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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쪽~ 으로 블로그를 옮깁니다. ^^

긴 생각, 짧은 글 | 2015.02.14 10:16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한주 해본 결과,

저쪽~이 더 좋다는 분들이 많으셔서요....

저쪽~으로 블로그를 옮깁니다.


새 블로그 주소는

http://woodykos.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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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높이는 간사함

긴 생각, 짧은 글 | 2015.02.13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훌륭한 사람을 높게 평가하는 것은 정당한 일이겠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어떤 사람을 높이는 동기가, 대단히 이기적이고 간사한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내가 속해있는 단체의 선배를 많이 존경하고 높인다.
그러면, 결국 그 단체에 속해있는 내가 높아지는 효과를 얻게 된다.

이런 예는 사실 많이 볼 수 있다.
자신이 일하는 업종에 오래 종사했던 사람들을, 그저 그 사람이 오래 그곳에 있었다는 이유로, '존경' 한다거나 '훌륭'하다고 평가하면서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남발하는 경우가 있다.

아니면,
자신과 비슷한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이 하고 있는 노력을,
'헌신', '숭고한 뜻' 등과 같은 말로 포장하여 높이는 경우도 있다.

어핏보면, 그냥 아부하는 것이려니... 하고 쉽게 넘어갈 수 있기도 하겠지만,
사실 그 동기를 파고 보면, 그런 과정을 통해서 자신이 높아지고자 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경향을,
기독교 내에서도 수 없이 발견한다.

성직자들끼리 서로를 많이 높여서 평가하는 것,
자신이 속한 교회의 어떤 사람을 필요 이상 높이는 것,
자신이 속한 단체의 선배의 훌륭함을 일종의 '신화'로 남기고 싶어 하는 것 등등이다.

기독교의 핵심 가운데 하나는,
사람에게 돌려지는 '영광'을 하나님께 집중시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언젠가, 현대 기독교에서... 최소한 한국 기독교에서... 그것을 잃어버린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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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성숙, 성실함

긴 생각, 짧은 글 | 2015.02.12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신앙의 성숙을 여러가지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매우 중요한 측면 가운데 하나는,


"실제 내 노력으로 되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


는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예전에는,

그래도 내가 좀 더 노력해서 무언가를 이루어내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고,

지금도 물론 그런 생각을 많이 하면서 살지만...


이전에, '나의 성취'라고 생각했던 것들 조차도,

내가 이룬 것이 아니라, '이루어진 것' 임을 발견하게 되곤 한다.


그래서,

내 성취 앞에서 겸손하게 되고,

내 실패 앞에서 당당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에머슨이 이야기한 대로, (두주 전에, 들었던 어느 설교에서 그 설교자가 이 말을 인용하셨다.)

믿음이란 손 위에 종달새 알을 놓고 종달새 소리를 듣는 것이다.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가는 이유는,

그렇기 때문에

성취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성실함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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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과 인도인

긴 생각, 짧은 글 | 2015.02.11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우리 그룹에는,

크리스천 백그라운드를 가진 백인 미국인과,

인도에서 태어나서 자라서 성인이 되어 미국에 온 인도인이 있다.


둘다 나이는 60대.


백인 아저씨는, 꽤 유쾌하고 장난기가 있다.

그래서 가끔 농담도 잘 하고, 가끔 재치있는(?) 장난을 치기도 한다.


얼마전에는,

이 백인 아저씨가 큰~ 정말 아~주~ 큰 이상하게 생긴 벌레 한마리를 투명한 플라스틱 병에 잡아서 담았다.

그리고는, 그 병을 우리 그룹에서 제일 깔끔떠는 30대의 여자 엔지니어 책상위에 갖다 놓았다.

그 여자 엔지니어가 소리를 지르며 무서워할 것을 기대하면서 한 일종의 장난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그렇게 병에 담겨있는 벌레를 보더니, 

인도인 아저씨가...

아... 이 불쌍한 것을 여기에 담아 놓았네...

하면서 그것을 가져다가 밖에 나가서 풀어 주었다.


음...

두 사람다 별로 그렇게 religious하지는 않다.

그렇지만 백인 아저씨는 크리스천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있고, 인도 아저씨는 꽤 strong한 힌두교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있다.


작은 생명체 하나를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가...

만물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으로 여기는 framework과,

만물을 하나님으로 여기는 framework 가운데 어디에 더 깊게 배여있게 되는 걸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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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그러진 땅에 사는 사람들의 눈물

긴 생각, 짧은 글 | 2015.02.10 06:00 | Posted by 목수의 졸개 woodykos

1.
함께 K 운동을 섬기다가 이제는 한국으로 돌아간 참 예쁜 부부가 있었다.
남편은 중부 어느 명문 공대에서 공부를 했고, 그와는 나이 차이가 꽤 많이 나는 아내는 아이들을 낳고 예쁘게 키우고 있었다.

그런데,
그 자매가 아주 몹쓸 병에 걸렸다.
젊은 나이라고 이야기하기도 민망한... 정말 어린 나이에 소위 '불치병'에 걸렸으니...
그 마음의 무게가 오죽 했으랴.

그 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내가 그 형제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벌써 5년도 더 지난 일이고,
그 자매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그보다 더 이전이니...

지난 주말,
그 자매가 결국 하나님의 품에 안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린 두 아이와, 아직 젊은 그 남편을 남겨두고.

문상을 다녀온 내 동생의 말에 따르면...
함께 문상을 갔던 K 전-현직 간사들은 많이 우는데,
그 형제는 퀭한 눈으로 울지도 않더란다.

나는 비오는 주말에,
많이 울었다.

2.
지난주 한국 출장 때,
우리 장모님을 정말 잠깐 뵈었다.

장모님께서는,
특유의 밝음을 물론 보이셨지만,

우리 장인 어른 떠나보내신지 얼마되지 않은 그 모습을 뵈면서,
말로 다 할 수 없이 마음이 아팠다.

2월 14일이 우리 장인어른의 생신이고,
2월 15일은 우리 장모님의 생신이시다.

나는 우리 가족들의 생일은,
calendar에 넣어놓고 일주일 혹은 보름 이전에 미리 내게 notification을 주도록 setting을 해 놓는다.

한국에 있을때,
"2월 14일 장인어른 생신" notification이 내 전화, outlook에서 동시에 떴다.

정말 많이... 많이... 마음이 무거웠다.
장인 어른 살아 계실때, 가까이 자주 뵙고 지내지도 못했지만...
그 어른 한번 다시 뵙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3.
내 나이가 이제 한국 나이로 47살이다.
40대 후반으로 가는 셈이다.

'젊었을 때'에는 잘 몰랐지만,
그래도 이정도 나이가 들고 보니,
정말 시간이 빨리 간다.

그래서 한편 감사한 것은,
이 땅에서 보내게 될 시간이 그리 아주 길~게~ 남은 것이 아니겠구나...
뭐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뭐 내가 소위 '평균수명' 대로 산다면,
앞으로도 물론 40년 정도는 더 살게 되겠지만...

(혹은 하나님께서 다른 시간 계획을 가지고 계실 수도 있을 테고)
그렇지만 앞으로 시간은 정말 후다닥~ 지나가게 될 것 같다.

그러면,
참 많은 사람들을 다시 만나게 되겠지.
우리 장인 어른도,
너무 일찍 떠나버린 우리 ㅇㅅ 자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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