뻔히 다 아는 얘기를 자신의 입으로 이야기하여 자신이 주도권을 잡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어한다.
여러가지 세팅에서 그 자리에 있지 않은 다른 직장동료 흉을 보는 경우가 많다.
애매하게 비꼬는듯한 어투로 '겸손한척' 하는데, 이것이 아주 효과적인 self-defense mechanism이 되어 더 이상의 argument로부터 자신을 보고하는 역할을 한다.
늘 다른이의 말을 끊고 자신의 말을 하려고 하고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 무리한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강자엔 자신을 낮추고, 약자에 대해서는 고압적인 자세를 취한다.

나는 이 사람과 꽤 많이 부딛힌다.
다소 오지랖이 넓은 나는, 이 사람이 이런식으로 행동하는 것을 그냥 고분고분 봐주지 못하는데,
문제는 내가 그것을 통크게 받아주거나 너그럽게 품을 capacity가 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대담하게 그 문제를 그 사람에게 이야기할 용기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주 애매한 긴장을 유지하며 이 사람과 지내고 있는데...

최근 이 사람이 내가 하는 어떤 일에 대해 또 아주 짜증나게 bossy하면서도 nosy하게 접근해왔다.
나는 그냥 쌀쌀맞게 대하고 말았는데,
생각해면 생각할수록 화가 나기도 하고... 게다가 이런 식으로 우리 팀의 chemistry를 흐려놓는 행동을 뭔가 저지해야겠다는 어줍잖은 의협심에 이 사람과 대결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이 사람이 현재 하고 있는 일은, 말하자면 자신의 전문분야가 아니다. 오히려 내가 그 분야의 전문성을 더 가지고 있다고 할수 있다. 게다가 이 사람이 억지를 부리는 경우가 있으므로, 나름대로 논리의 헛점도 있다.

내가 받는 유혹은,
내가 가진 전문성과 논리로 이 사람을 짓눌러버리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 사람이 스스로를 작게 느끼도록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실제 그런 시도를 하다보면...
그런 작전이 먹히지도 않은 뿐 아니라... (더 큰 갈등만 불러일으키고 나도 괜히 모냥도 빠지고. -.-;)
이 사람도 이 사람이 가진 self defense mechanism을 더 작동해서 더 좋지 않는 쪽으로 몰려가는 것을 보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 큰 문제는, 그러는 와중에서 내가 망가지는 것이다.
마음의 평안이 없어지고... 지배하려는 욕망으로 내가 가득차게되는 것을 발견한다.
내가 가진 사랑이 아니라, 내가 가진 힘으로 이겨보려는 욕심이 나를 지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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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도 중요하다!

긴 생각, 짧은 글 | 2010.04.20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주일 설교에서,
목사님이 전 교인에게 월요일 하루만 '부정적인 것들'을 없이 사는 날로 하자고 제안을 했었다.
불평하지 않고, 불만을 말하지 않고,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고...

어제 하루,
정말 그렇게 해보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아아... 정말 내가 하루 종일 얼마나 많이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고 살려고 하니...
정말 할 생각이 별로 없었다!

그 부정적인 생각, 불평, 불만 중 많은 것들은,
내 '거룩한' 신앙적 사고와 열심에서 나온 것이었다!

은혜에 대한 개념이고 뭐고 간에,
그저 이 부정적인 생각의 cycle로부터 나를 건져내는 것이 정말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은혜에 대한 개념이 내게 온전하게 이해되지 못한, '깊은' 문제가 내게 있다고 생각했으나,
어쩌면 내 문제는 삶의 자세를 바로 잡아야하는 '얕은' 문제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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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괴로워야 하는데, 괴롭지 않다면?

긴 생각, 짧은 글 | 2009.09.18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우리 그룹은 참 사람들이 좋다.
우리 그룹 리더를 비롯하여 다들 참 성품이 좋은데...

