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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생각, 짧은 글

T 아주머니

요즘 나는 회사에 있는 시간의 90%는 clean room에서 지낸다.
clean room에 들어가려면 방진복이라고 불리우는 옷을 입고 들어가는데,
왔다갔다 하는 것이 귀찮아서,
아침에 들어가면 점심 먹으로 나오고,
점심먹고 들어가면 퇴근할때까지 안나온다.
아예 그 안에 computer도 마련해놓고, 내 미니 office를 차려 놓았다. ^^

그러다보니, 계속 함께 clean room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게될 기회들이 좀 있게 되는데,
그렇게 이야기를 하게된 사람중 하나가 T 아주머니이시다.

이분은, 비교적 새로 들어오신 분인데,
베트남 출신이고, 나이는 50대 초반쯤 되시는 분이시다.

이분은 참 성품이 좋으시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좀 고약한 사람들이어서, 많이 힘들 수 있는데도... 늘 웃는 얼굴로 대하시고, 가끔 한번씩은 케익을 집에서 구워와서, 나처럼 '어린 애들'에게 나누어주기도 하신다. ^^
아니, 이렇게 stress 많이 받는 상황에서 어떻게 저렇게 평정을 유지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는 것이 정말 놀라울 때가 많이 있었다.

지난주엔가,
내가 혹시 베트남을 떠난 이후에 다시 베트남에 가보았느냐는 것을 물어보았는데...
그것때문에 참 여러가지 그분의 이야기를 들었다.

베트남 전쟁을 겪으며 두려웠던 이야기,
비교적 부유했던 가정 출신으로, 공산통일이 된 이후 재산을 몰수당하고 어려움을 당했던 이야기,
10대 후반에 목숨을 걸고 소위 "보트피플"이 되어 1달 넘게 바다에서 보낸 이야기,
형제 자매들이 그때 뿔뿔이 흩어져 버린 이야기,
난민이 되어 미국에 정착하게되기까지의 이야기,
그 와중에 부모님은 그냥 베트남에 남겨두고 와야만 했던 이야기 등등.

그러면서,
자신은 벌써 30년이 훨씬 더 지났지만...
그때 그 악몽과 같은 기억 때문에 다시 베트남을 찾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예전에는 이 이야기를 하는 것 조차 감정이 복받혀서 할 수 없었는데, 이제는 이렇게 이야기를 할 정도까지는 되었다며 감사하다고 했다.

그 기억이 얼마나 악몽과 같았으면,
30년이 훨씬 더 지난 지금에도 조국을 찾을 생각이 전혀 없게 되었을까.

하나밖에 없는 딸은 벌써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했고,
남편과 단둘이 살면서 삶의 소소한 것에 재미를 누리고 있는데...
아 참, 이분은 독실한 캐톨릭 신자이시다. 일요일에 미사를 드리는 것이 큰 기쁨이라고 하셨다.
기도문도 열심히 읽으시고...
어제는 나와 신앙에 대한 이야기도 꽤 오래 나누었다. ^^

10대까지 유복한 집안에서, 
좋은 장래를 꿈꾸며 살았던 베트남 소녀로부터,
공산군에 의한 강제노동자로,
보트피플, 난민으로,
낮선땅에 온 이민자로,
실리콘 밸리에서 테크니션으로 살게된 그분의 인생 여정을 들으며...
그리고 그 와중에 그분을 지켜주었을 그분의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삶을 통해 그분에게 맺어진 열매들이 느껴지게 되었다.

내 삶의 여정을 통해서는,
내 인격에 어떤 열매가 맺히게 되는 걸까...

언젠가는....
그분이 남편, 딸과 함께...
10대에 떠나와야 했던 조국을 다시 방문해,
조국과 시대와 화해를 하고...
마음의 상처를 씻을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도하겠노라고 그분에게 이야기해드렸다.

그분은...
그저 조용히 웃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