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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생각, 긴 글

Control Freak (3) Control Freak이 가지고 있는 가장 근본적이고 고질적인 문제의 근원 가운데 또 다른 하나는, 나 자신에 대해 가지고 있는 비뚤어진 '우월감'이다. Typical한 예를 들자면 이런것이다. 운전을 10여년 잘 해오던 어떤 사람이, 어떤 경로를 통해서, 차선을 바꾸기 전에 깜빡이를 켜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새롭게 깨달았다고 하자. 예전에는 차선을 바꿀 때 깜빡이를 켜지 않을때도 있었던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매번 매우 철저하게 깜빡이를 켜고 차선을 바꾼다. 이것 자체로는 좋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건강한 practice를 생활화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control freak이라면 이것에 대해서 이렇게 반응한다.일단 깜빡이를 켜는 것이 차선을 바꿀때 하는 가장 중요한 행위가 된다. 심지어는 .. 더보기
Control Freak (2) 내가 Control freak 이라는 새로운(?) 인식은, 나로하여금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사실 최근들어 몇가지 내 마음 속에 있는 이슈들로 씨름하고 있었다. 그중 몇가지는 대충 다음과 같다.judgmental한 것, 겸손하지 못한 것, 진실한 관계를 맺지 못하는 것, 내 마음을 열지 못하는 것, 삶의 여유를 갖지 못하는 것, 바쁘게 살면서 서두르거나 조급해하는 것, 다른이들에게 너그러운 마음을 갖지 못하는 것 등등... 내 성품 내에서 이런 이슈들이 자꾸만 드러날 뿐 아니라, 이것들이 쉽게 다스려지지 않아서 나름대로 고통스러워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control freak이라는 사실을 곱씹어 보면서, 위에 열거한 내 문제들이 사실 서로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어떤 의미에서보면 .. 더보기
고난주간 묵상 - 가상칠언 (7) 요한복음 19:30 "다 이루었다"정말 주님께서 다 이루셨다.마치 아직 무엇이 덜 이루어진 것 같이 생각될때도 있지만, 이제 정말 다 이루셨다. 죄에대한 궁극적 심판도, 내 죄에 대한 속죄도, 피조세계의 회복의 시작도, 이제 다 이루어졌다.이제는 죄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게될 수 있는 길이 열렸고, 세상이 감히 상상할수도 없는 소망이 주어졌다.내일 부활절에는 이제,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에 있느냐?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에 있느냐?" 라고 마음껏 죽음을 향해 조롱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수 있다.주님께서 다 이루셨다. 내가 이룬 것이 아니다. 나의 나된 것은, 정말 주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 내가 이룬 것이 아니다. 내 삶의 모.. 더보기
고난주간 묵상 - 가상칠언 (6) 누가복음 23:46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참 길고 긴 하루가 마무리 되고 있다.목요일 밤에 붙잡히신 후에, 밤새 고문을 당하시고, 새벽녘에 엉터리 졸속 재판을 받으시고, 또 다시 각종 모욕과 극심한 고문을 당하시다가 "해골 언덕"에서 나무 십자가에 대못으로 몸을 박아버리는 잔인한 처형을 받으시는... 정말 긴... 하루가 마무리되고 있다.온 인류의 죄를 그 한몸에 모두 담당하시고, 어그러진 세상을 다시 제대로 만드는 광대한 작업의 시작이 이제 완성되어가고 있다.그런데 그때, 예수께서는 '아버지'께 영혼을 맡기신다.십자가의 외로운 처형을 경험하시면서 참 아버지가 많이 보고싶으시지 않으셨을까. 만세전부터 함께 하였던 그 아버지와의 fellowship이 참 그럽지 않았을까. 이제는 그 아.. 더보기