최근,
유난히 계속 bossy 하게 굴면서 자꾸만 남들을 깎아내리고 자신을 높이려는 어떤 한 사람이 마음에 걸렸었다.

계속 내게도 와서 참견도하고,
마치 내가 하는 일을 자기가 감독이라도 하는양 굴고,
게다가 내 앞에서 다른 사람들 깎아 내리며 욕하기도 하고...

참고 참다가,
어제는 내가 한번 터졌다. -.-;

그 사람이 또 참견하고 잘난척하고 게다가 자신이 잘못한 것을 다른 사람이 잘못한것으로 덮어씌우려고 하는 것을 보고는... 내가 참지 못하고 쏘아붙였다.

약간 언성을 높이며...
그 사람의 잘못을 조목조목 따졌다.

그 사람은 이내... 조용해졌고,
내게 갑자기 무척 고분고분해지며 친절해 졌다.
(약자에 강하고, 강자에 약한... -.-;)

그런데...
이런 상황을 겪고 나면...
마음이 찜찜하고 내 행동이 후회가 되고, 그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고,
성령님의 인도에 순종하기 보다는 내 옛성품이 나온 것을 안타까워하는...
그런 마음이 되어야 하지 않나?

그저...
내 마음에는...
에이... 속시원하다...는 생각만 드는데...
이것은 어쩌면 내가 내 성품을 성령의 인도아래 다스리는 일을 게을리하고 있었다는 증거는 아닐까.

며칠 더,
어제의 incident를 곱씹어보며...
내가 내 성품을 그리스도인 다운 것으로 성숙시켜나가는 일들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점검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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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다

긴 생각, 짧은 글 | 2009.06.08 06:47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뭐 내가 자주 투덜거리듯이...
요즘 바쁘다. ^^

회사일은 계속 '급한'것들이 내게 떨어지고 있고,
계속되는 이메일 폭탄에,
수없이 걸려오는 전화들,
매일 계속되는 conference call,
섬기는 모임에서 해야하는 일들...

한동안
아... 바빠지는구나... 지친다...
이렇게 생각을 했다가,
요즘엔 살짝~ 이 바쁜 속에서 경험하는 '생기'를 찾는다.

내가 다 처리할 수 없는 일들이 쏟아지기 때문에,
차라리 내가 아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경험한다.
(내가 참 자주 망각하는 것이다 - 내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이라는 사실)

바쁜 일정을 쪼개어 분단위로 시간을 쪼개어 지내다보면,
내 헌신의 자세를 다시 추스리게 된다.
마치 운동을 할때 지방이 분해되는 것 같이... 내 삶속에서 더러운 찌꺼기가 태워지는 것을 경험한다.

물론,
바쁜 생활 속에서 내 spirituality가 깨어지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겠지만...
하나님께서는 나같이 허둥지둥 하는 사람의 분주함 속에서도... 온화한 미소를 짓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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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을 섬기는 일

긴 생각, 짧은 글 | 2009.05.07 06:22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가끔은, 나보다 나이많은 '어른'을 내가 섬겨야 하는 경우가 있다.
그 어른이 물론 존경받을만 하거나, 나를 잘 이끌고 인도해줄 수 있는 경우라면 내가 기꺼이 그 관계를 누리며 지낼 수 있으나...
그 어른을 내가 '이끌어야'하는 경우라면, 이야기가 좀 다르다.

어른을 이끌어야 하는 경우에도 크게 두가지의 경우가 있다.
첫번째는 그 어른이 나로부터 '배우려는' 자세가 있을 경우. 이럴 경우에는 내가 그분을 존중하고 겸손하게 섬기면서 무례하지 않게, 그러나 때로는 단호하면서도 직설적으로 함께 할 수 있다.

그러나 두번째 더 어려운 경우에는 그 어른이 나로부터 배우려는 자세가 없거나, 자신이 나이가 많기 때문에 우월하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자신을 과대평가하거나, 혹은 나이어린 사람으로로부터 인도함을 받는 것을 '위협'으로 느끼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엔 참 여러가지로 힘들다.

