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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생각, 긴 글

KOSTA/USA-2014 Indy conference 후기 (6)

학생들의 열악한 상황을 보면서,

더더욱 내게는...

과연 이런 상황이 우리의 노력으로 개선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하는 회의가 밀려온 것이 사실이다.


약간의 희망의 틈이 보이긴 했지만,

과연 이 작은 희망의 씨앗이, 이 거대한 sinking boat를 지탱해 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학생들의 작은 변화에 감격해 하다가도,

이런 회의나 의구심이 밀려오면 가슴이 막막해져서 혼자 그저 앉아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중보기도실보다는 침묵기도실을 더 찾았다.


한번은 침묵기도실을 갔더니,

청년사역자로 섬기는 멘토 가운데 한분이 앉아서 기도를 하고 계셨다.

아, 저 분도 나처럼 이렇게 막막한 마음에 와 앉아 계신 것일까.


그런데 한주 내내 내 마음에 남았던 것은, 화요일 저녁 설교 message 였다.

화요일 저녁 설교는, conference design 상으로는 별로 잘 align된 message는 아니었다.

그리고 나도 그 설교의 어떤 면들은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그런데,

그중에 반복되는 한 구절.

'예전에 들어보지도 못했던 방식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 내 귓전에 남았다.


화요일 설교에서, 설교자께서는,

자신이 경험한 'revival'을 언급하시면서, 그 revival의 결과로 이전에 들어보지도 못했던 방식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사람들이 열매로 나왔다고 말씀하셨다.


우선,

나는 그분이 경험한것이 부흥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분이 그분의 시대에 경험한 일들은, 지금 이 20대가 경험하지 못하고 있던 일들이라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부흥은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pseudo-revival (유사부흥)이라고는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유사부흥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람들을 세우시고, 그렇게 세워진 사람들은 오랫동안, 때로 평생동안, 다른 이들이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아가게 된다는 것에는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지금 이 학생들의 세대가 이렇게 지리멸렬한 것을 이 학생들의 책임으로 돌릴수만은 없다.


'유사부흥'의 시대를 겪은, 세대가, 이 학생들에게 그 시대의 이야기를 해주면서, 그들에 대한 소망을 놓지 않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그들을 섬기는 일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 더 큰 문제일수 있다는 것이라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유사부흥'의 시대를 겪은 것은... 바로 지금 내가 속한 세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