고난주간 묵상 - 가상칠언 (5) 요한복음 19:28 "목마르다"요한복음에서는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말씀'을 인용하신 것이라고 쓰고 있다. 그것은 시편 69편이라고 여겨지는 것 같다.예수께서는... 정말 목이 마르셨다.우리의 죄가 처절하게 다루어지는 모습이 하필이면 왜 이런 육체적 고통이었을까? 꼭 이렇게까지 잔인한 처형 방법이어야 했을까?물론 여러가지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우리의 죄의 consequence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하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아마 십자가 처형보다 더 잔인한 처형법이 그 당시 로마 제국에 있었다면, 예수께서는 그 방법으로 돌아가셨을 것이다. 하나님의 죄를 향한 진노가, 십자가에 달려있는 33살 청년 예수의 몸에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처음 주님을 만났을때, 정말 내 뿌.. 더보기
고난주간 묵상 - 가상칠언 (3) 요한복음 19:26 - 27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자,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마리아를 생각해보면, 정말 기구한 운명의 사람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10대 소녀일때, 결혼도 하기 전에 임신을 했고, 첫 아이를 타지에서 마굿간에서 낳아야 했다.성령으로 잉태한 것이긴 하지만, 사람들은 모두 예수를 '사생아'라고 생각했고, 평생 마리아는 그 멍에를 지고 살아야만 했을 것이다.아마도 일찍, 남편 요셉을 떠나 보내고 과부로 살았고, 그나마 아들이 'miracle worker'로 등장하며 요란스럽게 하더니면, 이제 그 아들이 십자가에 달려 숨을 헐떡거리고 있다.땀흘려 일한 남편이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그날 수수하지만 맛있는 음식을 해 내어 남편과 나누고, 자녀들을 다복하게 낳아 길러서 후손들.. 더보기
고난주간 묵상 - 가상칠언 (2) 누가복음 23:43 "내가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이 말씀은 '예수를 영접하기만 하면 즉각적으로 구원을 얻는' 것을 설명할때 잘 사용하는 구절이다.그렇지만, 나는 이 본문에서... 예수께서 필사적으로(!!) 사람을 찾아 얻어내시는 모습을 보게된다. 다시 말하면,그 처절한 고통 중에서도, 예수께서는 자신이 그 고통을 통해 얻고자했던 것, 즉 사람을 얻는 일을 하고 계시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보다, 그 사람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절박함이 말로 다 할 수 없이 크다. 내가 그 진리의 빛을 깨닫지 못하던 때, 나를 바라보시며 그야말로 발을 동동 구르셨을 사랑 많으신 주님...이제 내가 그 주님을 안다고 이야기하며 살지만, 여전히 그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 더보기
고난주간 묵상 - 가상칠언 (1) 누가복음 23:34"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 사람들은 자기네가 무슨 일을 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20여년전, 처음 내가 이 말씀을 가슴으로 읽게 되었을때, 나는 정말 도무지 어쩔수 없는 전율로 무릎을 꿇고 울었다.그야말로 통곡을 하듯, 그렇게 큰 소리로 울었다.불과 며칠전, 호산나라고 외치며 예수께 환호했던 군중이 이제는 그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고 있는 장면.나는 그 군중 속에서, 얼굴이 새빨개 져서 그 예수를 큰 소리로 조롱하며 비난하고 있는 나를 보았다.그리고 피투성이가 되어 있는 예수는, 이 말씀을 하실때, 그 군중속의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당연히 내 주(Lord)가 되셔야하는 창조주로부터 멀리 떠나있는 나를,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시며 내 허물을 그렇게 자신의 온 몸을 던져.. 더보기
회심 (14) - 맺으며 어찌보면, 부끄러운 이야기를 몇번에 나누어서 적어 보았다. 뜬금없이 내 회심의 경험을 적게된 동기는, 처음 글에서 썼던 것 처럼, 적어도 내가 이해하고 있는 복음과, 내가 겪은 회심의 경험에 따르면 이 세대의 너무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세대의 교회와 기독교를 내가 담아내는 것이 너무 버겁게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만일 내 경험이 특별한 것이었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경험을 하게 하시지 않는 것일까. 이 특별한 경험을 한 내가 이 경험을 바탕으로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은 잘못일까. 왜 내게는 이 특별한 경험을 허락하신 것일까. 이 경험을 바탕으로 내가 해야하는 일은 무엇일까. 이 경험을 절대화하지 않으면서도, 이런 경험을 하지 않는 다른 이들에게.. 더보기