많지는 않지만 내가 이런 두번째 경우에 빠졌을 경우에는, 나는 그냥 손을 들어버렸던 것 같다. 이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라고 이야기하며 포기했다.

최근,
내가 존경하는 어느 선배님이 이런 상황에서 어른을 겸손히 섬기면서, 지혜롭게 대화를 하면서, 결국은 그 어른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어른에 대한 존경/존중과, 지키려는 진리에 대한 확신, 그것을 겸손하게 present 하는 자세, 두려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모습, 그리고 결코 사람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설득하고 매달리고 품고 사랑하고 기도하는 자세...

하나님을 사랑하며 사는 것은,
열정만으로 이루어 지는 것도,
테그닉으로 이루어 지는 것도,
연륜으로만 만들어 지는 것도,
지식으로 세워지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사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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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믿지 않던 시절, 예수를 막 믿게되었던 시절

긴 생각, 짧은 글 | 2009.04.28 06:16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나는 모태출석 교인이다.
어머니께서 나를 태중에 가지고 계실때부터 교회 출석을 했다.

내가 그 신앙을 내 개인의 것으로 받아들인것은 대학교 3학년때의 일이었다.
그 이전까지는 그 신앙을 깊이 곱씹어볼만큼 내가 넉넉하지 못했던 것이리라.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아직 신앙을 갖고 있지 못하던 시절,
신앙이 없으면서 신앙이 있는 척 했던 시절,
진리에 대하여 목말라 했던 시절,
그리고...
그 진리를 막 발견한 직후 내 생각과 감정과 마음이 급속히 바뀌어 가던 신앙의 초기 단계...

이것들에 대한 기억이 자꾸만 희미해진다.

그래서,
내가 그 당시에는 매우 어렵게 받아들였던 개념이나 깨달음들을,
너무 가볍게 여기거나 당연한 것으로 치부해버려 내가 섬기는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는 경우가 있지 않나 싶다.

기회가 되면,
내가 예수를 믿지 않던 시절에 했던 고민들,
또 내가 막 예수를 믿은 직후에 했던 고민들만을 다시 깊이 곱씹어보는 시간을 좀 갖을 수 있으면 한다.

이 블로그에도 간단하게 그것들을 좀 올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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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함과의 싸움

긴 생각, 짧은 글 | 2008.02.06 16:35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교만함과의 싸움이 참 힘들다...
때로... 마음 속에서만 가지고 있었던 교만한 생각을 그저 말로 한번 실수로라도 한번 내 뱉으면...
그나마 마음 속으로만 그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보다 훨씬 더 나쁜 영향이 있는 것 같다.

교만한 생각 자체가 없다면 정말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그 생각 자체가 꿈틀거리는 것을 자꾸만 누르며... 혹시라도 내 입으로 삐져 나올까를 계속 경계해야 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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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메말랐다

긴 생각, 짧은 글 | 2005.03.02 00: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요즈음,
눈물이 메말랐다.

세상을 보며 가슴이 아파,
펑펑 울며 기도했던 적이 언제였던가.

내 관심의 문제일까, 그렇지 않으면 영성의 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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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눈물, 영성

자주 눈을 감자

긴 생각, 짧은 글 | 2004.07.28 00: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나는,
유난히 '번잡한' 사람이다.
그래서 늘 무엇인가를 해야한다.
하다못해 그것이 web surfing이든, 전자오락이든...
그냥 가만히 앉아서 생각하는 것을 잘 못하는 것 같다.

오늘부터는,
자주 눈을 감는 훈련을 해보려 한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냥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하나님을 '느끼는' 시간.

점심 시간에는 적어도 10분 정도씩 나만의 아지트에서...
내 말을 쏟아놓는 기도가 아니고,
정말 아무것도 안하고 하나님과 함께 앉아있는 그런 시간을 가지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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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기도,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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