회심 (13) - 내 회심의 특징/한계 1. 나는 회심 경험이 강력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 경험 자체가 매우 주관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결국은 신앙이 논리적이기보다는 직관적이다. 2. 나는 회심 경험이 내 신앙의 중심에 위치해 있고, 새로운 경험등을 결국 내 회심경험으로 해석해내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관점에 따라서는, 나는 매우 보수적이다. 3. 개인적 회심이 매우 중요한 이슈일수밖에 없다. 나는 지금도, 어떤 상황이 되었건, 누군가가 '결신'을 하는 모습을 보면... 거의 90% 이상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고인다. 구원 자체가 과정임을 인정하지만, 여전히 회심의 순간이라는 것을 중요하게여기는 이율배반성이 내 신앙 안에 있다. 4. 회심 이후에 경험했던 변화가 나름 매우 큰 것이었다. 따라서, 회심과 변화(성화)를 떼어서.. 더보기
회심 (12) - 회심의 지속성/현재성 만일, 회심이 한번의 '경험'이고, 그 후에는 그로부터 자라가는 과정이라면... 그 회심의 강한 경험을 한것과, 감동적인 영화를 본 것, 책을 읽은 것, 영감있는 강의를 들은 것등과는 어떻게 그 경험에 차이가 나는 것일까. 신앙생활이란 결국, 그 강한 과거의 경험을 곱씹어가면서 그것에 내 삶의 근본이 있음을 기억해나가는 여정일까. 만일 회심을 '과거의 사건'으로 규정한다면, 그 이후의 삶은, 그 과거를 얼마나 잘 기억하고, 강한 결단력과 정신력으로 그 과거의 사건에 걸맞게 살아가는가 하는 것이어야 한다. 정말 그런가? 회심이후에 내게 생긴 변화는 대충 이런 것들이 있었다. 우선, 매우 사고/생각의 속도가 빨라졌다. 이것은, 복음이라는 세계관을 받아들이고 통합적인 사고를 하는 것을 배우게 되면서 생긴 변화.. 더보기
회심 (11) - 회심과 삶 회심과 일상과의 관계, 회심과 삶의 여러 영역과의 관계, 회심과 세계관/가치관과의 관계를 생각해볼때, 다음의 두가지 그림을 그려볼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첫번째 그림은, 회심으로부터 바로 파생되어 연결되는 생각/생활/삶/가치관 등이 있고, 신앙이 성숙해가면서 점차적으로 2차, 3차적으로 그것이 발전되어가는 모델이다. 이런 경우에는, 회심은 신앙생활의 기본이 되는 중요한 것이긴 하지만, '과거의 사건'이고, 그것으로부터 발전되어나가게되는 일종의 씨앗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두번째 그림은, 생각/생활/삶/가치관등의 모든 영역이 다 회심과 직접적으로 혹은 1차적으로 연관을 가지고 있고는 모델이다. 이런 경우에는, 회심은 신앙생활의 기본이 되는 것 뿐 아니라, 여전히 현재적 사건일수 밖에 없고, 계속해서 돌.. 더보기
회심 (10) - 회심의 순간? 나는 과연, 언제 회심을 하게 된 것일까? 내가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예수님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였을까? 대학교 3학년 언젠가, 마음 속의 공허함을 발견하고, 성경책을 처음 집어 들었을 때였을까? 에베소서에 나타난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발견하고, 무릎을 치며 소망을 찾아내었던 그 순간이었을까? 처음 기도를 하면서 눈물이 터지고, 통곡을 하듯 몇시간씩 울어도 눈물이 마르지 않던 경험을 하던 그 순간이었을까? 어느순간, 내가 나 스스로를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고 인정하기 시작했던.... 그 순간이었을까? 처음 그 강렬한 경험 후 10년이 지난 때, 죄에 대한 깊은 이해가 얻어지게된 그 순간이었을까? 태어나서 30년넘게 가지고 있었던 '꿈'을 주님께 드리고, 내 삶의 앞길을 주.. 더보기
회심 (9) - 회심과 헌신 나름대로, 내 회심의 경험은, 내 근본을 흔들어놓은, 아니 뒤집어 놓은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이성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내가 주체할 수 없을만큼 강한 경험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내 회심의 경험이 강렬해서 일까, 그렇지 않으면 내 성향/성품이 그래서일까. 나는 그 회심이후에 아주 '강한 헌신'을 추구하게 되었다. (이것이 반드시 건강한 헌신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나는 늘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도 내가 여전히 이 헌신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을 머리속에 염두에두고 신앙생활을 했다. 만일, 내가 경험한 이 회심이 '진정한' 것이라면, 정말 이 복음이 진리라면, 예수의 사랑이 그렇게 큰 것이라면, 도무지 그럭저럭 사는 option이 내게는 불가능 했다. 그래서 정말 좌충우돌하며 '강한 헌신'을 추구했었다... 더보기
회심 (8) - 회심의 오염, 비종교적 회심 처음 복음에 눈을 뜨게 되었을때, 마치 나는 내 마음 속에 커다란 빛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이 느꼈다. 환한, 어둠이 조금도 섞이지 않은... 그런 빛. 그런데, 점차 '교회생활'을 해 가면서, 그 빛이 일부 가리워지기도 하고, 어두어지기도 하는 것을 경험했다. 이른바, 회심의 오염이다. 물론, 건강한 공동체 생활이 어린 그리스도인이었던 제대로 서도록 만들어주었던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오염은, 공동체생활이 가져다주는 오염이 아니라, 어그러진 종교체제가 내 안의 빛을 자꾸만 꺼뜨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교회 생활, 혹은 종교 생활이 내게 익숙해 지면서, 나는 그런 종교생활 혹은 교회생활에 의해 오염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그것은 내 안의 빛을 어둡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더보기
회심 (7) - 개인적 회심 나는, 복음을 받아들인 과정이 지극히 개인적이다. 말하자면, 혼자 성경을 읽다가 깨달음을 얻은 셈이다. 지금도 대학교 3학년에서 4학년으로 올라가는 어느 겨울날, 추운 기숙사 방에서 혼자 성경책을 읽던 내 모습을 기억한다. 누군가가 내게 복음을 소개해 준 것도 아니고, 함게 구도의 길을 걸었던 동지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내 신앙은 두가지의 특징을 가진다. 우선, 어떤 '사람'으로부터 지배적으로 받은 영향이 없다. 그래서 사람에 의해 제한되는 경험을 하지 않는 특권을 누렸다. (주변에서 보면, 특별히 신앙적으로 존경하는 한 사람이 뚜렷한 경우, 그 사람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는 경우를 참 많이 보았다.) 그렇지만, 남들은 쉽고 빠르게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이나 가르침을 나는 꽤 어렵게 얻어야 .. 더보기
회심 (6) - 죄 죄에 대한 인식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전제조건일까.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처음 복음을 받아들였던 '이성적인 단계'에서나, 그 후에 복음에 빠져들었던 '감정적인 단계' 모두에서, 죄에대한 깊은 회개, 고백 등은 없었다. 내가 죄에 대해서 더 깊이 알게된 것은, 그 후에 성경공부를 통해서였다. 그리고, 그러면서도 내가 가지고 있어던 갈등은, "이렇게도 죄에대한 인식이 희박한데, 과연 내가 그리스도인이 맞긴 한건가" 하는 것이었다. 나는 예수의 십자가에 깊이 감격했지만, 그것은 내 죄를 용서하셨더는 감격이 아니라, 그렇게까지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랑 때문이었다. 죄에대한 인식 없이, 십자가의 희생이 어떻게 사랑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겠느냐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으나, 적어도 .. 더보기
회심 (5) - 개인적 구원, 우주적 구원 전통적인 교회와 신학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개인의 죄를 용서하는 것에 근거한 개인적 구원이다. 반면 이머징 교회등에서 새롭게 강조하는 것은 우주적 구원, 하나님 나라, 거대담론이다. 나는 처음 회심의 경험때, 무엇을 받아들였을까? 앞의 글에서 언급한대로, 나는 매우 이성적인 깨달음의 과정을 먼저 거쳤고, 그것에 바로 연이어서 아주 격렬한 감정적 경험을 하게 되었다. 먼저 이성적 깨달음을 거칠 때, 내가 가장 인상적으로 읽은 성경책은 에베소서였다. 에베소서에 나타난 '새로운 세상'에 대한 그림이, 거의 충격적일만큼 매력적이었다. 그야말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새로운 세상'에 대한 그림이 그려지는 것을 보면서, "아... 이것이라면 정말 소망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이 땅에서의 여러가지 어그러짐.. 더보기
회심 (4) - 무척 감성적이었다. 그러나 또한, 내 회심 경험은 대단히 감성적인 것이었다. 나는 꽤 전형적인 'nerd' 였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 매우 '나만의 세계'가 좁은 사람이었고, 내 틀로 이해되지 않는 것을 거의 배척하는, 그리고 감성을 이성에비해 열등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이었다. (지금도 어떤 의미에서 그렇고. ^^) 그런데, 내게 큰 변화가 생겼다. 정말,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사가 그야말로 쏟아져 들어왔다. 십자가를 생각할 때 마다, 도무지 어쩌할 수 없는 감격에, 울고, 울고, 또 울었다. 무슨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는게 아니냐고 주변에서 생각할수도 있었을만큼 (다른 이들 몰래 울었기 때문에, 다행히 다른 사람들은 잘 몰랐다.) 몇달 동안은, 밤이고 낮이고 울었던 것 같다. 어떤때, 약간 여유(?)가 생.. 더보기
회심 (3) - 무척 이성적이었다. 소위 '회심체험'하면 이야기하는 갑자기 뽕 맞는 것(?) 같이 감정적으로 확~ 격양이 되더니 갑자기 신비한 체험을 하고, 감정적으로 뜨거워지고... 하는 식을 떠오르기 쉬운데, 내 경험은 그것과는 꽤 많이 달랐다. 어떤 의미에서, 이미 어려서부터 많이 접해왔던 '복음'이 어느날 '새롭게' 깨달아지게 되었다. 기존에 그저 파편적인 윤리강령 정도로 생각했던 복음의 여러 내용들이 한꺼번에 쭈루룩~ 맞추어 지면서, 정말 '말이 된다'하는 탄성을 터뜨리게 되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그 과정중에, 꽤 많이 '성경공부'를 하는 과정이 있었다. 글쎄, 닭이 먼저일까 달걀이 먼저일까 하는 문제일 수 있겠지만, 어느순간 성경말씀이 '말이 되는 것'으로 여겨지기 시작했고, 그래서 정말 미친듯이(?) 공부를 .. 더보기
회심 (2) - 불연속적이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로부터 믿음을 물려받았다고 할 수 있다. 내가 본격적인 '회심 경험'을 했던 것을 대학교 3-4학년 때로 보지만,(벌써... 20년이 훨씬 지난 이야기군. ^^) 기본적으로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믿음, 그리고 어려서부터 교회에 건성으로나마 나갔던 이력등이 있으므로, 아예 무신론자로부터 복음을 받아들인것과 같은 경험은 아니었다. 게다가, 나는 꽤 모범생이었다. ^^ 어찌보면 상당히 답답한 모범생이었다. 대학때,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서 턱이 심하게 다쳤던 적이 있었다. 결국 찢어진 부분을 꿰메러 가면서도, 그것 때문에 수업을 빼먹어야 하느냐 하는 것을 꽤 깊이 고민했을만큼, '샌님'이었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드러나는 대단한 일탈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호위 '허랑방탕하게' 살아본적도 없었다... 더보기
회심 (1) - 우리의 경험이 특별한 것이었던가? 지난번 제주에서, 내 "기도멘토"인 동국이형과 짧은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정말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지금까지 가장 머리 속에 깊이 남아 있는 것은, 동국이형이 "정말 우리의 경험이 그렇게 특별한 것이었던걸까?" 라고 자문했던 것이었다. 동국이형의 질문은 이것이었다. 복음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 복음을 타협하는 사람들, 그리고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살마들을 안타깝게 바라보면서... 정말 어떤 사람이 하나님과 직면하는 경험을 하면, 그 사람의 본질부터 달라지지 않는 것이 가능할까? 많이 부족하고 제한적이긴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과 만나는 경험을 한 이후에, 삶이 근본으로부터 달라졌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과연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는 뜻일까? 혹은 하나님께서.. 더보기
KOSTA/USA-2011 Chicago Conference 후기 (10) 소위 '보수적' 그리스도인들을 보면, 개인적인 필요를 채우는 것을 신앙의 중심에 놓고 사는 것 같다. 또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신앙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고, 거대 담론이나 세계관과 같은 것에는 큰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중심성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라던가, 죄성을 싸워 이기는 것과 같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라남'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소위 '진보적' 그리스도인들을 보면, 거대담론, 가치, 하나님 나라 등과 같은 가치에 충실하려고 노력도 하고, 또 그것을 강하게 소리높여 외치긴 하는데, 막상 그러는 도중에 자신이 개인적으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노력을 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자신이 외치는 가치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 과도한 적개심을 나타낸다거나, 겸손함, 자신.. 더보기
KOSTA/USA-2011 Chicago Conference 후기 (9) 몇년을 반복해서 만나면서도 그 순수함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변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급속히 변질되는 것을 보게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약간 각도를 달리해서 생각해보면,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성숙해 가는 사람이 있고, 시간이 지나도 긍정적인 발전을 별로 발견할 수 없는 사람도 있다. 이것을 2x2 matrix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순수함 유지 순수함 잃어버림 계속 성장해감 성장 + 순수함 성장 + 변질 성장이 없음 정체 + 순수함 정체 + 변질 1. 성장하면서 순수함을 유지하는 경우 이런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지만, 이런 사람 한 사람을 안다면, 그 한 사람을 안다는 사실 만으로도 평생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것 같다. 나는, KOSTA를 통해서.. 더보기
KOSTA/USA-2011 Chicago Conference 후기 (8) KOSTA에서는 두부류의 사람들을 만난다. 첫번째 부류는 뜨려는 사람이다. 그야말로 KOSTA를, 자신이 뜨는 장으로 활용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다. 순수함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아주 불편해 하는 부류의 사람들인데, 사실 이런 사람들이 대단히 많다. -.-; 두번째 부류는 띄우려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자신의 agenda를 가지고 KOSTA에 참여한다. 그래서 자신의 agenda를 가지고 참석한 사람들을 띄우고(agitate, excite) 싶어한다. 이 두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다시 세부류로 나눌 수 있는 것 같다. 첫번째는, 이분들은 이미 자신이 충분히 떴기 때문에 KOSTA 집회에서 뜨는 것이 자신에게 더 이상 득이 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꿈꾸는 더 큰 scale의 사역이나 계획등에 KOS.. 더보기
KOSTA/USA-2011 Chicago Conference 후기 (7) 소위 '이상주의자'라고 비판을 받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들이 좀 있었다. (참고로 나는 나 스스로를 '이상주의자'라고 평가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들을 이상주의자라고 label을 붙이는 것도 동의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을 'so-called 이상주의자'라고 부르겠다. 그리고 나는 그 'so-called 이상주의자'들과 같은 노선에 있는 사람도 아니다. ^^) 참 흥미로운 것은, 그렇게 'so-called 이상주의자'들이라고 평가를 받는 사람들이, 역설적으로 대단히 현실적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so-called 이상주의자'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들을 교회의 독이라고 여기고 그들을 '박멸'하려고 하는 것 같다. 그런데, 'so-called 이상주의자'들은 그렇게 비판하는 사람들을 오히.. 더보기
KOSTA/USA-2011 Chicago Conference 후기 (6) 내가 '성화'라는 주제를 다룬다면... 다음과 같은 plot으로 다룰 것 같다. 1. 성화의 롤모델 먼저 그리스도인의 성화의 모델, 그 성화의 기쁨 등을 image로 혹은 example로 제시해주는 것이 좋은 opening이 되고, 이것을 다룰 중요한 motivation이 될 것 같다. 2. '은혜'에 대한 깊은 이해 복음의 기초로부터 복잡한 개념들이 출발해야 한다는 것은 일반적인 원칙이지만, 특별히 성화라는 주제를 다룰 때, 지금 세대에게는 '은혜'라는 개념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가장 relevant하게 전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은혜를 복잡한 개념으로 설명하기 보다는, 그 은혜가 얼마나 무지막지할만큼 감탄할만큼 위대한 것인가 하는 것을 깊이 다루는 것이 basis로 좋을 것 같다. 3. 온전함으로부.. 더보기
KOSTA/USA-2011 Chicago Conference 후기 (5) 좀 황당하고, 외롭기도 한 느낌이 있었다. 내가 늘 KOSTA에서 따르면서 배우던, 그야말로 우러러보던 간사 선배님들이 시카고에 거의 계시지 않았다. 내가 KOSTA를 섬긴 이래로 이런 상황은 처음 겪었던 일이었다. 어쩌다 속상한 일이 있으면 그분들에게 달려가 투정을 부리기도 하고, 꽉 막힌 것 같이 힘들도 답답할 때 조언을 구할 수 있는 분들이 계시지 않았다. 내가 만나본 사람중, 가장 열정적인 기도를 하시던 김O숙 간사님 생각이 참 많이 났다. 눈물 흘리시며 기도하시던 그 모습. 후배들을 (특히 여자 간사들을) 친동생처럼 품어주시고... 그렇게까지 겸손하실 필요(?)가 없는데... 과장되지 않은, 몸에 밴 겸손함이 늘 포근한. 여러가지 관계 등에서 stress 받을 만한 일들을, 그저 온 몸으로 흡수.. 더보기
KOSTA/USA-2011 Chicago Conference 후기 (4) 많은 분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중 대부분의 분들은, 내가 평소에도 깊이 존경하고 좋아하는 분들이었다. 비록 모든 면에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아니라 하더라도, 함께 대화를 나누는 것이 풍성한 그런 분들이었다. 이분들과 말씀을 나누면서 생각하게 된 것. '성공'한 사역을 이끌고 있는 사람은, 그 사역의 (그리고 그 자신의) 바운더리를 넘어서기 어렵다. 자신이 하고 있는 사역이 성공적이기 때문에,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을 생각을 하기가 어렵고, 따라서 자신이 그려놓은 바운더리 안에 갇혀버리게 되는 것 같다. 자신의 성공한 사역의 시각에서 다른 사역을 바라보는 잘못을 범하기 쉽고, 특히 이미 잘 되고 있는 사역이 있기 때문에, 위기나 도전이 다가올때, 이미 잘 하고 있는 것으로만 그.. 더보기
KOSTA/USA-2011 Chicago Conference 후기 (3) 작년에는, 처음으로 빨간조끼를 벗고 뛰었던 해여서, 적당히 내 자신을 빨간조끼중 하나로 인식하며 지냈던 것 같다. 그런데 금년에는, 내가 잘 알지 못하던 사람들도 꽤 있었을 뿐 아니라, '실무적'으로 내가 했어야 하는 일들이 거의 없어 정말 이제는 빨간 조끼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한참 일하고 있는 빨간 조끼들 사이에서, 매우 어색하고 뻘쭘한 때도 많이 있었고... ^^ 그런데 한편, 이번에 많은 분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집회도 많이 들어가지 못할만큼 많은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점차로... 그림자가 되어 섬기는 이들을 돕도록 내 자리를 positioning 해야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어떤 의미에서, 내년에는, 좀 더 자연스럽게 shadow로 들어가게 될 수 있을 것 .. 더보기